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낙악읍성 - "‘내일’을 사는 우리들…잠시 시간을 거슬러 ‘옛길’을 걷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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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고이는 법 없이 살고 싶을 때가 있다. 말을 쉼 없이 하고, 쉼 없이 뛰면서 참 바쁘게도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면에 차오르는 충만한 기쁨보다는 어느 순간엔 반복되는 삶의 방식에 공허감이 들기도 한다.
‘나더러 무슨 일로 산에 사냐길래 웃으며 대답 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흐뭇하다’던 중국 당나라 이백의 산중문답처럼 가끔은 오늘을 내려두고 잠시 쉬어가는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다행히 시간이 멈추는 마을이 있다. 분명 오늘을 사는데 과거를 사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수백 년 시간을 거스르는 삶이 공존하는 낙안읍성이 그곳이다.
돌과 흙으로 담장을 쌓고 초가로 이엉을 얹은 집들이 보인다. 드라마 속에서 보이는 장면 같은데 때가 되면 밥 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주변에는 텃밭도 가꾸어져 있어 과거에 온 듯 착각을 한다. 텃밭에 심어둔 호박이며, 가지며 감자는 반찬거리가 된다. 들여다보니 드라마 속 장면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실제 풍경이다. 낙안읍성민속마을은 과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마을이다.
1626년 당시 고을군수였던 임경업 장군이 축조했다는 낙안읍성은 1.4㎞의 성곽과 290여 동의 초가집에 120세대 288명의 주민이 일반백성들의 삶의 터전의 모습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 현재까지도 허술한 담장 하나 보이지 않는 석성은 1.4㎞를 이어가며 마을을 감싸고 있는데, 대부분의 성들이 산위에 지어진 것과는 달리 평지에 세워진 점이 특이하다. 대표적인 조선시대 지방계획도시로 그 원형이 잘 보존돼 가치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아주까리 동백도 열리고, 그러나 피마자기름 바른 임 떠날까 싶으니 연인이거든 두 손 잡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
동, 서, 남 세 곳으로 자리하는 문을 통해 들어가는 마을은 물레방아가 마을 공동의 물길을 따라 움직이는데 낙안읍성은 동문 낙풍루(대개의 성들은 남문을 주출입구로 한다)가 주출입구이다. 돌담으로 둘러쳐진 고샅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장독보다 더 낮은 돌담은 남방식 툇마루의 초가집들이 경계를 짓고 있다. 남방식 초가집은 ‘一’형으로 따뜻했던 기후를 반영해서 동서로 오는 바람을 지날 수 있게 지은 가옥구조를 말한다.
곳곳에서 풍겨오는 노란 나무에서 핀 꽃 금목서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와 여행자들을 반긴다. 담장에 피어 있는 아주까리도 웃는다. ‘열라는 콩팥은 왜 아니 열고 아주까리 동백은 왜 열려서 내 속을 태우느냐’고 하던 노랫말이 절로 흥얼흥얼~~, 여유와 낭만이 물씬 풍겨나는 고샅풍경이 자꾸만 옷자락을 잡아끈다.
남문 쌍청루 안으로 들어서면 연못에서는 연꽃이 하늘 아래에서 단아한 웃음으로 연지를 꽉 채우고 있어 또한 멋스럽다. 수련연못에 잉어도 한가로이 노니는 것이 그 옛날 그대로이다.
과거의 어느 시간이 책 속에서 튀어 나온 것만 같다. 책에서만 보았던 옛 소달구지라든가, 우물이라든가 툇마루, 섬돌, 토방 등 남부지방의 주거공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학생들에게 교육 공간으로 전통가옥 체험은 참 좋겠다 싶다.
골목마다 민박집도 보이고 초가집 중간중간에 기와로 된 동헌, 객사 등 성 안의 옛 행정기관들이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민속장터와 기념품점, 짚풀 공예와 길쌈, 대장간 등 옛 모습을 추억하는 체험코스 등도 찾는 사람들을 더욱 즐겁게 한다.
장터에 서니 엿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누군가 옆사람에게 장난을 친다. “엿 먹어라.” 장난인 걸 알면서도 욕 같아 얼굴이 굳어지려고 한다. 엿 가게 주인 웃으면서 말해준다. “엿을 나눠 줄게요”하는데 엿은 안 주고 “엿에서 여와 시옷(ㅅ)을 나누면 여와 인(ㅅ)이 됩니다. 그러니 욕하지 마시고 “여인 드세요~”하란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래도 하하하 즐겁다. 여인 드세요.” 엿을 샀다. 인기 만점 엿가게다.
600년 이상 된 은행나무와 이 은행나무가 마을을 수호한다고 믿는 사람들. 정초가 되면 추모, 당제를 지내고 있는 순천 낙안읍성은 400년 이상의 세월이 깃든 마을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CNN 선정 대표 관광지, 문화재청 선정 가족 여행지 32선 등에 선정된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이다.
바람소리도 거닌다는 성곽은 높이 4m 정도의 산책로이다. 가족이나 연인이 느리게 걸으며 과거에 그리 살았을 역사 속의 마을을 내려다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이 확 트이게 느껴보기를 바란다. 읍성의 이 성곽을 꼭 걸어보라고 추천해 본다.
잠시 낙안읍성 성곽을 걷다 보면 이길 끝에 고즈넉한 한옥과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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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한 인심에 먹거리도 풍성
사삼주 곁들인 낙안팔진미 일품
‘울고 왔다, 웃고 간다’는 이야기는 낙안의 후한 인심을 이르는 말이다. 풍부한 산물과 함께 여유있는 삶을 나타내주는 이곳은 풍수지리상 배산임수형 명당의 자리로, 예부터 농경지가 넓고 산수가 화를 이룬 곳이다. 주변 산에서 채취한 더덕을 찹쌉과 누룩으로 발효시켜 만든 사삼주(沙蔘酒)에 곁들인 낙안팔진미 등 먹거리도 풍성하다.
낙안읍성을 찾은 이순신 장군에게 대접하였다고 전해지는 팔진미는 낙안 땅에서 나오는 여덟 가지의 귀한 재료인 석이버섯, 고사리, 도라지, 더덕, 미나리, 무, 녹두묵, 붕어 등 여덟 가지 재료가 기본이 되어 만들어지는 백반 음식이다.
<글= 광주매일신문 정연우 시민기자>
<사진= 광주매일신문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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