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淸山 윤영근의 십승지(十勝地)와 가거지(可居地) 11. 어머니의 산 지리산(4)
2010년 01월 11일 00시 00분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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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신선(神仙) '마고' 딸만 여덟 명
여덟 신 무당되어 팔도 백성 돕기도
지리산=무당 고향,수많은 전설 간직
천년을 내다본다는 정감록에서 남원의 운봉을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열 곳 십승지'중의 한 곳이라고 한다. 운봉(雲峰)은 거의 날마다 구름이 끼어 있어서 꼭대기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운봉이다. 구름 낀 봉우리는 삼국시대에는 신라 땅이었고 모산현이라고 했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에는 운봉현이 되었다.
운봉은 풍수지리에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의 시선으로 보아도 한눈에 들어오는 조금은 특별한 지형을 갖추고 있다. 운봉 읍내가 움푹하고 둥그런 접시처럼 아늑한 분지를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의 북서쪽에 자리 잡은 고원지대로 해발 450m가 넘는 고지대다. 읍내의 뒷산격인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과 정령치에서 내려다보면 항아리 속 같은 모습이 편안하고 온화한 느낌이 드는 오묘한 곳으로 남원시 운봉읍이다. 수많은 예언서들이 이곳을 명당중의 명당이며 길지중의 길지라고 말한 곳이다.
조선중기 예언서에 '십승지 중 하나'로 기록
구름에 가리워져 오묘함을 풍기는 고원분지
운봉은 남원목기의 주산지이며 거대한 지리산에서 풍부한 나무가 목기제작의 토대가 되어준다. 높은 고산지대에 자리한 드넓은 평야가 있는 곳으로는 운봉이 단연 최고다. 산악지대의 기후는 고랭지 채소를 키우기에 매우 적합하고 토질도 찰지고 수량까지 넉넉해서 기름진 편이다.
흔히 보기 어려운 땅의 모습이다. 남원에서 이곳으로 찾아오는 길은 연속되는 오르막이다. 운봉은 하늘 속의 구름이 항상 끼어있는 고원지대라는 의미이다. 거대한 지리산이 품속에 안고 있는 고원분지가 운봉으로 그 가운데에 운봉 읍내가 자리했다.
정감록에서 말한 운봉이 있는 두류산(頭流山)은 지리산이다. 영구히 살만한 땅이라서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가 계속해서 태어날 곳이라고 말해왔다. 산의 규모가 크고 높아서 세금을 내지 않는 자나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던 난폭한자들이 마지막으로 숨어든 곳도 지리산이었다.
산이 높은 덕분에 기이하며 위대한 선비들이 모여들었고 골짜기 여기저기에 모여든 이들은 스스로 도(道)를 닦으며 산을 일종의 탈출구로 삼았으니 지리산은 만인의 해방구였던 것이다.
'남격암십승보길지지'에서는 운봉 듀류산 아래 동점촌 백리 안은 길이 보전할 수 있는 땅이라고 했다. 오늘날의 운봉읍을 말한다. 십승지를 언급한 비결서들은 한결같이 지리산을 들먹인다. 이는 운봉의 중요함보다는 한반도 제일의 산, 지리산에 구름 낀 봉이 있어서 십승지로 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리산이야 말로 복지나 길지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명산임을 증명해준 것이라 하겠다.
택리지를 썼던 이중환도 복거총론 산수 편에서 지리산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지리산은 남쪽 바닷가에 있다. 그곳은 백두산이 끝난 곳이며 커다란 힘점으로 산의 정기가 한곳에 모여 맥이 되었다고 했다. 힘이 너무 많이 뭉쳐서 주체 못한 기운이 높이 솟아 구름에 가리면서 봉과 산이 되었다. 또 지리산은 태을선인(太乙仙人)이 사는 곳이며 여러 종류의 산신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했다.
지리산은 골이 깊고 물길이 골짜기마다 넘쳐서 수많은 생명체들이 뒤섞인 골짜기와 함께 깊은 곳에 모여 사는 집단혼합 촌을 만들었다. 흙이 두텁고 기름져서 온 산이 사람살기에 알맞은 곳이다.
골마다 길이가 백리가 넘어 바깥쪽은 좁지만 안쪽은 넓어서 가끔은 숨어 산자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국가의 공권력이 미치지 못한 곳에서는 반드시 내야할 세금도 내지 않고 몸을 피한 자들이 숨어들었다.
대부분의 감추어둔 곳이나 승지가 지나치게 높거나 험한 산과 깊은 골에 위치하고 있다. 국면이 좁고 장기간에 걸쳐 값나가는 생산품이 없어서 이익을 챙기기에는 좁고 허(虛)하지만 운봉은 다르다.
운봉지역은 지리산 북서쪽 자락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제법 넓은 곳이다. 작은 냇물은 그칠 줄을 모르고 흐르며 퇴적물을 쌓아올려 넓은 들에는 식량을 생산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지역이 남해바다에 가까워 기후가 대체로 따뜻하고 산의 여기저기에는 대나무가 무성하다. 밤나무나 감나무가 잘 자라서 가꾼 자도 없지만 토실토실하게 여문 열매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기장이나 조는 높은 봉우리에 그냥 뿌려두기만 해도 잘 자라고 비탈진 산이나 평지를 구분하지 않고 많은 소출을 낸다. 산중에서 크게 수고하지 않아도 이익이 생기고 먹거리가 넉넉해서 항상 풍년이다. 구태여 흉년을 구별하지 않아도 부자 산으로, 배고파 굶주린 자가 없는 산이 지리산이다.
지리산은 예사스런 산이 아니다. 태고 때 천신의 딸 마고(麻姑)가 지리산으로 내려왔다. 마고는 여자 신선(神仙)을 일컫는 말이다. 반야도사와 혼인한 그녀는 딸만 여덟 명을 뒀는데 조선팔도에 각각 한명씩 보내서 지역민속을 다스리게 했다고 한다.
마고할미의 남편 반야는 신통력이 할미보다 못해서 수도하러 나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덟 명 신(神)의 딸들은 각각 무당이 되어 팔도의 백성을 도와주었다. 신딸들은 해마다 봄가을이 되면 혼자서 쓸쓸히 산을 지키고 있는 어미를 찾아왔다. 그때는 온 나라의 무당이 모여들었다. 산은 무당들의 독무대로 변했다. 그래서 지리산은 무당의 고향인 것이다.
지리산에는 많은 전설과 이야기들이 전해온다. 산이 광대하고 우람해서 폭이 넓기 때문이다. 산의 둘레가 무려 320㎞로 800리나 된다. 지리산은 면적이 넓은 만큼 전북남원의 반야봉(1715m)과 경남산청의 천왕봉(1915m), 전남구례의 노고단(1507m)을 품고 있다. 삼도를 품속에 안고 있는 샘이다.
1천m 이상의 고산준봉이 20개를 넘는다. 산중의 산으로 모든 산의 어머니 산이다. 피아골, 뱀사골, 칠선골, 한신골 등 20여개의 골짜기마다 물이 차고 넘치며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명승지와 보석처럼 박혀있는 사찰들이 여태까지 지역과 함께 산을 지켜오고 있다.
거대한 산은 다양한 식물군과 사향노루나 수달 같은 천연기념물을 키워왔다. 산다운 산은 처처에 숨어사는 자와 기(氣)가 센 도인들을 아우르고 있다.
구름에 가린 채로 의연한 모습의 운봉은 한 폭의 그림 같은 마을로 살기 좋은 곳이다. 그래서 정감록에서는 지리산으로 오르는 중간지대인 운봉을 십승지 중의 하나로 손꼽았다. 운봉은 동쪽의 팔랑치, 서쪽의 여원치라는 큰 재를 두고 있다. 북으로 덕유산이며 남으로는 지리산이 자연경계를 이룬다.
무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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