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대구는 음유시인이라고 불리던 가수 김광석의 고향이다. 방천시장 바로 옆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그 100여m 남짓의 거리에 이미 떠나버린 음유시인의 초상과 노랫말이 담벼락을 가득 채우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는 숨결처럼 편안하고 읊조림처럼 잔잔하다. 그가 부르던 노래는 작은 돌멩이를 힘껏 던져도 전혀 파동이 일렁이지 않을 것 같은 물결처럼, 삶의 가슴을 적시며 고요하고도 따스하다. 이미 떠나버린 그를 추억하는 이유가 우리의 마음 속, 거기에 있다. 꽃바람 살랑 부는 봄날, 소년과 소녀가 아빠의 양손을 잡고 통기타를 둘러멘 그의 노래를 뒤따른다.
꽃바람이 그의 노래를 깨우는가
앞산에 올라 대구 시내 중심가를 내려다본다. 그가 대구에 살았을 즈음부터 운행되었을 법한 오래된 케이블카를 타고 봄바람이 불어 오르는 앞산 전망대에 오른다. 저 아래 어디쯤 다닥다닥 지붕이 낮은 곳에 방천시장이 자리하고 있고, 또 그 시장통 바깥 갈래 골목으로 그가 미소 짓는 작은 골목이 있다고 했다. 건너편 높은 빌딩 사이로 대형마트가 들어선 후 그 허름한 재래시장 골목에는 단골들의 발길이 뜸해졌다고 했다. 대개 낡은 집칸이 늘어선 그 골목은 을씨년스럽기만 하고, 손님도 없는 상점에는 세월을 기억하는 어머니들이 젊은 날의 호시절을 기억하며 장판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가을의 낙엽이 뒹굴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지나고 나서야, 어김없이 봄이 오자 어머니들은 꽃나물을 한 소쿠리 다시 내어놓았다고 했다.
새신랑 티가 좔좔 흐르는 서정욱씨(경기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가 어머니를 모시고 나선 것도 봄이라서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가 지금의 그 나이였을 즈음의 봄에도 그는 작은 골목을 뛰어다녔을 터이다. 지난 1월 장가를 들어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서씨는 아내의 모습에서 새색시처럼 고왔던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서씨가 어머니 이미정씨(63)와 나란히 걷는 아내를 바라보며 뒤를 따른다. 사돈네의 혼사치레로 멀리 대구까지 걸음을 하신 어머니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이 골목을 가보자며 그를 앞장세웠다. “얘들아, 참 좋지 않니? 참 꽃처럼 고운 청년이었는데, 가만히 들어봐라. 노랫말들이 참 좋았는데. 그래 다들 가수라고 아니하고 시인이라고들 했잖니? 왜 그렇게 떠났을까? 96년이니, 벌써 그때가 한참이나 되었구나. 오래지도 않은 세월인데, 벌써 세월이 아득하구나.”
대구는 음유시인이라고 불리던 가수 김광석의 고향이다. 그는 대봉2동 방천시장 골목에서 태어나고 5살까지 이곳에서 뛰어놀았다고 한다. 1968년인가,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상경해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명지대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통기타 그룹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동물원’으로 노래를 시작해 다음해에 <김광석 1집>을 내놓았다. 당시 그의 노래는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그의 이름자 앞에 붙기 시작한 것도 그때다. 당시 그는 전국 투어 콘서트 1000회 돌파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시대의 인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10년 즈음이 흐르고, 그는 세상을 등졌다.
그때 서씨의 나이는 만 스물이었다. “어머니도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젊으셨을 때였죠. 새 식구를 맞이하고 처음으로 어머니와 나선 길인 셈입니다. 옛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아내가 함께 세대를 넘어 공감을 나누는 시간이 된 것 같아 곁에서 보기에 참 흐뭇합니다. 그를 좋아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참 새롭습니다. 저희 가족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아름다운 추억여행이 된 듯합니다.”
방천시장 바로 옆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그 100여m 남짓의 거리에 이미 떠나버린 음유시인의 초상과 노랫말이 담벼락을 가득 채우고 있다. 특유의 편안한 미소로 시인처럼 노래하던 그의 모습이 새롭게 그리워진다. 서씨 가족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새로운 추억의 기록으로 가족사진을 찍는다. 여전히 노래는 흐르고 골목에 드는 봄 햇살은 그들의 미소처럼 따스하고 푸근하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마주하며
그의 미소와 노래는 늘 그랬었다. 바람과도 어울리고, 봄볕과도 어울리고, 눈물과도 어우러지며, 어머니의 미소처럼 편안하고 부드러웠다. 엄마 아빠와 함께, 기억에도 없는 옛 시절의 골목을 찾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의 노랫소리와 묘하게 하나의 하모니로 어우러지는 것 역시 그러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래 골목길을 걸으며 사람들은 아직도 그가 일찍 떠났음을 아쉬워하며 담장 곳곳에 그를 추모하는 글들을 빼곡하게 채워놓았다. 아이들은 그저 그 담벼락의 그림과 하나가 되어 놀이를 즐긴다. 그가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것처럼.
사람들은 담벼락에 기대어 사진을 찍고, 그가 만들어놓았을 것만 같은 작은 벤치에도 앉아본다. 봄볕이 드는 작은 담벼락을 천천히 읽으며 사색을 하고, 또 그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휴일을 맞아 부산에서 일부러 찾아왔다는 김금희씨(29)와 최주희씨(24) 역시 포장마차를 마주보고 앉아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잔을 기울이는 참이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그때 그 모습으로 저희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아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친구처럼, 여전히 젊은 모습이 저희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아요. 친구처럼 오빠처럼 참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야기 좀 더 나누고, 천천히 방천시장 골목도 돌아볼 거예요. 인터넷 검색을 하니 값싸고 푸짐한 맛집과 쉴 만한 쉼터와 문화공간들도 있다고 하니 더 둘러볼 셈이에요.”
삶과 문화,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공간
골목을 나서 방천시장 쪽으로 길을 잡는다. 시장 역시 김광석 거리마냥 골목골목 이야기가 쓰여지고, 아주 특별한 공간들로 탈바꿈하고 있다. 시장 곳곳 외진 골목에도 그림이 그려지고, 상인들의 가게와 가게 사이에도 새로운 문화공감이 싹 트고 있다. 삶과 문화,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함께 소통하고 어우러지는 참이다. 시장통을 가로지르다 보면 높이 하늘에 펼쳐놓은 현수막들이 이색적이다. 오래도록 장터에서 삶을 꾸려온 상인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다. 20년도 아니 50년도 전에, 장터에 판을 열었던 꽃다운 새색시와 더벅머리 총각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봄바람에 펄럭인다.
시장 모퉁이에서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란 노래가 흘러나온다. 방천시장은 지난 60여년간 칠성시장, 서문시장과 함께 대구 3대 시장으로 손꼽히던 장터였다. 한때는 점포가 1000여개에 달하고 손님과 장꾼으로 북새통을 이뤘었다. 현재는 총 60여개의 점포가 장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 허름한 장골목 한편에 이달 초 갤러리 겸 복합문화공간을 오픈한 구근재 대표(갤러리 유칼립투스)가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곳 역시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쉼터이자, 문화공간입니다. 동네 꼬마들부터 방천시장의 어른들까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소통의 공간입니다. 음악과 미술, 작은 공연을 즐기는 작은 놀이터이자 소통의 공간입니다.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과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서로 소통하고 어우러지는 곳입니다. 방천시장을 찾는 분들 누구든 들르셔서 차도 드시고 음악도 즐길 수 있는 쉼터입니다.”
방천시장 건너편 작업실에서 우쿨렐레 강습 겸 미술작업을 하던 구 대표는 일부러 이곳 시장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몇 해 전까지 이 골목은 어두컴컴하고 각종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던 우울한 골목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이 골목과 장터가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마음을 모아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꾸몄고, 그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방천시장, 그리고 이 골목을 배경으로 격이 없는 문화적 활동과 소통의 공간을 이루어가고 싶습니다.”
본래 방천시장은 신천에 놓인 12개의 다리 중 하나인 수성교에 자리잡아 신천 제방을 따라 길게 장이 섰다고 해서 ‘방천’시장이다. 1945년 광복 후 일본과 만주 등지에서 귀국한 이들이 호구지책으로 장사를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고 전해진다. 1960년대부터 싸전(전통 재래시장에서 쌀과 그밖의 곡식을 파는 가게)과 떡전으로 명성을 얻었고, 그 규모가 커 대구 3대 시장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던 방천시장에 다시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한 때는 지난 2009년. 대구시와 중구청이 지역 미술작가와 주민들과 힘을 모아 문화예술을 접목한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부터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김광석의 노래는 숨결처럼 편안하고 읊조림처럼 잔잔하다. 그가 부르던 노래는 작은 돌멩이를 힘껏 던져도 전혀 파동이 일렁이지 않을 것 같은 물결처럼, 삶의 가슴을 적시며 고요하고도 따스하다. 이미 떠나버린 그를 추억하는 이유가 우리의 마음 속, 거기에 있다. 꽃바람 살랑 부는 봄날, 소년과 소녀가 아빠의 양손을 잡고 통기타를 둘러멘 그의 노래를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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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천시장 옆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 있는 김광석 동상. |
꽃바람이 그의 노래를 깨우는가
앞산에 올라 대구 시내 중심가를 내려다본다. 그가 대구에 살았을 즈음부터 운행되었을 법한 오래된 케이블카를 타고 봄바람이 불어 오르는 앞산 전망대에 오른다. 저 아래 어디쯤 다닥다닥 지붕이 낮은 곳에 방천시장이 자리하고 있고, 또 그 시장통 바깥 갈래 골목으로 그가 미소 짓는 작은 골목이 있다고 했다. 건너편 높은 빌딩 사이로 대형마트가 들어선 후 그 허름한 재래시장 골목에는 단골들의 발길이 뜸해졌다고 했다. 대개 낡은 집칸이 늘어선 그 골목은 을씨년스럽기만 하고, 손님도 없는 상점에는 세월을 기억하는 어머니들이 젊은 날의 호시절을 기억하며 장판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가을의 낙엽이 뒹굴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지나고 나서야, 어김없이 봄이 오자 어머니들은 꽃나물을 한 소쿠리 다시 내어놓았다고 했다.
새신랑 티가 좔좔 흐르는 서정욱씨(경기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가 어머니를 모시고 나선 것도 봄이라서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가 지금의 그 나이였을 즈음의 봄에도 그는 작은 골목을 뛰어다녔을 터이다. 지난 1월 장가를 들어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서씨는 아내의 모습에서 새색시처럼 고왔던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서씨가 어머니 이미정씨(63)와 나란히 걷는 아내를 바라보며 뒤를 따른다. 사돈네의 혼사치레로 멀리 대구까지 걸음을 하신 어머니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이 골목을 가보자며 그를 앞장세웠다. “얘들아, 참 좋지 않니? 참 꽃처럼 고운 청년이었는데, 가만히 들어봐라. 노랫말들이 참 좋았는데. 그래 다들 가수라고 아니하고 시인이라고들 했잖니? 왜 그렇게 떠났을까? 96년이니, 벌써 그때가 한참이나 되었구나. 오래지도 않은 세월인데, 벌써 세월이 아득하구나.”
대구는 음유시인이라고 불리던 가수 김광석의 고향이다. 그는 대봉2동 방천시장 골목에서 태어나고 5살까지 이곳에서 뛰어놀았다고 한다. 1968년인가,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상경해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명지대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통기타 그룹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동물원’으로 노래를 시작해 다음해에 <김광석 1집>을 내놓았다. 당시 그의 노래는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이 그의 이름자 앞에 붙기 시작한 것도 그때다. 당시 그는 전국 투어 콘서트 1000회 돌파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시대의 인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10년 즈음이 흐르고, 그는 세상을 등졌다.
그때 서씨의 나이는 만 스물이었다. “어머니도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젊으셨을 때였죠. 새 식구를 맞이하고 처음으로 어머니와 나선 길인 셈입니다. 옛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아내가 함께 세대를 넘어 공감을 나누는 시간이 된 것 같아 곁에서 보기에 참 흐뭇합니다. 그를 좋아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참 새롭습니다. 저희 가족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아름다운 추억여행이 된 듯합니다.”
방천시장 바로 옆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그 100여m 남짓의 거리에 이미 떠나버린 음유시인의 초상과 노랫말이 담벼락을 가득 채우고 있다. 특유의 편안한 미소로 시인처럼 노래하던 그의 모습이 새롭게 그리워진다. 서씨 가족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새로운 추억의 기록으로 가족사진을 찍는다. 여전히 노래는 흐르고 골목에 드는 봄 햇살은 그들의 미소처럼 따스하고 푸근하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마주하며
그의 미소와 노래는 늘 그랬었다. 바람과도 어울리고, 봄볕과도 어울리고, 눈물과도 어우러지며, 어머니의 미소처럼 편안하고 부드러웠다. 엄마 아빠와 함께, 기억에도 없는 옛 시절의 골목을 찾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의 노랫소리와 묘하게 하나의 하모니로 어우러지는 것 역시 그러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래 골목길을 걸으며 사람들은 아직도 그가 일찍 떠났음을 아쉬워하며 담장 곳곳에 그를 추모하는 글들을 빼곡하게 채워놓았다. 아이들은 그저 그 담벼락의 그림과 하나가 되어 놀이를 즐긴다. 그가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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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_ 고 김광석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끊임없이 김광석 길을 찾아오고 있다. (왼쪽부터) 서정욱씨 가족, 부산에서 찾아온 김금희·최주희씨. |
사람들은 담벼락에 기대어 사진을 찍고, 그가 만들어놓았을 것만 같은 작은 벤치에도 앉아본다. 봄볕이 드는 작은 담벼락을 천천히 읽으며 사색을 하고, 또 그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휴일을 맞아 부산에서 일부러 찾아왔다는 김금희씨(29)와 최주희씨(24) 역시 포장마차를 마주보고 앉아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잔을 기울이는 참이다.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그때 그 모습으로 저희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아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친구처럼, 여전히 젊은 모습이 저희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아요. 친구처럼 오빠처럼 참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야기 좀 더 나누고, 천천히 방천시장 골목도 돌아볼 거예요. 인터넷 검색을 하니 값싸고 푸짐한 맛집과 쉴 만한 쉼터와 문화공간들도 있다고 하니 더 둘러볼 셈이에요.”
삶과 문화,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공간
골목을 나서 방천시장 쪽으로 길을 잡는다. 시장 역시 김광석 거리마냥 골목골목 이야기가 쓰여지고, 아주 특별한 공간들로 탈바꿈하고 있다. 시장 곳곳 외진 골목에도 그림이 그려지고, 상인들의 가게와 가게 사이에도 새로운 문화공감이 싹 트고 있다. 삶과 문화, 현재와 과거의 시간이 함께 소통하고 어우러지는 참이다. 시장통을 가로지르다 보면 높이 하늘에 펼쳐놓은 현수막들이 이색적이다. 오래도록 장터에서 삶을 꾸려온 상인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다. 20년도 아니 50년도 전에, 장터에 판을 열었던 꽃다운 새색시와 더벅머리 총각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봄바람에 펄럭인다.
시장 모퉁이에서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란 노래가 흘러나온다. 방천시장은 지난 60여년간 칠성시장, 서문시장과 함께 대구 3대 시장으로 손꼽히던 장터였다. 한때는 점포가 1000여개에 달하고 손님과 장꾼으로 북새통을 이뤘었다. 현재는 총 60여개의 점포가 장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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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여m 남짓 되는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는 고 김광석을 그리는 초상과 노랫말이 담벼락을 가득 채우고 있다. |
그 허름한 장골목 한편에 이달 초 갤러리 겸 복합문화공간을 오픈한 구근재 대표(갤러리 유칼립투스)가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곳 역시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쉼터이자, 문화공간입니다. 동네 꼬마들부터 방천시장의 어른들까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소통의 공간입니다. 음악과 미술, 작은 공연을 즐기는 작은 놀이터이자 소통의 공간입니다.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문화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과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서로 소통하고 어우러지는 곳입니다. 방천시장을 찾는 분들 누구든 들르셔서 차도 드시고 음악도 즐길 수 있는 쉼터입니다.”
방천시장 건너편 작업실에서 우쿨렐레 강습 겸 미술작업을 하던 구 대표는 일부러 이곳 시장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몇 해 전까지 이 골목은 어두컴컴하고 각종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던 우울한 골목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이 골목과 장터가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마음을 모아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꾸몄고, 그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방천시장, 그리고 이 골목을 배경으로 격이 없는 문화적 활동과 소통의 공간을 이루어가고 싶습니다.”
본래 방천시장은 신천에 놓인 12개의 다리 중 하나인 수성교에 자리잡아 신천 제방을 따라 길게 장이 섰다고 해서 ‘방천’시장이다. 1945년 광복 후 일본과 만주 등지에서 귀국한 이들이 호구지책으로 장사를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고 전해진다. 1960년대부터 싸전(전통 재래시장에서 쌀과 그밖의 곡식을 파는 가게)과 떡전으로 명성을 얻었고, 그 규모가 커 대구 3대 시장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던 방천시장에 다시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한 때는 지난 2009년. 대구시와 중구청이 지역 미술작가와 주민들과 힘을 모아 문화예술을 접목한 ‘별의별 별시장’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부터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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