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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길]세상에 대한 도의

ngo2002 2013. 2. 1. 10:46

[신정일의 길]세상에 대한 도의

인사청문회만 열린다고 하면 마음이 편치가 않다. 겉은 번지르르한데, 열어놓고 보면 늘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위장전입, 자식 군대 안 보내기, 다운계약서는 기본이다. 관청 돈을 자기 돈으로 여기며, 땅투기에 아파트 몇 채 역시 필수이다 보니 청빈함과 능력을 두루 갖춘 이를 나라의 동량으로 세우기가 너무 힘든 세상이다.그래서 조선 중종 때 판서를 지낸 김정국의 삶이 눈길을 끈다. 김정국은 당시 사람들의 눈에 나게 재물을 모으고 있다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 속에 청빈하게 살았던 그의 집과 내면 풍경이 오롯하다.“내가 20년을 빈곤하게 사는 동안, 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 전답을 갈고, 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이 각기 두 벌 있었으나 눕고서도 남은 땅이 있고 신변에는 여벌옷이 있었으며, 주발 밑바닥에 남은 밥이 있었소, 이 세 가지 남은 것을 가지고 한세상 편하게 지냈던 것이오. 비록 넓은 집 천 칸과 옥 같은 곡식 만 섬과 비단옷 백 벌을 보아도 썩은 쥐와 같이 여겼고, 이 한 몸이 살아가는데 여유와 낙이 있었소. 없을 수 없는 것은 오직 서책 한 시렁, 거문고 하나, 벗 한 사람, 신 한 켤레, 잠을 청할 베개 하나, 바람을 들일 창 하나, 차 달일 화로 하나, 햇볕 쬐일 마루 한 쪽, 늙은 몸을 부축할 지팡이 하나, 봄 경치를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면 족한 것이오.”김정국은 가장 바람직한 인생으로 재산 모으는 것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의리를 지키면서 세상에 대한 도의를 다하며 사는 것임을 역설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불문율이 있었다. 권력과 재물이 있을지라도 백성들에게 상대적 빈곤감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목천(木川)이나 연기(燕岐), 청안같이 작은 고을의 수령들은 밥상에 국, 김치, 간장 외에 반찬 두 가지를 넘지 못하게 했다. 그것은 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막론하고 모두가 더불어 살기를 원하는 원심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나만 잘살면 된다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탓에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는다.김정국만 그런 삶을 살았던 게 아니다. 단칸 헛가리를 짓고 살았던 역관 조신이 지었다는 시를 보자. “아, 나는 가는 곳마다 자적하네. 몸이 천하므로 작은 벼슬도 영광이요, 집이 가난하므로 박봉이라도 만족하고, 거처하는 곳은 무릎이나 들이면 그만이요, 음식은 산해진미가 아니라도 배부르면 좋고, 술은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그만두고, 혼자면 자작, 둘이면 대작. 시는 잘 지어 무엇하리, 내 뜻이나 말할 뿐, 글도 탐독이 아닌 노곤하면 자고마니, 이것이 모두 나의 자적이로세.”

잠시 살다 가는 세상에서, 이렇게 넓고도 광활한 마음으로 한평생 살아갈 수는 없을까?

<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입력 : 2013-01-31 21:43:58수정 : 2013-01-31 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