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민주화를 보는 세가지 시선
ㆍ야당, 시민사회, 학자가 주장하는 경제민주화의 방향과 내용
경제민주화는 시대적 요구다. 재벌과 고소득자에 대한 편향을 보여온 새누리당조차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공언한 것이 그 방증이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라는 말에 담겨 있는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지난해 말부터 서점가에는 경제민주화 관련 책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책은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종일 교수(KDI 국제정책대학원)의 <경제 119>, 선대인 소장(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의 <문제는 경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정승일 교수의 대담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다. <경제 119>는 야당의 경제민주화 공약의 뼈대를 만든 이의 책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경제다>는 최근 경제학자 우석훈씨, 한홍구 교수, 소설가 서해성씨 등과 함께 민주통합당 내 친재벌 성향 의원들의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해온 이의 책이라는 점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진보개혁 진영의 경제민주화 주장과 비판적 거리를 두고 있는 영향력 있는 학자의 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각기 야당의 정책, 시민사회의 대안, 진보와 보수의 테두리에 묶이지 않는 학자의 제안이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의 방향과 내용,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책을 통해 살펴봤다.

경제 119
<경제 119>는 100여쪽 분량의 소책자다. 체계적 접근과 이론적 논의보다는 민주통합당 ‘헌법 제119조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가 고민한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을 국민들에게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유 교수는 서문에서 “이 책에 담긴 정책제안은 나 개인만의 생각이 아니라 ‘119 특위’ 위원들의 집단적 지혜와 고민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유 교수에 따르면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다. 경제를 시장에만 맡기면 사람이 시장의 도구로 전락한다. 그 결과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승자 독식주의와 경쟁지상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고 심각한 부의 양극화를 초래했다. 이 같은 양극화를 막기 위해 “민주적 절차에 입각해 시장에 개입하고 시장을 규제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유 교수는 경제민주화의 세 가지 축이 ‘공정경쟁’ ‘참여경쟁’ ‘분배정의’라고 말한다. 공정경쟁은 “특권과 특혜를 청산하고, 보편적인 시장접근권을 보장하고, 독점과 과점을 규제”하는 것이다. 핵심은 재벌개혁이다. “재벌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이 공정경쟁을 해치고 경제 양극화를 초래하는 핵심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참여경제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란 기업 오너나 주주만이 아니라 “종업원, 소비자,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과 관점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반영”되도록 참여의 폭을 확대하는 것으로, 노동자 경영 참가, 사회적 기업 활성화를 위한 협동조합 육성, 경제정책 결정과정의 민주화를 뼈대로 삼는다. ‘공정경쟁’ ‘참여경쟁’ ‘분배정의’라는 세 가지 축을 바탕으로 유 교수는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12대 핵심정책’을 제안한다. 크게 보아 재벌규제, 금융규제, 부자증세, 노동자 권리의 강화로 정리할 수 있다. 재벌규제 방안에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가중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포괄적 뇌물죄를 신설하는 등 재벌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출자총액제한,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규제 방안으로는 저축은행 사태에서 드러난 금융감독 시스템을 개혁하고 현 정부 들어 형해화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원상회복하고 금융회사가 대기업집단의 계열 확장이나 총수 지배권 강화, 계열사 간 부당지원 수단으로 이용될 경우 법원 판단을 통해 해당 금융계열사를 기업집단으로부터 분리하는 계열분리청구제도를 신설하는 게 뼈대다. 노동자 권리 강화에서는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과 활동을 제약하는 노동법 조항을 폐지하거나 보완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부자증세 수단은 법인세 및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는 것이다.
문제는 경제다
선대인 소장에게 경제민주화는 “한국 경제 재활 플랜”이다. 그는 한국 경제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사회가 “경제의 자기조절 기능을 가로막고 탐욕, 무능, 무책임으로 점철된 지배세력이 불균형을 지속하거나 심화시켜온 탓”이라고 본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이유로 인해 “극심해진 불균형을 해소”해야 하는데, 그가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는 경제권력 교체를 통해 이 목표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선 소장의 경제민주화 방안은 기본적인 방향성에서 유종일 교수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여기서도 핵심은 재벌개혁이다. 그 뼈대는 순환출자 금지와 출자총액제 부활이다. 순환출자 금지와 출자총액제한은 사실상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이다. 한국 재벌의 문제는 재벌 총수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경영상의 책임은 각 계열사로 떠넘기는 것인데,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계열사 간 상호순환출자를 통해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도 계열사 전체를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자총액제한은 계열사의 출자한도를 규제함으로써 이러한 순환출자의 고리를 약화시키기 위한 방안이다. 선 소장은 “민주당의 방안처럼 순자산의 40% 수준까지 재벌 계열사 간의 출자를 허용하는 것은 있으나마나 한 수준”이라며 적어도 이 비율을 15%까지로 낮춰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계열사 간 내부거래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법인세 중과, 재벌의 변칙적인 경영권 승계를 막기 위한 상속·증여세 실효세율 강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엄격한 분리, 독과점과 담합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벌 강화, 재벌 유통업체들의 동네상권 진출 억제 등이 패키지로 제시된다. 선 소장은 여기에 더해 검찰개혁까지 주장한다. “재벌들에게 엄정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당연히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를 신설하고 미국처럼 고위 검찰 간부를 직선하는 등”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 소장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모피아(기획재정부 출신 경제관료)와 토건 마피아로 상징되는 부패하고 시대착오적인 관료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선 소장은 이들이 ‘삼성공화국’과 ‘토건공화국’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한국 경제의 기득권 구조를 뒷받침하는 핵심세력이라고 본다. 그는 개혁성향의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양극화 심화라는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집권세력의 주체적 정치 역량이 부족했던 데도 기인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핵심인 이들 관료들이 대통령의 철학을 구체적 정책으로 집행하는 과정에서 정책의 방향을 왜곡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관료의 영향력을 약화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선 소장은 관료들의 ‘밥그릇’인 불필요한 공기업의 해체, 관료 보수 인상, 고시제도 폐지, 대통령에 대한 전문적 정책보좌기구 신설, 정부 출연기관의 독립성 보장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종태 <시사인> 기자가 진행을 맡고 장하준 교수와 경제학자 정승일 운영위원(복지국가소사이어티)이 대담한 내용을 정리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인화성 강한 논쟁의 불씨를 품고 있는 책이다. 유종일 교수나 선대인 소장을 비롯한 진보성향 학자들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꼽고 있는 재벌개혁에 대해 그 당위성과 방법론 측면에서 선명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장하준 교수와 정승일 위원은 한국 경제의 진짜 문제는 재벌체제가 아니라 ‘주주 자본주의’(또는 ‘금융자본주의’)라고 본다. 주주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장하준 교수의 말이다. “주식 투자자들의 이익 극대화가 기업의 최우선 경영 목표로 부상한 걸 주주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겠죠. 예컨대 짧은 기간 내에 주가를 최대한 올린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왜 주주 자본주의가 문제인가. 정승일 위원의 말이다. “현재의 주주 자본주의 게임에서 그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재벌 가문은 여차하면 경제권력을 빼앗길 수도 있는 만큼 어떻게 해서든 주가를 높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리기도 하고, 일단 뽑은 정규직 인력은 불철주야 일하게 해서 본전을 뽑아야죠. 물론 하청단가는 남들한테 욕먹지 않을 수준까지만 주고,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같은 것도 잘못 없다고 시치미 뚝 떼어야 하고, 노동조합 같은 건 눈에 불을 켜면서 못 만들게 방해해야 합니다.” 재벌이 주주 자본주의의 논리에 포섭돼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사업에는 투자하지 않고 경영권 방어에 급급하면서, 주가 상승을 위해 정리해고 등 노동유연성을 강화하고 중소기업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등 상생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재벌체제의 문제점을 주주 자본주의 탓으로만 돌리는 건 아니다.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재벌을 때리는 것만으로는 재벌체제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이 지점에서 저자들의 재벌개혁 방법은 진보성향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180도 달라진다. “(재벌을) 출자총액제한 같은 규제로 금지 또는 제한하겠다는 건 결국 소유와 지배의 괴리 해소를 위해 경영권을 포기하라는 거고, 결국은 기업 사냥 늑대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주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강력한 재벌규제를 통해 현재의 재벌체제를 해체했을 때 그 과실은 결국 “GM 같은 다국적 기업들 아니면 론스타 같은 사모펀드, 그것도 아니면 다른 재벌”이 가져가게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장하준 교수의 말이다. “시민들이 재벌에게 경영권 방어장치를 허용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대가로 제안할 수 있는 건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 제한, 설비 및 R&D 투자 확대, 미래형 신산업 투자, 그리고 복지국가 건설 및 부자 증세 협조 등이 있을 수 있죠. 아무튼 반드시 그 대가는 받아야 합니다.” 복지국가와 재벌경영권 보호를 맞바꾸는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주간경향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민주화는 시대적 요구다. 재벌과 고소득자에 대한 편향을 보여온 새누리당조차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공언한 것이 그 방증이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라는 말에 담겨 있는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지난해 말부터 서점가에는 경제민주화 관련 책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책은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종일 교수(KDI 국제정책대학원)의 <경제 119>, 선대인 소장(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의 <문제는 경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정승일 교수의 대담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이다. <경제 119>는 야당의 경제민주화 공약의 뼈대를 만든 이의 책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경제다>는 최근 경제학자 우석훈씨, 한홍구 교수, 소설가 서해성씨 등과 함께 민주통합당 내 친재벌 성향 의원들의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해온 이의 책이라는 점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진보개혁 진영의 경제민주화 주장과 비판적 거리를 두고 있는 영향력 있는 학자의 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각기 야당의 정책, 시민사회의 대안, 진보와 보수의 테두리에 묶이지 않는 학자의 제안이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의 방향과 내용,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책을 통해 살펴봤다.

(왼쪽)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정지윤 기자 (가운데)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 | 김문석 기자 (오른쪽)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 강윤중 기자
경제 119
<경제 119>는 100여쪽 분량의 소책자다. 체계적 접근과 이론적 논의보다는 민주통합당 ‘헌법 제119조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가 고민한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을 국민들에게 간결하고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유 교수는 서문에서 “이 책에 담긴 정책제안은 나 개인만의 생각이 아니라 ‘119 특위’ 위원들의 집단적 지혜와 고민의 산물”이라고 밝히고 있다.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유 교수에 따르면 “시장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다. 경제를 시장에만 맡기면 사람이 시장의 도구로 전락한다. 그 결과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승자 독식주의와 경쟁지상주의가 사회를 지배하고 심각한 부의 양극화를 초래했다. 이 같은 양극화를 막기 위해 “민주적 절차에 입각해 시장에 개입하고 시장을 규제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문제는 경제다
선대인 소장에게 경제민주화는 “한국 경제 재활 플랜”이다. 그는 한국 경제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사회가 “경제의 자기조절 기능을 가로막고 탐욕, 무능, 무책임으로 점철된 지배세력이 불균형을 지속하거나 심화시켜온 탓”이라고 본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이유로 인해 “극심해진 불균형을 해소”해야 하는데, 그가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는 경제권력 교체를 통해 이 목표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선 소장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모피아(기획재정부 출신 경제관료)와 토건 마피아로 상징되는 부패하고 시대착오적인 관료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선 소장은 이들이 ‘삼성공화국’과 ‘토건공화국’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한국 경제의 기득권 구조를 뒷받침하는 핵심세력이라고 본다. 그는 개혁성향의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양극화 심화라는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집권세력의 주체적 정치 역량이 부족했던 데도 기인하지만, 기득권 세력의 핵심인 이들 관료들이 대통령의 철학을 구체적 정책으로 집행하는 과정에서 정책의 방향을 왜곡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관료의 영향력을 약화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선 소장은 관료들의 ‘밥그릇’인 불필요한 공기업의 해체, 관료 보수 인상, 고시제도 폐지, 대통령에 대한 전문적 정책보좌기구 신설, 정부 출연기관의 독립성 보장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종태 <시사인> 기자가 진행을 맡고 장하준 교수와 경제학자 정승일 운영위원(복지국가소사이어티)이 대담한 내용을 정리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인화성 강한 논쟁의 불씨를 품고 있는 책이다. 유종일 교수나 선대인 소장을 비롯한 진보성향 학자들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꼽고 있는 재벌개혁에 대해 그 당위성과 방법론 측면에서 선명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장하준 교수의 말이다. “시민들이 재벌에게 경영권 방어장치를 허용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 대가로 제안할 수 있는 건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 제한, 설비 및 R&D 투자 확대, 미래형 신산업 투자, 그리고 복지국가 건설 및 부자 증세 협조 등이 있을 수 있죠. 아무튼 반드시 그 대가는 받아야 합니다.” 복지국가와 재벌경영권 보호를 맞바꾸는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주간경향 & 경향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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