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명리

14. 어머니의 산 지리산(7)

ngo2002 2011. 4. 18. 09:43

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 14. 어머니의 산 지리산(7)


2010년 02월 01일 00시 00분 입력


일종의 한국인 뿌리 찾기의 사업의 하나인 삼성궁은 가장 높은 지리산에서 삼신봉 아래 길지중의 길지 청학동에 배달의 삼성궁이 자리했으니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밝달 길' 징소리에 삼성궁 문은 열리고

고조선시대 소도 복원 한국인 뿌리 찾기 일환

하루 60여톤 옮기며 30년간 돌탑 쌓은 결과물



"삼성(三聖)은 하늘 아래 으뜸인 환인,

환웅과 단군까지 3명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단군조선을 세우고 다스린 자들이다

환웅은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어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인간의 일을 맡아 세상을 다스렸다"



택리지의 이중환은 하동의 악양면 매계리를 청학동이라고 지적했다. 나름대로 자신의 시선에 따라 지적한 자리를 청학동이라고 말해왔던 것이다. 현재의 청학동 도인촌 사람들이 도포에 삿갓을 쓰고 살고 있는 이곳은 청학동에 관한 전설이 천년여를 이어온다고 해서 맞는 장소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정착한 분들이다. 지금의 청학동 도인촌은 겨우 하면 역사가 60여년에 불과하다.

언론매체의 집중적인 소개를 받으면서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멋지게 꾸민 음식점이 현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20여개가 넘는 서당은 전국의 어린이를 상대로 성업 중이며 오가는 이들에게 이곳에서 나는 생산품을 팔고, 방문객들에게는 무경쟁 속에 독점적으로 이곳을 알리고 있다. 시간이 멈춰버린 그곳은 청학동이었다.

한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에서 품속깊이 숨어있는 청학동 산길을 휘돌아 1.5㎞쯤 더 들어가면 해발 850m 지점에 삼성궁이 자리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삼성궁(055-884-1279)은 지리산 '청학선원 삼성궁'으로 이건희의 삼성그룹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다. 청학동에는 별도의 입장료가 없지만 지리산 삼신봉(해발 1354m) 아래 자리한 삼성궁에서는 삼천원의 입장료를 내야한다.

이 고장 출신의 강민주(한풀선사)가 지난 1983년에 고조선시대의 소도를 복원한 곳이다. 제사를 주관하던 곳은 가장 신성한 곳이었으며 비록 죄인이 숨어들더라도 그를 잡아가지 않았던 신성한 곳이었다. 성조이신 환인, 환웅, 단군의 세 사람을 모신 건국전을 짓고 배달민족의 성전으로 조성했다. 우리민족의 정통 도맥인 선도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하는 도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삼성궁 입구에는 민족통일대장군, 만주회복여장군이라고 쓴 장승이 서있었다.

삼성(三聖)은 하늘 아래 으뜸이신 환인(단군의 할아버지), 환웅(단군의 아버지)과 단군까지 3명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단군조선을 세우고 다스린 자들이다. 단군의 아버지 되시는 환웅은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세상으로 내려왔다. 태백산 신단수 아래 신시를 열고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인간의 일을 맡아 세상을 다스리며 교화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곰과 호랑이가 찾아와 사람이 되기를 간청했다. 그래서 쑥과 마늘을 주고 어두운 굴속에서 수도하면 사람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계속되는 수도 도중에 지루함을 참지 못한 호랑이는 뛰쳐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곰은 끝까지 참아내면서 여자가 되었다. 신령스런 쑥 한줌과 마늘 20개를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고 참으며 사람이 되었으니 그녀는 한국인 최초의 어머니다. 환웅은 여자가 된 웅녀(熊女)와 결혼을 하고 아들 단군을 낳았던 것이다.

이러한 설화는 군장의 계통을 하늘에 붙여 그를 신성하게 여기려는 제정일치 시대의 공통된 관념으로 단군이 고대의 군장으로 있을 때 수호신이었던 것을 환인의 예와 같이 윤색한 것이다. 그리고 웅녀에 대한 신화는 몽골족 계통의 특유한 곰 숭배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환웅의 아들인 단군은 BC 2333년 아사달(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한국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기록이다.

민속신앙의 핵심은 토속신앙인 무속에서 비롯되었다. 세계의 어느 나라나 나라마다 행해지는 토속신앙이 있다. 천신, 지신, 인신의 세 가지를 통해 믿어온 하나의 삼신이 숭배의 대상이었다. 삼신은 우리나라 5천년을 이어온 신앙이고 단군신화의 기둥이며 아울러 신들의 모태다.

삼성궁은 일종의 한국인 뿌리 찾기의 사업이라 하겠다. 가장 높은 지리산에서 삼신봉아래 길지중의 길지 청학동에 배달의 삼성궁이 자리했으니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 민족을 반만년의 배달민족이라고 한다. 배달은 한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이름이다. 배달은 밝은 땅이고 하늘의 해가 가장 먼저 비치는 동방의 밝은 땅이며 국호를 배달이라고 했다.

산길의 입구인 오른쪽에는 징이 매달려있다. 이 징을 세 번치고 나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면 삿갓 쓴 도포차림의 수자가 나와 간략하게 용건을 묻고 길을 안내해준다.

"징 징 지이잉."

드디어 밝달 길은 퍼지는 징소리에 문을 열었다. 삼성궁 밝달 길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들은 수많은 돌로 만든 탑이었다. 삼성궁이 신성한 제사를 모셨던 곳이라면 곳곳에 서있는 돌탑은 솟대인 샘이다. 대부분의 돌탑은 한풀선사가 손으로 직접 쌓은 것들이다. 하루에 60여 톤의 돌을 옮기며 30여년이 넘도록 쌓은 결과물이다.

돌탑 중간 중간에는 절구나 맷돌로 잇대어 놓아 무너지는 것을 막았다. 농촌에서 버려진 것들을 모아서 활용한 것이다. 땀과 함께 정성을 모은 탑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신비감이 흐른다. 산과 청학동의 지명이 돌탑과 함께 싸고돌며 풍겨주는 이상속의 별천지라 하겠다.

삼성궁을 일궈낸 한풀선사는 신선도를 신봉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출가하고 부친의 친구였던 낙천선사로부터 학문과 무예를 사사받았다. 서양식 교육으로 중무장한 도시인들에게 긴 수염과 검은 생머리, 도포 같은 한복차림의 그는 선뜻 이해가 안 된다. 이곳에서 사는 행자들도 우리네와 똑같은 가정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특이하고 고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밝달 길의 뒤쪽에는 학의 모양을 닮은 건물의 지붕에 고고한 목을 드러낸 학이 한 마리 있었다. 색도 파란색으로 칠했으니 영락없는 청학이다. 그러나 실제로 살아있는 학은 보이지 않았다. 자연속의 학은 부른다고 나타나는 동물이 아니다. 산을 사랑하고 친환경의 마인드를 가질 때 나타나는 영물이다. 순수한 자연 속에 학이 살고 그런 곳이라야 인간도 살 수 있다. 학이나 인간이나 자연의 일부이며 동반자다.

작은 쪽문을 지나 10m쯤 굴을 지나가면 옷을 갈아입을 곳이 나온다. 그곳에는 고구려 옛 복식이 즐비하게 걸려있었다. 궁을 둘러보려면 먼저 한복이나 도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옷을 갈아입고 들어서면 뜻밖의 넓은 평지가 나타난다.

단전호흡을 하는 움집, 태극문양을 본뜬 연못, 강호동 허벅지만한 잉어 떼가 물속에서 노닌다. 여러 개의 맷돌과 절구통, 다듬잇돌 등 전통적인 우리의 도구들로 가꾸어진 길과 담장의 궁내 전경이 짜임새 있게 펼쳐진다.

곳곳에 서있는 수많은 솟대가 시선을 끈다. 최초로 삼성궁을 세운 한풀선사가 어렸을 때부터 세우기 시작한 솟대는 천여 개가 넘는다. 높이와 규모면에서도 상당히 다양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하게 세운 것이 없었다. 앞으로 모두 3천333개를 세울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