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와 일반적상식

[디지털 3.0] 옛 신문 디지타이징은 과거와의 대화

ngo2002 2012. 3. 19. 10:01

[디지털 3.0] 옛 신문 디지타이징은 과거와의 대화
기사입력 2011.01.18 17:19:38 | 최종수정 2011.01.18 18:27:13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장내에 불이 꺼지고, 사람들이 전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검색창에 `배재고 우승`을 치고 엔터 키를 눌렀다. 이내 126년의 전통을 가진 배재고 영광의 순간이 되살아났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특히 1970년 전후로 그래프가 뾰족했다. 검색 결과가 많다는 뜻이다. 배재고는 그 무렵 고교 농구, 탁구, 럭비, 축구, 야구 등의 운동경기에서 우승을 휩쓸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저마다 감회에 젖었다.

지난해 말 배재고 동창회의 광경이다. 배재고 동문인 필자는 선배님들로부터 강연을 부탁받았다. 뜻깊은 동창회 자리에서 함께 나누고 의미를 새길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같은 공동체에 함께 속해 있었다는 기억, 혹은 일체감을 짚어보는 것이 좋을 듯했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몇 십 년 전의 신문기사를 디지타이징(Digitizing)해 찾고 싶은 날짜나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해주는 네이버의 옛날신문 서비스를 이용하면 되니까.

`배재고 우승` `배재고 동창회` 같은 검색 결과를 살펴본 다음, 참석한 동문 중 가장 연장자인 선배의 성함을 입력했다. 그러자 1966년 발행된 모 신문 호외에서 그의 이름이 보였다. 1974년 고교평준화 조치 이전에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전기와 후기로 나눠 학교별로 지원해야 했고, 그 결과는 같은 날 일제히 발표됐다. 고교 합격 소식이 매우 중요한 이슈였던 시절인 만큼 신문들은 호외를 발행했다. 1000 명이 넘는 합격생들의 빼곡한 한문 이름 가운데 선배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참고로 옛날신문 서비스는 한글 음독 기능을 제공하기에, 한문으로 쓰여진 원문도 한글로 찾고 읽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너무나도 쉽게, 1966년의 신문 호외가 펼쳐지고, 선배의 이름이 하이라이팅 되자 동문들은 하나둘 박수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동문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30~40년 전으로 돌아가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그날 밤 몇몇 분으로부터 `집에 가서 옛날신문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며 추억을 되살리는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며 고맙다는 메일을 받았다.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2000년 기점으로 그 이후의 기사나 이용자의 콘텐츠는 많지만, 그 이전 콘텐츠는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해외도 일부 신문 자료를 유료로 서비스하는 곳이 있긴 하지만, 오래전의 콘텐츠를 디지타이징하는 작업은 아직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개인의 정체성에서 66년 배재고 합격이 큰 의미가 있듯이 작게는 학교,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에서 공유하는 경험과 기억은 매우 소중하다. 현재 네이버 옛날신문 서비스는 1960년부터 1999년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지만, 올해 3월부터는 1920~1959년까지의 기록이 더해진다. 광복 이전의 역사와도 연결되는 것이다.

NHN이 매일경제를 비롯해 일부 매체의 과거 신문기사를 복원했지만 묻혀 있는 과거 콘텐츠의 양에 비하면 정말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과거의 역사가 고여 있는 저수지를 그냥 두고만 볼 것인가. 아니면 이 저수지의 풍성한 자원을 필요로 하는 곳에 흐르도록 할 것인가. 아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쌓이는 자원은 자원이 아니다. 모두가 망각하기 전에 과거를 온전한 현재로 살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결국 과거 신문의 디지타이징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작업이다. E H 카가 말했듯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그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도록 후대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어느 주체보다도 정부의 관심과 노력이 특히 절실한 이유라 하겠다.

[김상헌 NHN 대표이사 사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