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그날밤 강화도 통나무집에 모인 남녀 12명은…

ngo2002 2012. 2. 16. 10:17

그날밤 강화도 통나무집에 모인 남녀 12명은…
[和通韓國 2012] 12송이 들국화의 눈물·용기·희망
스펙만 좇기보다 도전 "이젠 재능 함께 나눌 것"
`으라차차 캠프` 참가자 1박2일간 멘토들과 진솔한 대화
경력단절녀·싱글맘…가슴속 검푸른 멍 언제 사라질는지
기사입력 2012.01.02 18:24:58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화통한국 으라차차" 캠프 참가자들이 "으라차차!"를 외치며 힘차게 뛰어올랐다. 흐린 하늘이지만 그 속에서도 태양은 빛나고 있으리라.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012년 새해를 우리는 그렇게 맞이했다. 왼쪽부터 주부 강민경 씨(45), 보험설계사 원면재 씨(44), 신입사원 노금섭 씨(28), 싱글맘 최형숙 씨(39), 우리들의 영원한 영웅 석해균 선장(59), 신입은행원 최서현 양(19), 개그우먼 이세영 씨(22), 청년사업가 김용태 씨(26), 취업준비생 최호림 씨(26), 공시생 박준영 씨(28), 그리고 그 뒤에 금형업체 대표 박정서 씨(39),
1월 1일 일출의 기운은 잘 받으셨는지요? 자연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이어서 새해 첫날 동해에 떠오른 태양의 햇살은 청와대 처마 끝이나 암을 앓는 아이를 감싸안은 싱글맘의 눈앞에서나 똑같이 빛납니다.

하지만 그 가치는 다른 게 현실이지요. 대통령의 1시간과 평범한 취업 준비생이 보내는 1시간의 가치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우리는 항상 전 지구적 거대 가치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유럽 재정위기로 심화하는 세계 경제 불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에 따른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 변화, 박근혜와 안철수로 대표되는 올해 대선 전망 등…. 어쩌면 우리는 이처럼 크고 숨가쁜 뉴스들에 눈 멀고 귀 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뉴스 전광판 올려다 보느라 치켜들었던 고개를 잠깐 숙이고 주위를 둘러보자고요. 우리를 옭아매고 있고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 성큼 다가옵니다.

매일경제신문은 2012년 새해 화두로 `화통한국 으라차차 2012`를 내걸며 평범하지만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는 12명의 보통 사람들과 함께 1박2일 캠프를 떠났습니다.

강화도 통나무집에서 꼬박 24시간을 함께하면서 우리는 보았습니다. 마흔 넘어 자신의 삶을 돌아다보며 흘리는 한 여성의 눈물을, 믿었던 파트너에게 뒤통수를 맞아 저수지의 시커먼 물을 바라보며 통곡했던 중소기업인을, 세계 최초 택시대학 총장을 꿈꾸는 택시기사의 하루를…. 그들의 고민과 분노, 눈물과 용기, 그리고 희망을 함께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얀 겨울, 노랗게 피어난 12송이의 들국화가 우리의 삶을 얘기합니다. `들국화`가 부르는 `그것만이 내 세상`을 들으면서 신문을 펼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자, 이제 시작합니다.

■ 스펙만 좇기보다 도전 "이젠 재능 함께 나눌 것"
해직 아픔딛고 보험왕 "태풍 지나니 순풍오네요"
"세계 첫 택시대학 총장" 40대의 꿈이 이쯤은 돼야죠


얼마 만에 잡아본 크레파스일까. 하양 도화지에 그림을 그렸다. 분노와 눈물, 그리고 용기와 희망…. 우리들의 삶이 그 안에 있었다.
# 11:00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12명의 낯선 이를 만났다. 24시간 동안 우리가 마주한 것은 `12개의 온전한 세계`였다. 단단한 벽돌로 지은 집 속에 담긴 세계. 돌돌 말려 있는 그 기억을 끄집어내야 하는 일이었다. 1차 공략은 강화도행 버스에서 시작됐다. 가벼운 터치. 15년차 택시기사 정태영 씨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먼저 말을 거는 사내다. "요즘 연말이라 정신없으시죠?" "요즘 친절한 기사 만나기 어렵죠? 하루종일 벌어서 아이 한 명 기르기도 힘드니…먹고사는 게 그리 만드는 겁니다. 친절과 생존이 상충될 수밖에 없어요."

# 12:30

눈이 소복이 쌓인 캠프장에 도착한 열두 손님은 서로 낯설어했다. 도시락을 먹었다. 밥을 나눠 먹는 시간만큼 마음이 쉽게 열리는 때도 없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이세영 씨. 또래 친구들은 대학생일 시기 그는 `웃음의 정글`에서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데뷔 프로그램인 MBN `개그공화국`에서 `앙마를 보았다`가 히트하며 유행어까지 만들어냈다. "누군가를 웃긴다는 일은 힘든 일이고 스스로 민망할 때도 많아요." 개그맨의 맨얼굴에는 수줍음이 스며 있다.

금형공장을 운영하는 박정서 씨는 올해 창업 10주년을 맞는다. 주말도 반납하고 6~7년간 회사에서 숙식하면서 일군 성과다. "그동안 회사만 바라봤는데 이젠 성공하신 분들을 좀 만나고 싶어요. 쉽지는 않겠지만 5년 뒤 코스닥 상장이 목표입니다."

# 14:00

별채로 이동했다. 이름을 외우기 위해 서너 차례 자기소개가 이어졌지만 뭔가 `비책`이 필요했다. 하양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았다.

"우와~." 감탄사가 나오는 그림이 등장했다. "왕년에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는 이세영 씨. 스물 둘 개그우먼의 손가락은 그림 속 과거를 가리켰다. "아버지가 간부였는데 회사가 부도나면서 삶이 어려워졌어요. 20대 들어서면서 제 적성이 공부는 아닌 것 같아 개그맨이 됐죠. 얼굴로 웃기고 있지만 여성스러워지고 예뻐져서 3년 뒤에는 한 프로그램의 MC로 활동하는 게 소원입니다."

껍질이 부서지자 알맹이가 흘러나왔다. 박준영 씨는 이른바 `공시생`이다.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는 그는 축구장과 축구공을 그렸다. "어릴 때 축구선수를 꿈꿨는데 안 맞는 것 같아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남들처럼 대학을 갔는데 과를 세 개나 경험했죠." 처음에는 토목공학과, 군대 전역 후 행정학과로 전과했지만 글쓰기가 어려워 경제학과 복수전공을 했다. 졸업 후 인생에 대해 고민한 끝에 아버지와 같은 길인 경찰관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박민혁 군은 낯을 가리고 말수가 적었다. 3개월 뒤면 서울에서 대학생이 되는 이 울릉도 청년은 한반도 지도를 크게 그렸다. "아버지가 목사님이어서 전국을 돌면서 살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울릉도에 들어갔는데 지금 그린 건 수험생활을 끝마치고 우중충한 모습입니다. 미래는 대학생활을 자유롭게 즐기는 모습이고요. 그 옆의 그림자는 입대를 앞둔 두려움이랄까? 하하."

좋게 말하면 취업준비생, 나쁘게 말하면 백수 서울 남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최호림 씨. "군대가 전환점이 돼서 전역 4개월 만에 취직을 했지만 제 길이 아닌 것 같았어요. 지금은 IT 쪽으로 취직 준비를 하면서 출장뷔페 알바를 하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중요한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19세 은행원 최서현 양은 최근 부쩍 늘고 있는 고졸 취업생이다. 6개월째 일하고 있는데 아직 언니들과의 나이 차이 때문에 서먹함과 어색함이 있다고 한다. 그림 속 세 여인 중 `미래의 나`만이 웃고 있다. "가족사도 있고 힘든 일이 많았어요. 미래에는 이렇게 행복할 수 있겠죠."

아들 민수 군(가명)의 손을 꼭 잡은 최형숙 씨 그림에는 나무가 있었다. 미혼모라는 사회의 불편한 시선 때문에 눈꼽만큼의 빈틈도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이 손톱조차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못 깎아주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흉볼까 싶어서다. "과거에는 공주였어요. 지금은 먹구름도 끼어 있고, 힘든 일도 많지만 새싹에 물을 주면서 살고 있어요. 앞으로는 아이를 사회에 필요한 나무로 키워놓고, 그 그늘에서 누군가가 쉴 수 있게 만드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강민정 씨의 그림에는 개미가 그려져 있다. 5남매 중 넷째로 아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컸고 지금은 적당한 나이에 결혼해 남편과 아들딸 있는 `평범한` 아줌마. 하지만 `내 삶`은 없다. 우리 사회에서 경력의 단절은 인맥의 단절이다. 주부들은 가정 이외에 속한 사회가 없다. 그는 이제 다시 사회로 나가볼 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었을 때였어요. 나는 한 마리 개미구나 싶었죠. 그래도 산 정상, 꼭대기에 사는 개미가 돼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태성 씨 그림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택시운전 60주년 기념식 모습. "남자들 인생 막장이라는 택시기사들은 누구나 마음 속에 소설을 담고 삽니다. 그 일을 하지 말라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이 직업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제 꿈을 위해 저는 지금도 한 발씩 전진하고 있어요."

28세 청년사업가 김용태 씨는 `거미줄`을 그렸다. "사람들은 스펙주의 사회에 삽니다. 토익, 학점 등 제도적으로 짜인 그물망에 갇혀 살죠.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며 저도 20대 초반까지는 불안한 삶을 살았어요. 지금은 비즈니스 공모전에 입상해 기회를 잡고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많은 다른 이의 재능을 찾아서 함께 일해보고 싶어요."

원면재 씨는 2009년 8월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파업을 77일간 끝까지 함께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해직 통지서와 구치소, 그리고 회사의 가압류 조치뿐이었다. 뜨거운 여름이 끝나고 그는 회사를 떠났다. 가족 때문이었다. 360도 다른 일에 도전했다. 보험 영업으로 신인왕과 판매왕을 달성했다. "처음엔 죽도록 힘들었지만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왕하는 거 `삼성인상`에 도전해 보려고요. 인생에 태풍이 많았지만 생각을 바꿔봤어요. 태풍이 든든하게 나를 밀어주니 순풍이 됐다고."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2시간이 흘렀고, 멘토와의 만남이 이어졌다. 살아온 궤적과 고통의 크기는 달랐지만 우리는 모두 36.5도의 체온을 지닌 사람이다. 누군가 귀를 기울여주자 이들은 꽁꽁 싸맨 속내를 열어보였다. 조금씩 심장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오늘밤엔 무슨 이야기가 흘러나올까. 시간은 숨가쁘게 흘렀다. 어느덧 해가 졌다. 두꺼운 구름이 낮게 깔린 저녁노을이 고왔다.

■ `으라차차 캠프` 참가자 1박2일간 멘토들과 진솔한 대화

`화통한국 으라차차 2012 캠프`는 신문 최초로 시도한 `지상(紙上) 다큐멘터리`다.

캠프는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10시부터 28일 오후 1시까지 27시간을 기자 8명과 12명의 참가자가 함께 진행했다. 때로는 어색한 표정과 재치 있는 한마디에 모두 깔깔거리며 좋아했고, 때로는 가슴 먹먹해지는 사연과 아픔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마치 카메라가 찍어내듯 고스란히 지면에 담아낸 기록이 `으라차차 캠프`다.

참가자들은 캠프 시작 2주 전부터 트위터를 통해 혹은 주위 추천을 통해 한자리에 모였다. 20대를 맞는 예비 대학생부터 40대 후반 택시기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가 참가했다.

으라차차팀은 서울에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강화도 국회의정연수원에서 1박2일을 함께 보냈다. 고즈넉한 산속에 자리잡은 통나무집에서 참가자들은 직접 저녁밥을 짓고, 앞뜰에 펼친 화로에서 삼겹살을 구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나마 일상의 시름을 잊고 하룻밤 짧은 여행 기분을 만끽했다. 늦은 밤에는 맥주를 한 잔씩 기울이며 그동안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던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참가자(멘티)들의 새로운 시작에 조언을 해줄 멘토들도 참가했다. 대표 잉꼬부부인 농구 해설가 이충희ㆍ배우 최란 부부는 `사랑과 시작`에 대해 말했다.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도전`을 얘기했다. 사업 실패를 딛고 재기해 이제는 성공 창업의 대명사가 된 이경수 아딸떡볶이(오투스페이스) 사장도 왔다. 2011년 최고 화제의 인물인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은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은 `용기의 종결자`를 보여줬다. 역사 속 여성 이야기를 감성적인 필체로 풀어가는 베스트셀러 작가 김별아 씨는 "진심이 담긴 글이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고 했다.

■ 경력단절녀·싱글맘…가슴속 검푸른 멍 언제 사라질는지
IT 일자리 아줌마엔 꿈 미혼모 아들 냉대 겁나
유니폼이 낯선 직장막내 힘껏 배워도 정규직 막막
개그우먼은 언제나 광대 아프고 눈물나도 하하하


자정을 2시간 앞둔 겨울밤 분위기와 맥주 한잔의 힘을 빌렸다. 저녁으로 막 삼겹살과 김치찌개를 나눠먹은 참이다. 아딸떡볶이 이경수 사장과 석해균 선장을 만나 `역경을 딛고 서는 법` `진정한 용기`에 대한 이야기도 도란도란 나눴다.

그리고 돌아온 숙소. 따스한 온돌방에 앉아 잔을 기울였다. 마음의 문이 열린 건 자정 즈음. 눈물은 좀처럼 마르지 않았다. 저마다 가슴속엔 검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세상은 강민정 씨를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의 줄임말)`라 부른다. 떡 이름도 아니고…, 웃음이 나왔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1990년부터 IT 중견회사에서 2년여 일했다. 첫째를 임신하고 직장을 그만둘 때만 해도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1997년 외환위기로 빠듯해진 살림살이에 등 떠밀려 취업전선에 다시 나섰다. 상전벽해한 IT 업계에 30대 고학력 아줌마의 일자리는 없었다. 시간강사 남편과 쑥쑥 자라는 아들을 떠올리며 학습지 교사로 5~6년간 악착같이 뛰었다. 낮부터 저녁 8시까지 아파트 단지를 돌며 주에 120회를 가르쳤다. 말이 좋아 선생님이지 영업사원이나 매한가지였다. 매월 손에 쥔건 110만원. 가족을 위한 희생의 세월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아줌마는 강하다고 누가 말한 걸까.

남편이 3년간 교수 자리를 얻어 2008년 봄 중국 지린성 창춘으로 이사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경제적 여유를 누렸다. 하지만 2010년 가을 귀국하면서 다시 `밥벌이 전쟁`이 시작됐다. 천정부지로 뛴 집값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어느덧 아들은 훌쩍 커 재작년 대학생이 됐고 초등학교 6학년 딸도 엄마 손이 덜 필요해졌다. 제2의 커리어를 꽃피우고 싶지만 싹조차 틔우기 힘들어 눈물만 닦는다. "나에게 남은 건 뭘까. 민정아, 넌 누구니?"

"싱글맘이 된 것을 얼마 전 처음으로 후회했어요." 최형숙 씨는 7년 전 민수(가명)를 혼자 낳았다. 처음엔 입양을 보낼까도 고민했다. 혼자 해낼 자신이 없었다. 가족과 친구 등 지인들은 하루아침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홀로 서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민수는 나에게 작은 천사다.

2009년 5월 민수가 혈변을 눴다. 대장암이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서울대 소아암 병동에 입원하는 날 마음을 고쳐먹었다. 생후 한 달 만에 대장암에 걸린 아이의 엄마가 병마와 꿋꿋하게 싸우는 모습을 봤다. 자신의 눈물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민수의 병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겨낼 수 있어."

지난해 12월 병원 입원만 네 번째인 민수에게 다시 병이 찾아왔다. 대장에 혹이 생겼다. 수술을 앞뒀지만 그는 끄떡없다. 민수에게 보여주려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벌써 네 권째. 민수를 혼자 키운 걸 "후회 안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해왔다. 하지만 초등학교 취학통지서는 그 생각을 바꿔버렸다. 7세 민수는 궁금한가 보다. "엄마, 미혼모가 뭐야. 엄마는 결혼 안 하고 민수를 낳은 거야? 결혼 안 하고 아기 낳으면 나쁜 사람인 거야?" "민수야, 엄마는 미혼모야. 엄마가 나쁜 사람이야? 아니지?" 민수가 주위로부터 받게 될 차가운 시선들을 떠올리면 벌써 겁이 난다.

20대 개그우먼으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세영 씨는 지난주 방송 녹화를 앞두고 승용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지각할까 싶어 운전자 이름도 묻지 못하고 내달렸다. 무대 구석으로 가 바지 위에다 흰 붕대를 칭칭 감았다. "녹화 때는 다리가 부러지더라도 무조건 일어나야 해요." 호탕하게 웃으며 `개그공화국` 3회 본방 녹화를 마쳤다. 붕대를 눈치 챈 일부 관객이 시청자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무대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내려오는 모습을 봤어요. 빨리 나으세요. 파이팅!`

"웃음을 주는 일은 쉽지 않아요. 그런데 세상은 남을 웃기는 것을 쉽다고 여기는 것 같아 속상할 때도 있어요." 주 1회 녹화지만 한 주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3분 안에 관객을 웃기기 위해 일주일 내내 아이디어를 짜고 밤을 새워 연습한다. 쉬는 날도 없다. 아무리 고생을 해도 관객의 반응이 시원찮으면 `아웃`이다. TV에 1초라도 얼굴이 나와야 주급(週給)을 받는 성과주의다. 매번 개그가 `다큐멘터리`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심장이 떨린다. 원래는 내성적이다. 그래도 이 길로 들어선 이상 기가 센 척도 해본다. 감기에 걸려 목이 따가워도 몰래 약을 먹는다. 무대에선 언제나 `광대`다. "눈물아, 쏙 들어가라. 하하하."

최서현 양은 어린 나이에 입은 유니폼이 아직 낯설다. 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을 졸업한 `언니`들은 아직 자신을 어린 고등학생으로 보는 것 같다. 얼마 전 고객경영평가에서 민원이 생겼다. 고객은 버럭 화부터 냈다. 직접 전화를 걸어 죄송하다고 사과해도 막무가내였다. 언니들이 나서서 일을 해결해줬다. 못난 내 탓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언니가 되려면 한참 먼 걸까." 식당에 가도 수저를 놓는 걸 막내가 하는 일인 줄 모르고 멀뚱멀뚱 앉아 있기 십상이다. 막내니 언니들에게 잘하고 싶은데 항상 한 박자가 늦는다. 대학을 가고 싶은 생각이 없던 것도 아니다. 형편이 어려웠다. 10년째 버스 운전을 하며 9명의 대가족을 먹여 살리는 아버지를 보니 하루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매일 오전 7시 20분에 출근한다. 8시부터 업무시간이지만 선배들의 금고함을 일일이 책상에 올려놓고 지점장실 컵도 씻다 보면 30분은 금방 간다. 입사 후 3개월간 자리조차 없어 보조의자에 앉아 언니들 옆에서 어깨너머로 업무를 배우기도 했다. 아직은 임시계약직이다. 입사 후 2년이 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 정년은 59세로 보장되지만 무기계약직 직원은 90%가 창구에서 텔러로 일한다. 관리 부서에서도 일해보고 싶다. 주변에서는 정규직이 되는 길이 막막하다고들 한다.

[기획취재팀 = 최용성 차장 / 고재만 기자 / 전정홍 기자 / 이유섭 기자 / 김슬기 기자 / 서유진 기자 / 임영신 기자 / 안병준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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