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한 카드회사는 자신의 VIP고객에게 최고급 공연 특급좌석 관람권을 선물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며칠 만에 겨우 연락이 닿은 그 고객은 곧바로 화부터 냈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그깟 공연 티겟 때문에 바쁜 나에게 그렇게 전화를 걸어댔냐"는 것이 그 이유였다. 김상용 고려대 경영대 마케팅 교수는 "보통사람이라면 너무나 뿌듯해하고 기분이 좋아질 마케팅 전략이었지만 어느 수준 이상의 VIP에게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났던 전형적인 사례다.
이처럼 VIP는 보통 사람들과 생각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고 그래서 더 전략적으로 접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VIP고객을 담당해본 사람들에게 소감을 물어보면 나오는 답은 한결같다. "종잡을 수 없다. 일반화하기 어렵다"가 그것이다. 대략 금융자산 100만달러(메릴린치 기준, 약 10억원) 이상이면 VIP로 분류하는데 이들을 충성고객으로 만드는 게 정말 어렵다는 얘기다. 이처럼 일반화된 마케팅 전략을 짜기가 어렵다 보니 학계에서도 해당 분야의 연구조차도 미진한 상태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VIP 마케팅을 해야 할까. 그건 아니다. VIP고객들은 주 소비계층인 중산층에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VIP마케팅을 마구잡이로 한다는 얘기는 곧 경영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
매일경제신문 MBA팀은 이 같은 혼선이 보유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인 자산가를 VIP 혹은 VVIP, 때론 슈퍼리치(SuperRich)로 호명하면서 한 집단으로 본 데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그래서 통칭 `VIP고객`을 세 부류로 나눠봤다.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50억원 미만 보유자는 VIP로 △50억원 이상 100억원 미만은 VVIP로 △100억원 이상은 슈퍼리치로 분류한 것. 엄밀하게 학문적인 개념은 아니며 일반적인 패턴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 분류는 호텔에서 VIP마케팅 전략을 연구해 동료들과 함께 최근에 논문을 낸 김상용 고려대 경영대 교수, 지속적으로 백화점 VIP고객 마케팅을 연구해온 이승연 건국대 교수, 그리고 국내 프라이빗 뱅킹(PB) 서비스 분야 1위인 신한의 이동성 방배센터팀장의 조언과 인터뷰 등을 토대로 이뤄졌다.
또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슈퍼리치`(금융자산 100억원 이상)의 세계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익명의 슈퍼리치 1인과 대담한 내용도 포함됐다.
◆ VIP(금융자산 10억~50억원) : 호감 축적 전략
VIP는 `부유층` 중 1단계에 속하는 이들로 국내에서는 약 13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는 특별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외부 과시적 소비행태를 보인다. 각종 명품을 부담 없이 소비하는 주고객이자 특급호텔도 큰 부담 없이 자주 이용한다. 미술품 경매를 예로 들면 직접 나서 고가를 불러 사들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 된다.
금융투자 시에는 한 단계 높은 VVIP가 되기 위한 공격적 투자를 선호하고 프라이빗뱅커(PB)의 조언을 적극 활용한다.
김상용 교수는 최근 동료들과 함께 낸 `특급호텔 서비스를 이용하는 VIP고객 관점에서의 고객관계관리(CRM) 관계 편익에 관한 연구`에서 `VIP 이용객은 경제적 편익 제공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다만 고객 얼굴을 직원들이 익히고, 선호하는 식사 메뉴와 주요 이용서비스를 데이터베이스화해 미리 알아서 제공하며 직함을 불러주고 타인과 동행할 시 체면을 세워주는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재구매 의사를 높였다`고 분석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불어넣어 주니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렇다 보니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이들은 `대중(매스) 마케팅`일반론으로부터 차용해올 수 있는 것도 많고 일반화도 그리 어렵지 않다.
이승연 교수는 "`호의재고`라는 개념을 토대로 정기적인 전화와 각종 행사 초대권 발송을 `호의라는 재고가 떨어지기 전`에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준다면 이들을 충성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좀 더 풀어 설명하면 지속적인 관리로 `호감을 축적하라`는 뜻이다. 이들은 대중, 즉 일반적 소비자와 직접 맞닿아 있는 계층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공략은 곧바로 매스티지 브랜드 활성화 등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특별성`을 분야별로 매스 마케팅에 적용시킬 수 있다.
◆ VVIP(금융자산 50억~100억원) :`제한적인 구전`+`소수 유지` 전략
2단계 부유층인 VVIP는 VIP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이들은 이미 `특별하다`는 인식에 익숙한 상태로 `내부(이너서클) 과시 및 공감`에 주목하는 소비자들이다. 호텔에서도 자신을 알아봐주는 건 당연하고 정기적인 혜택이나 서비스가 제공돼야만 이탈하지 않는 수준이다. 금융투자 시에는 대부분 보수적 성향을 보인다.
최근 강남파이낸스센터에 개설된 삼성생명의 `삼성패밀리오피스`에 금융자산 50억원 이상을 보유한 `VVIP`들이 찾아와 `가문관리`에 대한 조언을 구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동성 팀장은 "이 부류의 고객들은 자산의 승계와 안정적 관리, 인플레이션을 넘어서는 수준에서의 자산관리에 특히 관심이 많다"며 "일단 VVIP 수준의 부를 쌓은 만큼 이를 유지하고 명문 가문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백화점에서도 단순히 명품매장을 자주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 최신 상품이 입고되면 매장 문을 닫은 상태로 소수의 최고가 제품을 선점할수 있도록 배려받는 수준이다.
이들에게는 `이너서클 내부에서의 제한적인 입소문`과 `소수의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 미술품 경매ㆍ구입을 예로 들면 다른 사람을 내세워 물건을 구입하되 거실이나 응접실에 걸어두고 지인들과 함께 즐기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들은 어떤 광고보다 동료집단의 입소문을 신뢰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들보다 못한 이들이 자신과 똑같은 서비스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불쾌해하며 해당 서비스로부터 곧바로 이탈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전문가들이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제한적인 구전`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소수 유지`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다.
◆ 슈퍼리치(금융자산 100억원 이상) : 일대일 맞춤형 전략
`슈퍼리치`는 미국 등지에서는 금융자산 3000만달러 이상 보유자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이동성 팀장의 조언을 얻어 한국에서는 100억원 이상 자산가로 기준을 잡았다.
이들은 미술품 경매ㆍ구입 과정에 빗대면 은밀히 최고의 작품을 들여와 안방에 걸어놓는 사람들이다. 명품은 `맞춤형 상품`을 따로 주문해 수개월, 길게는 수년을 기다려 구입하고, 자신의 DNA를 채취해 프랑스로 보낸 뒤 DNA 구조에 맞는 초고가 향수를 사용한다. 맞춤형 가방이나 옷에도 자신의 DNA를 새겨,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명품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자신이 곧 명품이라 생각한다.
금융투자는 공격형도, 관리형도 아닌 `자유형`이다. 이동성 팀장은 "이런 분들은 프라이빗 뱅커를 찾긴 하지만 특별한 조언을 원하기보다는 다양한 정보원 중 하나로 여기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익명의 한 슈퍼리치는 "호텔을 이용할 때에도 이 정도 수준이 되면 첫 이용시 직원 한 명이 붙어 모든 취향을 파악한 뒤 언제 방문해도 자신이 원하는 취향의 인테리어와 사용하는 비누와 화장품, 심지어 간식거리와 생수까지 완벽하게 맞춤형으로 준비해 놓는다"고 설명했다. 이승연 교수는 "부를 내ㆍ외부에 과시하는 수준을 넘어서면 이는 곧 `자기만족`을 위한 소비로 나아간다"며 "최근 유행하는 DNA 마케팅은 바로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을 공략하는 방법은 오히려 간단하다. 마케팅의 `이상향`인 일대일 마케팅 전략을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다만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드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이는 걱정할 바가 아니다.
슈퍼리치가 어떤 서비스나 제품을 사용하기만 하면 VVIP나 VIP, 나아가 일반고객들까지도 이를 추종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승연 교수는 "백화점에서도 최고급 고객을 따로 배려하면 차상위로 떨어진 고객 중 상당수는 기분 나빠하며 떨어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그만한 대접을 받기 위해 돈을 더 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고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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