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강신주의 비상경보기]언론자유는 어느 때 달성될 수 있는가?
ㆍ불성무물(不誠無物)의 가르침
2010년 가을 MBC 사옥 4층 흡연실에서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색다른 상담소>라는 프로그램의 첫 녹화를 마친 뒤, 나는 프로그램 진행자 김어준과 담당 PD와 함께 커피를 마시려던 참이었다. “멸공!” “방첩!” 젊은 라디오 PD 한 명이 거수경례를 하며 우리를 맞이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멸공”과 “방첩”이란 구호로 위악을 거리낌 없이 저지른 젊은 PD는 우리와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위악적 제스처와는 달리 그는 무척 흥분하고 있었다. MBC 사장이 어떻게 방송에 교묘하게 개입하는지, 그래서 최근에 어떤 부당한 인사조치가 있었는지 침을 튀며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말을 누가 듣고 있지나 않는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방송사를 포함한 어떤 조직에서든 구성원 사이의 신뢰를 붕괴시켜 불신하도록 만들지 않는다면, 독재와 전횡은 불가능한 법이다. 자신의 말에 따르는 사람에게는 당근을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채찍을 휘두르면 된다. 전횡에 맞서는 순간 불이익은 가중되고 전횡을 수용하는 순간 안전이 보장될 것이다. 어느 순간 전횡에 맞서는 사람이나 전횡에 순종하는 사람의 내면에는 자기 검열의 메커니즘이 형성된다. 불이익이 점점 노골화되면, 전횡에 맞서던 사람마저도 자신의 몸을 움츠리게 된다. 훌륭하다! MBC 사장은 과거 독재정권이 사용하던 전가의 보도를 다시 꺼내들었던 것이다. 이런 전횡에 맞서는 것은 이론적으로 아주 쉽다. 누구도 당근을 받지 않으면 된다. 물론 이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다. 구성원 모두 채찍을 받을 각오를 다져야 하기 때문이다.
MBC가 이제 공영방송이 아니라 정권의 방송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개탄하는 젊은 PD에게 장난기가 도졌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의 분노가 가진 진정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뭐, 아마추어처럼 그렇게 흥분하세요. 진짜 사장이 마음에 안 든다면, 한 대 때리세요. 그 정도 결심이 없다면, 어떻게 사장의 전횡을 막겠어요. 둘이 함께 있을 때 쫄지 말고 한 대 때릴 수 있겠어요?” 일순간 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장을 때린다는 것은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신분상의 불이익이 자기 검열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침묵하고 있던 그에게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1968)이 1963년 10월에 쓴 ‘죄와 벌’이란 시의 첫 구절을 넌지시 말해주며 웃었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렇다!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가 없는데, 어떻게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는 MBC 사장과 현 정부의 전횡에 맞설 수 있겠는가!
자신의 비겁함이 폭로되어서인지 젊은 PD는 당혹스러워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나는 물어보았다. 왜 사장에 대해 그렇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활기를 되찾은 그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서 MBC 사장이 현 정권의 방송정책을 어떻게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그래서 MBC가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소수 사람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송으로 전락했는지 열변을 토했다. 이때 또 나는 딴죽을 걸었다. “그렇다면 방송국 사람들의 이익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을 위해서 분노한다는 것이군요. 훌륭합니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국민들이 지금 MBC로 충분히 좋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국민들이 무한도전의 유재석이 보고 싶다고 혹은 걸그룹이 섹시한 군무를 펼치는 것이 보고 싶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또 당혹감이 얼굴에 찾아든 젊은 PD를 뒤로하고 나는 방송국을 나왔다.
시간이 충분했다면 나는 그에게 <중용(中庸)>이란 책에 등장하는 ‘불성무물(不誠無物)’의 가르침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성(誠)하지 않다면 사물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성(誠)은 ‘말’을 뜻하는 언(言)이라는 글자와 ‘이루어진다’는 뜻을 가진 성(成)이란 글자로 돼 있다. 한마디로 말해 동쪽을 동쪽이라고 말하는 것, 혹은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성(誠)이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를 말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물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불성무물’의 가르침이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해보자. 상대방은 최소한 내게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이것은 상대방을 부정하는 것이다. 역으로 상대방은 나를 애인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그가 생각하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도 존재하지 않고 나도 존재할 수 없다. 자의반 타의반 이루어지는 거짓말은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주체나 그 대상을 모두 철저하게 파괴시키고 만다. 거짓말을 통해 나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감을 지워나가고, 동시에 상대방의 존재감도 지워나갈 테니까. 지속적인 억압 때문이든 혹은 순간적인 욕심 때문이든,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지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김수영도 말하지 않았던가.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현대성보다 사상보다도 백배나 더 중요한 일이다!” 1964년 7월에 쓴 시월평 ‘요동하는 포오즈들’이란 글에서 나오는 말이다. 바로 이것이다. 그 젊은 PD가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어야 할 정신은 바로 이것이다. 정권의 구미에 맞는 방송을 내보내려는 사장에게 맞서는 것은 공영방송을 이루겠다는 거창한 구호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젊은 PD 그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는, 그래서 자신의 존재감을 지키려는 투철한 의지로부터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순수해서 아직 희망을 품어볼 만한 어느 젊은 PD에게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방송을 만들지 못하도록 강제했기 때문에 그래서 거짓말로 방송을 제작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당신은 지금 분개하고 있다고 말이다. 당신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거짓말을 하도록 강제하는 사회가 바로 자유가 없는 사회라는 사실을. 그래서 사장도 그리고 권력도 그렇게 미웠던 것이다. 그렇다. 이제 명심하자. 언론인으로서 당신이 지금 자유를 외치는 것은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당당한 삶을 위한 것이다. 자신이 제작하려는 방송 그리고 자신이 쓰려는 글, 그것을 일체의 검열도 없이 그래서 정직하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국민이든 사회이든 정치든 일체의 외적인 명분을 장황하게 떠들 필요도 없다. 지금 당신의 투쟁은 거짓이 없는 정직한 삶을 살려는 고독한 투쟁, 그래서 당신 자신을 위한 투쟁일 뿐이다. 물론 당신의 투쟁이 성공한다면, 사상과 표현의 자유나 억압적인 정치의 소멸은 덤으로 주어질 것이다.
<강신주 | 철학자>
2010년 가을 MBC 사옥 4층 흡연실에서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색다른 상담소>라는 프로그램의 첫 녹화를 마친 뒤, 나는 프로그램 진행자 김어준과 담당 PD와 함께 커피를 마시려던 참이었다. “멸공!” “방첩!” 젊은 라디오 PD 한 명이 거수경례를 하며 우리를 맞이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멸공”과 “방첩”이란 구호로 위악을 거리낌 없이 저지른 젊은 PD는 우리와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위악적 제스처와는 달리 그는 무척 흥분하고 있었다. MBC 사장이 어떻게 방송에 교묘하게 개입하는지, 그래서 최근에 어떤 부당한 인사조치가 있었는지 침을 튀며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연신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말을 누가 듣고 있지나 않는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방송사를 포함한 어떤 조직에서든 구성원 사이의 신뢰를 붕괴시켜 불신하도록 만들지 않는다면, 독재와 전횡은 불가능한 법이다. 자신의 말에 따르는 사람에게는 당근을 주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채찍을 휘두르면 된다. 전횡에 맞서는 순간 불이익은 가중되고 전횡을 수용하는 순간 안전이 보장될 것이다. 어느 순간 전횡에 맞서는 사람이나 전횡에 순종하는 사람의 내면에는 자기 검열의 메커니즘이 형성된다. 불이익이 점점 노골화되면, 전횡에 맞서던 사람마저도 자신의 몸을 움츠리게 된다. 훌륭하다! MBC 사장은 과거 독재정권이 사용하던 전가의 보도를 다시 꺼내들었던 것이다. 이런 전횡에 맞서는 것은 이론적으로 아주 쉽다. 누구도 당근을 받지 않으면 된다. 물론 이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힘든 일이다. 구성원 모두 채찍을 받을 각오를 다져야 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 김상민
MBC가 이제 공영방송이 아니라 정권의 방송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개탄하는 젊은 PD에게 장난기가 도졌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의 분노가 가진 진정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뭐, 아마추어처럼 그렇게 흥분하세요. 진짜 사장이 마음에 안 든다면, 한 대 때리세요. 그 정도 결심이 없다면, 어떻게 사장의 전횡을 막겠어요. 둘이 함께 있을 때 쫄지 말고 한 대 때릴 수 있겠어요?” 일순간 그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장을 때린다는 것은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신분상의 불이익이 자기 검열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침묵하고 있던 그에게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1968)이 1963년 10월에 쓴 ‘죄와 벌’이란 시의 첫 구절을 넌지시 말해주며 웃었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렇다!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가 없는데, 어떻게 당근과 채찍을 휘두르는 MBC 사장과 현 정부의 전횡에 맞설 수 있겠는가!

시간이 충분했다면 나는 그에게 <중용(中庸)>이란 책에 등장하는 ‘불성무물(不誠無物)’의 가르침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성(誠)하지 않다면 사물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성(誠)은 ‘말’을 뜻하는 언(言)이라는 글자와 ‘이루어진다’는 뜻을 가진 성(成)이란 글자로 돼 있다. 한마디로 말해 동쪽을 동쪽이라고 말하는 것, 혹은 불의를 불의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성(誠)이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를 말하지 않는다면 어떤 사물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불성무물’의 가르침이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해보자. 상대방은 최소한 내게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이것은 상대방을 부정하는 것이다. 역으로 상대방은 나를 애인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그가 생각하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도 존재하지 않고 나도 존재할 수 없다. 자의반 타의반 이루어지는 거짓말은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주체나 그 대상을 모두 철저하게 파괴시키고 만다. 거짓말을 통해 나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감을 지워나가고, 동시에 상대방의 존재감도 지워나갈 테니까. 지속적인 억압 때문이든 혹은 순간적인 욕심 때문이든,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지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김수영도 말하지 않았던가.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현대성보다 사상보다도 백배나 더 중요한 일이다!” 1964년 7월에 쓴 시월평 ‘요동하는 포오즈들’이란 글에서 나오는 말이다. 바로 이것이다. 그 젊은 PD가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어야 할 정신은 바로 이것이다. 정권의 구미에 맞는 방송을 내보내려는 사장에게 맞서는 것은 공영방송을 이루겠다는 거창한 구호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젊은 PD 그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는, 그래서 자신의 존재감을 지키려는 투철한 의지로부터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순수해서 아직 희망을 품어볼 만한 어느 젊은 PD에게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방송을 만들지 못하도록 강제했기 때문에 그래서 거짓말로 방송을 제작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당신은 지금 분개하고 있다고 말이다. 당신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거짓말을 하도록 강제하는 사회가 바로 자유가 없는 사회라는 사실을. 그래서 사장도 그리고 권력도 그렇게 미웠던 것이다. 그렇다. 이제 명심하자. 언론인으로서 당신이 지금 자유를 외치는 것은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당당한 삶을 위한 것이다. 자신이 제작하려는 방송 그리고 자신이 쓰려는 글, 그것을 일체의 검열도 없이 그래서 정직하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국민이든 사회이든 정치든 일체의 외적인 명분을 장황하게 떠들 필요도 없다. 지금 당신의 투쟁은 거짓이 없는 정직한 삶을 살려는 고독한 투쟁, 그래서 당신 자신을 위한 투쟁일 뿐이다. 물론 당신의 투쟁이 성공한다면, 사상과 표현의 자유나 억압적인 정치의 소멸은 덤으로 주어질 것이다.
<강신주 | 철학자>
입력 : 2012-03-04 21:05:45ㅣ수정 : 2012-03-04 21:05:45
'전문지식 > 공부미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우주는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0) | 2012.03.14 |
|---|---|
| [스크랩] 陰陽五行의 원리 이해 (0) | 2012.03.14 |
| [배철현 교수의 人間과 神] ① 종교는 향기다 (0) | 2012.02.14 |
| [이정우의 철학카페]조직의 이미지와 리좀 만들기 (0) | 2012.02.13 |
| [신홍근의 공부 미락]왕수인, 백성의 마음을 정복하다 (0) | 2011.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