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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큰 손들]③ 코인원·코빗, 게임사가 수백억 들여 인수했지만 난제 산적

ngo2002 2022. 8. 12. 07:53

정민하 기자 입력 2022. 08. 11. 10:29 수정 2022. 08. 11. 13:43 댓글 13

 

 

게임사 투자 이후 P2E·NFT 사업 발표
"이해 상충 문제 있어".. 특수관계인 규제 적용도 거론

가상자산 거래소 3위와 4위 업체인 코인원과 코빗은 여러 가지가 닮았다.먼저 시장 점유율이 엇비슷하다. 2021년 말 고객들이 예치한 가상자산 평가액은 코인원이 3조845억원이고 코빗이 1조1000억원이다.두 회사 모두 컴투스, 넥슨 등 게임회사들이 주요 주주인 것도 비슷하다. 게임회사들이 신사업으로 눈여겨보는 돈 버는 게임(P2E 게임)이나 대체불가능토큰(NFT) 사업 등에 이들 거래소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두 회사를 따라다니는 논란도 비슷하게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래픽=이은현

◇ ‘2대 주주도 괜찮아’… 적자인데 600억원 CB 발행해 투자

코인원은 창업자인 차명훈 대표가 53.46%의 지분을 갖고 있다. 게임회사 컴투스는 지분 38.43%를 가진 2대 주주다.

포항공대 재학 시절 해커로 널리 알려진 차 대표는 2014년 코인원을 창업했다. 이듬해 핀테크 스타트업 데일리금융그룹(현 고위드)에 회사를 매각했다. 차 대표는 그 대가로 15억원어치의 데일리금융그룹 주식을 받았다. 그리고 데일리금융그룹은 2017년 9월 당시 빠르게 사세를 넓혀가던 스타트업 지주회사 옐로모바일에 인수됐다.

데일리금융그룹 인수 당시부터 자금난을 겪던 옐로모바일은 코인원을 자금 조달 창구로 썼다. 같은 해 12월 옐로모바일은 코인원으로부터 270억원을 빌려 복층유리생산설비 제조업체인 아이지스시스템을 인수했다. 차 대표는 이 회사에서 기술자문을 담당하는 비상근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옐로모바일은 잔금을 치르지 못해 데일리금융그룹 인수를 포기해야만 했고, 원래 대주주인 벤처캐피탈(VC) 포메이션8으로 넘어갔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차 대표는 데일리금융그룹 지분을 정리하고, 그 돈으로 코인원 지분을 20% 확보했다. 2020년과 2021년 본인이 소유한 소프트웨어 회사 더원그룹을 통해 고위드로부터 지분 34.87%를 더 사들였다.

컴투스 제공

고위드가 보유한 나머지 지분은 컴투스가 인수했다. 컴투스는 2021년 4월과 6월 405억원을 들여 지분 16.47%를 매입했다. 지난 1월에는 540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21.96%를 추가로 사들였다. 1월 매입 당시 인수대금 마련을 위해 지주회사 컴투스홀딩스는 6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컴투스가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2대 주주 지위를 얻기 위해 945억원을 투입한 이유는 가상자산 기반의 신사업 때문이다. 컴투스는 자체 발행하는 가상자산 CTX를 기반으로 한 P2E 게임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P2E 게임에서 얻게 된 게임 내 화폐들을 CTX로 바꿀 수 있도록 하고, 다시 CTX를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팔아 현금을 벌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컴투스는 ‘서머너즈워: 백년전쟁’, ‘2022 게임빌프로야구 슈퍼스타즈’ 등 4종의 P2E 게임을 운영하고 있다. 향후에는 10종의 게임을 P2E로 내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컴투스는 자사가 보유한 게임 지식재산권(IP)을 이용해 대체불가능토큰(NFT) 발행 및 유통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CTX를 필두로 한 자체 가상자산 생태계 조성과 원활한 블록체인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가상자산 거래소와 협력하는 게 사업적으로 유리하다. 차 대표 입장에서도 컴투스는 자신에게 우호적이면서 호혜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파트너다.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가 컴투스의 지분 투자인 셈이다.

◇ 넥슨과 SK 앞세운 코빗, P2E·NFT·메타버스 등 사업 다각화

코빗은 넥슨이 최대 주주이고 SK그룹이 2대 주주다. 두 회사는 가상자산 관련 사업을 펼치고 있거나, 관련 사업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넥슨이 지주사 NXC(48%)와 투자전문 계열사 심플캐피탈퓨처스(16%)를 통해 보유한 지분은 64%다. SK그룹의 신사업 및 투자전문 회사인 SK스퀘어가 35% 지분을 가진 2대 주주다. 나머지 주주들의 지분은 1%에 불과하다.

그래픽=이은현

코빗은 2013년 설립된 국내 최초 거래소다. 창업 지원 NGO(비영리기구) 타이드인스티튜트에서 일하던 유영석 전 사장과 김진화 전 이사가 공동 창업했다. 2017년 NXC와 심플캐피탈퓨처스가 지분 69.5%를 인수하면서 넥슨 산하 기업이 됐다. 넥슨은 우선주도 97.5%를 취득했다. 이 과정에서 넥슨이 들인 돈은 912억원이다.

고(故) 김정주 창업주는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 전망을 밝게 봤고, 게임 산업과 융합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했다.

넥슨 창업 과정을 다룬 책 ‘플레이’에서 김 창업주는 “미국에서 쓰던 달러를 유로로 바꾸고, 다시 원화로 바꾸듯 ‘메이플스토리2′에서 쓰던 게임머니를 ‘던전앤파이터’ 게임머니로 바꾸고, 다시 ‘바람의나라’의 게임머니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게임 회사들이 구상하는 P2E 게임 플랫폼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이다.

넥슨은 2018년 유럽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비트스탬프 지분 80%를 4400억원에 사들였다. 또한 2018년 미국 가상화폐 위탁매매업체 타미고에 투자했다.

하지만 2019년 1월 넥슨은 코빗 지분 전량 매각을 추진했다. 좀처럼 가상자산 관련 산업이 성장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다가 넥슨은 방향을 틀어서 매각 대신 투자 받는 방법을 택했다. 지난 2021년, 넥슨은 SK스퀘어로부터 900억원을 투자받았다.

메이플스토리 N에 적용될 경제 생태계. /넥슨 제공

넥슨은 지난 6월 간판 게임인 ‘메이플스토리’의 IP를 활용한 NFT 사업을 펼치겠다고 발표했다. 넥슨의 첫 블록체인 기술 관련 사업 진출이다.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 진행 과정에서 얻은 아이템을 NFT로 만들어 이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넥슨은 따로 유료 아이템을 판매하거나, 확률형 아이템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는다. 대신 이용자들이 NFT를 거래하는 일종의 장터를 만들어주고, 그 거래 과정에서 나오는 수익 중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 모델을 계획했다. 또 넥슨은 게임 내에서 만들어진 NFT를 다른 게임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하거나, 이용자가 NFT를 이용한 제3의 게임을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구상도 발표했다.

SK스퀘어는 3월 자체 가상자산 ‘SK코인’(가칭)을 발행하고 국내외 거래소에서 이를 상장한다는 계획을 공표했다. SK텔레콤, SK플래닛 등 계열사의 제품, 서비스, 고객 적립 포인트 등을 가상자산이나 블록체인 기술과 접목한 사업도 펼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가상자산 업황 악화로 SK코인 발행은 잠정 중단됐지만, 언제든 다시 추진될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SK스퀘어와는 삼성 갤럭시 S22 NFT를 출시하고, SK텔레콤의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 블록체인 기반 경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 게임사가 아이템·코인 거래소 운영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가상자산업계와 게임업계 일각에서는 코인원과 코빗 대주주인 게임회사와 두 거래소 간 협업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내놓는다.

게임회사가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 가상자산을 매매하고 유통하는 플랫폼을 소유·운영할 경우, 도리어 해당 P2E 게임이나 NFT의 신뢰도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현철 법무법인 이제 미국 변호사는 “거래소가 발행인(게임사)과 같이 돈을 버는 구조로 돼 있는데 이럴 경우 서로 견제가 안 된다”며 “견제가 어려우니 두 회사가 합심해서 시장을 왜곡하려는 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6월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상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투자자 보호대책 긴급점검 당정간담회에서 4대 가상화폐 원화 거래소 대표인 이석우 업비트 대표, 오세진 코빗 대표, 이재원 빗썸 대표, 강명구 코인원 부대표 등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현행 가상자산 거래소 규제가 이해 상충 문제를 규제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령 제10조 20항에 따르면 가상자산 사업자 본인 및 특수관계인, 가상자산 사업자 임직원 등은 해당 가상자산 사업자가 발행한 가상자산의 거래를 제한하고 있다. 대주주가 발행한 가상자산 거래를 금지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거래소를 둘러싼 이해 상충 문제가 점점 불거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가상자산거래소들이 자신들의 특수 관계인 범위에 대해서 스스로 법적 검토를 충분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상자산 거래업자가 다양한 사업 모델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이러한 문제가 계속 되풀이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주현철 변호사는 “자율 규제만으로 이해 상충 문제를 막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추가적인 규제가 도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선영 동국대 교수(경제학)는 “외국 가상자산 시장을 보면 게임회사가 거래소까지 소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가상자산 규제를 따라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두 거래소의 대주주인 게임회사들의 행보에 제약이 걸릴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시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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