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풍랑이 일렁이는 바람의 바다
ㆍ울진 포구에서 만난 어부 김씨
원자력발전소란 이름으로 기억되는 곳. 워낙에 교통편이 좋지 않아 해남의 땅끝마을보다 더 멀게만 느껴지는 그 먼 땅. 등 뒤로 양손을 아무리 맞잡으려 해도 두 손끝이 닿지 않을 만큼 ‘가려운 땅’이 바로 울진이다. 하지만 머나먼 그 땅에 오래도록 비밀스럽게 감춰진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동해에 잠겨있는 왕돌짬
태백산맥이 뻗어내린 줄기를 경계로 긴 동해안이 누워 있고, 그 긴 줄기의 중간에 자리한 땅이 바로 울진이다. 남한에서는 가장 고도가 높은 산간지대로 경상북도의 북부, 강원도 남부, 충청북도 동부의 경계지대에 위치한다. 그리하여 울진은 산맥의 줄기를 따라 수백년을 산 금강송이 깊은 숲을 이루고, 동쪽으로는 바람 부는 동해바다와 맞닿아 있다.
그 울진의 첫 번째 숨겨진 이야기는 후포 앞바다에 잠겨 있다. 울진대게로 관광객을 끄는 후포항 앞바다에 마을주민들이 ‘왕돌짬’이라 부르는 전설의 섬이 있는 것이다. 후포면 후포등대를 기점으로 80도 방향 약 24㎞ 지점에 있는 수중바위로, 맨 꼭대기를 가리키는 정식 명칭은 ‘왕돌초’다.
포구에 배를 대고 대게를 내리는 선원들은 “왕돌짬에서 ‘짬’은 튀어나온 돌이란 뜻의 사투리이제. 왕돌대게가 억수로 잡히던 천혜의 어장이제. 보통 암초는 작은 것인디, 이것은 엄청나게 큰 산만하니까. 서울 여의도의 2배 정도의 크기라는데, 그러니 어민들은 왕돌짬이라 부르는 것이제. 바닷물이 조금만 얕았어도 아마도 억수로 큰 섬이 되었을 것인데”라며 왕돌초가 전설의 섬 이어도처럼 동해의 어민들 간에 구전되어 왔다고 덧붙인다.
왕돌초는 거대한 수중의 암초다. 북짬(북쪽 봉우리), 중짬(중앙 봉우리), 남짬(남측 봉우리) 등 3개의 수중 봉우리로 구성되어 남북으로 길게 돌출된 형상으로, 서쪽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반면 동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전체 약 15㎢에 이르는 넓은 평지의 크기다. 이름이 ‘왕돌’이란 사람이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오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이후의 어떤 수로지(水路誌·항로안내지)에도 등장하지 않다가 199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왕돌초’라는 이름으로 등재가 되었다.
바람이 불어야 웃는 바다
우거진 금강송 송림숲이 운치가 깊다는 월송정을 둘러보고 7번 국도를 따라 구산포로 향한다. 울진군 기성면 구산포는 문어와 대게가 많이 나는 작은 어항. 원래 구산포는 바람이 많이 부는 바다를 끼고 사는 포구로 쉬지 않고 밀려오는 파도와 갯바람이 유별나다. 앞바다에서 통발어선으로 문어잡이를 하는 김경기씨(64·경북 울진군 기성면)가 바다에 나갈 채비로 바다와 하늘을 번갈아 보며 풍랑을 살핀다.
“열다섯에 배를 처음 타고 바다에 나갔으니, 꼭 50년이 되었구먼. 여기서 1마일 정도 되는 앞바다에 통발을 놓는데, 여기는 문어가 많이 나고, 후포항 쪽은 대게가 주로 나지. 늘상 안식구랑 둘이서 새벽에 나가서 오후에 해 떨어질 무렵이면 돌아오제. 사시사철 문어가 나는 곳인데, 겨울철에는 바람도 세고 추우니 한 일주일 작업하면 끝이여. 젤로 큰 거 잡았던 게 33kg짜리구먼. 다 펼치니 장정 서넛이 팔을 벌린 크기였으니까.”
김씨가 까까머리 송송한 열다섯일 때, 처음 배를 탈 적만 해도 모두가 목선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김씨는 아직도 목선을 타고 처음 바다에 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촌이니 아주 어릴 적부터 바다에서 헤엄치고 배를 타고 노니께. 어른들 따라 댕김서 그물도 치고 하면서 문어랑 대게랑 준치도 잡었제. 소학교 졸업하고 배를 탄 것인게 뭣을 알랑가. 뭣도 모르고 그냥 먹고 살라고 배를 탄 것이제, 여그가 예전에는 전국에서 뱃사공이 제일로 많은 곳 중 한 곳이여.”
그만큼 마을은 봄, 가을에 계절풍이 많이 불면 만선을 이루고 풍어를 이루었다. 그래서 바람이 제대로 부는 먼 바다까지 나갈 때, 노를 저을 힘 있는 장정들이 배를 타려고 전국에서 몰려들던 곳이었다. “그래서 옛날부터 진짜 뱃사람은 여기서 구한다고 혔제. 파도가 높아 너울이 일렁일 때 배를 제대로 부리는 기술이 필요했구먼. 풍선(風船)에 돛을 올리고 순풍을 타면 울릉도까지 한달음이면 갔다고 허데. 울릉도까지 한낮 한밤이면 갔다 허드만. 바람이 멈추면 절단나는 것이제. 그러니 바람이 불어야 살맛이 난다고 혔제. 아니면 죽자고 노를 저어야 울릉도까지 가야 허니께.”
울릉도로 가던 바람의 바닷길
구산포는 직선거리로 동해바다에서 울릉도, 독도와 가장 가까운 포구. 구산(邱山)은 지형이 거북의 꼬리와 같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시대 조정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하기 위해 파견한 수군(水軍)인 수토사(搜討使)들이 배를 타고 출발한 역사적 장소였다.
“여 바로 안짝이 대풍헌이여. 사공들이 바람이 잘 불기를 기다리며 묵었던 곳인데, 울릉도까지 배를 띄우기 위해서 기술 좋은 사공들이 몇날 며칠 바람을 기다리면서 숙식을 했던 곳이제. 사공들은 순풍을 바라면서 제사를 지내고, 봉수대에서 깃발 신호가 떨어져야 바다로 나갔다고 허지.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주민들이 3년이나 5년마다 굿을 지내기도 혔구만.”
마을 중심부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대풍헌은 조선시대에 울릉도로 가는 관리들이 배를 기다리며 대기하였던 곳으로 정면 4칸, 측면 3칸의 일자형 홑처마팔작집이다. 1823년 당시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토절목’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하기 위해 3년에 한 번씩 삼척진에서 파견나온 수토사와 100여명의 군사들이 울릉도로 출항하기 위해 구산포 대풍헌에서 순풍이 불기를 기다리면서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미 19세기에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자리가 바로 구산포인 것이다.
동해, 강과 바다 그리고 삶이 한눈에
바다를 가늠하고 관동팔경 중 하나인 망양정으로 길을 잡는다. 울진대게 조형물이 있는 해맞이공원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언덕 정상에 망양정이 자리잡고 있다. 망양정은 조선 숙종이 ‘관동 제일의 누’라는 친필 편액을 하사할 정도로 해안선과 바다의 풍광이 일품이다.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동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이에 송강 정철은 조망(眺望)되는 동해바다의 풍경에 반해 관동별곡의 대미를 망양정으로 장식한다.
송강은 여기에서 파도치는 바다를 보았고, 그 광경을 관동별곡의 마지막 서경으로 읊었던 것이다. 따라서 울진 앞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망양정의 조망은 동해 해안선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친다. 특히 겨울에는 주변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지 않아 탁 트인 수평선을 감상할 수 있으며, 성류굴 앞으로 흘러내리는 왕피천과 동해,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해안선 끝에서 넓게 펼쳐진 수평선 멀리 드문드문 고기잡이 배가 보인다.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제작 현장으로 이름이 알려진 죽변항으로 발길을 돌린다. 100년째 불을 밝히고 있는 죽변등대와 드라마 세트장도 둘러보고, 제철을 맞은 항구의 풍경에 몸을 맡긴다. 갓 잡아온 각종 해산물과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그야말로 생기가 절로 돈다. 바람의 바다에 삶이 일렁인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원자력발전소란 이름으로 기억되는 곳. 워낙에 교통편이 좋지 않아 해남의 땅끝마을보다 더 멀게만 느껴지는 그 먼 땅. 등 뒤로 양손을 아무리 맞잡으려 해도 두 손끝이 닿지 않을 만큼 ‘가려운 땅’이 바로 울진이다. 하지만 머나먼 그 땅에 오래도록 비밀스럽게 감춰진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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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어와 대게가 많이 나는 작은 어항인 구산포는 바람이 많이 부는 바다를 끼고 사는 포구로 쉬지 않고 밀려오는 파도와 갯바람이 유별나다. |
동해에 잠겨있는 왕돌짬
태백산맥이 뻗어내린 줄기를 경계로 긴 동해안이 누워 있고, 그 긴 줄기의 중간에 자리한 땅이 바로 울진이다. 남한에서는 가장 고도가 높은 산간지대로 경상북도의 북부, 강원도 남부, 충청북도 동부의 경계지대에 위치한다. 그리하여 울진은 산맥의 줄기를 따라 수백년을 산 금강송이 깊은 숲을 이루고, 동쪽으로는 바람 부는 동해바다와 맞닿아 있다.
그 울진의 첫 번째 숨겨진 이야기는 후포 앞바다에 잠겨 있다. 울진대게로 관광객을 끄는 후포항 앞바다에 마을주민들이 ‘왕돌짬’이라 부르는 전설의 섬이 있는 것이다. 후포면 후포등대를 기점으로 80도 방향 약 24㎞ 지점에 있는 수중바위로, 맨 꼭대기를 가리키는 정식 명칭은 ‘왕돌초’다.
포구에 배를 대고 대게를 내리는 선원들은 “왕돌짬에서 ‘짬’은 튀어나온 돌이란 뜻의 사투리이제. 왕돌대게가 억수로 잡히던 천혜의 어장이제. 보통 암초는 작은 것인디, 이것은 엄청나게 큰 산만하니까. 서울 여의도의 2배 정도의 크기라는데, 그러니 어민들은 왕돌짬이라 부르는 것이제. 바닷물이 조금만 얕았어도 아마도 억수로 큰 섬이 되었을 것인데”라며 왕돌초가 전설의 섬 이어도처럼 동해의 어민들 간에 구전되어 왔다고 덧붙인다.
왕돌초는 거대한 수중의 암초다. 북짬(북쪽 봉우리), 중짬(중앙 봉우리), 남짬(남측 봉우리) 등 3개의 수중 봉우리로 구성되어 남북으로 길게 돌출된 형상으로, 서쪽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반면 동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전체 약 15㎢에 이르는 넓은 평지의 크기다. 이름이 ‘왕돌’이란 사람이 발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오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이후의 어떤 수로지(水路誌·항로안내지)에도 등장하지 않다가 199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왕돌초’라는 이름으로 등재가 되었다.
바람이 불어야 웃는 바다
우거진 금강송 송림숲이 운치가 깊다는 월송정을 둘러보고 7번 국도를 따라 구산포로 향한다. 울진군 기성면 구산포는 문어와 대게가 많이 나는 작은 어항. 원래 구산포는 바람이 많이 부는 바다를 끼고 사는 포구로 쉬지 않고 밀려오는 파도와 갯바람이 유별나다. 앞바다에서 통발어선으로 문어잡이를 하는 김경기씨(64·경북 울진군 기성면)가 바다에 나갈 채비로 바다와 하늘을 번갈아 보며 풍랑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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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산포에서 통발어선으로 문어잡이를 하는 김경기씨는 배를 탄 지 50년이 됐다. |
“열다섯에 배를 처음 타고 바다에 나갔으니, 꼭 50년이 되었구먼. 여기서 1마일 정도 되는 앞바다에 통발을 놓는데, 여기는 문어가 많이 나고, 후포항 쪽은 대게가 주로 나지. 늘상 안식구랑 둘이서 새벽에 나가서 오후에 해 떨어질 무렵이면 돌아오제. 사시사철 문어가 나는 곳인데, 겨울철에는 바람도 세고 추우니 한 일주일 작업하면 끝이여. 젤로 큰 거 잡았던 게 33kg짜리구먼. 다 펼치니 장정 서넛이 팔을 벌린 크기였으니까.”
김씨가 까까머리 송송한 열다섯일 때, 처음 배를 탈 적만 해도 모두가 목선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김씨는 아직도 목선을 타고 처음 바다에 나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촌이니 아주 어릴 적부터 바다에서 헤엄치고 배를 타고 노니께. 어른들 따라 댕김서 그물도 치고 하면서 문어랑 대게랑 준치도 잡었제. 소학교 졸업하고 배를 탄 것인게 뭣을 알랑가. 뭣도 모르고 그냥 먹고 살라고 배를 탄 것이제, 여그가 예전에는 전국에서 뱃사공이 제일로 많은 곳 중 한 곳이여.”
그만큼 마을은 봄, 가을에 계절풍이 많이 불면 만선을 이루고 풍어를 이루었다. 그래서 바람이 제대로 부는 먼 바다까지 나갈 때, 노를 저을 힘 있는 장정들이 배를 타려고 전국에서 몰려들던 곳이었다. “그래서 옛날부터 진짜 뱃사람은 여기서 구한다고 혔제. 파도가 높아 너울이 일렁일 때 배를 제대로 부리는 기술이 필요했구먼. 풍선(風船)에 돛을 올리고 순풍을 타면 울릉도까지 한달음이면 갔다고 허데. 울릉도까지 한낮 한밤이면 갔다 허드만. 바람이 멈추면 절단나는 것이제. 그러니 바람이 불어야 살맛이 난다고 혔제. 아니면 죽자고 노를 저어야 울릉도까지 가야 허니께.”
울릉도로 가던 바람의 바닷길
구산포는 직선거리로 동해바다에서 울릉도, 독도와 가장 가까운 포구. 구산(邱山)은 지형이 거북의 꼬리와 같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시대 조정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하기 위해 파견한 수군(水軍)인 수토사(搜討使)들이 배를 타고 출발한 역사적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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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진대게는 속살이 쫄깃하고 담백해 궁중에 진상됐던 특산물이다. 사진은 울진대게 유래비. |
“여 바로 안짝이 대풍헌이여. 사공들이 바람이 잘 불기를 기다리며 묵었던 곳인데, 울릉도까지 배를 띄우기 위해서 기술 좋은 사공들이 몇날 며칠 바람을 기다리면서 숙식을 했던 곳이제. 사공들은 순풍을 바라면서 제사를 지내고, 봉수대에서 깃발 신호가 떨어져야 바다로 나갔다고 허지.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주민들이 3년이나 5년마다 굿을 지내기도 혔구만.”
마을 중심부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대풍헌은 조선시대에 울릉도로 가는 관리들이 배를 기다리며 대기하였던 곳으로 정면 4칸, 측면 3칸의 일자형 홑처마팔작집이다. 1823년 당시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토절목’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관리하기 위해 3년에 한 번씩 삼척진에서 파견나온 수토사와 100여명의 군사들이 울릉도로 출항하기 위해 구산포 대풍헌에서 순풍이 불기를 기다리면서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미 19세기에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자리가 바로 구산포인 것이다.
동해, 강과 바다 그리고 삶이 한눈에
바다를 가늠하고 관동팔경 중 하나인 망양정으로 길을 잡는다. 울진대게 조형물이 있는 해맞이공원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언덕 정상에 망양정이 자리잡고 있다. 망양정은 조선 숙종이 ‘관동 제일의 누’라는 친필 편액을 하사할 정도로 해안선과 바다의 풍광이 일품이다.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동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이에 송강 정철은 조망(眺望)되는 동해바다의 풍경에 반해 관동별곡의 대미를 망양정으로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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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폭풍 속으로’가 촬영됐던 죽변항 드라마 세트장. |
송강은 여기에서 파도치는 바다를 보았고, 그 광경을 관동별곡의 마지막 서경으로 읊었던 것이다. 따라서 울진 앞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망양정의 조망은 동해 해안선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친다. 특히 겨울에는 주변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지 않아 탁 트인 수평선을 감상할 수 있으며, 성류굴 앞으로 흘러내리는 왕피천과 동해,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해안선 끝에서 넓게 펼쳐진 수평선 멀리 드문드문 고기잡이 배가 보인다.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제작 현장으로 이름이 알려진 죽변항으로 발길을 돌린다. 100년째 불을 밝히고 있는 죽변등대와 드라마 세트장도 둘러보고, 제철을 맞은 항구의 풍경에 몸을 맡긴다. 갓 잡아온 각종 해산물과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그야말로 생기가 절로 돈다. 바람의 바다에 삶이 일렁인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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