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산행,걷기)

12.독야청청 지리산

ngo2002 2011. 8. 25. 11:41

독야청청 지리산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그 답답한 사랑이 그립다


입력시간 : 2007. 06.29. 00:00


천왕봉에 다다르기 직전 멋진 자태의 구상나무와 제석봉 너머로 멀리 반야봉이 보인다.김영복 광주토요산악회 회원
산으로 출발할 때의 마음은 늘 설레인다.

산행 때마다 항상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음양이치설에 따르면 산을 오르는 것도 자신에게 맞는 산과 맞지 않은 산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죽어서도 맞는 산에 묻히면 명당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글을 접한 후부터는 지리산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아마도 지리산을 오르는 것은 다른 산에 비해 무척이나 힘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과 산 사이에도 궁합이 있다는데

남한에서는 한라산보다 35m가 낮아 두번째로 높은 산인 지리산. 3개 도·1개 시·4개 군·15개 면에 걸쳐 펼쳐 있는 산이다.

설악산의 1.2배요 한라산의 3배나 되는 그 규모가 엄청 크기에 일찍이 1967년에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자연생태계의 보고이기도하다.

남북으로 32km, 동서로 50여km로 그 둘레만도 무려 320km 되는 엄청난 산군이다.

그러기에 골짜기가 깊고 수려해 사방 자락으로 유명하고 영험한 사찰들이 자리잡아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산이기도 하다.

정상인 천왕봉을 오르기란 어느쪽에서 오르던 그리 쉬운 산이 아닌데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지리산을 찾는 탐방객의 숫자가 무척 늘어나 일부 몰지각한 산행객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바 있다.

뿐이랴, 평일에도 종주를 하는 산사람들로 인해 대피소마다 만원 사절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니.

이성계 뜻 거역해 반역산이라 불렸으나

옛날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으로 알려져 1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지리산. 한 때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방장산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성계가 왕이 되기 위해 전국의 명산을 돌아 다니면서 기도를 올렸는데 지리산만이 유독 소지가 타오르지 않아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여 반역산 또는 불복산으로 부르라고 명 했다. 자신이 왕이 된 후에는 역신들을 지리산 자락으로 유배를 보내라 명 하기도 했던 산이었다.

양반 사대부들의 핍박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자유를 찾아 지리산에 묻혀 살았고, 혁명에 실패한 동학도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목숨을 보존했다.

6·25 후에는 빨치산 은거지로 변하는 등 역사와 함께 숨쉬며 백성들의 삶을 지켜 본 산이다.

예로부터 쫓기는 백성들을 품에 안으며 완성된 삶을 만들고자 찾아든 사람, 그런가 하면 이상향에 이르는 길을 찾는 수행자들 또한 무수히 이 산을 드나들었으며,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이 찾아들었다.

어려운 백성 거칠게 품어주고

달궁에는 마한의 백성들이, 칠선계곡에는 가야 사람들이, 나라의 명맥을 잇고자 몸부림 쳤던 흔적들이 지명으로 잘 나타나 있다.

오늘도 지리산 산행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또 생각한다.

백무동은 옛날의 백무동이 아니었다.

허름했던 집들은 말끔히 단장된 현대식 건물로 변해 있었고 매표소를 지나고 상가를 지나 산행길에 접어드니 아침을 막 벗어난 산속 음습한 공기는 나의 육신을 파고들며 정신을 맑게 해 준다.

나는 산을 오를 때면 항상 수도하는 수행자의 마음처럼 깊이 갖지만 일상은 현실로 존재하도록 한다.

가파른 산길을 걸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

산 오를때면 수행자같은 마음으로
푸른 나무와 바위사이로 원형을 유지한 채 꼿꼿하게 서있는 고사목.김영복 광주토요산악회 회원


그저 무아지경으로 오름을 계속할 뿐이다.

그러면서 또 생각을 한다.

오늘 산행은 천왕봉을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지난날의 옳고 그름을 반성하고 부족했던 마음들을 추스리기도 한다.

숨을 고르며 울창한 오름길의 나뭇잎 사이를 해집고 보이는 하늘은 맑고 푸르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일이 없었지만 연초 시산제를 모실 때는 집에서 직접 준비한 제물로 정성을 다해 모시는 음덕인지 지금까지 산악회를 구성해 전국의 산을 오를 때는 맑은 하늘을 열어주신 산신령님께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선두 그룹을 따라 열심히 오르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오늘을 생각 해본다.

거북이 걸음으로 쉬지않고 천천히 그것도 열심히 오르면서 주위의 조그마한 것도 놓치지않고 이것 저것 다 살피며 산행을 즐기는 산행 요령을 모두는 어쩐일로 외면 하며 그저 땅 만을 내려다보며 빨리 오르려 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장터목을 비켜 생략하고 1800고지의 제석봉으로 오른다.

고사목이며 바윗돌은 바람이 다듬었나

하늘과 맞닿은 고대지에 넓다랗게 펼쳐진 초원, 군데군데 알맞게 배치된 고사목 하며 바윗돌들이 유명한 조경사가 일부러 배치해 놓은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탄성이 절로 나오며 지금까지의 피로를 반감해 주는 느낌이다.

뒤돌아보면 우리가 출발했던 백무동 지역과 그 옆으로 추성리 지역이 맑은 공기를 해집고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연을 만끽하며 성큼성큼 제석봉을 내리면 천왕봉에 이르는 통천문을 지나고 천왕봉에 이르려니 앞서 간 그룹의 산상 오찬이 한창이다.

드디어 천왕봉. 3대가 죄를 짓지 않아야 하늘을 열어준다는 천왕봉이 오늘은 파아란 하늘아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력의 능력에 따라 마음껏 조망 할 수 있게 해 준다.

고산지대의 변화무쌍한 일기에 지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말일 게다.

3대가 죄 짓지 않아야 하늘을 보연준다고

정상에 올라서니 산의 명성에 비해 초라한 정상석을 붙들고 늘어지는 유산객들로 혼잡스럽기 그지없다.

어느 산이고 정상에서 겪는 안타까운 마음은 이 곳 천왕봉에서도 산행문화의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중봉을 거쳐 대원사 방향으로의 하산길을 잡는다.

지리산 종주코스 중에서 가장 악랄한 코스다.

그러기에 보통 종주자들은 천왕봉 정상석을 붙잡고 종주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지친 육신을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내려버리는 서툰 종주자들을 우리는 흔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천왕봉과 지척에 보이는 중봉으로 오르는 길은 왜이리 힘이드는지.

아마 이곳까지 오는 동안 힘이 소진됐음이로다.

다른 산에 비해 하산의 시간은 길고 지루하다.

오르락 내리락 무려 4시간의 숲길을 걸어 내려아 하는 곳이다.

내 마음속의 여러 흔적을 찾아보기도 하고 일행과의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함을 달래본다.

오리락 내리락 4시간 지루한 하산길

그러면서 또 다시 다음 주 산행 계획을 머리속에 그려본다.

길고 지루한 대원사 길. 몇번의 휴식이 끝나고 시큰거린 발목을 염려하며 내린 유평리는 예전에 기억으로 더듬어 볼 수 없었다.

물레방아집에 들려 주차장에 빨리 갈 수 있는 요령을 터득 한 후 일행과 막걸리에 도토리묵으로 목 마름과 허기를 메꾸고 주인장의 차를 얻어타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장장 9시간이 되는 시간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대원사 계곡에 몸을 눕혀 산행에 찌든 몸을 씻고 천왕봉을 다시 한번 쳐다 보지만 내가 스쳐간 자리는 온데간데 없고 또 다른 산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음일 것이다. 전영일 광주토요산악회 부회장


무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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