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와 일반적상식

볼썽사나운 콘텐츠 전쟁

ngo2002 2010. 9. 8. 10:19

[디지털 3.0] 볼썽사나운 콘텐츠 전쟁

어느 국제 세미나에서 미국 정보기술(IT) 관련 CEO가 '콘텐츠는 왕(content is king)'이라는 말을 몇 차례 반복해 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

물론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고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이를 채우기 위한 콘텐츠가 절대 부족하게 되었다는 점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또 고품질 콘텐츠만이 이익을 창출해 낼 수 있다는 것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 CEO가 누차 강조했음에도 그 자리에 있던 대다수 국내 청중이 덤덤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또 어떤 매체도 그런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한 것 같지도 않다. 혹시 우리나라에서는 콘텐츠가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콘텐츠가 풍부해 별로 긴장감을 못 느꼈던 것일까.

진실은 도리어 그 반대다. 1995년 케이블TV를 시작으로 위성방송과 DMB에 이어 최근 IPTV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방송 플랫폼들이 숨 가쁘게 도입되었지만 이른바 쓸 만한 콘텐츠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모든 플랫폼이 이른바 지상파 방송 동시 재전송과 프로그램 재활용에 목을 매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 이는 결국 우리 유료 방송시장이 '저가 과열시장'으로 고착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2001년 처음 시작된 지상파 방송 재전송에 편승하기 위한 플랫폼 간 경쟁은 우리 방송시장을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논리가 지배하게 만들었던 원인이 되었다. 지상파 방송 재전송이 플랫폼의 사활이 걸린 철저하게 경제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의 방송접근권, 보편적 서비스, 난시청 해소' 같은 거창한 공익적 구호들로 포장되어 시장을 왜곡해왔던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 대신 케이블TV를 이용한 지상파 방송사와 경쟁력 있는 지상파 방송채널들을 배타적으로 독점해 경쟁 플랫폼들을 제압해 온 케이블TV 간에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 공생관계에 초기에 편승하지 못한 위성방송, 위성DMB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을 열세 사업자로 고착됐고, 다른 한편으로는 콘텐츠에 대한 시장의 투자 의지를 완전히 실종시켜 버렸다.

최근에 극심한 경영압박을 받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이 같은 공생관계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만 본다면 가장 경쟁력 있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자신들 콘텐츠를 여러 플랫폼에 공급하거나 유리한 플랫폼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현재 지상파 방송사 역시 자체 네트워크가 매우 부실한 상태고, 사실상 유료 방송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케이블TV를 대체할 수 있는 플랫폼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콘텐츠 공급 대가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들과 케이블TV를 비롯한 유료 플랫폼 간 갈등은 합리적 접합점을 찾기보다 마치 포커판에서 상대방을 위협하기 위한 블러핑(bluffing) 싸움 같은 느낌이다.

더욱 씁슬한 것은 국민에게 모두 시청접근권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공영방송사까지 이런 '서로 돌아서서 뒷발로 겁만 주는 당나귀 싸움(pony war)'에 끼어들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이런 싸움은 국가 미래가 걸린 방송 디지털 전환을 더욱 지연시킬 수밖에 없고,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시청자들이 될 것이 분명하다.공영방송인 KBS가 대승적으로 합리적 수준에서 합의해 모범을 보이고, 이를 준거로 해서 다른 상업 방송사들이 적정 가격을 협상할 수 있는 가이드 라인을 제공하는 것이 어떨까.

더구나 수신료 인상을 통해 경영 안정화를 꾀하고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겠다고 하는 KBS 방침을 감안해 볼 때, 그런 모습이 더욱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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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9 17:11:3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