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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 55.세계자연유산에 오른 환상의 섬(2)

ngo2002 2011. 11. 15. 15:52

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 55.세계자연유산에 오른 환상의 섬(2)
입력시간 : 2011. 11.07. 00:00


역사적 아픔 이겨내고 국제관광도시로

바람, 여자, 돌 삼다의 섬

한라산 정상 백록담 우뚝

이별 없는 영원한 이상향

오로지 오랜 세월 화산폭발활동으로 생겨난 제주는 섬 전체가 살아있는 ‘화산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눈길 닿는 곳마다 독특하다. 특히 제주의 화산지형은 지질학상으로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신생대 4기에 생겨났기 때문에 화산원래의 지형을 잘 보관하고 있다. 화산활동과 관련된 화산지형의 형성과정과 변화 등을 연구하는데 주요한 자료의 모델로 쓰인다.

먼저 꿈과 낭만이 담겨진 낙원의 섬이자 전설이 깃든 이어도라고도 부르는, 삼다(바람, 여자, 돌)의 섬 제주도를 살펴보자. 원래 탐라국(耽羅國)으로 불렀던 제주도의 신화에 따르면 제주의 역사는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라는 세 을나(乙那)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제주의 시조인 세 을나는 삼성혈에서 솟아났다. 가야나 신라, 고조선, 부여 등의 다른 나라의 시조들은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알에서 태어났지만 땅속에서 태어난 3명의 제주조상은 유별나고 특이하다.

삼성혈에서 태어난 세 을나는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사냥, 채집 등으로 이동생활부터 출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배를 타고 온 벽랑국(碧浪國)의 세 공주를 각자의 배필로 맞아 혼인을 했다. 그들이 가져온 오곡종자를 뿌리고 송아지, 망아지 등 육축으로 농경생활을 시작하며 살았는데 이들의 혼례식이 있던 곳은 성산읍 은평리에 있는 혼인지로 세 을나가 공주들과 혼인식을 올린 장소로 알려졌다.

농사와 목축업을 시작한 이들은 각자 자신의 몫으로 땅이 필요했다. 세 을나는 화살을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까지를 각각의 터전으로 하기로 하고 활을 쏘았다. 세 을나가 쏜 화살은 각각 일도, 이도, 삼도에 떨어졌고 오늘날 제주시의 동(洞)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세 을나가 활을 쏘았던 곳은 제주시 봉개동과 아라동에 그 자취가 지금도 남아있다.

그때 쏘았던 화살이 박힌 돌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곳이 화북동에 있는 삼사석(三射石)이다. 이런 전설은 제주시조의 탄생이후 바다를 통해서 발달된 외래문화가 유입되었고 제주도에서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라 하겠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의 정상에는 화산이 분출하고 생긴 분화구 백록담이 있다. 제주인들은 마음이 여리고 검소하다. 대부분 초가에서 살며 일부는 그냥 부엌과 온돌이 없는 땅바닥에서 자고 거처한다. 남녀가 짚신신기를 좋아하고 방아가 없어서 여자들은 나무절구에 방아를 찧는다. 짐을 운반할 때는 통속에 나무통을 짊어지고 다니며 머리에는 이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제주도를 보자. 한라산은 제주남쪽 20리에 있는 진산이라고 했다. 한라는 하늘의 은하수를 잡아당길 수 있을 만큼 높아서 붙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산(圓山)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산의 봉우리마다 평평하고 높으며 둥그렇기 때문이다. 산꼭대기에는 큰 연못이 있는데 물안개가 항상 피어올라 사람들이 접근하면 구름안개가 일어나면서 지척을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 된다. 5월에도 눈이 내리므로 털옷을 입어야 추위를 피할 수 있다.

제주의 바람은 횅하니 터진 바다가운데에 자리한 섬이라서 거칠고 매섭다. 바람의 방향도 일정하지 않고 수시로 바뀌며 제주도를 사나운 짐승 다루듯 장소불문하고 몰아붙이는 것이 제주바람의 특징이다. 활짝 갠 날보다 바람 부는 날이 더 많은 제주에서 꽃은 삼월에 피지만 4월이 되어야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온다고 했다.

나라님이 계시는 궁궐과 멀리 떨어진 제주는 한이 쌓인 유배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고려 우왕 8년에는 명나라에 망해버린 운남 양왕(梁王)의 아들과 손자들이 떼를 지어 유배를 왔다. 조선시대에는 300여명에 이르는 고관대작들이 여기로 유배를 와서 한 맺힌 세월동안 피눈물을 흘러야했다.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한 광해군을 비롯한 비운의 죽임을 당한 소현세자의 세 아들과 손자들도 있었다. 보우스님, 정온, 송시열, 최익현을 비롯한 기고난다는 숱한 인물들이 제주에 갇힌 채 귀양살이를 보냈다.

조선 후기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던 추사 김정희도 제주에서 귀양을 살며 세한도(歲寒圖)를 남겼다. 세한도는 불후의 명작으로 지금은 국보적인 작품이지만 유배 생활 중에도 굽힘이 없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화폭으로 옮긴 그림이다.

자신의 제자인 역관 이상적의 변함없는 의리를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빗대어 그렸다. 극도로 절제된 소재와 구도 속에 단색조의 수묵과 마른 붓질의 필획만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인위적인 꾸밈을 배척한 대쪽같은 조선선비의 정신을 화폭에 담아낸 명작이라 하겠다.

제주도는 한이 맺힌 서러움의 땅이었다. 외래종교에 대한 제주토박이 민중들의 뭉쳐진 저항으로 나타난 이재수의 난이 있었고 격동의 시절(1948년)에 일어난 4.3항쟁이 그것이다. 수많은 신이 사는 제주에서 한라산 정상과 주요 오름에서 일제히 타오른 봉화 불을 신호로 무장한 민중은 우익단체와 경찰관서에 불을 질렀다.

신화의 섬이자 역사의 아픔을 이겨낸 제주도는 현재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모든 도약의 준비를 마쳤다. 택리지를 썼던 이중환은 자신의 저서에서 제주도를 침략근성이 남아있는 일본에 가까워 땅은 비록 기름지지만 살만한 곳은 아니라고 했다. 육지와는 멀고 바다 속이라서 초목이 쉽게 시들지 않지만 바다기운이 끼어서 살기에 좋은 곳은 아니라고 했다.

오늘날은 따뜻하고 이국적인 기후를 바탕으로 특산과일을 생산해서 부자 섬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곳만의 독특한 풍광이 육지에 사는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환상의 섬으로 그리고 신비한 섬으로 자리매김했다.

제주도에는 해녀와 감귤 그리고 꿈속에서나 그리는 유토피아로 알려진 이어도가 있어서 새로운 가거지(可居地)임을 증명해 준다. 이곳의 해녀들이 구슬프게 부르는 이어도라는 노래가사가 이를 증명해 준다. 이어도타령은 제주 ‘해녀의 노래’라고도 부르는 작자미상의 구전민요이다.

제주도 해녀들이 물질을 하기 위하여 바다를 오갈 때 부르던 일종의 노동요이다. 해녀들의 한과 그리움을 달래는 노래로 강한 사투리와 억양이 재미 있다. 이별이 없는 영원한 이상향에 대한 바다여인들의 염원을 담은 노래라 하겠다.



이엇사나 이어도 사나 이엇사나 이어도 사나

우리 배는 잘도 간다 솔솔 떠나가는 것은 소나무배여

잘도 가는 것은 잣나무배여 어서가자 어서 가자

목적지에 닿아도 나아가자 우리인생 한번 죽으면

다시 환생하지 못하니라 신의 아들 신 자랑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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