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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길]흰머리와 대머리

ngo2002 2012. 12. 28. 11:12

[신정일의 길]흰머리와 대머리

요즘 사람들을 보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흰머리들이 늘어나, 어떤 사람은 아직 나이가 삼십도 안되었는데 머리가 마치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하얀 경우도 있다. 흰머리가 많으면 나이가 한 10여년은 더 들어 보이기 때문에 염색을 하기도 하고 모자를 쓰기도 하지만, 그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신경이 쓰이는 흰머리를 두고 재미있는 글이 한 편 있다.어떤 두 늙은 관리가 이웃에 살면서 상종하는데, 한 사람은 흰털을 뽑아 칠(漆)과 같이 검었고, 한 사람은 뽑지 않아 희기가 눈 같았다. 털 뽑은 사람이 “흰털을 뽑으면 다섯 가지 이익이 있으니, 첫째 늙은 추태를 가릴 수 있고, 둘째 얼굴이 아름답고, 셋째 소년을 따를 수 있고, 넷째 처첩을 기쁘게 할 수 있고, 다섯째 벼슬을 그만두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머리가 흰 사람이 “수염은 형체가 없으니 혹 숨길 수 있으나 형체 없는 나이는 결국 피할 수 없지 않나”라고 했다. 홍만종의 <명엽지해>에 실린 글이다. 하지만 뽑고 또 뽑아도 생기는 흰머리도 사람을 난감하게 하지만 대머리 역시 그에 못지않다. 두 문사가 나란히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털보이고, 한 사람은 대머리여서 매번 서로 조롱했다. 대머리가 털보를 “우스워라, 털보야! 온몸이 털투성이, 양 볼은 어데 있는데 코 하나만 높이 솟았는고. 푸른 입술 움직임을 보지도 못하고 때때로 흔들리는 흰 이만 보는구나”라고 놀렸다. 그러자 털보가 대머리를 “대머리 늙은이를 무엇인가 하였더니, 얼굴은 그 모양으로 밉게도 생겼구나. 처음 볼 적에는 추부(醜婦)인가 의심하였더니, 자세히 보니 흡사 요승(妖僧)을 닮았구나. 내시와 똑 같고 포주와 접합한 벗일레라. 감로(甘露)의 변(變)을 듣기라도 하게 되면 너 따위가 제일 먼저 통렬하게 징계받을 것이네”라고 비웃었다. 이 역시 <명엽지해>에 실린 글이다.옛사람들의 글을 보면 예전에도 머리가 희게 세거나 머리가 빠지는 것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말도 많고 걱정도 많았던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걱정들을 유머와 재치로 풀어낸다.머리가 일찍 빠져 대머리가 되는 사람도 있는데, 이발소 주인의 말에 의하면 그런 사람들은 머리카락 하나라도 빠질까봐 노심초사한단다. 요즘은 머리를 심기도 하고 염색도 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당사자들은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여간 아닐 것이다.세상을 살아가면서 저마다 걱정거리 한두 가지씩은 다 있는 법,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데, 어쩌겠는가. 변화하는 것이 진리이거니, 이것이나 저것이나 모든 것이 다 자연의 한 현상이거니 하며 살아간다면 어떨까?

<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입력 : 2012-12-27 21:27:01수정 : 2012-12-27 21:2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