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산행,걷기)

[길에서 만난 사람]느리면 어떠리! ‘청산도 슬로길’

ngo2002 2012. 6. 22. 14:02

[길에서 만난 사람]느리면 어떠리! ‘청산도 슬로길’

‘풍경에 취해 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는 청산도의 슬로 길 백리(42.195㎞)는 이제 명실공히 세계 슬로 길 1호로 제주 올레 길, 지리산 둘레 길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걷기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노란 유채꽃이 핀 구들장 논에서는 보리가 자라고 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도에 살어리랏다. 보리밥 쓱쓱 비벼 먹고 보리방구 꽃방구 풍풍풍, 노니는 아이처럼 그 섬에서 살어리랏다. 그래 밭고랑 사이 돌아간 울 어무이 초분 지어 노랑 꽃다지 사방에 사그랑 풀어놓고, 그 섬에서 곱디곱게 살어리랏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구부렁 길 오르다 지친 할아비 꽃지게에 노랑나비 나풀거리며 꽃을 유혹하는 청산의 봄이다. 나지막한 산등성이에 노랑 유채가 흐드러지고 켜켜이 갈아놓은 구들장 논에도 초록의 보리물결이 일렁인다. 파도소리에 장단 맞추며 보리피리 풀피리 소리 따라 서붓서붓 길을 따른다.

“여가 아주 오래부터 사람살기 좋다고 청산(靑山)이라 허던 곳이여요. 공기가 맑고 하늘이랑 산이랑 바다 전부가 푸르다고 혀서 그렇게 부르지라. 옛날에는 신선이 산다고 혀서 신선 선(仙)자를 붙여 선산(仙山)이라고 부르기도 혔지라.”

청산도 슬로시티 김송기 사무장
청산도는 완도에서 배로 40여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남다도해의 섬이다. 섬은 최고봉인 남쪽 매봉산(해발 384m)과 북쪽 대봉산(379m)이 나란히 앉은 품새로 두 신선이 나란히 앉아 있다. 도청항 부두에 한달음에 마중을 나온 청산도 슬로시티 김송기 사무장과 함께 청산도 슬로길 백리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길바닥에 그려놓은 화살표를 따라 가면 되여라. 갯길 따라 독살도 둘러보고 찬찬히 언덕을 오르면 영화 찍었던 서편제 촬영지여라. 해 떨어질 때면 읍리 몽돌해변서 해넘이도 아주 좋지라. 찬찬히 둘러보고 편케 주무시고, 내일은 저그 읍리 고인돌이랑, 상서리 돌담이랑 둘러보문 참말로 좋지라.”

도락리 안길로 접어드니 갯마을 특유의 원색 지붕들과 담장들이 남도 특유의 때깔과 잘도 어우러진다. 집집이 담벼락에는 오래 된 청산도의 풍경사진이 옛 사람의 초상처럼 빛이 바랜 채 걸려 있다. “인자는 인구가 한 삼천 남짓이나 될라나. 그란디 60년대까지만 혀도 여그 앞바다에서 고등어랑 삼치가 엄청시레 많이 나서 파시(波市)가 열리기도 혔어라. 그때만 혀도 인구가 만명쯤은 족히 넘었어라.”

한국적 풍경의 원형 그대로
섬에 터를 잡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되었다는 동구정(東口井)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걷는다. 마을 주민들은 청산도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짐작한다. 하지만 조선 초까지는 남해안에 왜구의 출몰이 잦아 사람이 거주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말도 들려온다. 김 사무장은 문헌상 1608년(선조 41년) 조선시대에 처음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전한다.

“여그는 예전 풍습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많지요. 저 아래 바다에는 물고기 잡는 독살도 그대로 남아 있고, 섬 여그 저그 일궈놓은 구들장 논도 그렇고 또 인자는 앵간히는 보기 힘든 초분도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풍습으로 남아 있응께요.”

마을을 벗어나니 남도 바닷가의 갯마을 풍치가 그대로다. 해변 풍치와 어울린 소나무 몇 그루와 정자가 우리네 옛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옛날에 물고기를 가두어 고기를 잡던 전통방식의 독살이 앞바다에 펼쳐져 있다.
“독살(독사리)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물고기잡이 방식이지라. 돌로 담을 빙둘러 쌓아 고기를 잡는 것인디, 밀물 때 돌담 안으로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나가지 못하게 가두어 고기를 잡는 것이여요. 예전에는 독살 안에 물고기가 가득 들어 사는 밑천으로 끼니 걱정할 필요도 없었지라. 옛날만치는 못되어도 육지서 놀러온 가족 여행객들한티는 솔찮은 재미를 준당께요.”

청산도의 자연과 마을 풍경을 사진 속에 담고 있는 청산중학교 학생들.


갯길을 돌아 나서니 봄볕이 완연한 산등성이에는 노랑 유채꽃과 청보리가 고랑 고랑 한 폭의 그림을 그려놓았다. 천지사방 노랑 유채꽃 물결 사이로 S자형의 오름길에 반해버린 여행객이 그대로 멈추어 서버린 채 넋을 놓고 있는 참이다.

“저짝 산 중턱에 작년에 상을 치른 초분이 있는데, 청산도에서는 부모가 돌아가면 일단 초분을 만들어서 시신을 안치한 뒤, 바다에 나간 상주가 돌아오면 장례를 치렀지라. 고기잡이 나간 상주가 임종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인데, 그렇게 초분을 차리고 3년 정도가 지나야 장례를 치렀어라.”

김 사무장은 섬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맹 바다를 보고 사니까 욕심들이 별로 없어라. 순리에 맞게 그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것이제요.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파도가 치면 치는 대로 자연이 허락한 만큼만 순응하며 살아온 것여라. 그래 돌아간 이를 마음에 두고 그냥 보내지 않는 것 역시 섬에서 사는 삶의 방식에서 기인합니다. 초분의 풍습 역시 매냥 한가지여라.”

청산여수 백리길, 청산도
청산도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 것은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이곳에서 촬영되면서부터다. 임 감독은 가장 한국적인 풍경의 원형을 찾아다니다 청산도 당리에서 그만 마음을 놓아버렸다.

“영화 찍고 나서부터 사시사철 사람들이 몰려오는데, 참말로 많이들 오대. 봄에는 꽃 좋고 여름에는 물 좋고 가을에는 입맛 좋고 겨울에 눈이라도 오면 온 천지가 하얀 눈이여여. 와본 사람은 꼭 다시 찾는 곳이 바로 우리 섬이여.”
청산도 슬로길 걷기여행은 최소한 1박2일 일정으로 잡는 것이 좋단다. 도청항 부두를 시작으로 당리 <서편제>와 <봄의 왈츠> 촬영지를 둘러보고 권덕리 범바위 용길, 부흥리 구들장 길, 상서마을 옛돌담길, 읍리 해변 낭길과 고인돌 하마비, 신흥해수욕장과 진산리 갯돌해변의 해맞이길 등을 걷기 코스로 잡으면 천천히 걷는 봄여행으로 충분하다.

완도에서 배로 40여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남다도해의 섬 청산도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들. 초분(왼쪽)·서편제 촬영지


“또 슬로길 걷기 체험, 신흥해수욕장 독살 체험, 슬로푸드 밥상 체험 등 자연과 어우러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응게요. 직접 오셔서 보고 느끼며 청산도의 맛과 멋을 지대로 한 번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풍경에 취해 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는 청산도의 슬로길 백리(42.195㎞)는 이제 명실공히 세계 슬로길 1호로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걷기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청산도 주민들은 전라도 특유의 인심으로 손님맞이에 정성을 다한다.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친절하고 인심 좋은 곳이 청산도입니다. 멀리서 오신 손님들잉께 동리 사람들이 온 마음을 다혀야 한다는 것이지라. 장사허는 사람은 인정껏 푸짐허게. 섭섭하지 않게고롬 해야 되고. 주민들은 반갑게 손님들을 맞여야 허지요. 학상들도 청산도를 알리기에 힘쓰고 있응께요.”

청산중학교 학생들이 청산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마을의 풍경과 사는 이야기를 담아 사진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참 기특한 일이지요. 어른들이 생각도 몬한 것을 아그들이 해내고 있응께요. 사진반 아이들이 모여 청산도를 주제로 사진전도 열고, 사진 책도 엮어 냈다 안헙니까. 아이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진짜로 청산도가 끝내주게 아름다운 것은 사실입니다.”

청산중학교 사진반 학생들은 슬로길 11개 코스, 17길을 꾸준히 사진에 담아내고 있다. 봄꽃길, 돌담길과 해변길 등 사시사철 변하는 청산도의 삶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두 발로 걸으며 섬을 빙 돌아 찍은 사진 속에는 봄이면 청빛 보리가 일렁이고 유채꽃 사이로 할아비가 지게를 지고 오른다. 또 해가 지고 다시 바다의 등대가 불빛을 밝히는 그 순간까지, 청산도의 풍경을 그들만의 마음으로 순수하게 담아내고 있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 Copyright ⓒ 2003 - 2012 . ⓒ 위클리경향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