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6주년 특집]5대 제안 - 보육은 사회적 책임이다
ㆍ[사회계약 다시 쓰자 Ⅱ]
경기 안산에서 8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장모씨(37)는 출산과 함께 하던 일을 그만뒀다. 음악 학원 강사를 했던 장씨는 최소한 갓난아이 때만이라도 엄마가 직접 육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경제활동을 그만뒀다. 비록 자영업을 하는 남편의 벌이가 안정적이진 않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시기는 20개월 이후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장씨의 결정에는 정부의 무상보육 확대 정책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정부는 돌연 ‘다른 얘기’를 꺼냈다. 지난달 24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보육지원체계 개편안은 장씨와 같은 전업주부를 ‘역차별’하는 내용이었다. 올해는 0~2세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는 모든 가정에는 12시간의 종일반 보육비가 지급됐지만, 이번 정부 개편안은 내년부터 맞벌이 부부와 전업주부 가정을 구분해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약 7000억원의 재원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전업주부 가정 아이에게 지급해왔던 보육시설비를 절반 가까이 깎아버린 것이다.장씨는 “놀고 싶어서 노는 것도 아니고 돈이 넘쳐나서 경제활동을 포기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정책이 오락가락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면 무상보육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득상위 30% 가구는 보육비 전액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정부의 얘기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당장 소득 상위 29%와 31%를 나누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아이 보육을 위해 맞벌이를 그만둘 수 없는 사람들까지 졸지에 고소득자로 몰려 이제껏 받아오던 보육비가 뚝 끊기는 것도 합당한 조치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가파른 고령화 속도, 이로 인한 사회 전체의 복지 부담은 진보·보수 할 것 없이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사회문제다. 찬반 양론이 격하게 대립했던 무상급식에 비해 영유아 무상보육 정책의 필요성이 대체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맥락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비록 정부가 제동을 걸긴 했지만 ‘경제적 부담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사회구조는 깨뜨려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근시안적 접근 방식이다.
▲ 사회 구조는 맞벌이가 필수인데
육아를 보는 시각 여전히 전근대적
개별 가정·여성의 문제로 바라봐
▲ 영·유아 양육 부담 덜지 못하면
출산 기피 풍조 못 벗어나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2012년까지 0~5살의 보육비를 전액 지원하겠다”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지부진하던 무상보육 공약은 지난해 8월 여당에서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제기한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를 앞두고 다시 나왔다. 반대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었고 지난해 말 관련 법이 통과되면서 올 3월1일부터 시행됐다. 예산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절반씩 부담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준비가 부족했다. 보육비를 댈 돈이 떨어진 지자체는 국가에 손을 벌렸고 예산을 짜야 하는 기획재정부는 국회 탓을 했다. 이 같은 흐름에서 ‘선별 지원’을 골자로 하는 보육체계 개편안이 등장했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오락가락하는 정책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일단 정부의 선별 지원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예산안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권한은 국회에 있고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정부의 개편안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조금 더 지원된다고 해서 보육 문제가 당장 해결되리라 기대하는 것 역시 힘들다.
보육을 위한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육아를 개별 가정의 문제, 특히 여성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는 강하게 남아 있다. 사회·경제 구조는 이미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맞벌이가 필수인 쪽으로 바뀌었는데도, 육아를 보는 관점은 아직도 전근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진공상태나 다름없는 사회적 영·유아 보육체계 아래에서 아이 엄마들은 시어머니나 친정엄마에게 통사정을 하거나 ‘조선족 아줌마’를 고용했다. 이마저도 어려운 엄마들이 급증하면서 어린이집 수요도 폭증했다. 남에게 양육을 맡기는 데 드는 비용은 고스란히 일하는 여성의 몫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육아의 부담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는 결국 여성들의 ‘출산 파업’이라고 할 정도의 심각한 저출산으로 이어졌다.
국가는 ‘돈 주면 될 것 아니냐’는 시각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민간부문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보육시설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보육비마저 차별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궁리하고 있는 정부에는 어쩌면 과도한 요구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장 중심으로 형성된 현행 보육체계에서 정부가 보육비 지원액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지난해 전체 보육예산 2조5600억원 가운데 79%가 보육료 지원과 양육수당 등 현금 지원에 들어간 반면, 공공시설 설립에는 불과 0.46%밖에 쓰이지 않았다. 국가가 장기적 차원에서 보육정책 수립의 책임을 방기하며 민간 영역에 의존해 온 결과, 국공립 시설은 전체 보육시설의 약 5%에 불과한 구조가 형성됐다. 지난 2월 보육료 인상을 요구하며 전국의 민간 어린이집이 집단 휴업에 돌입해 보육대란을 일으킬 뻔했던 사태는 지금 같은 과도한 시장 의존형 체계에서는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민간 어린이집과 유치원들도 나름대로 불만이 많다. 정부의 통제로 낮게 형성된 보육료 탓에 교사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원장은 운영에 애로를 겪으면서 폭증하는 수요를 겨우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보육시설에서의 급식사고나 안전사고, 아동폭행 등의 사건을 시설 운영자나 교사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다.
1991년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된 데는 단초가 있었다. 서울 망원동에 사는 맞벌이 부모가 밖에서 문을 잠그고 출근한 뒤 연립주택 지하에서 불이 나 4, 5세 자매가 죽은 사건이 그것이다. 20년이 지났지만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지난해 12월 인천 부평구의 한 단칸방에서는 한밤중에 불이 나 6살 여자아이가 숨졌다. 혼자서 딸을 키우던 20대 엄마는 화재 당시 아이를 재우고 문을 잠근 뒤 유흥업소에 아르바이트를 나간 상태였다. 보육비를 소득 수준에 따라 차별적으로 줘야 할지, 전면 무상으로 지원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사회에서는 이 같은 비극적인 사고가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정책 당국이 보육비 지원 대상을 어디까지로 해야 할지를 놓고 책상에서 씨름하는 동안 맞벌이 부부와 혼자 된 엄마는 한 푼을 더 벌기 위해 아이를 위험 속에 던져 놓고 문을 잠근 채 집을 나서야 한다. 부모만이 아이를 키우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한 명의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는 사회 전체의 돌봄이 필요하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경기 안산에서 8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장모씨(37)는 출산과 함께 하던 일을 그만뒀다. 음악 학원 강사를 했던 장씨는 최소한 갓난아이 때만이라도 엄마가 직접 육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경제활동을 그만뒀다. 비록 자영업을 하는 남편의 벌이가 안정적이진 않지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시기는 20개월 이후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장씨의 결정에는 정부의 무상보육 확대 정책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정부는 돌연 ‘다른 얘기’를 꺼냈다. 지난달 24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보육지원체계 개편안은 장씨와 같은 전업주부를 ‘역차별’하는 내용이었다. 올해는 0~2세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는 모든 가정에는 12시간의 종일반 보육비가 지급됐지만, 이번 정부 개편안은 내년부터 맞벌이 부부와 전업주부 가정을 구분해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약 7000억원의 재원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전업주부 가정 아이에게 지급해왔던 보육시설비를 절반 가까이 깎아버린 것이다.장씨는 “놀고 싶어서 노는 것도 아니고 돈이 넘쳐나서 경제활동을 포기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정책이 오락가락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면 무상보육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득상위 30% 가구는 보육비 전액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정부의 얘기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당장 소득 상위 29%와 31%를 나누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아이 보육을 위해 맞벌이를 그만둘 수 없는 사람들까지 졸지에 고소득자로 몰려 이제껏 받아오던 보육비가 뚝 끊기는 것도 합당한 조치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가파른 고령화 속도, 이로 인한 사회 전체의 복지 부담은 진보·보수 할 것 없이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사회문제다. 찬반 양론이 격하게 대립했던 무상급식에 비해 영유아 무상보육 정책의 필요성이 대체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맥락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비록 정부가 제동을 걸긴 했지만 ‘경제적 부담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사회구조는 깨뜨려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근시안적 접근 방식이다.
아동이 좋은 환경에서 보호받고 교육받는 것, 보육은 여성이나 개별 가정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기본권이다. 서울시청 직장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육아교사들과 함께 놀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사회 구조는 맞벌이가 필수인데
육아를 보는 시각 여전히 전근대적
개별 가정·여성의 문제로 바라봐
▲ 영·유아 양육 부담 덜지 못하면
출산 기피 풍조 못 벗어나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2012년까지 0~5살의 보육비를 전액 지원하겠다”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지부진하던 무상보육 공약은 지난해 8월 여당에서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제기한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를 앞두고 다시 나왔다. 반대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었고 지난해 말 관련 법이 통과되면서 올 3월1일부터 시행됐다. 예산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절반씩 부담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준비가 부족했다. 보육비를 댈 돈이 떨어진 지자체는 국가에 손을 벌렸고 예산을 짜야 하는 기획재정부는 국회 탓을 했다. 이 같은 흐름에서 ‘선별 지원’을 골자로 하는 보육체계 개편안이 등장했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오락가락하는 정책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일단 정부의 선별 지원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예산안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권한은 국회에 있고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정부의 개편안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조금 더 지원된다고 해서 보육 문제가 당장 해결되리라 기대하는 것 역시 힘들다.
보육을 위한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육아를 개별 가정의 문제, 특히 여성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는 강하게 남아 있다. 사회·경제 구조는 이미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맞벌이가 필수인 쪽으로 바뀌었는데도, 육아를 보는 관점은 아직도 전근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진공상태나 다름없는 사회적 영·유아 보육체계 아래에서 아이 엄마들은 시어머니나 친정엄마에게 통사정을 하거나 ‘조선족 아줌마’를 고용했다. 이마저도 어려운 엄마들이 급증하면서 어린이집 수요도 폭증했다. 남에게 양육을 맡기는 데 드는 비용은 고스란히 일하는 여성의 몫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육아의 부담이 덜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는 결국 여성들의 ‘출산 파업’이라고 할 정도의 심각한 저출산으로 이어졌다.
국가는 ‘돈 주면 될 것 아니냐’는 시각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민간부문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보육시설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보육비마저 차별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궁리하고 있는 정부에는 어쩌면 과도한 요구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장 중심으로 형성된 현행 보육체계에서 정부가 보육비 지원액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지난해 전체 보육예산 2조5600억원 가운데 79%가 보육료 지원과 양육수당 등 현금 지원에 들어간 반면, 공공시설 설립에는 불과 0.46%밖에 쓰이지 않았다. 국가가 장기적 차원에서 보육정책 수립의 책임을 방기하며 민간 영역에 의존해 온 결과, 국공립 시설은 전체 보육시설의 약 5%에 불과한 구조가 형성됐다. 지난 2월 보육료 인상을 요구하며 전국의 민간 어린이집이 집단 휴업에 돌입해 보육대란을 일으킬 뻔했던 사태는 지금 같은 과도한 시장 의존형 체계에서는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민간 어린이집과 유치원들도 나름대로 불만이 많다. 정부의 통제로 낮게 형성된 보육료 탓에 교사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원장은 운영에 애로를 겪으면서 폭증하는 수요를 겨우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보육시설에서의 급식사고나 안전사고, 아동폭행 등의 사건을 시설 운영자나 교사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다.
1991년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된 데는 단초가 있었다. 서울 망원동에 사는 맞벌이 부모가 밖에서 문을 잠그고 출근한 뒤 연립주택 지하에서 불이 나 4, 5세 자매가 죽은 사건이 그것이다. 20년이 지났지만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지난해 12월 인천 부평구의 한 단칸방에서는 한밤중에 불이 나 6살 여자아이가 숨졌다. 혼자서 딸을 키우던 20대 엄마는 화재 당시 아이를 재우고 문을 잠근 뒤 유흥업소에 아르바이트를 나간 상태였다. 보육비를 소득 수준에 따라 차별적으로 줘야 할지, 전면 무상으로 지원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사회에서는 이 같은 비극적인 사고가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정책 당국이 보육비 지원 대상을 어디까지로 해야 할지를 놓고 책상에서 씨름하는 동안 맞벌이 부부와 혼자 된 엄마는 한 푼을 더 벌기 위해 아이를 위험 속에 던져 놓고 문을 잠근 채 집을 나서야 한다. 부모만이 아이를 키우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한 명의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는 사회 전체의 돌봄이 필요하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입력 : 2012-10-05 21:41:25ㅣ수정 : 2012-10-05 21: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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