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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자력개발, 이제 시작이다] ["러시아에 2300억 주고…" 나로호 충격 증언

ngo2002 2013. 2. 2. 09:12

"러시아에 2300억 주고…" 나로호 충격 증언

[로켓 자력개발, 이제 시작이다] [3] 우주사업 걸림돌 없애자 ①무개념 국회 - "나로호 성공한 뒤에나 보자" 지역 민원 다루듯 마구 칼질 ②무관심 정부 - 국가 우주정책을 과장이 총괄, 고위급들은 이벤트에만 관심 ③무소신 연구소 - 정부 입맛 맞추는 데 급급… 독자개발 주장 연구원 사표 조선비즈 | 이길성 기자 | 입력2013.02.02 03:07 | 수정2013.02.02 05:56

기사 내용

2011년 11월 9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예결소위. 한국형 발사체 개발 3년째인 2012년도 예산을 두고 교육과학기술부 측의 증액(增額)론과 야당 의원들의 감액(減額)주장이 맞섰다. 한국형 발사체는 1.5t짜리 인공위성을 쏴 올릴 수 있는 액체연료 로켓. 이를 2021년까지 우리 손으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외국 로켓을 빌리지 않고 위성을 발사하고 달 탐사선을 쏘는 등 독자적인 우주개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가사업이다.

↑ 이것이 바로 2002년에 만들었던 대한민국 최초의 액체연료 로켓…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하던 최초의 액체연료 로켓‘KSR-3’의 마지막 발사 모습. 2002년 11월 28일 충남 서해안 발사장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KSR-3는 이날 고도 43㎞, 거리 80㎞를 날았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이 로켓 4개를 묶어 위성을 쏴 올리는 로켓으로 발전시키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KSR-3는 그러나 항우연이 러시아에서 1단 액체로켓 완제품을 사오는 쪽으로 선회하면서 개발이 중단되고 말았다.

도마에 오른 예산은 443억원. 당초 교과부는 1150억원을 신청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이미 3분의 1 정도를 깎아버린 상태였다. A 의원은 거기서 128억원을 더 깎겠다고 주장했다. "(나로호가)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 아니냐. 성공한 뒤에 보자"는 논리였다. 동료인 B 의원도 "사업이 2021년 끝난다면 서두를 이유가 없다. (나로호가) 성공할 때까지 (예산을) 보류했다가 성공하는 순간에 10배로 꽝 해가지고…"라고 말했다. 연이은 나로호 발사 실패의 책임을 추궁하는 차원에서 '징벌성' 삭감을 주장한 것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예산을 여기서 더 깎거나 천천히 갈 거면 이 사업을 아예 다 중단하는 게 낫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한 의원은 "그 돈으로 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말라"고 다그쳤다. 의원들은 마치 지역 민원 예산을 다루는 듯한 태도였다. 우주 강국과 북한 가운데 낀 한국의 생존을 좌우할 국가 전략 사업을 다룬다는 진지함이나 안목은 엿볼 수 없었다. 실제로 한국형 발사체 사업은 2012~13년 2년간 당초 예산보다 926억원이나 부족한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21년 발사 일정을 맞추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형 발사체 예산은 마구 칼질하는 국회지만, 우주로켓 나로호 개발사업이 기형적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는 거의 '까막눈'이었다. 한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한·러 우주기술보호협정 등 세 차례의 협정·협약을 군소리 없이 통과시켜준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러시아에서 1단 로켓 완제품을 사올 뿐 엔진 등 핵심 기술은 전혀 배울 수 없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당시 비준에 참여한 한 의원은 "다들 기술을 이전받는다고 생각했지, 그냥 2억달러(약 2300억원)를 주고 로켓을 사온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건 우주 정책에 관한 한 관심도, 일관성도 없는 역대 정부였다. 김대중 정권은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에 놀라 당초 2010년을 목표로 했던 독자적인 위성발사 계획을 5년이나 앞당기는 무리수를 뒀다. 그렇게 태어난 나로호 프로젝트는 10년 가까이 국산 액체 로켓 연구의 맥을 끊어놓았다. 대통령과 고위 공무원들도 우주 관련 이벤트에 잠시 얼굴만 비칠 뿐, 장기적인 우주개발 비전과 전략을 세우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예컨대 현재 정부 부처 가운데 '우주'라는 이름이 들어간 조직은 교과부 '우주기술과' 하나가 전부다. 국가 우주 정책 실무를 과장(課長) 한 명이 총괄하는 구조인 셈이다. 그나마 과장을 비롯한 담당자들은 1년이 멀다하고 바뀐다. 항공우주연구원 관계자는 "우주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 이해를 시키고 나면 며칠 뒤 담당자가 바뀌어 황당해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예산 우선순위에서도 우주는 항상 뒷전이다. 우주 관련 한 관계자는 지난해 대선 기간에 기획재정부 고위 간부를 찾아갔다. 2013년엔 한국형 발사체 사업에 예산을 더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여야 후보 공히 복지 확대를 약속하고 있어 내년에 다른 예산도 올해 수준을 지키기 힘들다"는 핀잔만 들었다. "원래 계획의 70%밖에 못 받았다"고 하소연했지만 "못 받을 만하니까 못 받은 것 아니겠느냐"고 면박을 받고 돌아섰다.

항공우주연구원 등 우주개발을 뒷받침하는 연구소와 과학자들도 독자개발에 대한 소신이 아쉬웠다는 평가다. 2002년까지 국산로켓인 KSR-3를 개발하던 항우연은 러시아에서 액체로켓을 들여오기로 결정하면서, 연구를 중단했다. 발사체 개발 일정을 무조건 5년 이상 앞당기라는 정부의 주문에 맞추기 위해 외국 기술 수입 전략을 택한 것이다. 당시 항우연 내부의 몇몇 연구원들은 '독자개발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반대했다. 한 연구원은 "외국이 로켓 엔진 기술을 이전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순진한 발상"이라며 "외국과 협력을 하더라도 우리 자체적인 로켓 개발 프로그램은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의견은 묵살됐다. 해당 연구원은 "결국은 연구원을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후 나로호 개발에 착수하면서 1단 로켓에 대해 '한·러 공동개발'이라는 표현을 썼다. 실상은 러시아 완제품을 들여오기만 할 뿐 부품을 뜯어보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다. 이 같은 실상들이 뒤늦게 알려지기 시작하자, 항우연이 발표하는 자료에서 '공동개발'이라는 표현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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