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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토종와인과 국악의 어울림

ngo2002 2012. 6. 22. 13:24

길에서 만난 사람]토종와인과 국악의 어울림

ㆍ테마열차 타고 가는 충북 영동

낙엽이 후두둑 후두둑 다 떨어지기 전에, 계절이 다 저물기 전에 열차에 오른다. 가을을 타는 것이 그리 흉이 될 것도 아니어서, 잠시 콧노래 흥얼거리며 지난 시절의 가을을 추억하며 낭만열차에 올라선다. 알록달록 단풍처럼 곱디곱게 멋 부리고, 옛 시절 꽃띠 여고생처럼 떠들썩한 아주머니들을 따라 기차를 타고 낭만 가득한 가을로 떠난다.

낭만 싣고 가을 풍경 속으로
오전 9시쯤 서울역. 나들이복 차림의 관광객들이 종종걸음으로 플랫폼으로 달린다. 열차는 맛과 멋의 고장인 충북 영동까지 달리는 테마열차다. 지역을 대표하는 대표적 특산물이 된 와인과 우리 국악의 가락을 기본 테마로 하여, 만추의 가을단풍까지 한 꾸러미로 묶은 열차다.

와인열차는 기존 새마을호 객실을 개조해 와인바 형태로 만든 객차를 고급 카페 분위기가 나도록 리모델링했다.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연인들, 삼삼오오 짝을 이룬 친구와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까지 모두 열차에 오르자 드디어 기차가 출발한다. 서울역을 떠난 기차는 이내 도심을 뒤로 하고 짙어진 가을의 풍경 속으로 달린다. ‘삶은 계란에 사이다’를 넣고 소풍 가던 그 시절은 아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기차여행만의 최고의 매력은 여유로움과 자유, 그리고 낭만이다.

꽉 막힌 도로에서 벗어났다는 심정만으로도 승객들은 이내 편안히 좌석 깊숙이 등을 기대고 앉는다. 기존 새마을호의 객실을 개조한 와인열차는 와인바 형태로 만든 객차 7량(탑승인원 104명)에다 고급 카페 분위기가 나도록 리모델링을 한 테마열차. 테마에 맞게 은은한 조명과 포도나무 터널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 그리고 기존 열차보다 좌석이 넓어 여행객들에게 편한안 여행 공간을 제공한다. 와인이 준비된 열차카페에 자리 잡은 승객들은 일상의 탈출을 꿈꾸며 잔뜩 기대에 부푼 모습이다.

지난 청춘의 시간을 추억하며
열차가 출발한 지 30분쯤 지나자 객차 내에서 아주 특별한 서비스가 시작된다. 전문 소믈리에가 객실을 돌며 직접 영동지역의 특산 와인을 서비스하는 모습이 마치 유럽의 열차에 오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이색적이다. 하지만 열차에서 제공하는 와인은 모두 토종와인이다. 영동지역의 와인 생산업체인 와인코리아가 제조한 토종와인 ‘샤토마니’가 서비스된다. 승객들은 이내 지친 일상을 내려놓고 특별한 감회로 여행의 묘미를 즐긴다. 짙어가는 가을의 향내를 음미하듯 와인을 음미하기도 하고, 달리는 열차의 차창 밖으로 스치는 가을 풍경 속으로 빠져든다.

소믈리에의 와인 상식을 곁들인 시음회가 끝나자 객차 내에는 통기타의 선율이 흐르고 레크리에이션 강사의 작은 음악회가 이어진다. 사람들은 제각기 추억의 시간을 더듬는다. 기차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이미 지나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미 중년쯤이 돼 보이는 승객들은 70~80년대, 그때 그 시절 통기타를 둘러메고 무작정 기차여행을 떠났던 청춘의 시절을 떠올리는 듯하다. 기타의 선율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와인 향에 살짝 젖어든 그들의 얼굴에서 어느덧 지나간 청춘의 시간들이 하나 둘씩 오버랩된다. 오랜만에 무릎을 맞대고 아름다운 추억과 낭만을 나누는 사람들. 조금은 여유로워진 그들의 웃음소리가 달리는 기차소리와 어우러져 가을 햇살처럼 따스하게 퍼지는 듯하다.

열차는 영등포역, 수원역, 천안역 등을 거쳐 영동역에 도착한다. 역에는 문화해설사가 함께하는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해설사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구수한 입담과 함께 아주 특별한 영동의 가을 이야기를 풀어낸다.

국악과 토종 와인의 고장
“영동에는 볼거리와 먹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유. 가을이면 천태산에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영국사 천년 은행나무에 소원을 빌러 많이들 오지유. 또 바나나, 귤 빼고 안 되는 게 없는 디가 바로 영동이여유. 뭐든지 여그서 키우문 안되는 것이 없어유. 봄이면 과일꽃들이 천지사방으로 피어서 참말로 볼만 허유.”

주요 도로의 과실수로 지정되어 있는 감나무.


해설사의 너스레가 빈말이 아닌 듯 어디선가 코끝을 간질이는 짙은 과일향기가 은은히 퍼져 온다. 주요 도로의 과실수로 지정되어있는 감나무에는 제철과일인 붉은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영동은 감뿐만 아니라 포도, 복숭아, 사과 등 사시사철 과일이 넘친다. 소백산맥의 추풍령 자락에 위치한 영동은 지리적 특성으로 밤낮의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다. 따라서 과일의 당도가 높고 색과 향이 좋아 품질 좋은 다양한 과일이 생산되는 것. 특히 그 중 가장 효자 노릇을 하는 것이 바로 포도다. “영동이 전국 제1의 포도주산지여유. 제철 포도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요즘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국내산 와인을 찾아 외지손님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어유.”

해설사의 안내를 따라 역에서 10분 거리인 와인코리아로 이동한다. 영동군 주곡리에 위치한 와인코리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와이너리로서 포도의 재배에서부터 정통 토종와인의 양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직접 생산하는 국내 최대의 와인공장이다. 와인바, 와인시음실, 지하토굴저장고, 와인셀러 등이 있는데, 국내 최대 규모의 와인 저장고가 특히 장관이다. 잠시 둘러보는 사이 몇몇 관람객들은 이미 붉은 와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족욕통에 발을 담그고 잠시 피로를 씻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북, ‘천고’
잠시 피로를 풀고 심천면 고당리 일대 국악타운으로 발길을 돌린다. 영동은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 중 한 명인 난계 박연(朴堧·1378∼1458) 선생이 태어난 국악의 고장. 그래서 국악의 성지임을 자랑하는데, 사당인 난계사(蘭溪祠) 주변에는 난계의 업적, 국악기, 국악의 역사 등에 대해 전시하고 있는 난계 국악 박물관, 국악기체험전수관, 난계국악기제작촌 등 우리의 가락을 주제로 대규모 국악타운을 조성해놓고 있다. 관람객들은 이곳을 둘러보며 가야금, 장구, 해금, 대북의 제작과정을 살펴보고 국악기체험관에서 사물놀이의 가락 등을 직접 배우며 우리 가락의 멋에 흠뻑 취해볼 수 있다. 또 매주 토요일에는 난계 국악단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왼쪽 _ 울림판의 지름이 5.54m, 울림통(북 몸통) 길이가 5.96m이고, 울림통의 지름 6.4m이며, 무게는 7톤 에 이르는 천고의 모습. 오른쪽 _ 세계에서 제일 큰 북인 ‘천고’를 제작한 난계국악기제작촌 이석제씨.

하지만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난계사 입구의 천고(天鼓). 천고는 세계에서 제일 큰 북이다. 천고를 제작한 난계국악기제작촌 이석제씨(44·타악기공방 대표)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천고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2009년 7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15개월 동안의 땀과 노력으로 천고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명인 난계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천고를 제작하였습니다. 천고라는 이름은 하늘을 여는 북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소망과 염원을 하늘에 전달하고자 하는 희망의 북이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하늘이 열리는 개천절, 새해 첫날 등 하늘을 열고, 희망을 여는 의미로 북을 울릴 예정입니다.”

천고는 그 울림판의 지름이 5.54m, 울림통(북 몸통) 길이가 5.96m이고, 울림통의 지름 6.4m이며, 무게는 7톤에 이른다. 강원도 태백 등지에서 벌목해 5년 이상 건조한 수령 150년 이상의 조선 소나무 70여톤과 소 40여 마리에서 나온 가죽이 재료로 쓰였다. “천고에는 태극과 팔괘, 청 황 흑 백 적룡 등 5룡(龍)이 새겨져 있습니다. 천고의 소리는 매우 낮으면서도 웅장하며 긴 여운을 지니고 있습니다. 천고의 소리가 우리 국민 모두의 소원과 희망을 담아 하늘에 전해지길 기대합니다.”

지난 7월 천고는 세계에서 가장 큰 북으로 인증받았다. 영국에 있는 기네스 월드 레코드(GWR)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북(Largest Drum)’ 인증서를 받은 것. 종전 세계기록에 등재된 2000년 일본 아사노 타이고사가 제작한 길이 4.95m, 지름 4.8m, 무게 2톤의 북을 훨씬 능가하는 크기다. 천고라는 이름값으로 크기뿐만 아니라 큰 울림으로 우리 국민의 꽉 막힌 가슴을 열어주길 기대해본다. 오직 소원으로.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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