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산행,걷기)

[신정일의 길]내가 소유한 곳만 집이겠는가

ngo2002 2013. 2. 1. 10:41

[신정일의 길]내가 소유한 곳만 집이겠는가

길을 걷고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인지라, 나는 여러 사람들과 이틀이나 사흘, 길게는 보름 정도 집을 떠나 있을 때가 잦다. 그때마다 동행자들로부터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선 잠을 못 이룬다는 말을 듣곤 한다. 집을 내가 소유하고 내가 사는 곳으로만 여기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하지만 집이 어디 꼭 한정된 울타리로 된, 내가 소유한 곳만 집이던가. 광활한 우주가 다 나의 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내가 잠시 거처하거나 머무는 모든 곳이 다 집이 된다. 수많은 시간과 수많은 돈에 의해 만들어진 내 집만이 아니라, 내가 잠시 빌린 남의 집도 내가 거처할 때까지는 내 집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순간 내가 잠깐 머무는 모텔, 내가 하루이틀 묵어가는 리조트나 펜션, 짧은 기간 몸을 누이는 콘도나 별장들이 다 내 집이다.

“일시적으로 머무는 장소는 우리의 정신을 처음 몇 주일 동안은 고통스럽게 한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실려 있는 구절이다. 처음 집을 나서면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그것은 모두 소유에 대한 습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프루스트는 그 습관에 빠져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습관을 길들이라고 말한다.

소유에 대한 습관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거주할 만한 곳이 어디 내가 사는 집뿐이겠는가. 집을 나서는 순간 내가 머무를 곳은 도처에 있다. 산에서 머무르고, 강에서 머무르고, 동행길의 어느 집에서 머무르고, 걷는 이의 마음속에서도 함께 머무른다. 머무르는 곳마다 다 집이려니 생각하면 눈과 마음이 열린다. 이보다 큰 행복이 어디 있으랴.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동사강목>을 지은 안정복 역시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어디서나 만난 사람 그 모두가 친구이고

이 강산 발 닿는 곳 그곳이 바로 집이라네.

늘그막에 와서는 그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또 어부 따라 모래톱에 앉았다네.’

마음먹으면 가는 곳마다 내 땅이요, 자는 집마다 내 집이 아니겠는가. 옛사람들은 ‘산에 가면 바다를 그리워하고, 바다에 가면 산을 그린다’고 했다. 집을 나서면 집을 그리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집이란 풍경보다는 영혼의 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제 집을 소유로 여기는 습관에서 벗어나 보라. 세상 모든 곳이 다 그리워지지 않겠는가. 내 주소를 가진 그 집만을 나의 집이라 여기지 말고, 지금 현재 머무는 곳을 내 집이라 여기고 산다면 언제든 떠나고 돌아오는 것이 자유스럽다.

<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입력 : 2013-01-17 20:47:12수정 : 2013-01-17 22: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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