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집 나오면 즐겁고, 집에 들면 시름
이틀이나 사흘만 꼬박 집에 있어도 무엇인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 같고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어느새 내 몸이 집에 있는 것보다 산천을 걷는 것에 더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은 말 그대로 보약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영원한 가객’ 고 김광석의 노랫말에는 유난히 자연에 대한 예찬이 많다. ‘아참, 바람이 좋다. 아참 햇살이 좋다.’ 집만 나서면 도처에 ‘어서 오라’ 반기는 자연이 있다. 그 자연 속에서 스스로 자연이 되는 경이를 느낄 수 있는 곳들이 너무도 많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이 집을 떠나는 것이다. 답사길에 나선 사람들이 서로 손뼉을 치며 늘상 하는 말이 있다. “집 나와서 잘했다”는 말이다. 가장 포근한 곳은 집이라 여기면서도 사람들은 그 집을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니 집을 버거워 하는 것이 어찌 현대인뿐이겠는가? “집 나오면 즐겁고, 집에 들면 시름이라. 미친 노래 곤드레로 사십년을 보내었네.“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역관(譯官)이었던 이상적(李尙迪)의 시 한 소절이다. 스승인 추사가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이상적은 중국에 가면 아무리 값비싼 것(책이나 벼루, 먹)이라도 사 가지고 와서 스승이 있는 제주로 보냈다. 추사는 제자를 위해 세한도(歲寒圖)를 그려 보냈다. 집을 떠나 세상이라는 길을 집이라고 여기면서 걸어가다 보면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좋은 인연들을 만나게 된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베개 삼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말 그대로 길 ‘도(道)’에 짝 ‘반(伴)’, 도반이라 부른다. 그렇게 한 세상 도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세상 사는 재미 중 하나일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집을 오늘날의 나그네보다 더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부족이 있었다. 아즈텍 사람들이었다. “내 사랑하는, 만지면 아픈 아들아, 네 집이 이곳이 아님을 알고 이해하라. 네가 태어난 집(물리적 육체)은 둥지일 뿐이고 네가 도착한 여관은 이 세계로의 입구일 뿐이다. 이곳에서 너는 싹트고 꽃필 것이나, 너의 진정한 집은 다른 곳이니라.” 에스파니아의 신부 ‘베르나디노 데 사하군’의 말이다. 집을 나서는 것이 생활 속의 일부가 되어 떠날 수 있다는 것만도 축복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것이 다행한 일인가? 아니면 불행한 일인가? 떠나고 돌아오는 반복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이다.<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입력 : 2012-07-19 21:01:55ㅣ수정 : 2012-07-19 21: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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