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68일간의 신경영 여행
1800명과 350시간 대화…사장단과 800시간 토론 | |
기사입력 2013.05.27 17:11:41 | 최종수정 2013.05.28 13:25:51 |
◆ 삼성 신경영 20years later ① ◆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며 삼성그룹 임직원들에게 전면적인 변화와 혁신을 주문하는 삼성 신경영을 선언했다.
사실상 신경영은 그해 2월 LA 회의에서 시작됐다. 이 회장은 전자 관계사 임원들과 LA 가전매장을 방문해 매장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천덕꾸러기 신세로 방치된 삼성 전자제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회장은 3월 초 도쿄로 장소를 옮겨 삼성 제품 현주소를 또 한 번 확인했다. 6월 1일 삼성 일부 사장단과 일본을 다시 방문한 이 회장은 6월 4일 도쿄 오쿠라호텔에서 일본인 고문 몇 명과 밤샘 회의를 했다.
이때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을 맡고 있던 후쿠다 다미오 씨가 `경영과 디자인`이라는 보고서를 이 회장에게 직접 건넸다. 이를 받아든 이 회장은 6월 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후쿠다 보고서를 읽고 격분해 삼성 임원 200여 명을 독일로 긴급 소집했다.
그는 양 위주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질 위주 경영을 펼쳐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응하지 못하면 영원히 이류, 삼류로 뒤처진다, 나 자신부터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게 할 수 없다, 뛰든 걷든 한 방향으로 함께 가야 하며 동료 뒷다리를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등 변혁을 촉구하는 `사자후`를 연일 토해냈다.
몇 년 내로 일류가 되지 못하면 영원히 이류로 남거나 삼류, 사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느낀 이 회장은 68일간 이어진 국외 간담회를 통해 삼성 임직원들 마음가짐을 바꾸고자 했다.
그는 1800명과 350시간이나 대화했고 사장단과 800시간에 걸쳐 격정 토론을 이어갔다.
[황인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며 삼성그룹 임직원들에게 전면적인 변화와 혁신을 주문하는 삼성 신경영을 선언했다.
사실상 신경영은 그해 2월 LA 회의에서 시작됐다. 이 회장은 전자 관계사 임원들과 LA 가전매장을 방문해 매장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천덕꾸러기 신세로 방치된 삼성 전자제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회장은 3월 초 도쿄로 장소를 옮겨 삼성 제품 현주소를 또 한 번 확인했다. 6월 1일 삼성 일부 사장단과 일본을 다시 방문한 이 회장은 6월 4일 도쿄 오쿠라호텔에서 일본인 고문 몇 명과 밤샘 회의를 했다.
이때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을 맡고 있던 후쿠다 다미오 씨가 `경영과 디자인`이라는 보고서를 이 회장에게 직접 건넸다. 이를 받아든 이 회장은 6월 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후쿠다 보고서를 읽고 격분해 삼성 임원 200여 명을 독일로 긴급 소집했다.
그는 양 위주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질 위주 경영을 펼쳐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응하지 못하면 영원히 이류, 삼류로 뒤처진다, 나 자신부터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게 할 수 없다, 뛰든 걷든 한 방향으로 함께 가야 하며 동료 뒷다리를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등 변혁을 촉구하는 `사자후`를 연일 토해냈다.
몇 년 내로 일류가 되지 못하면 영원히 이류로 남거나 삼류, 사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느낀 이 회장은 68일간 이어진 국외 간담회를 통해 삼성 임직원들 마음가짐을 바꾸고자 했다.
그는 1800명과 350시간이나 대화했고 사장단과 800시간에 걸쳐 격정 토론을 이어갔다.
[황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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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 깨부수고 환골탈태…`오늘의 삼성` 일군 혁신의 현장들
①구미공장 시중에 내놓은 불량 다 태워라 | |
기사입력 2013.05.27 17:13:59 | 최종수정 2013.05.28 18:0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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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로 보는 삼성의 20년 삼성그룹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1993년 신경영 이후로 비약적인 경영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삼성 매출은 1987년 10조원에서, 1993년 29조원, 2012년 380조원으로 성장했고 같은 기간 세전이익은 2000억원에서 8000억원, 39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삼성그룹 시가총액은 1993년 7조6000억원에서 2012년 338조원으로 40배가 넘게 커졌다. | ||
이건희 삼성 회장의 1993년 신경영은 삼성 조직 곳곳에 스며들어 종전과는 다른 대변혁을 이끌어냈다. 타성에 젖어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조직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초일류 기업을 지향하자는 이 회장의 주문은 질(質) 위주 경영을 바탕으로 한 복합화, 국제화, 정보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의 공장과 각 사업장은 한국을 대표할 `명품` 이미지를 획득했다. 질 경영의 표본으로 거듭난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복합화의 롤모델 중 하나인 삼성서울병원, 국제화를 선도한 삼성 국제경영연구소 등 3곳을 조명하면서 신경영의 의미를 추적했다.
"삼성에서 사실상의 질 경영이 시작된 것은 1979년 내가 부회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였다. 그런데도 95년 삼성전자가 판매한 무선전화기 가운데 불량품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나는 즉시 시중에 내보낸 15만대 전부를 새 제품으로 교환해 주거나 회수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회수한 제품 모두를 공장 전체 임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소각하도록 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저서 `이건희 에세이`에서)
삼성전자 구미공장에 벌어진 일명 `불량제품 화형식`은 삼성 생산현장의 불량 불감증에 경종을 울린 충격적 사건이었다. 1994년 삼성전자는 무선전화기의 품질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산을 추진해 불량률 11.8%라는 암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5개 전화기 모델 중 4개 모델의 생산을 중단했지만 한번 잃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는 역부족이었다.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공장 운동장에 2000여 명의 임직원들이 모여들었다.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애처롭게 나부꼈다. 운동장 한가운데 무선전화기, 키폰, 팩시밀리 등 15만대의 제품을 쌓아놓고 10여 명의 직원들이 육중한 해머를 내리쳤다. 산산조각난 제품들은 곧 뜨거운 화염 속에서 잿더미로 변했다.
이건희 회장의 추상 같은 지시로 500억원에 달하는 제품들이 한순간에 사라졌지만 삼성 무선사업부는 불량제품 화형식을 계기로 환골탈태했다. 특히 휴대폰 생산의 본산인 구미공장은 월드 베스트급의 생산 역량을 다른 해외 공장에 전수하는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로 거듭났다. 삼성 질 경영의 표본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이승호 삼성전자 부장은 "생산직 1명이 조립, 검사, 포장을 다 하는 1인셀 제조방식을 2008년 채택한 이후로 개인 품질실명제를 도입했다"면서 "구미공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성을 자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30.4%로 30%대를 첫 돌파했으며 애플 등 경쟁사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올해 1분기에만 6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이는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의 74%에 해당하는 놀라운 이익 규모다. 500억원어치 제품을 폐기 처분하면서 살을 깎는 고통을 감내한 결과, 삼성그룹 전체를 먹여 살리는 `캐시카우` 사업으로 십수 년 만에 완벽하게 재탄생한 셈이다.
이근 서울대 교수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제조기술센터를 중심으로 한 프로세스 혁신과 노하우의 신속한 공유로 제조기술 공동화와 기술 단절을 방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황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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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휴대폰 생산의 본산으로 꼽히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전경. 1995년 이건희 회장은 불량제품 15만대를 소각할 것을 지시했고 이는 질 경영을 한층 가속시키는 계기가 됐다. | ||
(이건희 삼성 회장의 저서 `이건희 에세이`에서)
삼성전자 구미공장에 벌어진 일명 `불량제품 화형식`은 삼성 생산현장의 불량 불감증에 경종을 울린 충격적 사건이었다. 1994년 삼성전자는 무선전화기의 품질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산을 추진해 불량률 11.8%라는 암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5개 전화기 모델 중 4개 모델의 생산을 중단했지만 한번 잃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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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인력개발원에서 직원들이 어학ㆍ에티켓 등 국제화 마인드 향상을 위한 연수를 받고 있다. 국제경영연구소는 삼성 인력의 국제화를 뒷받침하는 사관학교로 각광받고 있다. | ||
이건희 회장의 추상 같은 지시로 500억원에 달하는 제품들이 한순간에 사라졌지만 삼성 무선사업부는 불량제품 화형식을 계기로 환골탈태했다. 특히 휴대폰 생산의 본산인 구미공장은 월드 베스트급의 생산 역량을 다른 해외 공장에 전수하는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로 거듭났다. 삼성 질 경영의 표본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이승호 삼성전자 부장은 "생산직 1명이 조립, 검사, 포장을 다 하는 1인셀 제조방식을 2008년 채택한 이후로 개인 품질실명제를 도입했다"면서 "구미공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성을 자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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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삼성서울병원 공사 현장을 방문해 건립 진행 현황을 직접 챙기고 있다. 이 병원은 1994년 개원했으며 이 회장의 지침에 따라 병원 복합화와 장례문화 변화 등을 선도했다. <사진 제공=삼성> | ||
이근 서울대 교수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제조기술센터를 중심으로 한 프로세스 혁신과 노하우의 신속한 공유로 제조기술 공동화와 기술 단절을 방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황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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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해도 삼성답게" 의료환경 확바꿔
②삼성서울병원 | |
기사입력 2013.05.27 17:15:31 | 최종수정 2013.05.27 19:22:57 |
◆ 삼성 신경영 20years later ① ◆
"병원을 해도 병원연구소, 의료기기연구소, 병리학연구소를 같이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의료기기연구소는 우리가 보유한 전자ㆍ전기ㆍ반도체 기술 등을 접목해 나가면 종합 첨단연구소가 될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6월 신경영 선언 이후 밝힌 `병원 복합화` 청사진이다. 이 회장은 "병원에 연구소는 물론이고 대형 슈퍼, 놀이터, 공부방, 수영장, 볼링장 등 복지시설을 넣어도 좋다"며 "간호대학도 단지 내에 함께 세워보자"고 주문했다.
이는 종업원 복지를 향상시키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며 환자의 조기 회복 등을 돕는 1석 5조, 10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구상은 1년 뒤 삼성서울병원을 개원하면서 구체적인 실행에 옮겨졌다.
이 회장은 당시 병원 공사 현장을 수시로 살펴보면서 "낙후된 병원이 환자 입장에서 얼마나 큰 고통인지 너무도 잘 알면서 그대로 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기업 총수가 할 일이 못 된다"며 소매를 걷어올렸다. 삼성서울병원은 1994년 개원 초기 병원연구단지를 복합화하면서 `환자 중심`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세웠다. 장례식장의 신모델을 선보이며 한국 장례문화 변화를 선도했다. 병원과 연구소 간 융복합을 장려하고 의학과 유전자치료를 결합한 삼성유전체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21세기 경쟁력의 핵심은 복합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서로 연관성이 있는 인프라, 시설, 기능, 기술이나 소프트웨어를 효과적으로 결합시켜 유기적인 상승 효과를 내도록 하는 게 복합화다. 이는 행정, 도시, 산업, 기업, 복지 등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이 회장은 "백화점도 한 빌딩 안에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백화점이 되는 것이지, 이를 1㎞ 길이로 흩어 놓으면 소매점이 산재해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모든 사물, 기계, 성능을 2개 합치면 가격은 2배가 되는 게 아니라 3~4배가 된다고도 했다.
그는 삼성 이름이 붙는 것은 모두 복합화해 보자고 주문했다.
TV에 비디오테이프리코더(VTR)와 카세트를 붙여 다양하게 쓰는 상품 복합화, 카드ㆍ증권ㆍ전자ㆍ옷ㆍ약국 등 판매매장을 단지화하는 판매 복합화, 전자ㆍ중공업ㆍ항공ㆍ소프트웨어 등을 결합하는 사업 복합화 등을 제시했다.
[강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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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해도 병원연구소, 의료기기연구소, 병리학연구소를 같이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의료기기연구소는 우리가 보유한 전자ㆍ전기ㆍ반도체 기술 등을 접목해 나가면 종합 첨단연구소가 될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6월 신경영 선언 이후 밝힌 `병원 복합화` 청사진이다. 이 회장은 "병원에 연구소는 물론이고 대형 슈퍼, 놀이터, 공부방, 수영장, 볼링장 등 복지시설을 넣어도 좋다"며 "간호대학도 단지 내에 함께 세워보자"고 주문했다.
이는 종업원 복지를 향상시키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며 환자의 조기 회복 등을 돕는 1석 5조, 10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의 이 같은 구상은 1년 뒤 삼성서울병원을 개원하면서 구체적인 실행에 옮겨졌다.
이 회장은 당시 병원 공사 현장을 수시로 살펴보면서 "낙후된 병원이 환자 입장에서 얼마나 큰 고통인지 너무도 잘 알면서 그대로 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기업 총수가 할 일이 못 된다"며 소매를 걷어올렸다. 삼성서울병원은 1994년 개원 초기 병원연구단지를 복합화하면서 `환자 중심`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세웠다. 장례식장의 신모델을 선보이며 한국 장례문화 변화를 선도했다. 병원과 연구소 간 융복합을 장려하고 의학과 유전자치료를 결합한 삼성유전체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21세기 경쟁력의 핵심은 복합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서로 연관성이 있는 인프라, 시설, 기능, 기술이나 소프트웨어를 효과적으로 결합시켜 유기적인 상승 효과를 내도록 하는 게 복합화다. 이는 행정, 도시, 산업, 기업, 복지 등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이 회장은 "백화점도 한 빌딩 안에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백화점이 되는 것이지, 이를 1㎞ 길이로 흩어 놓으면 소매점이 산재해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모든 사물, 기계, 성능을 2개 합치면 가격은 2배가 되는 게 아니라 3~4배가 된다고도 했다.
그는 삼성 이름이 붙는 것은 모두 복합화해 보자고 주문했다.
TV에 비디오테이프리코더(VTR)와 카세트를 붙여 다양하게 쓰는 상품 복합화, 카드ㆍ증권ㆍ전자ㆍ옷ㆍ약국 등 판매매장을 단지화하는 판매 복합화, 전자ㆍ중공업ㆍ항공ㆍ소프트웨어 등을 결합하는 사업 복합화 등을 제시했다.
[강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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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삼성魂` 깨운 신경영…20년 지난 지금은
삼성 신경영 촉발시킨 `LA 가전매장` 찾아가보니… 1993년, 3류 취급받던 구형 브라운관TV…2013년, 매장 한복판에 삼성 스마트TV | |
기사입력 2013.05.27 17:40:15 | 최종수정 2013.05.28 18:1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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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매장은 삼성엔 남다른 사연이 담겨 있다. 1993년 2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임원들과 방문했던 LA 베스트바이로 그해 6월 7일 `신경영` 선언을 촉발시킨 장소다. 매일경제는 삼성과 LA 현지를 수소문해 이 회장이 들렀던 그 매장을 찾았다.
20년 전 매장 구석에서 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이 회장의 `진노`를 샀던 삼성 TV는 이제 이 매장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팻 맥건 LA 베스트바이 지점장은 "이 매장에서 삼성 55인치 스마트TV가 가장 잘 팔린다"며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으니 목좋은 곳에 전시하는건 당연한 일"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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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삼성은 이미 망한 회사나 다름없다. 지금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2등 정신을 버려야 한다. 세계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호되게 질책했다.
삼성 신경영이 시작된 1993년 당시 이건희 회장의 수행팀장을 했던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는 "삼성이 왜 못하나 봤더니 조직 구성원들이 글로벌 일류가 뭔지 모르는 것 같다고 이 회장이 판단한 것 같았다. 직원들이 세계 1등 제품을 보고 느끼게 하자는 게 이 회장의 생각이었다"고 회상했다.
류한호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의식, 고객만족을 위해 양에서 질로 가야 한다는 절박함,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는 국제화가 삼성을 일류로 변모시킨 키워드"라고 말했다.
삼성은 1993년 신경영을 시작으로 대변신을 시작했고 TV, 반도체, 휴대폰 등 세계 1등 제품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LA·뉴욕 = 이경진 기자 / 서울 = 황인혁 기자]
• 먼지 쌓인 천덕꾸러기 삼성TV, 프리미엄 브랜드 되다 |
• 김양규 북미총괄법인장 "삼성형 `멜팅 팟`…신경영 엔진으로" |
• 이건희 회장 68일간의 신경영 여행 |
• 구태 깨부수고 환골탈태…`오늘의 삼성` 일군 혁신의 현장들 |
• "병원을 해도 삼성답게" 의료환경 확바꿔 |
• 다른나라 문화 체득하는게 미래의 자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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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나라 문화 체득하는게 미래의 자산
③국제경영연구소 | |
기사입력 2013.05.27 17:14:43 | 최종수정 2013.05.27 19:23:58 |
◆ 삼성 신경영 20years later ① ◆
"일본 전자업체 인사팀장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게 바로 삼성의 지역전문가 제도예요. 어떻게 이 제도를 운영할 수 있었는지 신기해 하지요."(삼성 고위 관계자)
이건희 삼성 회장은 회장 취임 직후부터 이 제도를 실행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사실 지역전문가 제도를 만들라고 이 회장이 처음 지시한 시기는 1973년이다. 하지만 많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그룹 참모진들이 난색을 표했다. 이 회장은 1986년과 1988년에도 지시한 사항이 이행되지 않자 1990년엔 고함을 질러버렸다고 1993년 일본 후쿠오카 회의에서 언급했다.
이 회장은 세계 각지에 `젊은 삼성인`들을 파견해 다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체득하도록 하는 게 향후 회사 차원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국제화 시대 첨병 역할을 할 글로벌 인재를 시급히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고 느꼈다.
1990년부터 지역전문가 제도를 본격화한 삼성은 1년 동안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외국의 언어와 문화를 익힐 젊은 직원들을 선발했다. 각 연수자에게 월급과 각종 체재비가 지원되고 일을 안 하는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1인당 3억원가량이 든다. 이 회장은 "5년 후, 10년 후를 위한 것"이라며 이 제도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삼성은 1990년 이후 20년간 80개국 4400여 명의 지역전문가를 배출했다. 지난해는 50개국에서 285명의 지역전문가가 활동했으며 신흥 전략지역의 대상자 수를 점차 높이고 있다. 이러한 지역전문가와 해외 주재원을 해외 배치 전에 합숙 교육시키는 장소가 삼성 인력개발원 산하 국제경영연구소(국경연)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이 연구소는 1994년 설립됐으며 해외 파견자들의 글로벌 에티켓, 문화, 언어적 감각을 높이는 트레이닝 코스로 알려져 있다. 또한 삼성의 국제화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싱크탱크 역할도 한다.
이 회장은 "해외 영업을 정착시키려면 현지 유통 시스템이나 제도, 업계 관행을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며 "되도록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지역전문가 출신으로 선발하고 파견 전에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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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자업체 인사팀장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게 바로 삼성의 지역전문가 제도예요. 어떻게 이 제도를 운영할 수 있었는지 신기해 하지요."(삼성 고위 관계자)
이건희 삼성 회장은 회장 취임 직후부터 이 제도를 실행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사실 지역전문가 제도를 만들라고 이 회장이 처음 지시한 시기는 1973년이다. 하지만 많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그룹 참모진들이 난색을 표했다. 이 회장은 1986년과 1988년에도 지시한 사항이 이행되지 않자 1990년엔 고함을 질러버렸다고 1993년 일본 후쿠오카 회의에서 언급했다.
이 회장은 세계 각지에 `젊은 삼성인`들을 파견해 다른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체득하도록 하는 게 향후 회사 차원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국제화 시대 첨병 역할을 할 글로벌 인재를 시급히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고 느꼈다.
1990년부터 지역전문가 제도를 본격화한 삼성은 1년 동안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외국의 언어와 문화를 익힐 젊은 직원들을 선발했다. 각 연수자에게 월급과 각종 체재비가 지원되고 일을 안 하는 기회비용을 감안하면 1인당 3억원가량이 든다. 이 회장은 "5년 후, 10년 후를 위한 것"이라며 이 제도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삼성은 1990년 이후 20년간 80개국 4400여 명의 지역전문가를 배출했다. 지난해는 50개국에서 285명의 지역전문가가 활동했으며 신흥 전략지역의 대상자 수를 점차 높이고 있다. 이러한 지역전문가와 해외 주재원을 해외 배치 전에 합숙 교육시키는 장소가 삼성 인력개발원 산하 국제경영연구소(국경연)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이 연구소는 1994년 설립됐으며 해외 파견자들의 글로벌 에티켓, 문화, 언어적 감각을 높이는 트레이닝 코스로 알려져 있다. 또한 삼성의 국제화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싱크탱크 역할도 한다.
이 회장은 "해외 영업을 정착시키려면 현지 유통 시스템이나 제도, 업계 관행을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며 "되도록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지역전문가 출신으로 선발하고 파견 전에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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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쌓인 천덕꾸러기 삼성TV, 프리미엄 브랜드 되다
이건희 회장이 들렀던 LA 베스트바이 매장 가보니 "20년전에는 푸대접 받았다니 상상도 할 수 없어" 맥건 지점장 "소니 애용하다 삼성TV로 바꿨다" 세탁기등 생활가전도 월풀·GE 아성에 도전장 | |
기사입력 2013.05.27 17:11:13 | 최종수정 2013.05.27 19:2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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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방문했던 LA 베스트바이 매장. 당시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에 방치돼 있던 삼성전자 제품은 20년이 지난 현재 미국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됐다. LA 베스트바이를 찾은 한 방문객이 삼성 스마트TV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LA/이경진 기자> | ||
"20년 전만 해도 삼성이란 브랜드를 아는 미국인은 극소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삼성을 모르는 미국인이 없죠. 도대체 2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LA 베스트바이 매장에서 만난 팻 맥건 지점장은 삼성 스마트TV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맥건 지점장은 1993년 2월 이건희 회장이 바로 이곳을 방문해 매장 구석에 먼지 쌓인 채로 방치돼 있던 삼성 가전제품을 목격한 일화를 들려주자 "지금 삼성전자를 생각하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 삼성전자는 북미 TV 시장에서 확고한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2006년부터 점유율 1위를 한 번도 내준 적이 없다.
2004년 삼성 평판TV는 점유율 5.9%(매출 기준)을 기록해 10%대였던 샤프 파나소닉 등 일본 업체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던 게 2006년 점유율 14.3%를 찍으면서 소니를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이후 삼성전자는 승승장구했다. 지난해엔 무려 30.6%라는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한 자릿수에 불과한 일본 업체들을 저만치 따돌렸다.
마침 맥건 지점장은 삼성 TV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2006년부터 삼성전자 TV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시장에서 `TV는 소니`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과감하게 삼성 TV를 선택했어요. 소니만 알던 와이프한테 `잘못 산 것 아니냐`는 질책을 들었지만 실제로 사용해 보니 화질에 대한 가족들 만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이제 저희 가족뿐 아니라 미국 가정 곳곳에서 삼성 TV를 찾아볼 수 있게 됐죠."
맥건 지점장이 삼성 TV 진가를 알기 2년 전인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인력 수백 명이 사업 성과가 `형편없던` TV사업부로 대거 이동했다.
이건희 회장 신경영 선언에 따른 후폭풍이었다.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전자부문 최고경영진 40여 명이 모인 그룹 차원의 태스크포스(TF)도 탄생했다.
바로 TV일류화추진위원회다. 그룹 역량을 총동원해 삼류 취급을 받던 삼성 TV를 세계 1등으로 만들자는 게 목표였다.
화질을 좌우하는 반도체 개발에 기술자 500여 명이 매달렸고 LCD사업부는 대형 패널을 만들어 이를 뒷받침했다. 디자인팀 역시 전에 없던 감각적인 TV 디자인을 고민했다. 이렇게 탄생한 보르도 TV를 시작으로 삼성은 세계 TV시장 1등 고지를 밟았다. 신경영 선언 13년 만에 이룬 성과다.
맥건 지점장은 이 매장에서 삼성 55인치 TV `F8000` 모델이 가장 인기가 높다고 귀띔했다.
이를 반영하듯 삼성 TV는 경쟁사 제품과 비교해 목좋은 자리에 전시돼 있었다. 맥건 지점장은 "소문난 화질을 보다 쉽게 체험해 보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명이 가장 풍부한 매장 한가운데에 삼성 3D TV와 스마트 TV가 나란히 진열돼 있고 손님들은 이를 경험하기 위해 수시로 긴 줄을 섰다.
이 매장에는 TV뿐 아니라 다양한 삼성 제품이 소비자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세일즈 매니저인 카일 씨는 "TV도 대단하지만 세탁기와 같은 생활가전 분야에서도 삼성 제품이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세탁기 시장은 전통적으로 GE와 월풀이라는 걸출한 브랜드가 주름잡고 있지만 양사 아성을 삼성전자가 점차 허물고 있다고 베스트바이 측은 설명했다.
실제로 월풀 프리미엄 세탁기 옆에 삼성전자 드럼세탁기가 어깨를 나란히하고 있었다. 삼성 세탁기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남편과 함께 드럼세탁기를 주의깊게 살펴보던 멜리사 씨는 "삼성 세탁기가 다른 제품보다 가격경쟁력이 있고 기술도 뛰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카일 씨는 "삼성 가전은 프리미엄 제품도 있지만 여러 가격대 제품을 동시에 선보여 소비자 선택권을 넓혀줬다"고 말했다.
모바일 제품인 갤럭시S와 갤럭시노트 등을 전시한 베스트바이 `숍인숍`. 삼성전자가 현지에서 직접 교육한 직원들이 손님들에게 제품 기능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현지 소비자들이 삼성 제품에 관심이 높은 만큼 제대로 설명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는 것이다. 숍인숍 직원들은 전부 파란색 삼성전자 유니폼을 갖춰 입고 손님을 응대했다.
최근 미국 전역 베스트바이에는 삼성 전용 매장이 숍인숍 형태로 속속 들어서고 있다. 다음달 말이면 미국 내 1050개 베스트바이 매장에 입주를 완료한다.
김양규 삼성전자 북미총괄부사장은 "폭발적인 소비자 반응을 보고 삼성 숍인숍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베스트바이 사장도 놀랐다"며 "다른 양판점들도 삼성전자에 숍인숍 입점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부사장은 "TV, 백색가전 등 시장이 줄어드는 역성장을 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어려운 와중에도 괄목할 만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며 "올해 북미 지역 가전시장에서 과거 3년보다 더 빠른 성장을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LA·뉴욕 = 이경진 기자]
현재 삼성전자는 북미 TV 시장에서 확고한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2006년부터 점유율 1위를 한 번도 내준 적이 없다.
2004년 삼성 평판TV는 점유율 5.9%(매출 기준)을 기록해 10%대였던 샤프 파나소닉 등 일본 업체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던 게 2006년 점유율 14.3%를 찍으면서 소니를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이후 삼성전자는 승승장구했다. 지난해엔 무려 30.6%라는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한 자릿수에 불과한 일본 업체들을 저만치 따돌렸다.
마침 맥건 지점장은 삼성 TV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2006년부터 삼성전자 TV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시장에서 `TV는 소니`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과감하게 삼성 TV를 선택했어요. 소니만 알던 와이프한테 `잘못 산 것 아니냐`는 질책을 들었지만 실제로 사용해 보니 화질에 대한 가족들 만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이제 저희 가족뿐 아니라 미국 가정 곳곳에서 삼성 TV를 찾아볼 수 있게 됐죠."
맥건 지점장이 삼성 TV 진가를 알기 2년 전인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인력 수백 명이 사업 성과가 `형편없던` TV사업부로 대거 이동했다.
이건희 회장 신경영 선언에 따른 후폭풍이었다.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전자부문 최고경영진 40여 명이 모인 그룹 차원의 태스크포스(TF)도 탄생했다.
바로 TV일류화추진위원회다. 그룹 역량을 총동원해 삼류 취급을 받던 삼성 TV를 세계 1등으로 만들자는 게 목표였다.
화질을 좌우하는 반도체 개발에 기술자 500여 명이 매달렸고 LCD사업부는 대형 패널을 만들어 이를 뒷받침했다. 디자인팀 역시 전에 없던 감각적인 TV 디자인을 고민했다. 이렇게 탄생한 보르도 TV를 시작으로 삼성은 세계 TV시장 1등 고지를 밟았다. 신경영 선언 13년 만에 이룬 성과다.
맥건 지점장은 이 매장에서 삼성 55인치 TV `F8000` 모델이 가장 인기가 높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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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장에는 TV뿐 아니라 다양한 삼성 제품이 소비자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세일즈 매니저인 카일 씨는 "TV도 대단하지만 세탁기와 같은 생활가전 분야에서도 삼성 제품이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세탁기 시장은 전통적으로 GE와 월풀이라는 걸출한 브랜드가 주름잡고 있지만 양사 아성을 삼성전자가 점차 허물고 있다고 베스트바이 측은 설명했다.
실제로 월풀 프리미엄 세탁기 옆에 삼성전자 드럼세탁기가 어깨를 나란히하고 있었다. 삼성 세탁기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남편과 함께 드럼세탁기를 주의깊게 살펴보던 멜리사 씨는 "삼성 세탁기가 다른 제품보다 가격경쟁력이 있고 기술도 뛰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카일 씨는 "삼성 가전은 프리미엄 제품도 있지만 여러 가격대 제품을 동시에 선보여 소비자 선택권을 넓혀줬다"고 말했다.
모바일 제품인 갤럭시S와 갤럭시노트 등을 전시한 베스트바이 `숍인숍`. 삼성전자가 현지에서 직접 교육한 직원들이 손님들에게 제품 기능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현지 소비자들이 삼성 제품에 관심이 높은 만큼 제대로 설명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는 것이다. 숍인숍 직원들은 전부 파란색 삼성전자 유니폼을 갖춰 입고 손님을 응대했다.
최근 미국 전역 베스트바이에는 삼성 전용 매장이 숍인숍 형태로 속속 들어서고 있다. 다음달 말이면 미국 내 1050개 베스트바이 매장에 입주를 완료한다.
김양규 삼성전자 북미총괄부사장은 "폭발적인 소비자 반응을 보고 삼성 숍인숍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베스트바이 사장도 놀랐다"며 "다른 양판점들도 삼성전자에 숍인숍 입점을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부사장은 "TV, 백색가전 등 시장이 줄어드는 역성장을 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어려운 와중에도 괄목할 만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며 "올해 북미 지역 가전시장에서 과거 3년보다 더 빠른 성장을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LA·뉴욕 = 이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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