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공직자 전관예우 실태]퇴직 공직자에 로펌은 ‘돈·권력 왕래’ 고리… 갈수록 커지는 영향력(하) 회전문 인사

ngo2002 2013. 2. 22. 09:39

[공직자 전관예우 실태]퇴직 공직자에 로펌은 ‘돈·권력 왕래’ 고리… 갈수록 커지는 영향력

ㆍ(하) 회전문 인사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윤병세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고위 공직에서 퇴임한 이후 대형 로펌(법무법인)에서 근무했다. 이들은 로펌에 있을 당시 한 달에 수천만~수억원대의 봉급을 받았다. 공직에서 경력을 쌓은 뒤 이를 이용해 돈을 벌고, 다시 고위 공직으로 돌아오려는 것이다. 일부 인사들이 돈과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공직→로펌→공직’을 오가는 과정에서 공직사회가 로펌의 영향력 아래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 “후배 공직자에 민원청탁 쉽다”
법조·통상관료 스카우트 표적
후보자 낙마해도 일자리 생겨


“공직 출신 전관들 급여”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고위공직자 출신 전관들의 급여’ 내용을 보여주며 질문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공직과 로펌을 ‘핑퐁’처럼 오가

검사 출신인 정홍원 후보자는 법무연수원장에서 퇴임한 이후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를 맡았다.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뒤 또다시 로고스의 고문으로 근무했다. 그리고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지낸 뒤 이번에 총리 후보자가 됐다. 황교안 후보자는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에서 퇴직한 뒤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으로 활동해왔다. 윤병세 후보자는 청와대 안보정책수석에서 물러난 직후부터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고문으로 일해왔다. ‘공직→로펌→공직’의 고리를 최소 한번 이상씩은 경험했다.

고위 공직에서 퇴직한 인사들이 로펌으로 갈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의 ‘쓸모’ 때문이다. 인맥으로 얽혀 있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이들은 ‘전화 한 통’만으로도 후배 공직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 일반인들은 받기 힘든 로펌의 높은 연봉

로펌에서 복귀하는 고위 공직자들이 눈총을 받는 이유는 그동안 받았던 높은 연봉 때문이다. 판사나 검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등은 공직자윤리법상 재산등록의무자로 규정돼 있다. 판사의 경우 처음 임관된 시점부터 매년 자신의 재산내역을 법원행정처 윤리감사실에 제출해야 한다. 고등부장판사가 된 시점부터는 재산내역이 관보에 게재돼 일반에도 공개가 된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불릴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차단돼 있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관들 사이에서는 ‘대법관 청문회에 통과하려면 일부러라도 청렴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황교안 후보자의 경우 로펌에 근무하던 16개월 동안 한 달에 약 1억원씩을 받았다. 한 달 봉급이 보통 회사원 연봉의 2~3배에 달한다. 로펌에서 돌아오는 다른 후보자들도 매달 최소한 수천만원씩의 봉급을 받았다.


■ 로펌의 힘이 변화의 배경

‘공직→로펌→공직’을 오가는 공직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변호사 업계를 장악한 로펌의 확장에도 원인이 있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판검사 출신 유명 변호사들은 대부분 단독으로 개업했다. 어차피 변호사 이름을 보고 사건이 오는 것이기 때문에 구태여 로펌에 들어가 이익을 나눌 이유가 없었다. 중앙지검 특수부 부장검사나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몇 년 만에 수백억원을 번다는 얘기도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들면서 개인 개업은 위험한 일이 됐다. 아무리 철저히 해도 세금을 관리하기가 어려웠다. 대법관을 마치고 대법원장을 노리며 변호사를 하던 이용훈 전 대법원장도 재임 중에 세금 논란에 휘말렸다. 게다가 변호사 업계가 어려워지면서 소위 ‘잘나가는’ 검사를 제외하면 검사가 단독 개업으로 사건을 유치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몸집을 불려온 로펌들은 퇴직을 앞둔 고위 법관들을 활발하게 스카우트했다. 퇴직 당시 근무하던 법원과 검찰청 사건을 1년간 수임하지 못하게 하는 새로운 변호사법(일명 전관예우금지법)은 퇴직 판검사들의 로펌행을 더욱 늘렸다. 로펌에 들어가면 개인 이름 없이 회사 차원에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제약을 무마시킬 수 있다. 수임계를 내지 않고 전화로 변론하고 로펌에서 상여금을 받으면 그만이다. 로펌의 이름 뒤에서 돈을 버는 것은 공직 재진출에도 도움이 된다. 적어도 겉으로는 맡은 사건이 없으니 문제될 일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 공직사회 오염 우려

로펌에 갔다가 공직에 재진출하는 공직자는 로펌 전체를 공직사회로 끌고 가는 효과가 있다. 특정 로펌 출신의 공직자가 주요 공직에 다시 진출하면 해당 로펌에 사건이 몰린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 관료들은 정부를 상대로 건강보험 약가를 올려달라는 제약업체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들에 인기가 높다.

최원영 전 복지부 차관은 법무법인 태평양에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최 전 차관의 전임자인 유영학 전 차관 역시 퇴임 후 법무법인 율촌에서 고문으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현대차정몽구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2011년엔 보험약제과에서 근무하던 사무관이 김앤장으로 옮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통상관료들이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김원경 전 주미 한국대사관 경제참사관은 지난해 3월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의 장본인인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도 2009년 3월 삼성전자 해외법무사장으로 영입됐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금융감독위원장에서 퇴임한 후 김앤장 고문으로 활동하다 다시 공직에 올랐으며,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지식경제부 2차관으로 재직한 뒤 김앤장 고문으로 활동하다 발탁됐으나 2010년 8월 청문회에서 낙마했다. 이 전 후보자는 두 달 뒤 김앤장 고문으로 복귀했다.

고위 공직 후보자에 올랐다가 낙마해도 대부분 대형 로펌으로 되돌아갔다. 김병화 전 대법관 후보자는 낙마한 지 5ㅋ개월 만에 김앤장 변호사로 영입됐고,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는 낙마 후 법무법인 로월드에서 활동하다 2011년 11월 김앤장으로 옮겼다.

<류인하·김기범·김지환 기자 acha@kyunghyang.com>

 

[공직자 전관예우 실태]막을 방법 없는 ‘회전문 인사’… “로펌 출신 세심한 검증 필요”

‘공직→로펌→공직’의 회전문 인사를 제도적으로 막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를 제도적으로 막는 법을 만들면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전문 인사는 공적인 업무에 외부 영향력이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부작용을 막을 방법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말했다.

최근 <동굴 속에 갇힌 법조인>을 출간한 민경한 변호사는 “현재 시행 중인 법조차 실효성이 없는 상황에서 고위공직자의 회전문 인사는 더더욱 막기 어렵다”고 말했다. 판검사 출신 변호사는 최종 근무지에서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가 생겼지만 해당자들이 대형 로펌에 들어가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이 같은 주장의 근거다. 그는 “법을 만들어놓아도 이를 무력화시키는 편법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법으로 회전문 인사를 막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민 변호사는 “법관정년제를 자리 잡게 만들어 중간에 퇴직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평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아예 헌법을 개정해 전관예우와 회전문 인사 등 잘못된 현상을 근절할 수 있는 조항을 넣을 것을 제안했다. 그는 “거창한 얘기이기는 하지만 헌법을 개정하고 전관예우방지법을 별도의 법으로 만들어 퇴직공직자가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 사건을 처리할 경우 엄하게 처벌할 수 있게 하면 전관예우 등의 부작용이 어느 정도 근절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전관을 또다시 공직에 등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이를 막기 위해 법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퇴직 후 로펌에 취업해 수억원씩 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연줄을 이용해 돈을 챙기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연줄을 이용해 거액의 수임료를 얻는 것 자체가 부도덕한 일인데 그런 사람들을 또다시 공직자로 임명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로펌에서 지나치게 높은 봉급을 받은 고위 공직자는 가급적 다시 공직에 발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들이 공직에 재진출하는 경우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세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법조계 관계자들은 말했다. 일부에서는 로펌의 영업방식을 규제하고 수임내역을 공개토록 해 퇴직 공직자들의 활동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입력 : 2013-02-21 22:18:01수정 : 2013-02-21 22:18:01


 


 

입력 : 2013-02-21 22:18:08수정 : 2013-02-21 22: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