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④국제사회 대만과 의회외교 살펴보니--美 ‘대만 밀착’ 마이웨이… 따라가는 日… 눈치만 보는 韓 [한·중 수교 30년… 격동의 동아시아]

ngo2002 2022. 8. 26. 10:42


,세계뉴스룸
입력 : 2022-08-25 06:00:00 수정 : 2022-08-25 04: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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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 경제안보를 중핵으로 하는 국제질서 재편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대만의 지정학·지경학(地經學)적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1979년 수교)이나 일본(1972년 수교) 등 주요국은 중국과 국교를 맺으며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공식적으로는 대만과 단교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공관 역할을 하는 기구의 상호 상주나, 전직이나 비(非)정부직 고위인사 교류 등을 통해 대만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행정부가 직접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 삼권분립 원칙을 명분으로 입법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의원·의회 외교다.

의원·의회 외교 일환으로 대만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차이잉원 총통에게서 훈장을 받고 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촉발해 동아시아 긴장이 고조됐다. 대만 총통부 제공
◆외교 보폭 넓히는 미국-펠로시 이어 의회대표단도 방문… 대만과 단교한 국가엔 페널티도

미국 상원이 국방수권법(NDAA)을 통해 대만과의 연합군사훈련을 명시화하려는 것처럼 미국 의회는 미·대만 관계의 핵심 축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방문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에드 마키 상원의원(민주당)이 이끄는 의회 대표단 5명이 14일 대만을 방문해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회동했다. 대만 총통부가 공개한 올해 미국 의회 대표단의 차이 총통 면담만 해도 거의 한 달에 한 번꼴인 5건에 달한다.

의회는 입법권을 가지고 대만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미국과 대만 고위인사 교류를 허용하는 대만여행법(TTA, 2018년 2월 공포)과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장기적 전략을 담은 아시아지원보장법안(ARIA, 2018년 12월) 입법을 끌어냈다. 2019년에는 대만과 단교한 국가와의 외교 교류를 줄이도록 하는 대만법안(TAIPEI Act)을 제정했다.

미국 의회뿐만 아니라 현직 직함을 뗀 고위인사도 대만 외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부 장관(2018년 4월∼2021년 1월 재임), 마크 에스퍼 전 국방부 장관(2019년 7월∼2020년 1월 재임)이 올해 타이베이에서 차이 총통과 만났다. 지방정부 차원에서의 교류도 진행된다. 에릭 홀콤 인디애나주 지사도 대만을 찾아 22일 차이 총통과 경제안보, 반도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미국과 대만은 1979년 단교 후에도 상대방 수도에 외교 전반을 담당하는 공관 역할을 하는 주(駐)대만 미국협회(AIT)와 경제문화대표부(TECRO)를 두고 있다.

TECRO 관계자는 24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대만과의 관계 강화에 대한 초당적인 지지가 계속된다”며 “더 많은 의원들이 군사, 경제, 사이버 등에서 중국의 대만에 대한 위협과 압박을 막기 위해 더 많은 조치를 할 것으로 예상되며 의회 협력은 계속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대만독립 지지단체인 대만인공공사무소(FAPA)도 의회의 교류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FAPA는 최근 매년 연방정부 직원 10명이 대만의 관련 기관에서 2년 동안 함께 근무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만우호법(TFA) 입법을 추진 중이다.

후루야 게이지 일본 일화(日華)의원간담회 회장(왼쪽 세번째) 등 간담회 대표단이 대만을 방문해 23일 총통부에서 차이잉원 총통(네번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만 총통부 제공
◆단교하고도 교류 활발한 일본-초당파 의원모임 親대만파 포진… 양국 지속적 방문, 밀월 과시도

일본도 올해 단교 50주년을 맞은 대만과의 의원·의회 외교 활동이 활발하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여야 초당파 의원 모임인 일화(日華)의원간담회(이하 간담회)다.

1972년 9월 단교 직후인 1973년 3월 창설된 간담회에는 중·참의원 의원 713명 중 약 40%인 280여명(2019년 기준)이 참가하고 있다. 간담회를 중핵으로 일본 정계에는 친대만파가 포진해 있다. 대표적 인사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다.

아베 전 총리는 동생인 기시 노부오(岸信夫) 전 방위상과 함께 대만 중시 행보를 보였다. 지난 3월 간담회 총회 후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양측 관계와 관련해 화상대화 하는 장면을 트위터에 올렸다.

아베 전 총리 사망 후 차이 총통은 대만 주재 일본 공관 역할을 하는 일본·대만교류협회 타이베이사무소를 직접 방문해 “대만과 일본의 우의를 위한 공헌에 감사하다”는 글을 남겼다.

총리 후보군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경제안보상이나 고노 다로(河野太郞) 디지털상도 대만을 중시한다.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은 “대만의 유사상황은 일본의 유사상황”이라는 인식을 밝혔고, 고노 디지털상은 재입각 전인 지난달 말 대만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 온라인으로 참여해 “대만병합이 불가능하다는 걸 중국에 인식시켜야 한다”는 기조연설을 했다.

의원의 대만 방문도 빈번하다.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간담회 회장이 대만을 방문해 23일 차이 총통과 회담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총리 후보군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등 ‘일본의 안전보장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 소속 의원단이 대만을 방문했다. 일행 중 한 명인 하마다 야스카즈(浜田靖一) 의원은 지난 10일 개각에서 전임 기시 의원에 이어 방위상으로 입각했다. 5월에는 자민당 소속 청년 의원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대만 입법위원(국회의원)의 방일도 드물지 않다. 지난달에는 여당 민진당 의원단이 방문해 70여명의 정치인, 전문가 등을 만났다. 대만 입법위원들은 미국에서 입법에 성공한 것처럼 일본에서 양국 고위 공직자의 자유로운 방문을 허용하는 일본판 대만여행법(TTA) 제정을 일본 정계에 요구하기도 했다.

태극기와 오성홍기. 뉴시스
◆‘하나의 중국’ 딜레마 빠진 한국-中서 대만 방문 의원 ‘관리·압박’… 양측 의회 교류활동 사실상 끊겨

한국은 미·일과 달리 대만과의 의원·외회 외교에서 고전하고 있다. 2004년 5월엔 당시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 취임식에 참석하려는 국회의원들에게 중국 정부가 압력을 넣어 내정간섭 논란이 벌어진 일도 있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당시 여야 지도부에 공문을 보내 “취임식은 매우 민감한 정치적 행사이기 때문에 귀당(貴黨) 일부 의원들께서 참가한다면 외부에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다”고, 해당 의원에게는 전화로 ‘대만 방문은 적절치 않다. 자제를 바란다’는 취지로 불참을 종용했다. 중국의 고압적 태도에도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정세균·이종걸·조배숙·전병헌 등이 예정대로 참석했다. 주한 중국대사관 공보관은 여야 의원의 대만 방문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은 양국 수교의 기초인 만큼, 한국 정치인도 지켜야 한다”며 “한국 정치인의 취임식 참석은 중국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인 만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중국 측은 대만 방문 의원을 별도 관리하는 분위기다. 조배숙 전 의원은 24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취임식 참석 후 방중 때마다 곳곳에서 책임자들이 나와 면담 시간 1시간 중 30분은 양안(兩岸: 중국과 대만) 문제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며 “(중국 측이) 의원 방문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 다녀온 의원 리스트를 작성한 것 아닌가”라고 했다.

민주당 설훈 의원은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 파워가 세지 않고 위상도 낮아서 (의원의 대만 방문에 대해) 투덜거리기는 했어도 가타부타 못할 처지였다”며 “지금은 중국에서 일일이 체크하고, 대만과는 거의 의회외교 활동을 못 한다”고 했다.

1992년 한·중 수교 후 1998년 출범한 김대중정부 때부터 중국을 의식해 정부 내에서도 의원의 대만 방문에 부정적 기류가 형성됐다. 김종필(JP) 당시 자민련 총재가 대만 총통 초청에 부부 동반으로 방문하려다 무산된 적도 있다. JP계 출신의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은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JP의 대만 출국 전날 아침 반기문 외교부 차관(전 유엔 사무총장)이 (서울 중구) 청구동 자택으로 찾아와 ‘가시면 안 된다’고 말리는 바람에 포기했다”며 “이유는 뻔했을 것이다. 정부가 중국의 압박을 받을까 봐 눈치를 본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도쿄=강구열 특파원, 김병관·최형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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