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21세기 人文學 리포트] `지렛대` 찾은 이순신의 출사표

ngo2002 2013. 3. 23. 10:15

[21세기 人文學 리포트] `지렛대` 찾은 이순신의 출사표
기사입력 2013.03.22 14:27:03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출사표 중 하나는 바로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선조(宣祖)에게 올린 장계(狀啓)일 것이다.

1597년 2월 26일에 이순신 장군은 매국노의 누명을 쓰고 한산도에서 체포됐다. 그 후 7월 16일에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의 수군은 일본 수군에 의해 전멸했다. 다급해진 조정은 7월 23일에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했다. 하지만 8월 15일에 해전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조정은 이순신 장군에게 수군을 없애고 육전에 참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바로 이때 이순신 장군은 그 유명한 장계를 올리게 된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의 몸이 살아 있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얕보지는 못할 것입니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외견상 그의 출사표는 단순히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결사항쟁을 외치는 어느 장수의 평범한 글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글은 냉철한 천부적 전략가였던 이순신 장군의 출사표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에 조정의 출정 명령을 거역해 체포된 전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순신 장군은 승산이 없는 무모한 전투를 벌인 적이 없으며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먼저 갖춘 상태에서만 전쟁에 나섰다.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해서 12척으로 200여 척의 적선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이순신 장군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출사표를 작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그가 레버리지 포인트(leverage point)를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레버리지 포인트는 `커다란 변화를 낳는 작은 변화`를 뜻한다. 이것은 마치 누군가가 커다란 바위를 옮겨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을 때, 무작정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현장을 잘 살펴 지렛대의 역할을 할 만한 것을 발견해내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따르면, 명량해전 바로 전날 이순신 장군은 휘하 장수들에게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레버리지 포인트는 콜럼버스(Columbus)의 달걀처럼 아는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만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숨은 그림 찾기에서 목표 대상을 찾아낸 사람에게는 분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못 찾아낸 사람에게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명량해전에서 소용돌이 급류의 존재 자체는 레버리지 포인트와는 무관하다. 왜냐하면 당시에 울돌목이 중요하다는 점은 양쪽 지휘관 모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선봉장 구루시마 장군은 이순신 장군에게 목숨을 잃은 형의 복수를 다짐하면서 명량해전에 대비해 울돌목처럼 소용돌이 해류가 흐르는 구루시마 해협에서 해전 훈련을 한 후 참전하였다. 특히 구루시마는 울돌목 조류가 밀물일 때 기습을 하면 130여 척으로 13척과의 전투를 속전속결로 끝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계산 아래 그는 울돌목의 밀물이 정점에 달하는 10시께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명량해전에 동참했던 사호(沙湖) 오익창(吳益昌)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수군에게 명량해전에서의 레버리지 포인트는 조류가 밀물에서 썰물로 바뀔 때까지 세 시간을 버티기 위한 준비를 미리 해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이순신 장군은 솜이불을 물에 담가 적신 뒤에 배에 나누어 걸어 왜군의 조총 탄환이 뚫지 못하도록 방비하는 동시에 동아(박의 일종)를 배에 가득 싣고서 뙤약볕 아래에서 군사들이 탈진하지 않도록 대비했다.

바로 이순신의 출사표는 이러한 레버리지 포인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성된 천하의 명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