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6주년 특집]5대 제안 - 증세를 얘기하자
ㆍ[사회계약 다시 쓰자 Ⅱ]
경기 분당에 사는 하선정씨(38)는 올해 7세 딸의 유치원 학비 지원을 받고 있다. 월 25만원 정도 된다. 올해부터 유치원 학비 지원이 전 계층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결혼 9년차인 하씨가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처음이다. 남편 연봉 4500만원이 소득의 전부인 가정이지만, 경기 분당의 아파트(공시지가 3억5000만원 내외)가 매번 걸림돌이 됐다. 1억5000만원의 대출이 끼어 있는 집이다. 하씨는 “매번 소득하위 70% 규정에 걸려 각종 정부 지원에서 제외됐다”며 “동사무소에 문의하면 통상 ‘분당에 집이 있으면 지원을 못 받는다’고 하던데 우리가 소득상위 30%에 속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보육료와 유치원 학비 지원 기준을 ‘소득하위 70%’에서 ‘모든 계층’으로 확대하면서 대도시 지역에서는 하씨처럼 비로소 ‘첫 지원’을 받는 가정들이 크게 늘었다.
소득하위 70%는 월 소득 기준으로 보면 4인가족은 월 524만원, 3인가족은 454만원 이하 정도 된다. 이러면 대부분 가정이 지원을 받을 것 같은데 실은 아니다. 소득인정금액을 따지기 때문에 집값이 비싼 서울과 광역시 거주자는 이보다 훨씬 낮은 소득을 갖고도 지원 대상에서 탈락됐다. 소득인정금액은 소득에다 재산평가액을 더한 개념이다. 현실적으로 도시 지역 맞벌이거나 서울·수도권에서 1가구를 소유하고 있으면 지원 대상에서 탈락된다고 보면 된다.
전 계층 지원은 비로소 도시 중산층 혹은 중산층 이하 가정도 정부의 보육료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월 30만원은 빠듯한 도시 가정에서는 적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정부는 0~2세 전 계층 보육료 지원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며 시행 7개월 만에 내년부터 다시 소득하위 70%에게만 보육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발표를 했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를 댔다.
박민식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원은 “대도시 가정 상당수는 이번에 처음으로 보육료 지원을 받아본 뒤 복지를 체감했다는 사람들이 많고, 세금을 더 내도 되겠다는 쪽으로 인식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며 “정치권이 지속가능한 복지정책을 정말 펴고 싶다면 보편적 복지를 유지하되 누구에게나 세금을 걷는 보편적 증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복지 확대 요구에 정부는 늘 예산 타령
정치권도 “표 떨어진다” 세금 얘기 꺼려
복지 체감 국민 오히려 “세금 더 내겠다”
다시 하씨 가정 얘기로 돌아가 보자. 국세청 근로소득 간이세액표로 추정해 보니 하씨 남편은 매월 11만원 정도 세금을 낸다. 월 400만원 봉급에 4인가족이라는 기준을 썼다. 하씨 가정은 월 25만원의 유치원 학비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니까 14만원 정도 순수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셈이다.
14만원은 어디서 지원이 될까? 자신보다 소득이 많은 고소득자와 기업이 낸 세금이다. 하씨는 “유치원 지원 제도가 유지된다는 가정하에서라면 얼마 정도는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며 “이전에는 내가 세금을 내도 지원받는 게 없어 세금을 더 내는 게 싫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올 정치권의 최대 이슈는 복지 확대다. 보편적 복지냐 아니냐의 논쟁은 있지만, 어쨌든 복지 확대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정치권은 증세 논의는 극히 꺼린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이유에서다. 새누리당은 아예 증세 얘기에 입을 닫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부자증세’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논의로는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원을 다 마련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함께 부담하지 않는 부자증세는 고소득층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정권이 바뀌면 중단될 수 있다. 과거 종합부동산세 사례가 대표적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증세를 하면) 부자가 더 많이 내겠지만 그래도 모든 사람이 세금을 더 많이 낼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 교수는 지난달 24일 ‘프레시안 창간 특별강연회’에서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공구’(공동구매)”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많이, 어떤 사람은 적게 낸 세금을 모아서 공급하는 재화라는 얘기다. 그는 “무상급식 논쟁에서 ‘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손자와 가난한 아이들이 똑같이 돈을 안 내고 밥을 먹는 것이냐’는 비판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이 회장은 누진세에 따라 세금을 많이 냈기 때문에 그 손자는 더 비싸게 먹는 것이고, 돈 없는 사람들은 부가가치세만 냈기 때문에 싸게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부자는 5000원, 가난한 사람은 1000원을 내고 먹는 밥이기 때문에 ‘공동구매’라는 것이다.
총선에서 내논 복지 공약 기준으로 볼 때 새누리당은 연 27조원, 민주당은 45조원 정도 추가재원이 필요하다. 이는 증세 없이는 도저히 마련할 수 없는 규모다. 증세 중에서도 소득세나 법인세 등 주요 세금을 건드려야 확보할 수 있다. 세금감면을 없애고 토목공사를 줄이는 등 아무리 짜내도 연간 15조원 이상은 마련하기 어렵다.
김정은 참여연대 복지노동팀 간사는 증세에 부정적인 인식이 퍼진 것에 대해 “1차 원인은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복지 지원을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여기에다 증세 얘기만 나오면 덮어놓고 ‘세금폭탄’을 주장해 중산층과 서민들까지 불안감을 키운 일부 언론들의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홍종학 민주통합당 의원 조사를 보자. 이명박 정부가 행한 법인세 감세의 2010년 법인 1개당 평균 감면액은 1682만원이다. 그런데 출자총액제한 대상 대기업 집단은 30억6000만원, 과표 5000억원 초과 재벌은 155억원이나 덜 냈다. 같이 세율을 내려도 감면액은 이렇게 차이가 난다. 바꿔 말하면 법인세를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재벌 1개 기업당 평균 155억원을 더 걷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일반 기업이 더 내는 1682만원의 약 1000배다.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도 같은 논리다. 같은 세율로만 올려도 고소득자가 세금을 더 많이 내게 된다. ‘버핏세’처럼 별도의 부자세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연봉 1억원인 사람과 3000만원인 사람에게 1%포인트 세금을 올린다고 가정해 보자. 단순 계산으로도 1억원 소득자는 연간 100만원, 3000만원 소득자는 30만원을 더 낸다. 저소득자는 상당액을 복지 지원으로 돌려받으니까 순부담은 더 줄어든다. 중산·서민층 입장에서는 “세율 같이 올려 세금 더 내자”고 선수를 치고 나올 만하다는 얘기다.
정치권이 증세 논의를 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여야가 복지를 정략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작은 복지를 주장하는 새누리당과 큰 복지를 내세웠지만 복지재정을 채 마련하지 못한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암묵적으로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정치권이 ‘복지 민심’이 달라진 것을 모르고 증세 논의에 지나치게 위축돼 있다고 지적한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2030 정책’을 냈을 당시와 달리 지금은 보육비 지원 등을 통해 복지를 체감한 국민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명확한 복지 지원 내역을 마련해 국민을 설득하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화려한 복지정책을 내놓고 재원 마련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포퓰리즘”이라며 “증세는 정책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 의지가 있다면 정치권이 좀 더 진정성 있게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경기 분당에 사는 하선정씨(38)는 올해 7세 딸의 유치원 학비 지원을 받고 있다. 월 25만원 정도 된다. 올해부터 유치원 학비 지원이 전 계층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결혼 9년차인 하씨가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처음이다. 남편 연봉 4500만원이 소득의 전부인 가정이지만, 경기 분당의 아파트(공시지가 3억5000만원 내외)가 매번 걸림돌이 됐다. 1억5000만원의 대출이 끼어 있는 집이다. 하씨는 “매번 소득하위 70% 규정에 걸려 각종 정부 지원에서 제외됐다”며 “동사무소에 문의하면 통상 ‘분당에 집이 있으면 지원을 못 받는다’고 하던데 우리가 소득상위 30%에 속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부터 보육료와 유치원 학비 지원 기준을 ‘소득하위 70%’에서 ‘모든 계층’으로 확대하면서 대도시 지역에서는 하씨처럼 비로소 ‘첫 지원’을 받는 가정들이 크게 늘었다.
소득하위 70%는 월 소득 기준으로 보면 4인가족은 월 524만원, 3인가족은 454만원 이하 정도 된다. 이러면 대부분 가정이 지원을 받을 것 같은데 실은 아니다. 소득인정금액을 따지기 때문에 집값이 비싼 서울과 광역시 거주자는 이보다 훨씬 낮은 소득을 갖고도 지원 대상에서 탈락됐다. 소득인정금액은 소득에다 재산평가액을 더한 개념이다. 현실적으로 도시 지역 맞벌이거나 서울·수도권에서 1가구를 소유하고 있으면 지원 대상에서 탈락된다고 보면 된다.
전 계층 지원은 비로소 도시 중산층 혹은 중산층 이하 가정도 정부의 보육료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월 30만원은 빠듯한 도시 가정에서는 적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정부는 0~2세 전 계층 보육료 지원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며 시행 7개월 만에 내년부터 다시 소득하위 70%에게만 보육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발표를 했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를 댔다.
박민식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원은 “대도시 가정 상당수는 이번에 처음으로 보육료 지원을 받아본 뒤 복지를 체감했다는 사람들이 많고, 세금을 더 내도 되겠다는 쪽으로 인식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며 “정치권이 지속가능한 복지정책을 정말 펴고 싶다면 보편적 복지를 유지하되 누구에게나 세금을 걷는 보편적 증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편적 복지를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서는 증세 논의가 필수적이다. 보편적 복지의 일환인 전면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는 서울 은평구 은빛초등학교 학생들이 밝은 표정으로 점심을 먹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복지 확대 요구에 정부는 늘 예산 타령
정치권도 “표 떨어진다” 세금 얘기 꺼려
복지 체감 국민 오히려 “세금 더 내겠다”
다시 하씨 가정 얘기로 돌아가 보자. 국세청 근로소득 간이세액표로 추정해 보니 하씨 남편은 매월 11만원 정도 세금을 낸다. 월 400만원 봉급에 4인가족이라는 기준을 썼다. 하씨 가정은 월 25만원의 유치원 학비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니까 14만원 정도 순수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셈이다.
14만원은 어디서 지원이 될까? 자신보다 소득이 많은 고소득자와 기업이 낸 세금이다. 하씨는 “유치원 지원 제도가 유지된다는 가정하에서라면 얼마 정도는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며 “이전에는 내가 세금을 내도 지원받는 게 없어 세금을 더 내는 게 싫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올 정치권의 최대 이슈는 복지 확대다. 보편적 복지냐 아니냐의 논쟁은 있지만, 어쨌든 복지 확대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정치권은 증세 논의는 극히 꺼린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이유에서다. 새누리당은 아예 증세 얘기에 입을 닫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부자증세’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논의로는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원을 다 마련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함께 부담하지 않는 부자증세는 고소득층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정권이 바뀌면 중단될 수 있다. 과거 종합부동산세 사례가 대표적이다.
총선에서 내논 복지 공약 기준으로 볼 때 새누리당은 연 27조원, 민주당은 45조원 정도 추가재원이 필요하다. 이는 증세 없이는 도저히 마련할 수 없는 규모다. 증세 중에서도 소득세나 법인세 등 주요 세금을 건드려야 확보할 수 있다. 세금감면을 없애고 토목공사를 줄이는 등 아무리 짜내도 연간 15조원 이상은 마련하기 어렵다.
김정은 참여연대 복지노동팀 간사는 증세에 부정적인 인식이 퍼진 것에 대해 “1차 원인은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복지 지원을 체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여기에다 증세 얘기만 나오면 덮어놓고 ‘세금폭탄’을 주장해 중산층과 서민들까지 불안감을 키운 일부 언론들의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홍종학 민주통합당 의원 조사를 보자. 이명박 정부가 행한 법인세 감세의 2010년 법인 1개당 평균 감면액은 1682만원이다. 그런데 출자총액제한 대상 대기업 집단은 30억6000만원, 과표 5000억원 초과 재벌은 155억원이나 덜 냈다. 같이 세율을 내려도 감면액은 이렇게 차이가 난다. 바꿔 말하면 법인세를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재벌 1개 기업당 평균 155억원을 더 걷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일반 기업이 더 내는 1682만원의 약 1000배다.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도 같은 논리다. 같은 세율로만 올려도 고소득자가 세금을 더 많이 내게 된다. ‘버핏세’처럼 별도의 부자세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연봉 1억원인 사람과 3000만원인 사람에게 1%포인트 세금을 올린다고 가정해 보자. 단순 계산으로도 1억원 소득자는 연간 100만원, 3000만원 소득자는 30만원을 더 낸다. 저소득자는 상당액을 복지 지원으로 돌려받으니까 순부담은 더 줄어든다. 중산·서민층 입장에서는 “세율 같이 올려 세금 더 내자”고 선수를 치고 나올 만하다는 얘기다.
정치권이 증세 논의를 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여야가 복지를 정략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작은 복지를 주장하는 새누리당과 큰 복지를 내세웠지만 복지재정을 채 마련하지 못한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암묵적으로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정치권이 ‘복지 민심’이 달라진 것을 모르고 증세 논의에 지나치게 위축돼 있다고 지적한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2030 정책’을 냈을 당시와 달리 지금은 보육비 지원 등을 통해 복지를 체감한 국민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명확한 복지 지원 내역을 마련해 국민을 설득하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화려한 복지정책을 내놓고 재원 마련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포퓰리즘”이라며 “증세는 정책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 의지가 있다면 정치권이 좀 더 진정성 있게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입력 : 2012-10-05 21:35:00ㅣ수정 : 2012-10-05 2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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