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쉬엄쉬엄 다산초당서 백련사까지 입력시간 : 2007. 04.13. 00:00
차 한잔 하고 가시구려 '목민'에 대한 얘기도 나누시고…
베트남의 호치민이 주정과 비리의 척결을 위한 필독서로 꼽아 잠자리에 들 때도 머리맡에 항상 놓고 잠을 청했다는 책. 조선 정조때 문신이자 학자였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고금(古今)의 여러 책에서 지방 장관의 사적을 가려 뽑아 치민(治民)에 대한 도리(道理)를 논술한 목민심서(牧民心書) 이야기다. 호치민이 머리맡에 두었던 '목민심서' 목민심서는 지방 관헌의 윤리적 각성과 농민경제의 정상화 문제를 다룬 것으로 조선 사회·경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면서 관리들의 지침서이기도 하다. 다산은 1801년 신유사옥으로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목민심서를 포함해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에 달하는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선생이 1801년 신유사옥으로 18년간 유배생활하면서 10여년 동안 이곳에서 머물렀던 곳. 유배지라는 어두운 역사를 뒤로하면 다산초당 주변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산책길로 유명하다. 강진읍내에서 다산초당까지는 자동차로 불과 10여 분밖에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 이 때문에 사람들은 유배지로 가는 길을 실감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길이 포장되지 않았던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다산초당을 찾아가는 맛이 참으로 별스러웠다. 다산초당의 툇마루에 앉아보았자 남향집이건만 동백 숲과 대나무 잡목이 우거져 한낮인데도 컴컴하고 앞에 보이는 것이 없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산책길 단지 뜰 앞에 넓적한 돌이 하나 있고 왼쪽에 연못이 있는데 이것은 초당 오른쪽 바위에 새겨놓은 '정석(丁石)'과 함께 정약용 유배시절의 진짜 유적인 것이다. 정약용은 유배에서 풀려난 지 3년 되는 1821년, 당시 육순 때 자신의 묘지명을 스스로 지은 장문의 자찬묘지명을 편찬했다. 그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이 글에 의하면 다산초당의 모습은 이러하다. 무진년(1808) 봄에 다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축대를 쌓고 연못을 파기도 하고 꽃나무를 벌여 심고 물을 끌어다 폭포를 만들기도 했다. 동서로 두 암을 마련하고 장서 천여 권을 쌓아두고 저서로서 스스로 즐겼다. 다산은 만덕사의 서쪽에 위치한 곳인데 처사 윤단의 산정이다. 석벽에 '정석' 두 자를 새겼다. 지금 초당 연못의 석축과 긴 대통으로 물을 끌어 오줌발보다 조금 굵은 폭포를 조작한 것이 그때의 모습인 것도 같다. 뜰 앞의 큰 넙적 바위는 '다조(茶竈)'라고 해서 차를 그 곳에서 달였던 곳이다. 그리고 정석 두 글자는 단정한 해서체로 크고 깊게 새겨져 있다. 다산초당을 찾은 답사객은 어둡고 습한 초당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하지만 다산초당 남쪽 800미터 지점에 다산의 생애와 업적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다산유물전시관은 한번 둘러보자. 동백림 따라 걷다보면 백련사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길 역시 장관이다. 다산초당 진달래 꽃길을 지나 만덕산의 천연기념물 동백림이 어우러진 '한국 최고의 오솔길'을 따라 백련사에 도착할 수 있다. 백련사 입구부터 절집까지 이어지는 300m 길이의 오솔길 양옆과 주변 숲길에 크고 작은 동백들이 빽빽이 도열해 붉은 터널을 이룬다. 특히 고승들의 부도를 모신 절 서편 동백림에는 수령 300~700년 된 아름드리 동백나무 고목 7천여 그루가 붉은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바로 절 주변 1만여평이 모두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 동백림'이다. 백련사 동백림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정약용의 '다산제생문답증언문'에도 언급될 만큼 옛날부터 유명했다. 동백나무숲 왼쪽으로는 다산초당으로 가는 800미터 오솔길이 나있는데 옛날 다산 정약용이 백련사의 아암 혜장 스님을 찾아 학문과 도를 논하려고 왕래할 때 이용하던 길이다. 최근 말끔하게 단장된 길을 따라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 아래에는 강진만의 해안선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인다. 도암면 학동에는 다산 선생의 따님 묘소와 유허비가 최근 조성됐다. 학문과 도를 논하려 왕래하던 길 또 우리나라 청자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청자자료박물관과 국가지정문화재(보물) 극락보전 벽화로 유명한 고찰 무위사, 해넘이와 철새 도래지의 명소인 강진만 해안도로도 다산초당을 찾았다면 덤으로 얻어갈 수 있는 볼거리다. 한미 FTA에 어수선한 요즘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를 찾아 본다면 평소와는 남다른 의미를 가질 듯하다.
조선시대 후기 강진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있었다면 20세기 강진에는 서정시인 영랑 김윤식 선생이 있었다. 1903년 강진에서 태어난 영랑은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한국 순수 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 받고 있다. 서정시인으로서의 이미지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말에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 광복후 민족운동 참가 등 민족 지사의 이미지도 갖추고 있다. 강진은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서정시인 영랑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그의 민족사상과 시정신을 오늘에 살려 지역문화 활성화에 이바지 하기 위한 제2회 영랑문학축제를 오는 21일부터 3일간 강진 일대에서 개최한다. 강진군이 주최하고 영랑기념사업회와 계간 '시와시학'이 공동 주관하는 이반 축제는 강진이 가진 천혜의 자연 환경과 문학적 배경 및 문화사적 자산을 바탕으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이라는 주제로 문화적 자긍심을 확인하게 하는 어울림 마당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행사 하루전인 20일 영랑의 모교(서울 휘문고교)에 세워지는 시비제막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행사에 들어간다. 행사 첫째날에는 영랑시문학 심포지엄, 풍물패 길놀이, 제5회 영랑시문학상시상식 등 개막식이 열린다.
또 행사 둘째날에는 영랑생가 일원에서 제3회 전국영랑백일장대회, 국악한마당, 모란예술제 등일 펼쳐지고, 마지막 날에는 꿈나무 그림그리, 영랑시 낭송대회 등을 갖는다. 영랑문학제는 문학, 예술,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반인들이 직접, 손쉽게 참여할 있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생전에 모란을 무척 아끼고 사랑해 생가 곳곳에 심어 놓은 모란이 올해는 따뜻한 날씨로 인해 행사가 열리는 시기에 맞춰 활짝 필 듯하다. 가는 길 백련사까지는 광주에서 나주와 영암 방면 등을 통해 강진까지 간다. 강진읍에서 국도 18호선을 타고 도은리 해태유업에서 군도 3호선 강진만쪽으로 10여분 달리다보면 백련사가 나온다. 다산초당은 백련사에서 걸어가면 된다. 강진=김원준기자 | |||||||||||||||
| 이 기사는 무등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honam.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
'나의 여행(산행,걷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4.순천만 생태공원 (0) | 2011.08.25 |
|---|---|
| 3.여수 영취산 진달래 연분홍 홍역 (0) | 2011.08.25 |
| 1.박재완의 기찬 여행- 변산 마실길 (무등일보)| 미디어에 소개된 마실길 1. (0) | 2011.08.25 |
| 해외여행. [나홀로 여행] 호주·뉴욕…혼자라서 더 행복한 그곳 (0) | 2011.08.25 |
| 여수 향일암 다녀옴 (0) | 2011.08.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