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A과장은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끝났다 싶으면 상사에게 보고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거래 업체 임원이 정말 훌륭한 프로젝트였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비결을 배우고 싶어한다`며 없는 얘기도 꾸며낸다. 그러나 이 모습을 지켜 보던 같은 부서의 B과장과 C대리, 판매 부서의 D과장은 짜증이 쌓인다.
`잘된 프로젝트도 아닌데 저렇게 자랑하고 싶을까. 부장은 왜 듣고만 있지. 잘한 게 아니라고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지.`(B과장)
`기획부터 일은 모두 내가 했는데, 공은 자기가 전부 차지하는군. 놀기만 한 사람이 염치도 없어.`(C대리)
`프로젝트가 중간에 실패할 듯하니까 판매 부서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쁘더니, 이제는 모든 공을 가져가려고 하네. 어이가 없군.`(D과장)
이런 모습은 회사에서 종종 목격되는 광경이다. 일이 잘못되면 남 탓하기에 바쁘고, 일이 잘되면 공을 차지하고 싶어 안달인 직원들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런 직원들이 조직에서 인정받으면 어떻게 될까. 직원들의 헌신과 협력은 찾기 어렵고 불신만 깊어갈 것이다. 일이 잘되기보다는 잘못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고 직원들은 서로 책임을 미루는 `남 탓하기 게임(Blame game)`에 바쁠 것이다. 당연히 회사는 점점 수렁에 빠져든다.
리더라면 조직이 `남 탓하기 게임`에 빠져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문제는 역시 `어떻게`다. 매일경제신문 MBA 섹션은 조직 심리 분야의 석학으로 꼽히는 벤 다트너(Ben Dattner) 다트너컨설팅 창립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직이 `남 탓하기 게임`에 빠지지 않고 승리하는 방법을 물었다.
◆ 남 탓하기는 인간의 본성에 자리 잡은 전염병
-당신은 공(credit)과 책임(blame)을 나누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유는 무엇인가.
"조직 심리학자로서 나는 기업들을 컨설팅할 때마다 항상 깨닫는 게 있다. 공과 책임이 어떻게 나누어지고, 개인과 팀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조직의 문화가 결정되며, 조직의 행태ㆍ성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 말이다. 공과 책임이 정치적으로 또는 편견에 따라 나누어진다면 조직원은 커리어를 개발하려거나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팀은 성과를 높이려는 대신에 희생양을 찾으려 할 것이고 전체 조직은 고장 날 게 분명하다."
-남을 탓하고 공을 가로채는 행위는 결국은 모두에게 해가 된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남 탓하기 게임을 멈추지 못하는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잘못은 부인하고 남을 탓하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고 만다. 장기적으로는 손해인데도 말이다. 진화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공과 책임을 나누는 데 관해서는 자신의 잇속을 챙기도록 진화해 왔다. 또 성장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이중 기준과 편견을 발전시킨다. 남 탓하기는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도 우리가 비난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다. 집에서든 사무실에서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남을 비난하면 우리도 덩달아 남을 비난하게 된다."
◆ `잘되면 내 덕분, 못되면 남 탓` 충동 억제해야
-당신이 최근 출간한 `남 탓하기 게임`이라는 책의 부제는 `공과 책임을 나누는 숨겨진 규칙들이 어떻게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가`이다. 가장 중요한 규칙은 무엇인가.
"인간은 공과 책임을 나눌 때 자기 잇속부터 챙기려는 본능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충동적ㆍ감정적으로 공은 더 가지려 하고, 잘못은 남을 탓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에게 가장 득이 되는 행동은 충동적ㆍ감정적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다. 당신이 공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 때 또는 부당하게 비난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더욱 사려 깊게 행동해야 한다. 숨겨진 가장 중요한 규칙은 `충동과 감정에 휩쓸리지 말라. 그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대신에 전략적으로 행동하라. 그렇게 하면 상황이 좋아질 것이다`는 말로 요약하고 싶다."
실제로 직장인들은 숱하게 남을 비난하지만, 심신은 더욱 지치게 된다. 하워드 테넨 코네티컷 의대 교수도 같은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테넨 교수는 사람들이 남을 비난할 때 어떤 정신적ㆍ신체적 영향을 받는지를 다룬 논문 22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77%의 논문은 `유해한 영향을 받는다`는 결론을, 나머지 23%는 `유해하지는 않아도 득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처럼 모든 연구에서 드러나듯이 남 탓하기는 유해하며 기껏해야 비효과적일 따름이다.
◆ 남 탓하기 게임 이기려면 게임을 말아야
-당신은 전략적으로 행동하라고 주문한다. 어떤 전략이 필요한가.
"남 탓하기 게임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게임은 너무나 해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 탓하기 게임은 만연돼 있기 때문에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스스로가 어떤 타입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 다음 조직 내 정치적 상황을 파악해서 자신에게 맞는 전략을 짜야 한다."
정치적 상황은 왜 파악해야 할까. 내 타입이 얼마나 효과적이냐는 조직 내 상황과 문화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트너 박사는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와 인터뷰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는 효과적인 타입이 다른 상황에서는 정반대로 파괴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일본에는 `튀어나온 못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자기 공을 지나치게 주장하면 오히려 비난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자기 공을 나서서 주장하면 비난 받을 짓이 된다. 그러나 다른 문화에서는 이런 사람이 혜택을 본다."
-내 타입이 우리 조직에 맞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 타입을 바꿔야 하나, 아니면 조직을 떠나야 하나.
"자신의 타입을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렵다.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의 타입을 바꾸려 드는 것은 최선의 접근법이 아니다. 사려 깊게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타입이 안고 있는 위험을 최소화는 게 최선이다(예를 들어 일이 잘못되면 자신을 탓하는 성향의 직원은 희생양이 될 위험이 크다. 전략적인 행동으로 이 같은 위험을 줄여야 한다). 자신이 어떤 타입인지 파악하면 조직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 게 최선이며 자신에게 어떤 유형의 보스가 적합한지 알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칭찬을 받을 때 크게 동기부여가 된다면 공을 인정하는 데 관대한 조직이나 보스 밑에서 일해야 한다."
◆ 실패는 나쁜 게 아니다…실험의 문화를 키워야
-당신은 남 탓하기 게임에 조직 문화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떤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가.
"최고의 조직 문화는 실험을 중요시하고 권장하는 문화다. 실험이 실패할 위험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실험을 권장해야 조직원들이 혁신에 나선다. 실험이 실패했다고 해서 벌을 받는 기업에서는 혁신이 나올 수 없다. 자기 목소리를 냈다거나 위험을 감수했다고 해서 부당하게 비난 받는 조직은 위대한 조직이 될 수 없다. 틀에 박힌 조직은 변화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 탓하기 게임에 빠져든 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실패를 잘못 다룬다는 것이다. 이런 기업은 실패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고 실패의 멍에를 뒤집어쓸 희생양부터 찾는다. 그 결과 조직원들은 실패를 겁내고 실험과 도전은 생각조차 못한다. 대신 남의 공에 숟가락만 얹으려고 한다.
-공과 책임을 잘못 배분하는 조직은 `현상 유지(status quo)`밖에 못한다고 당신은 말한다. 실험과 도전이 없기 때문인가.
"실험과 도전이 없어 틀에 박혀 있는 조직은 과거 패러다임대로만 공과 책임을 배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할 수 없게 되며 현상 유지밖에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기름을 많이 먹는 대형차를 팔아 이익을 내고 있는 자동차 회사를 생각해보자. 이 회사는 대형차에 집중하는 직원들의 공만 인정하고 연비가 좋은 소형차를 개발하려는 직원들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비즈니스 환경은 바뀐다. 결국은 에너지 효율적인 친환경차가 옳은 방향일 수 있다. 기업은 다른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 내가 느끼는 진실보다는 전략을 우선해야
-3~4명으로 구성된 작은 팀이라도 공과 책임을 나누는 문제는 매우 민감하다. 누가 얼마나 공을 세웠고, 누가 얼마나 잘못했는지에 대한 생각이 제각각이다. 공과 책임을 모든 사람이 납득하는 방식으로 나눌 수 있을까.
"인간은 마음속 편견 때문에 남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공마저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공헌은 과대 평가하고 남의 공은 과소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에게는 당신의 마음속 평가보다 더 많은 공을 인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당신의 부하ㆍ동료가 10을 했다는 게 당신이 느끼는 진실이라면 15를 했다고 평가하는 전략적 접근을 택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당신의 부하들은 자신들이 실제 일한 몫만큼 진실되게 공이 나누어졌다고 여길 것이다. 그들에게는 `진실`이, 당신에게는 `전략`이 되는 셈이다. 누구의 공이 얼마이고, 누구의 책임은 얼마인지에 대한 진짜 그림과 전략적인 그림은 다를 수 있다."
■ He is…
벤 다트너 박사는 조직관리 컨설팅 업체이며 임원 코칭 전문기관인 다트너컨설팅 설립자다. 정부 기관과 글로벌 기업, 비영리법인 등을 컨설팅하면서 미국 뉴욕대에서 조직 개발과 전략적 커리어 관리 등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으로 학사를, 뉴욕대에서 산업ㆍ조직 심리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인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