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이 잠들어 있는 앵발리드를 지나 한 길로 걷다 보면 허름하고 투박해 보이는 현대식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쉐린의 파리 지사다. 이곳에서는 전 세계 맛집을 쥐락펴락하는 `미쉐린 레드 가이드`와 최근 한국에서도 발간된 세계적인 여행 안내서 `미슐랭 그린 가이드`가 만들어진다.
보안 점검 절차를 거쳐 방문한 건물 지하에는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미쉐린 가이드 전시실이 있다. 110여 년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붉은 책자들 사이에 타이프라이터로 쓰여진 오래된 종이 한 장이 눈에 띈다. 여행지에 가기 위한 길을 묻는 한 고객의 편지다.
"이 편지 한 장이 미쉐린 가이드를 만드는 시초가 됐습니다." 미쉐린 가이드 총책임자 크리스티앙 델라예는 "미쉐린이 고객에게 지도와 주유소, 정비소, 여행 중 필요한 식당 정보 등을 제공하기 시작했을 때는 프랑스에 차가 단 2500대뿐일 때"라고 말했다. 당시 여행은 `모험`이었다. 차가 있어도 지도와 도로가 없고 정비소를 찾기도 어려웠다. 여기서 미쉐린이 떠올린 첫 아이디어는 `이동(Mobility)의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동을 편리하게 해 운전자들에게 여행을 도우면 타이어 소모도 많아질 것이라는 발상이다.
도로에 표지판을 만들고, 도로마다 번호를 붙이기 시작한 것도 미쉐린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세계 최초다. 이후 여행안내 사무소를 개설해 운전자들에게 길안내를 해주다 직접 가이드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고객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고 싶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창업 당시 비전을 사업으로 지켜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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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은 몰라도 저는 많이 보셨죠? 이름은 비벤덤…1898년에 태어났죠 올해 114살인데 젊어 보이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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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성의 향상`이라는 이들의 비전은 소비자에게 미쉐린을 타이어기업이 아닌 `여행의 동반자`로 각인시켜 그들이 보다 친근하게 여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현재 미슐랭 가이드는 세계 90개국에서 연간 1700만부 이상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사실 계속 이 사업을 끌어가는 게 미쉐린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이제 `미쉐린 가이드`를 보며 `미쉐린 타이어`를 구입해 여행을 해야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델라예 역시 "사실 지도와 가이드를 판매해 나오는 매출은 그룹 전체 매출에서 0.3%밖에 되지 않는다"며 "가이드 제작은 매출 대비 이익도 거의 나지 않는 고비용 사업"이라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지도와 가이드제작을 주요 사업 중 하나로 꼽으며 100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이유 역시 `문화`다. 그린 가이드 사업을 총괄하는 올리비에 브로솔레는 "가이드를 제작하다 보면 우리 역시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게 된다"며 "글로벌 기업이 됐지만 가이드 제작을 통해 전 세계로 뻗어 있는 `미쉐린 가족`들의 지역 문화를 이해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파리에도 지사가 있지만 미쉐린 `본가(本家)`는 프랑스 중남부 소도시인 클레르몽페랑이다. 인구 25만명인 이 작은 도시는 `미쉐린의 도시`라 불러도 무방하다. 공항에 내려 `미쉐린로(路)`를 지나 달리다 보면 미쉐린 스타디움이 있다. 미쉐린이 만든 전차가 도시를 관통하며 사람들의 이동을 돕는다. 클레르몽페랑 주민들은 주말에 `미쉐린 박물관`을 찾아 자동차 역사를 살핀다. 클레르몽페랑 기념품 가게에는 일명 `타이어 맨`으로 불리는 미쉐린 마스코트인 비벤덤이 가장 주요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처럼 사실 대부분 기업은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지면 연고를 떠나 본사를 수도로 이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미쉐린의 본사는 123년째 한 자리다.
왜 다른 회사들처럼 더 큰 도시로 본사를 옮기지 않고 클레르몽페랑에 본사를 두고 있느냐고 묻자 연구개발 담당 임원 파스칼 쿠아스농은 의아해하며 기자에게 되물었다. "우리가 왜 파리로 가야 하죠? 파리에는 대를 이어 미쉐린이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숙련되고 충성도 높은 기술자가 없어요. 교통 체증도 심하고요.(웃음)"
그의 이야기 속에는 미쉐린이 중시하는 가치가 담겨 있다. 창업 당시부터 이어온 `직원 중시`라는 가치다. 이는 클레르몽페랑을 미쉐린의 도시로 만들고 직원에게는 자신이 미쉐린의 가족이라는 유대감을 심어줬다. 클레르몽페랑에는 미쉐린이 직원들을 위해 만들었던 병원과 학교, 직원 아파트들이 주요 건물로 들어서 있다. 미쉐린은 더 이상 이 건물들을 운영하지 않지만 100년 이상 한 도시에 자리를 잡으며 만든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클레어 크뤼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부문장은 "직원이 회사를 자랑스러워한다는 게 우리 회사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첫 직장에서 2년 근무 후 미쉐린으로 이직해 35년을 근무했다는 미셸 레트 씨(57)는 "미쉐린에 와서는 정말 `가족이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전 직장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이곳에 와서 확실히 느끼고 있는 것은 지금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이곳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35년간 직장은 바꾸지 않았지만 업무를 총 7번 바꿨죠. 2년마다 한 번씩 매니저가 일을 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는지 확인합니다. 준비기간을 충분히 거쳐 업무를 바꾸면 나 역시도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연구개발 부문장 필리프 드니말은 "미쉐린 직원은 재능이나 기술을 소유해서 미쉐린에 입사한 게 아니라 우리의 멤버 구성원이 되기 위해 회사에 들어온 것"이라며 "재능이나 기술은 이들이 미쉐린의 철학을 회사와 공유하고 난 다음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미쉐린에서는 `인적 구조조정`이라는 말은 찾을 수 없다. 미쉐린은 지난 3년간 경제위기 속에서도 직원을 감축하지 않아 더욱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