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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돌고 도는 세상, 돌뱅이들의 시대유감

ngo2002 2012. 6. 22. 13:32

[길에서 만난 사람]돌고 도는 세상, 돌뱅이들의 시대유감

ㆍ5일장에서 만난 신(新)장돌뱅이들의 세상살이

근근이 명맥만 이어가던 5일장이 요즘 때아닌 호황이다. 한동안 한산하던 골목길 어귀마다 장꾼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찌 할까 어찌 할까 이 시대의 유감을. 잔뜩 먹구름이 낀 하늘이 마치 이즈음의 세상살이마냥 섭섭하기가 짝이 없다. 중산층 서민들이 살아가는 수도권 신도시의 일산역 근방에는 아직도 100년 전통의 5일장이 선다. 돌고도는 세상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신(新)장돌뱅이들. 그들의 봇짐에 담긴 시대의 근심과 희망을 들어본다.

어이쿠 하니, 돌뱅이 돌뱅이 장꾼 신세
고양 일산장은 성남 모란장과 함께 수도권 신도시에 남아 있는 대표적 5일장 중 하나로 3일, 8일에 장이 선다. 경의선 국철 일산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역사를 빠져나오니 벌써 구일산역(등록문화재 제294호) 앞 작은 광장에서부터 장터 분위기가 왁자지껄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뿡짝뿡짝 장단이 그러하고, 검은 ‘봉다리’ 하나씩을 뒤춤에 든 노인들의 걸음걸이가 얼씨구 절씨구 가볍다.

성남 모란장과 함께 수도권 신도시에 남아 있는 대표적 5일장 중 하나인 고양 일산장.


일산장은 1900년대 초 경의선이 개통되어 일산역이 만들어짐에 따라 처음 생긴 장이다. 1908년 경의선 철도가 개통되어 물자 수송이 용이해지면서 일산장이 처음 등장하게 된 것. 장은 1933년에 지어진 일산역 앞쪽에서부터 시작되는데 현대식 일산시장 본장을 중심으로 장터가 꾸려진다. 각종 농산물을 비롯해 제철 음식이 노점으로 깔리고 토끼·강아지 등의 동물과 다양한 먹을거리들이 구색을 갖추어 사라져가는 시골장터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역 앞 작은 공터에 옷걸이 행거로 노점을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꾼어미가 싫지만은 않은 손사래짓으로 앞을 막는다. “매 사진 박을라 허요. 쭈그렁뺑이 내는 찍지 마소. 요 샤방샤방 이쁜 옷들만 찍으소.”

그 곁 공터 한편에 호미, 쇠스랑 등 농기구며 철물을 풀어놓고 손님을 맞이하는 정창익씨(51·양주시 백석읍)가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얼마 전 장꾼 3년차 딱지를 뗀 정씨는 1일은 문산장(경기 파주), 2일은 강화장(인천 강화군 강화읍), 3일은 일산장, 4일은 광적장(경기 양주), 5일은 적성장(경기 파주)이나 감악산 신산리장 등 경기도권 5일장을 돌고도는 돌뱅이 장꾼이다. 정씨가 본격적으로 장에 나온 것은 2007년부터. 공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정씨는 전직 선생님으로 명퇴 후 3년 남짓 번듯한 점포로 철물가게를 운영했었다. 하지만 몇 분 거리에 대형마트가 들어서고부터 매상이 줄기 시작했다.

“고깃집도 아니고 철물점에 파리 날리는 거 봤소? 안 봤으면 말을 하지 마소. 하하.” 정씨는 가게를 접고 애완용 토끼도 팔고, 직접 개 등 가축을 키우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인자는 욕심도 없소. 그나마 시골 어르신들이 손에 익은 옛 농기구 등 철물을 종종 찾습니다. 그 덕에 아이 둘 키우면서 밥만 먹고 사는데, 요즘은 경기가 얼어 붙었는지, 돈이 아예 씨가 말라 부렀소. 부자들만 돈을 버는 갑소. 서민들이야 백날 고생해야 간신히 풀칠만 허는 셈 아닌갑소.”

장사치가 넘치는 시답지 않은 장터
얼마 전 장꾼 3년차 딱지를 땐 정창익씨는 농기구와 철물을 팔면서 경기도권 5일장을 돌고 도는 돌뱅이 장꾼이다.
정씨는 그래도 새벽에 1톤 트럭에 짐을 싣고 집을 나설 때가 좋다고 한다. 옛 시절 ‘운수 좋은 날’을 기대하며 집을 나서던 아비들마냥 운수대통을 기대하며 매일 길에 올라서는 것이다. “어이쿠 어르신네. 올만인 갑소. 지난번 사갔던 쇠스랑은 말 잘 듣는 갑소?” 옛 시절 우리 아버지들의 목소리처럼 사람 좋아 보이는 정씨의 웃음 속에 울분 섞인 가장의 목메임이 들려온다.

장터야 장꾼보다 손님이 많은 것이 제 격. 하지만 일산장터에는 골목 구석구석에 손님보다 장꾼들의 수가 훨씬 많은 듯하다. 이 골목 저 골목 차고 넘치는 게 장꾼들이다. 그나마 장터에 이골이 난 엿장수는 베테랑이다. 그간의 경력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길목을 오가며 신명나게 엿가락을 쳐댄다. 또 장의 한가운데에 규모가 크게 터잡이를 한 생선가게, 과일가게는 오고 가는 손님을 붙들어 세우고 이력이 붙은 흥정 솜씨를 뽐낸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초보 장꾼들은 장터의 외곽, 맨 귀퉁이 자리에 한 움큼이나 될 만한 밑천을 조심스레 펼쳐놓고 일없이 지나는 사람들의 발그림자를 바라볼 뿐이다.

“요즘은 손님보다 장사꾼들이 더 많아요. 왜 전쟁통에는 너 나 없이 먹고 살라고 집에 있는 거 탈탈 털어서 장에 내다가 팔잖소. 여염집 아낙들도 공부하는 학생들도 장에 나와 장사를 허지 않았어요. 금가락지 팔고 머리카락 잘라 팔고 하던 시대 말예요. 그 시절이 돌아오는 것만 같당께요. 한 몇십 년은 뒤로 가는 것만 갑소.”

이두선씨는 20년 훌쩍 넘게 민속품을 팔며 전국의 장터를 찾아다니고 있다.
벌써 20년 훌쩍 넘게 민속품을 팔며 전국의 장터를 찾아다닌다는 이두선씨(50·군포시 산본동)는 5일장을 돌며 민속공예품을 파는 고참 장꾼이다. 수도권 인근의 고양 일산장, 성남 모란장, 파주 전곡장 등의 장을 돌다가 장사가 시답잖으면, 마음 내키는 대로 1톤 트럭에 민속품을 싣고 전라도 곡성장, 하동 화계장 등 전국의 장터까지 돌며 물건도 사고 장을 편다.

“어느 때는 잘 벌고 어느 때는 안 벌리고, 누구는 잘 벌고 누구는 그저 그렇고 하지라. 돌고 도는 세상에 장돌뱅이가 그런 거지요. 자꾸 자빠지고 고꾸라지는 듯하지만, 그나마 장에 나서면 사람 사는 세상인 듯하여 좋습디다. 그 맛에 살지라.” 전북 남원이 고향인 그는 일가붙이들이 오래도록 민속품에 종사하면서 30대 초반부터 장을 돌기 시작했다. “여그 일산장은 경기가 그만그만 혀라. 성남 모란장도 예전만 못하고. 그런데 요즘 장사는 도통 모르는 사람들이 그냥 밑천도 안 되는 보따리로 장에 나옵니다. 먹고 살려고 장터에 나오는 신출내기 장꾼들이지요. 근데 사가는 손은 없고 파는 손만 늘어나니께, 수지타산이 안 맞지라. 우리야 장사를 오래 했으니 이력이 났지만도. 영 장사꾼이 아닌데 쑥맥 같은 사람들은 보면 딱하고 짠하지라.”

장터에 장돌뱅이, 장꾼, 장돌림 등으로 불리는 길 위의 장사치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 ‘산 입에 거미줄을 칠 수 없어’ 집안의 생계를 짊어진 가장들이 하나 둘 장터를 기웃거리며 길 위에 올라서는 선택을 하는 셈이다. 민속풍물장 이씨는 “5일장이 예전만큼의 재미나 호황은 아니어도, 딱히 궁색하다고 할 것도 없었는데, 요즘 세상살이가 시답잖으니 점점 장꾼들이 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장터는 삶의 축소판. 시대를 비추는 거울
“그랴도 장터는 다시 일어서는 힘을 주는 곳이여요. 무일푼으로 와도 일할 수 있고 열심히만 하면 돈도 모을 수 있응게. 자빠지고 고꾸라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곳이다 이거여요.”

일산 5일장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

장터는 시대의 자화상이라고들 말했었다. 그래서 장터에 나서면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장터는 민심을 대변하고 우리의 모습을 비추며 삶의 지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때마다 선거철이면 정치꾼들이 장터를 찾아 어쭙지않게 손을 내미는 꼼수를 펼치는 것도 모두 그러한 까닭이기도 한 것이다.

“장돌뱅이가 별 것인가? 갈 데 없이 떠돌면서 한 세상 살아가는 것이 돌뱅이 아닌가? 하루 벌이가 좋으면 기분 좋고, 아님 그냥 쉬어가는 셈 치지 뭐.” 헛헛한 한숨 내어쉬고 그렇게 겨를도 없이 길에 올라선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장의 이름으로 길 위에 올라선 이 시대의 초보 장꾼들에게 진짜 운수대통하는 날이 다시 찾아올 것인가? 벌써 잊혀져버렸던 빛바랜 흑백의 고단한 풍경이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시대유감이다. 알록달록 색깔이 선명한 파라솔 위로 겨울비를 잔뜩 머금은 잿빛 구름이 내려앉으니 장터는 더욱 어둡고 스산하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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