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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김옥의 新 남도기행 - 광산구의 소금강 용진산

ngo2002 2011. 8. 25. 15:23

김옥의 新 남도기행 - 광산구의 소금강 용진산


입력시간 : 2009. 05.26. 00:00


멀리서 바라본 용진산 전경. 우뚝 솟은 바위산의 모습이 이채롭다.
알려지지않은 천혜의 생태계

소금강이라 불릴만한 풍광미

곳곳에 값진 문화유산 산재해

라일락 꽃향기 속에 향기 그윽한 아름다운 봄날이 연속이다.

맑은 공기와 살랑대는 바람이 무척 좋다. 5월의 신부처럼 설레임을 안고 발길 닿는 곳마다 피어있는 꽃구름 향기타고 용진산을 찾아간다.

용진산(聳珍山·349m)은 광주시 광산구 본량과 임곡을 나누는 경계에 있다. 아직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천혜의 생태계가 잘 보전된 상태다.

이름 그대로 들녘에 있는 산 치고는 드물게 겹겹으로 포개져 있는 산이다. 용진산의 '聳(용)'자는 '솟을 용'이고 '珍(진)'자는 '보배 진'이지만, '珍'의 훈인 '보배'는 아름다운 돌을 갈고 닦아 만든 것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珍(진)'의 훈을 '돌'이라 읽었다. 뾰족한 암석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있다는 그 산의 이름 풀이대로 '솟돌산'이라 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산의 정상으로는 남쪽의 석봉과 북쪽의 토봉이 있다. 공룡의 등처럼 크게 꿈틀거리듯 도도히 이어져있는 암릉과 제법 완만하고 부드러운 능선은 솜털처럼 보드라운 모습이다. 초입에는 동굴이 있다. 용진산은 일제강점기 때에 전국에서도 이름 있는 금광이 있었는데 그때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임곡 사호동 일대는 작은 도시형태를 이뤄 번창할 정도로 부자 마을로 소문났었다. 동굴초입에는 누군가 가져다 놓은 용왕신상이 있다. 굴 안으로 들어가면 누군가 치성을 드렸는지 촛불제단이 보인다. 지금은 기도처로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동굴을 나와 다시 계단을 따라 오르면 큼직한 입석에 '소금강' 글자가 또렷하게 음각돼 있다.

조선의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 선생이 나주에 유배돼 왔을 때 빼어난 경치에 푹 빠져 산사에서 며칠을 머물고 갔다고 한다. 그가 느꼈던 풍경의 운치가 문명의 발달로 옛 풍광의 모습을 잃었지만 산 앞으로 흐르는 황룡강은 여전히 아름답다.

산과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 이외에도 값진 문화유산이 많다. 그 중 하나인 여래 석불상은 400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가학정 오르는 길목의 암벽에 있다.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자비의 모습이다.

대좌 (臺座)와 광배 (光背)를 마련하지 않고 불신만을 선으로 새겨 놓았다. 타원형의 얼굴은 평면적이며 가늘게 뜬 눈과 눈썹 사이가 좁아서 찡그린 인상을 주고 있다. 코는 얼굴에 비해 크고 넓은데, 끝이 파손된 상태다. 입은 큰 편이고 꽉 다문 입술은 두텁게 표현하였다. 목은 바로 어깨에 맞닿아 있어 움츠리고 있는 듯하다.


옷은 왼쪽 어깨에 희미하게 나타나 있을 뿐 거의 표현돼 있지 않다. 양 손을 가슴에 모아 엄지와 중지를 가볍게 맞대고 있는 손 모양으로 보아 아미타여래를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하늘을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세부표현을 생략한 채 거의 선으로 처리했다. 불상 위쪽 암벽에는 '佛堂日月(불당일월). 聳珍水石(용진수석)'이라는 글씨가 세로로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당일월이라는 뜻을 살펴보면 이곳을 바위법당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용진수석 이라는 뜻은 용진산의 기암괴석들의 풍치를 찬한 뜻으로 여겨진다.

꼬불꼬불 좁은 오솔길을 20분쯤 오르면 가학정에 이른다.

임진왜란 때 벼슬도 없이 선조를 따라 북행에 나서 공을 세운 죽산 박 씨 중시조인 박경(朴璟)에게 1601년 가을에 선조가 죽림처사라는 시호와 함께 지팡이를 내리고 나랏돈으로 짓게 한 정자다.

육각정으로 골기와 육모지붕을 취하고 있는 가학정은 관리 부재로 퇴락해 쓸쓸함만 묻어있지만 오랜 세월을 용케 버틴 채 선현들이 남긴 풍류가 깃든 멋진 시구들을 볼 때 당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정자의 천정에는 노래에 맞춰 날개깃을 펄럭이며 춤추는듯한 학의 자태가 화려한 색을 잃지 않고 있다. 정자 이름에서 주는 분위기로 보아 제법 풍류를 알고 시서를 벗 삼기 좋아하는 선비들이 응취농월 했던 곳임에 틀림 없다. 가학정 위로는 시골집 같은 집이 있다. 청룡사 터에 지어놓은 암자다.

가학정에서 황룡강을 조망한다. 황룡강 맑은 물이 정자 밑을 흐르고 길목마다 백년 묵은 노송을 비롯해 비자나무, 싸리나무, 상수리나무, 산비장이 등 갖가지 잡목이 우거져있다. 곳곳에 층암절벽이 솟아 있어 마치 소금강을 보는 것 같다.

찾아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 광산IC-비아-816번 도로-임곡역-삼화교-사호동 주차장

주변볼거리

월봉서원과 빙월당

하남 산단 9번 도로를 통과해서 임곡동사무소를 거쳐 시골 냄새 물씬 나는 2차선 지방도로를 달린다. 동네주변에는 담쟁이 넝쿨로 뒤엉킨 돌담 집들의 시골집 모습이 매우 평화롭고 운치가 있으며 소나무도 울창하다. 광주시 8경중 하나인 이곳은 조류들이 서식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춰 있어 왜가리와 백로 등 보호조류가 찾아와 군락을 이루는 장관과 황룡강의 물안개의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압권이다.

월봉서원에는 빙월당과 충신당이 있다. 서원과 주변을 둘러본 후 고샅길을 내려오면 고봉 학술원이 있다. 학술원 옆 돌담길을 돌아 고봉 선생의 아들이 시묘살이를 했다는 효의 심정(心亭), 칠송정도 둘러보면 좋다.

찾아가는길

호남고속도로 광산IC-비아-816번 도로-임곡 고가도로-임곡교-용진로- 본량파출소(용진정사 표지판)왕동저수지-용진정사 주차장

주변 볼거리

용진정사

용진산 남쪽 깊숙한 골짜기에 자리한 용진정사는 한말의 대학자이며 애국지사이기도 한 후석 오준선 선생이 국난과 세상의 티끌을 피해 숨어살면서 후학을 가르친 곳이다.

윤상원 열사 생가

전형적인 시골마을인 광산구 신룡동 천동마을의 골목길을 타고 올라가면 낡은 대문이 눈에 들어온다.

90년대 새로 지은 집이 있기는 하지만 마당을 사이에 두고 윤상원 열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방은 2004년 12월 전기 누전으로 불타고 2005년 5월22일 새로 복원해 만든 자료 전시관이 있다. 자료관에는 광주항쟁의 역사와 정신을 한눈에 담아 갈수 있도록 잘 정리된 사진들이 비치돼 있다.

마당 오른편 5월을 상징하는 5각형 기단석위에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린 5.18 광주 민중 항쟁의 역사를 표현해 만든 기념비가 있다.

별미여행 - 낙원정


황룡강 1백 여리의 물길로 생겨난 습지가 이어진 강둑 주변에 다양한 식물상이 어우러져 있는 용진교 다리 건너 왼편 강둑에 위치한 낙원정가든.

용진산 토굴에서 3-4 년을 자연 숙성시킨 맛깔스런 김치로 맛을 내는 김현옥 여사는 음식에 대한 애정이 매우 강하고 마음도 푸근하다. 식탁에 오른 나물 밑반찬 모두 손수 텃밭에서 재배해 완전 무공해다. 김치맛과 매운탕 맛 때문에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단다. 문의- 062-951-1991.



사진/ 1.멀리서 바라본 용진산 전경. 우뚝 솟은 바위산의 모습이 이채롭다.

2.3. 용진산 주변을 맴돌아 흐르는 황룡강과 강변의 습지대.

4.5.6.7. 산속에 숨겨져있는 문화재. 청룡사터와 가학정오르는 길목의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 그리고 누군가 치성을 드린듯한 흔적이 남겨진 토굴.

8.낙원정 식당의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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