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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싸움 중에 제일 몹쓸 것으로 치부되는 게 바깥 세력과 다투는 게 아니라 가족 내 같은 피붙이 간의 싸움인 형(兄)과 동생(同生) 간의 골육상쟁(骨肉相爭)이다. 이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황제에 오른 뒤 동생 조식(曹植)을 핍박한 위문제(魏文帝) 조비(曹丕)의 경우가 그렇다.
‘콩대를 태워 콩을 삶으니(煮豆燃豆萁) 콩은 솥 속에서 울고 있네(豆在釜中泣)
본래 한 뿌리에서 나왔건만(本是同根生) 어찌 이다지도 괴롭히는가(相煎何太急)’
조식의 재치 있는 칠보시(七步詩)가 골육상쟁의 피바람은 막았지만 조비는 체면을 구겼다. 동생을 해치려는 명분이 온당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춘추시대 정무공(鄭武公)에겐 두 아들이 있었다. 그의 사후 큰아들 장공(莊公)이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동생 공숙단(共叔段)은 야심을 버리지 못했다. 봉토(封土)를 확장한다, 군사력을 키운다 등 왕위 찬탈의 음모를 잇따라 획책했다. 그러나 장공은 “불의를 자주 행하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망할 것이다(多行不義必自斃)”라며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마침내 공숙단이 군사를 일으켜 정면으로 도전하자 그제야 장공은 단숨에 공숙단을 격파해 후환을 없앴다. 형제간 상잔(相殘)이었지만 장공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았다. 정도(正道)를 걸었기 때문이다. 공숙단으로선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한 것(自取滅亡)’이다. 돌을 들어 제 발등 찍은 경우에 해당한다(搬起石頭頭自己的脚). 『좌전(左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판문점 도끼만행,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사건, 그리고 아직 공식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최근의 천안함 침몰 사건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악행은 그칠 줄을 모른다. ‘다행불의필자폐’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