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산행,걷기)

68.박재완의 기찬여행- 강원도 영월

ngo2002 2011. 8. 25. 16:20

박재완의 기찬여행- 강원도 영월


입력시간 : 2011. 06.17. 00:00


단종의 가슴아린 사연 곳곳에 서려

전문가 철저한 고증 바탕 국장재현 등 다양한 축제

체탄체험, 서계민속악기·영월아프리카 박물관 전시

강원도 영월과 광주의 무등산은 유사점이 많이 있다.

우리의 무등산은 곳곳에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서기가 서려있고, 영월의 모든 땅 여기저기에는 단종의 가슴아린 이야기가 서려 있다.

충장공은 정치적 권모에 휩싸여 스물아홉의 나이에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은 1452년 12세의 어린나이에 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그의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밀려 옥좌를 강제로 찬탈당했다.

그리고 이듬해에 15세의 나이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군의 청령포로 유배된다.

단종은 그 해 초가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해 영월읍내의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겨 기거하던 중,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금성대군이 유(瑜)가 노산군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자 서인으로 강봉됐다.

세조는 노산군이 살아있는 한 계속 복위운동이 일어날까 두려워, 금부도사 왕방연을 시켜 노산군에게 사약을 내리게 한다.

1457년 10월24일 사약을 가지고 온 왕방연이 감히 사약을 진어하지 못하고 오열하고 있을 때 단종을 모시던 공생이란 자가, 활시위로 목을 졸라 17세의 어린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됐다.

이때 갑자기 먹구름이 모여들더니 강풍이 몰아치면서 뇌성벽력이 진동하다가 폭우가 쏟아졌다.

'반역 죄인을 죽인 나의 공을 알아 달라’고 외치면서 뜰 앞을 걸어가던 공생은 눈과 코, 귀와 입으로 피를 토하고 즉사했다고 전한다.


노산군을 모시던 시녀들이 푸른 동강물에 몸을 던져 순절하니 후세 사람들이 이곳을 낙화암이라고 하고 있다.

노산군은 이렇게 죽임을 당했는데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세조의 서슬 시퍼런 명이 내려져 시신을 거두려는 사람이 없었고 또 거두려고 해도 오명이 무서워 감히 용기를 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단종의 시신을 동강에 버리라고 까지 명했다 하니 정권욕에 어두운 데다, 철딱서니 없는 나졸들에 의해 노산군의 시신은 동강물에 던져졌다고 한다.

이때 영월에서 행정업무를 보좌하는 호장 엄흥도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군수를 찾아가 장사를 지내자고 하였으나 군수는 묵묵부답이었다.

이에 엄흥도는 아들 삼형제에게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내가 달게 받겠다’고 하면서 함께 죽음을 무릅쓰고 시신을 찾아 헤매다가 동, 서강이 합치는 합수머리에서 시신을 찾아내고 둘째 아들 광순과 함께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수의와 관으로 염습을 해 영월 엄씨의 선산인 동을지산(지금의 장릉)에 몰래 암장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누구도 이 사실을 몰랐었는데, 그 후 중종 11년 (1516년)에 노산군 묘를 찾으라는 왕명이 내렸고, 선조 13년(1580년)에는 어명으로서 노산군 묘를 수축하고 상석, 표석, 향좌아, 장명등, 망주석 등을 만들어 세우고 능전사청을 건립했다.

이후 노산군은 숙종 7년(1681)에 노산대군으로 추봉되었다가 1698년 복위됐다.

단종을 모신 능에 장릉(莊陵)이란 능호(陵號)를 부여했다.

장릉에는 특이하게 문관석이 두 개 있을 뿐, 무관석은 없다.

단종 복위와 얽혀 목숨을 잃은 이만 해도 200여 명.

생전에 그 무수한 죽음을 그저 무기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단종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장릉은 여느 왕릉과 달리 단종에게 죽음으로 충절을 다한 여러 신하들을 위해 장릉 밑에 충신단을 설치했다.

장릉의 홍살문을 들어서면 배식단(配食壇), 객사, 충신각 등이 보이고 영천(靈泉)이 나온다.

이 우물은 한식날 장릉에 제사를 올릴 때면 물이 많이 고이는데 단종의 한이 맺혔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정자각에서 떼를 입힌 능선 허리를 오르면 장릉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단종은 영월의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사약을 받고 승하해서 인근에는 그에 대한 구전설화가 많고, 또 신격화되어 신으로 모신 곳이 많다.

최영·남이·임경업 등 한을 품고 죽은 사람들이 신령으로 모셔지듯 단종도 죽어서 태백산신이 됐다.

충신 추익환의 노산군이 변을 당한 것을 모른 체, 노산군을 뵈려고 산머루를 가지고 관풍헌을 향해 가던 중 곤룡포에다 익선관으로 정장을 하고 백마를 탄 노산군의 모습을 보고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물으니 ‘나는 태백산으로 간다’고 하면서 홀연히 사라졌다고 해 후세 사람들은 단종대왕이 태백산의 산신령이 됐다고 믿고 해마다 태백산신제를 지낸다

또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에 어평(御坪)이라는 곳이 있는데, 단종 혼령이 산신령이 돼 태백산으로 갈 때 쉬어간 곳이라 하여 모실 어자(御字)와 벌판평자(坪字)를 붙여진 지명이다. 이 마을에는 단종의 영각(影閣)이 있어서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주민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는데, 반드시 검정색 돼지를 잡아 제수로 쓴다고 한다.

단종을 서낭신으로 모시기 위한 곳으로서 유명한 서낭당은 영월군 중동면 녹전리와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당(堂)이다. 영월의 대표적 서낭당인 영모전은 이곳 주민들이 단종의 영정을 모시고 성역화 했다.

이렇듯 단종대왕과 엮어진 축제도 매년 4월 마지막 주말에 단종문화제 열린다.

축제에는 전문가의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국장재현이 있어 볼만하며, 단종비 정순황후 추모제 등 있다.

그 외에도 영월에는 십여 개의 아기자기한 박물관 자리하고 있는데 김삿갓 계곡 초입에 자리한 묵산 임상빈 화가의 작품공간이면서 30여개국의 어린이 그림을 전시하는 공간도 있다.


영월지역에서 발굴되 화석을 모은 영월화석박물관, 우리나라 최초의 탄광촌인 마차리의 탄광문화촌도 방문 할만 하다.

탄광의 문화유물과 지하갱도에서 체탄 체험도 즐길 수 있고, 조선시대의 민화와 현대 민화가 만나 전시된 조선민화박물관, 보기 힘든 카메라와 원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동강사진, 단종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단종역사관, 맑은 산골에서 하늘의 별을 감상하는 별마로 천문대, 우리차와 중국차의 전시공간인 호안다구박물관, 호야지리박물관, 서계민속악기 박물관, 영월아프리카 박물관, 영월종교미술박물관, 베어가 곰 인형박물관, 영월곤충박물관, 난고 김삿갓문학관, 등 볼거리가 지천이며, 서강에 있는 단종유배지인 청령포에서 단종이 소나무위를 올라가 왕비를 그리워했다는 나무가 지금도 옛일을 기억하면서 굿굿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얼마 전 국가명승 제75호 지정된 영월 한반도 지형은 서강지역을 대표하는 경관으로 서강의 물줄기가 침식과 퇴적으로 선암마을을 휘감아 돌며 동해안과 서해, 남해안의 형상과 똑같이 한반도 지형을 만들었다.

또한 명승 제76호 영월 선돌은 서강가의 절벽에 마치 큰 칼로 절벽을 쪼갠 듯한 형상을 이룬 곳으로 높이 약 70m 정도의 입석으로 신선암(神仙岩)이라고도 불리며, 푸른 강물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다.

다음 달에 열리는 동강의 여름축제에서 동강의 어라연에서 스릴만점의 래프팅이 서강에서는 뗏목이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박재완 사진작가



무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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