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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김옥의 新 남도기행 - 진도 금강 금골산 이야기

ngo2002 2011. 8. 25. 15:13

김옥의 新 남도기행 - 진도 금강 금골산 이야기


입력시간 : 2009. 07.21. 00:00


금골산 가는 길.비교적 높지 않은 야산이지만 정상부는 제법 가파르다.
전국 100대 아름다운 길 진도대교가 있는 서남단, 진도를 찾아간다.

진도는 231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도대교를 지나 안내표지판을 따라 진도읍 둔내면으로 달리다보면 왼편으로 기기묘묘한 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신비의 전설이 깃든 금골산(193m)이다. 일명 상골산이라고도 하는데 산이라 하기에는 어딘지 작아 보인다.

황색, 흑색, 백색, 회색 빛을 뒤집어 쓴 기암 덩어리가 매우 특이하다. 산 겉주름은 켜켜이 쌓아 놓은 시루떡처럼 보이기도 하고 층층바위 안으로 숭숭 뚫린 구멍들. 자연이 빚은 예술 조각품과도 같아 '진도의 금강(金剛)'이라고 불린다.

진도에는 첨찰산 동석산 여귀산 등 그런 대로 알려진 산이 있지만 금골산에 대해서 별로 아는 사람이 없다. 찾는 사람이 드물어서인지 표지판도 눈여겨서 찾지 않으면 금방 지나치기 쉬운 한적한 동네 길목에 서있다. 모내기를 끝내고 난 들녘은 푸르름이 더해져 한가롭기 그지없다. 보물 제 529호로 지정된 금골산 5층 석탑이 군내면 금성초등학교 교정 안에 있고 예전에 이곳에 해언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200미터 떨어진 금골산 산자락 바로 복원돼 있다. 초등학교를 지나 왼쪽 길로 걸어 오르면 금골사에 이른다. 옛날 시골집 같다. 초라한 현판에서 금골사의 역사를 볼 수 있다.

마침 마당을 거닐고 있던 할머니가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 해준다. 귀가 들리지 않아서 큰소리로 말을 해야만 겨우 대화가 가능하다. 아름다운 금골사가 좋고, 사람이 좋아 시집온 후 지금까지 생활을 해온 터전이란다. 산 정상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전남 문화재 자료 제110호)을 보러 산길을 올랐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 같은 산이지만 등산길에 온몸이 땀 범벅이 된다.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산이라 등산로 곱게 핀 야생화와 죽로 차 잎들이 반겨준다. 기암들 사이를 지나 정상에 이르니 산 위를 스쳐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 고마운 바람이다. 땀 범벅이 된 몸을 잠시 쉬며 암반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는 옥주평야의 옥토가 바둑판처럼 펼쳐져있다. 멀리 벽파진, 울둘목과 해남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부는 경사가 제법 가파르다. 미끄러운 암반 사이로 패인 홈을 조심히 밟고 철로 만들어진 안전 줄을 잡고 내려가면 넓은 공터에 3m 높이에 폭이 2.5m나 되는 마애여래 좌상이 숨겨진 보물처럼 음각돼 있다. 마애석굴에 이르면 솥단지 같은 바위 표면에 온통 벌집구멍이 나 있다. 타포니(벌집 모양의 자연동굴을 뜻하는 코르시카의 방언) 즉, 지구 대변동으로 자갈, 모래, 흙 등이 호수를 메우고 있다가 내부 표면에 진행된 풍화작용의 융기 현상으로 암벽의 석산을 이룬 퇴적암이다.

주로 수성암에서 나타나며 이런 시기는 중생대 후기(약 7천만 년 전)에 나타나는데 상골산도 그 시기에 바다에서 융기된 산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이산은 바위 표면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만 상골산은 유독 이 동굴바위 일대만 기묘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어 수수께끼이다.

마애불은 오른손은 가슴에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왼손은 무릎 위에 놓아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표현한 것으로 보아 아미타여래로 보인다. 가슴에는 사각형 홈이 패어져 있는데 아마도 복장품(腹藏品)을 넣었던 장치가 아닌가 한다.

오른쪽 암벽에는 쌀겨 흔적이 있는 쌀 구멍이 있다.

마애불과 쌀 구멍에 얽힌 전설이 있는 곳이다. 고려 때 금골산에 해언사라는 큰 절이 있었고, 이산 중턱에 큰 굴이 하나 있었다. 굴속에서 늙은 스님과 상좌 스님이 살았는데 암석벽의 구멍에서 매일 두 사람 분의 식량이 나와 아무 곤란 없이 지냈다고 한다.

"아무리 쌀이 필요한 일이 생길지라도 정량 이상은 받을 수 없으니 욕심은 내지 말고 나오는 쌀만 받아먹고 살아야한다"는 말이 전해왔단다. 그러던 어느 날 많은 손님이 찾아오자 나오는 쌀이 부족해 마을에 내려가서 쌀을 구해오려고 해도 어둠과 험준한 길 때문에 내려가지를 못했다. 저녁에 배가 고플 것을 걱정해 더 못 참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쌀 나오는 구멍을 쑤셔댔더니 쌀은 나오지 않고 자국만 남았으며 그 뒤로는 한 톨의 쌀도 나오지 않게 됐단다. 마애여래좌상의 가슴과 배꼽 부분에 깊게 패인 자국은 그 쌀 구멍이며 이 구멍에 돌을 던져 넣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주변볼거리

용장산성(사적126호)

삼별초 군의 최후의 항거지

용장산성은 원래 사찰터였으나 고려의 장군 배중손의 삼별초 군이 대몽항쟁(1270~1273)의 근거지로 삼아 관부를 열어 궁궐과 영성(營城)을 쌓았다. 발굴조사 결과 다량의 청자와 숫막새, 암막새 등 기와가 출토됐고 출토된 유물은 삼별초군의 활동과 동일시기인 12~13세기대의 유물이 주종을 이뤄 사실임을 입증 해주고 있다. 용장산성 바로 옆 용장사에 들어서면 대나무 밭과 동백나무가 울창하다. 용장사에 안치된 석불좌상은 배중손 장군이 용장산성을 쌓을 때 조성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중앙은 약사여래, 좌우로 일광보살, 월광보살이 있다.



벽파진-진도의 길목

진도의 동북쪽 끝, 고군면 벽파리 바닷가의 나루터인 벽파 진은 명량해협의 길목이며 진도와 남해 대륙 간의 연락 항이었다. 삼국시대에는 일본에서부터 우리나라의 남해와 서해를 거쳐 중국까지 이어지는 해로의 일부였으며, 고려시대에 삼별초 군사들도 이곳으로 상륙했다. 진도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는 해남 옥동에서 오는 버스가 배에 실려 바다를 건너 이곳으로 올라 왔다. 현재도 항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근처에 염전도 있다. 서기 1592년(선조 25) 왜구들의 함대가 벽파 앞 바다에 들이 닿자 진도 출신 정세진 등이 중심이 된 의병들이 아군을 도와 적선 3척을 불사르는 승리를 거뒀지만 결국 진도가 함락되고 말았다. 정유년(1597년) 8월초 삼도수군통제사로 재 기용된 충무공께서 패선 12척을 이끌고 벽파진에 도착해 9월 7일 왜적함 13척, 9월 9일 2척을 섬멸시킨 곳이다.



교통안내

진도대교건너진도방향(18 번국도)→ 둔전→(3.4km)→ 낮은 언덕을 오르면서 왼쪽으로 벽파나루로이어지는 길이 나옴(좌회전)→ 801번 지방도로(벽파나루 방향)→ (1.7km)→우측으로 용장리 입구에 용장산성 표지판과 산성 진입로→ (2km)→ 용장산성



먹을거리


통나무 횟집의 진미-게장백반

진도대교를 지나면 바로 오른쪽에 멋진 통나무 건물이 보인다.

러시아에서 통나무를 직접 들여와 지은 건물이다.

진도대교와 마주보이는 조망권이 좋으며 진도를 대표하는

관광식당이기도하다. 여주인은 다정하고 정이 많다.

음식의 푸짐함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진도산 농산물만을

사용 하고 있다. 전문 요리로 싱싱함을 자랑하는 생선회 정식을 들 수 있다.

간단한 메뉴에 참게장 백반은 밥도둑이다. 은은하면서 짭짜름한 맛이 미각을

충족시키고 남음이 있다. 맛이 좋고 개운하다.

위치-진도대교 건너 우측 문의-(061)542-6969



사진/ 1.금골산 가는 길.비교적 높지 않은 야산이지만 정상부는 제법 가파르다.

2.3.산 정상부 바로 아래에 있는 금골사 대웅전과 5층석탑.

4.5.6.음각돼있는 마애여래좌상과 벌집 모양으로 구멍이 나있는 바위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7.산 정상의 큰 바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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