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전문] 한국형 복지 강국 꿈꾸는 스웨덴 스승과 한국인 제자

ngo2002 2012. 5. 15. 10:07

[전문] 한국형 복지 강국 꿈꾸는 스웨덴 스승과 한국인 제자
스벤 호트 스웨덴 린네대 교수 - 안상훈 서울대 교수 대담
"스웨덴 복지 모델도 완벽하지 않아, 무조건 따라 하지 말아야…한국적 모델 찾아야"
"유럽은 복지로 경제위기…동아시아는 복지가 화두 아이러니"
"아시아 국가 복지는 성장과 균형 고민…전세계가 한국
기사입력 2012.05.14 18:09:38 | 최종수정 2012.05.14 18:25:11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20여년 전 스웨덴에서 함께 복지 모델을 공부한 스웨덴 스승과 한국인 제자가 `복지 강국 한국`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스승은 스웨덴식 복지 모델 연구의 권위자로 스웨덴 쇠데르텐대 부총장을 지낸 스벤 호트 린네대 교수(62). 제자는 호트 교수 지도 아래 석·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형 복지국가` 정책 연구에 한창인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43)다. 안 교수는 지난달 29일 출범한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의 민간위원으로 선정됐다. 북유럽 복지국가 전략 연구의 권위자인 스벤 호트 교수는 오는 6월 제자 안 교수가 있는 서울대에 교수로 부임할 예정이다. 두 사람은 복지 강국 스웨덴에 대한 전세계적 관심이 뜨겁던 1995년 스웨덴 스톡홀롬대의 강의실에서 처음 만났다. 청운의 꿈을 안고 북구의 나라를 찾은 유학생 신분 안 교수에게 "스웨덴 모델도 완벽하지 않다"는 호트 교수의 가르침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았다. 역으로 비교사회정책과 복지국가전략을 연구하는 호트 교수에게 한국인 학생과의 대화는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 호트 교수의 추천으로 장학금을 받고 530년 전통 명문 웁살라대 박사과정에 입학한 안 교수는 이후 스승과 함께 스웨덴 복지모델에 대한 공동 연구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다. 안 교수는 학술 논문에 호트 교수와 함께 이름을 올리는 몇 안되는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사제간의 인연은 학문적 동료로 발전해 지난 20여년간 지속됐다. 그리고 오는 6월 두 사람은 서울대에서 동료 교수로 다시 함께 일하게 됐다. 새로운 연구처를 찾던 호트 교수는 미국, 일본 등의 교수직 제안을 물리치고 복지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한국 그리고 제자가 있는 서울대를 택했다. 안 교수가 적극적으로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호트 교수는 올 2학기부터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상대로 강의를 펼칠 뿐 아니라 안 교수가 주도하는 한국형 복지국가 전략 생성 프로젝트에도 자문위원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15일 스승의 날을 앞둔 지난 1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두 교수가 만났다. 다음날 학교 업무로 떠나는 첫 해외 출장을 앞두고 두 사람 모두 들떠 보였다.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된 `복지`에 대해 할말도 많았다. 안 교수의 연구실과 캠퍼스 교정을 오가며 이 날 오후 3시부터 1시간 반 가량 영어로 진행된 대화를 정리했다.

스웨덴식 복지 모델 연구의 권위자 스벤 호르트 린네대 교수(오른쪽)와 그의 제자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스승의 날을 앞둔 10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나 한국형 복지국가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상선 기자>
▶ 안 교수 = 한국에 오신지 한 달 정도 되셨는데 좀 적응이 되셨나요?

▶ 호트 교수 = 아직 멀었지. 한국은 역동적이야. 사람들도 활기차 보이고. 볼거리들도 참 많아. 유네스코에 선정된 유적들도 많던데 시간날 때마다 다 둘러보고 싶어.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잠깐 사회과학대학 건물 주변을 둘러보니 흥미로운 곳이 많더라고. 시간날 때마다 캠퍼스도 구석구석 돌아볼거야.

▶ 안 교수 = 벌써 20년 가까이 됐습니다. 제가 교수님을 처음 만났을때만 해도 서구 선진국 학생들도 복지 강국 스웨덴으로 너도나도 유학가는 분위기였지요. 이제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 스벤 호트 교수 = 사회 복지에 선구적이었던 서구 유럽 특히 스페인,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들이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고 있잖아. 반대로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동아시아 신흥국가들이 뒤늦게 복지를 고민하고 있고. 그래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어떻게 성장과 복지 두마리 토끼를 달성할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일본 마저 경제침체가 심해지면서 전세계에서 한국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지.

▶ 안 교수 =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는 늘 "스웨덴 모델을 무조건 모방하려고 하지 말아라, 스웨덴의 좋은 점만 취사선택하면 된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 호트 교수 = 스웨덴의 복지 모델도 사실은 영국과 독일의 정책을 적절히 수입해서 만들어진 것이잖아. 나중에는 독일, 러시아 등이 다시 스웨덴 모델을 역수입해서 연금, 실업수당 중심의 현금 복지를 줄이고 여성, 아동에 대한 사회서비스를 늘려나갔지. 한국도 이같은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돼.

▶ 안 교수 =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도 사실은 스웨덴 모델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국내에서 스웨덴 모델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여전히 편파적입니다. 한쪽에서 무조건 옳다고 말하면 다른 쪽에서는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식이에요.

▶ 호트 교수 = 한국형 프레임을 갖고 논의를 시작해야지, 스웨덴은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고. 특히 가족이나 성평등 정책에서 한국이 스웨덴에서 배울 점이 많을거야. 서구 자본주의의 흐름이 변화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동아시아의 성장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잖아. 20~30년후에는 스웨덴이 동아시아에서 배워야할 점이 생길지도 몰라.

▶ 안 교수 =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한데요. 그러기 위해서 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여성고용율을 늘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한국의 여성고용율은 50%가 채 안되요, 스웨덴은 80%가 넘지요?

▶ 호트 교수 = 여성 고용은 복지 정책에서 결정적인 요소야. 스웨덴은 오래전부터 여성들의 출산과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를 많이 했기때문에 여성들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데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 한국 사회도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잖아. 일하는 여성들의 출산과 보육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생존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 여성의 사회 참여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계기가 될 수 있어.

▶ 안 교수 = 한국의 복지는 여전히 연금이나 실업수당과 같은 현금에 의존하는 경향이 큽니다. 아동이나 노인을 위한 사회서비스에 대한 투자가 훨씬 늘어나야한다고 봅니다.

▶ 호트 교수 = 복지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관심과 열정에 놀랐어. 특히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더라고. 그런데 무상 복지를 얘기하면서 아무도 세금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은 좀 의아했어. 복지 지출을 늘리려면 단연 세금이 확보돼야 하는데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부실하더라고.

▶ 안 교수 = 안그래도 요즘 복지 지출 확대를 위해 세수를 늘릴 뿐 아니라 국채를 발행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 호트 교수 = 한국의 재정 구조를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앞으로 복지 지출에 들어갈 세원을 다양화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쓰는 일이 중요해질거야. 한국에 와서 보니까 하이힐, 외제차 등 값비싼 물품들이 많이 보이던데 비단 소득세 뿐 아니라 소비세를 더 걷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수 있고.

▶ 안 교수 = 정치권에서 증세도 적극적으로 얘기해야될 텐데요. 한국 사회에서 지금처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적이 없습니다. 너도 나도 복지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금에 대해서는 저항감이 여전히 큽니다.

▶ 호트 교수 = 적절한 복지 서비스를 받으면 그에 따르는 세금을 지불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거야.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따라 단계적으로 복지를 확대해나가고 재정적인 변화도 이끌어내야지.

▶ 안 교수 = 통일을 앞두고 통일에 따르는 복지 비용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할텐데요. 동서독과 달리 남북한의 복지 격차는 너무나 큽니다.

▶ 호트 교수 = 북한은 절대적 가난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에 동서독처럼 짧은 시간 안에 격차를 해소할 수 없을 거야. 통일은 훨씬 장기적인 시각에서 논의가 돼야한다고 봐.

▶ 안 교수 = 한국 사회가 이 시기에 교수님을 만난 것은 엄청난 운이라고 봅니다. 할 일이 많으세요. 당장 내일도 저와 함께 베트남에 가서 해외 봉사 프로그램에 대해 조언해주셔야하고요. 수업도 여러 개 하시죠?

▶ 호트 교수 = 학부생 강의와 대학원생 강의 각각 한 개씩 맡았어. 스웨덴 뿐 아니라 각국의 복지 모델을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강의가 될거야. 한국 학생들에게 글로벌한 관점을 가르쳐주고 싶어. 1997년인가 일본으로 여행가던 중 24시간 한국에 머물 일이 있었는데 안 교수가 어떻게 미리 알고서 강의해 달라고 부탁했잖아. 그 때 만난 대학원생들이 참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었어. 유학 시절 안 교수처럼 말이야.

▶ 안 교수 = 교수님 수업이 현장학습과 리포트가 많아서 참 힘들었지만 그만큼 스웨덴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됐어요. 보건복지부, 여성부, 복지관 등 복지 현장을 꼭 둘러보게 하셨죠.

▶ 호트 교수 = 안 교수는 늘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었지. 풀브라이트 방문 연구원으로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다녀온 직후 동아시아의 발전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때마침 안 교수를 만났어. 나로서는 대화할 상대가 생겨서 좋았다네.

▶ 안 교수 = 교수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제가 석사 과정도 1등으로 졸업했잖아요.

▶ 호트 교수 = 그랬나? 다른 수업들에서도 다 잘했는 줄은 몰랐네.

▶ 안 교수 = 제 꿈은 20년 전 저처럼 앞으로 30~40년 후에 스웨덴 학생들이 한국으로 유학 오도록 한국형 복지모델을 잘 설계하는 거에요. 그렇게 되면 저한테도 스웨덴 제자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 호트 교수 = (웃음) 아주 훌륭한 꿈이네. 나도 앞으로 충분히 그렇게 될 날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네. 한국은 역동적인 국가고 앞으로 한국의 변화에서 자본주의 복지 국가의 미래를 점칠 수 있을 거라고 보네. 나도 이곳에서 더 많은 교수, 학생들과 만나 미래 복지국가의 전략을 논하고 앞으로 닥칠 문제들을 해결하는 지혜를 얻고 싶네.

▶ 안 교수 = 한국에 오래 계셔야겠습니다.

▶ 호트 교수 = 한국 사회가 날 필요로 한다면 계속 남아있고 싶어. 스웨덴 감사원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도 일이 마무리되는대로 곧 올거네.

▶ 안 교수 = 스웨덴에는 스승의 날이 없지요? 스승의 날은 조선시대 왕 세종대왕의 생일과 같은 날이에요. 한글을 만들어준 위대한 왕이자 온 백성의 큰 스승이라는 의미에서 세종대왕의 생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지요. 신기하게도 제 생일도 같은 날이랍니다.

▶ 호트 교수 = 안 교수도 큰 스승이 될 운명을 타고 났나봐.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고 들었는데 꼭 가봐야겠어.

■ `스승` 스벤 호트 교수

△ 1990년 스톡홀롬대 사회학과 박사 △ 1991년~1992년 스웨덴 재정부 사회자문역 △1994년~1996년 스톡홀롬대 사회학과 대학원 주임교수 △ 1996년~1998년 멜라달렌대 복지연구센터 연구소장 △ 2000년~ 쇠데르턴대 사회학과 교수 △ 2003년 쇠데르턴대 부총장 △ 2009년~ 린네대 사회학과 교수 △ 2012년 6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임용 예정

■ `제자` 안상훈 교수

△ 1992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학사 △ 1996년 스톡홀롬대 국제대학원 석사 △ 2000년 스웨덴 웁살라대 사회학과 박사 △ 2001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2005년~ 2007년 보건복지부 주요정책과제 평가위원 △ 2006년 대통령 자문 사람입국일자리위원회·정책기획위원회 위원 △ 2009년 ~ 2011년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장 △ 2012년 5월~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 민간위원

[정리 = 배미정 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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