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 덕룡산·주작산 산행기(하) 입력시간 : 2007. 04.27. 00:00
지금 이곳이 하늘로 비상하는 용 등이던가 덕룡산 소석문으로부터 시작해 두어 시간을 오르내리락 하며 동봉을 넘고 서봉을 넘다보니 말 잔등 같기도 하고 무등산 중머리재 같기도 한 억새군락지의 능선이 나온다. 공룡의 등 날개 같은 바위를 타다 억새능선을 보니 마치 넓디넓은 호남평야를 본 듯하다. 반갑기 그지없다. 그늘을 찾아 도시락을 비우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오후 2시까지는 작천소령까지 가야 주작산을 종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우지 못하고 채워서인가. 점심을 먹고 나니 발걸음이 훨씬 무겁다. 다시 오르내리기를 거듭하니 드디어 덕룡산 정상이다. 그런데 이게 왠 일? 분명 덕룡산 정상인데 오석에 흰 글씨로 '주작산'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표지석을 세우면서 착오를 일으킨 게 아닌가 싶다. 수많은 '? ? ?' 속에서 '나 여기 왔다 가노라'라는 증명사진 한 장을 찍고 갈 길을 서둘렀다. 오후 2시 4분전. 8Km의 거리를 4시간여 걸려 1차 목적지인 작천소령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 눈부신 칼바위의 주작산이 엎드려 나를 기다리고 있다. 왔던 길을 되돌아보니 아득하다. 보통은 이 곳에서 1박을 하고 주작산 종주를 한다고 한다. 무선을 통해 확인하니 당초 A코스를 선택했던 10명중 6명은 계획을 바꿔 B코스로 합류하여 억새군락지 쯤 오고 있는 듯싶다. 주작산은 세워놓은 之자의 연속 최종 목적지로 해남 두륜산과 이어진 오소재까지는 약 6Km가 남았다. 오후 5시까지 도착해야 한다. 기운도 파하고 무릎도 시큰거린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식수다. 아침부터 안개가 끼더니 기온은 한여름이다. 준비한 물통 3개중 2개는 바닥을 보았고 나머지 하나도 절반 이상을 비웠다. 배낭을 뒤져 비상용 소금을 물통에 털어 넣었다. 염분도 보충하고 물도 아끼고. 군에서 배운 비상시 행동수칙 가운데 하나를 이렇게 활용할 줄이야. 그런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덕룡산은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얼마 정도는 완만한 경사 길을 걸을 수 있는 공룡능선이었는데 주작산은 세워놓은 갈지(之)자의 연속이다. 이름 하여 용아(龍牙)능선. 아니 용의 이빨이 아니라 식인상어 백상아리의 이빨로 표현하는 것이 더 근사치에 가깝겠다. 아니면 수많은 로마 병정들이 뾰쪽한 창을 들고 여기저기 집결해 있는 그런 형상이다. 용(德龍山)과 봉황(朱雀山)의 차이인가. 로마 병정들이 창 들고 서 있는 형상 마음은 장관이라고 하는데 눈은 "어느 세월에 목적지까지 갈꺼나!"한다. 심호흡 한 번 하고 엎드려 있던 붉은 봉황(朱雀山)에 올라타니 하늘을 나려는지 봉황이 화들짝 일어선다. 90도의 직각에 가까운 암벽을 줄 타고 올라야 하는 험한 암봉이 말 그대로 '첩첩이 산중'이다. 더구나 산행길도 선명치 않은데다 이정표하나 없어 아차하면 막다른 길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등대 역할을 하는 산악회의 안내리본이 참으로 고마운 순간 순간으로 다가온다. 오소재 방향에서 작천소령을 향해 오는 등반객들도 얼마나 많은 암봉을 넘고 또 넘었는지 "앞으로 암봉을 몇 개나 더 넘어야 한가?" 쉼 없이 물어온다. 웃으며 "아마 아흔아홉 봉우리는 넘어야 한다"라고 대답해준다. 실제로 아흔아홉 봉우리는 아니겠지만 체감 봉우리는 아흔아홉을 넘어선 걸 어찌하랴. 중도에 포기할 샛길조차 없을줄야 두어 시간을 그렇게 쉼 없이 왔는데도 용의 이빨은 끝날 줄을 모른다. 한마디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앞으로 가기에는 너무 많이 남아 있다'는 표현이 딱이다. 이럴 때는 누구라도 앞으로 가는 길을 택하리라. 더구나 중도에 포기할 만한 샛길도 없음에야. 마음을 편히 먹으니 암봉의 꼭대기에 설 때마다 왼쪽으로 드넓은 들판과 호수같은 강진만이 완도 신지도 앞 다도해와 어우러져 그림보다 멋있게 펼쳐진다. 폐부를 찌르는 시원한 바람도 힘내라고 속삭인다. 처음 한 모금씩 마시던 소금물을 나중에는 입술에 한 번씩 적시며 물을 아끼고 이마저 떨어지자 진달래 꽃잎 뜯어 갈증을 달래야 했다. 입술을 손등으로 문지르니 부르텄는지 하얀 얇은 막이 자꾸만 묻어난다. 짜지 않는 시원한 냉수 한 잔 마시는 꿈을 꾼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암봉 더러 "그래, 오너라. 넘어주마"하는 오기면 오기, 관용이면 관용 같은 게 생겨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하지 않았던가. 물마저 떨어지자 이젠 오기가 생겨 "아하,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왜 산에 오르는지" 산을 닮고 싶은 것이다. 내일이면 잊더라도 오늘은 산을 닮고 싶었던 것이다. 힘겨운 암봉들이 정겹게 다가왔다. 길도 나지 않은 산길을 헤치며 이 정도라도 길을 내준, 앞선 산악인들의 부릅 튼 발길에 감사할 수 있었다. 어느덧 마지막 362m 봉우리다. 마지막 봉우리는 바위산이 아니라 유일하다시피하게 육산이다. 저 아래 오소재가 보이고 우릴 태우고 온 버스도 보인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결국 하산지점에는 예정시간보다 30여분 늦게 도착했다. 30분이나 더 지체돼 짜증날 만도 할 텐데 모두들 나와 박수로 환영해준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에 양파 김치 하나. 아! 살 것 같다. 육신이 힘들어질 때 사람은 얼마나 단순해 질수 있는가. 나는 산을 닮고 싶어 산을 오른다 산행 중 그렇게 먹고 싶었던 500원짜리 아이스크림까지 휴게소에 들려 하나씩 사먹었다. 나는 행복하다. 산행 후 엄습하는 이 노곤함이. 이 노곤함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나를 편케 한다. 그러면서도 나의 생각을 가득 차게 하는 힘이다. 다음 주의 산행이 주는 노곤함이 벌써 기다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행코스 * A코스: 소석문- 동봉- 서봉- 덕룡산- 작천소령- 오소재(약 8시간) * B코스: 소석문- 동봉- 서봉- 덕룡산- 작천소령-수양관광농원(약 5시간분) * C코스: 오소재- 용아능성- 작천소령- 수양관광농원(약 4시간) 주의할 점 - 식수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여분의 식수를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 로프를 타고 올라야 할 암봉이 많은데다 등산로가 정비되지 않은 관계로 초보자는 경험자와 동반해야 한다. - 작천소령에서 오소재 구간은 중간에 하산하는 길이 없는데다 이정표가 없다. 조영석 빛고을 토요산악회 회원 사진제공=박용호 한빛산악회 회원 무등일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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