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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와 미디어법이 닮은 점은?

ngo2002 2010. 9. 8. 10:24

[디지털 3.0] KTX와 미디어법이 닮은 점은?

몇 년 전 중국 상하이에 갔을 때 푸둥공항에서 시내까지 초고속 자기부상열차를 탄 적이 있다. 우리나라 KTX에 비해 폭이 넓다는 것이 부러웠고, KTX 시속 300㎞를 훨씬 뛰어넘는 시속 500㎞라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처음 도입이 결정되고 불과 4~5년 만에 완성했다는 것이 가장 부러웠다.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라는 점을 감안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 초고속 철도 도입이 결정된 후 이런 저런 정치ㆍ사회적 갈등 때문에 10년이 훨씬 넘어서야 완성된 우리 KTX와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감수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이 같은 정책 지연 때문에 몇 배의 추가 재원을 감내해야 했던 우리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정책 지연으로 그 효과가 크게 반감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처음 계획대로 KTX가 추진되었다면 지금쯤은 새로운 기술적ㆍ경영적 도약을 모색하는 단계에 와 있을 것이다.

아마 이번에 헌법재판소에서 법률적 효력을 인정받은 미디어법도 비슷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 신문법ㆍ방송법ㆍIPTV법 개정안은 모두 방송시장에서 진입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다. 또 이런 규제 완화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주도해온 경직된 방송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 같은 목적을 현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완화된 진입 규제 아래 추진되고 있는 종합편성채널 도입이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국회에서 8개월 이상 계속된 갈등, 헌법재판소 위헌 심의 등으로 이미 적정 시점을 놓친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정책 추진이 지연되면서 사업자들은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정책 주체들도 동력이 크게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종합편성채널 사업을 준비해 온 사업자들에 피로감이 나타나고 있다. 도리어 종합편성채널 도입으로 기득권을 위협받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업자들이 체계적인 대응전략을 모색하면서 정책 효과가 크게 위축되거나 오히려 부작용만 유발할 수도 있다.

이미 기존 방송사업자들은 경쟁 미디어렙 도입으로 광고시장에서 주도권을 강화하고, 신규 종합오락채널 추가 진입 등으로 종합편성채널 도입 이전에 튼튼한 방어벽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여기에 지상파방송 재전송 대가 협상 등을 통해 다채널 플랫폼에 대한 교섭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는 분위기다.

더구나 일부에서는 새 정부가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방송시장에 대한 구조적 개선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종합편성채널 도입 의지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재판소 판결 직후 정책 책임자인 방송통신위원장이 차후 정책프로그램에 대한 강력한 추진 의지를 밝힌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이처럼 모든 정책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도입 환경과 적합성 역시 그만큼 중요하다. 특히 정책 실행 시점은 가장 무시할 수 없는 핵심 변수라 하겠다. 무엇보다 법률 통과 과정에서 정치ㆍ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정책 지연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미 만원 열차라고 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는 KTX가 사업 추진 단계에서 지연됨에 따라 발생한 엄청난 사회적 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금부터 서둘러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를 선정하고 내년 하반기에 방송을 시작한다고 해도 나름대로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방송사업자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3~4년은 걸릴 것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정치ㆍ경제적 요인들을 들어 또 지연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지금까지 정책을 지연시켜온 요인들을 해소하면서 정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데 진력해야 할 것이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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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3 17:08:3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