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명리

재벌은 왜 명당 찾기에 매달리나

ngo2002 2018. 10. 2. 11:25
재벌은 왜 명당 찾기에 매달리나

ㆍ재물을 쌓을 수 있는 터에 관심… 묏자리·공장 자리까지 의견 구해

“명당이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땅의 기운이다!” 추석 개봉작 영화 <명당>의 홍보문구에 나오는 ‘명당’의 정의다. 영화 <명당>은 땅을 둘러싼 이야기로 ‘천하명당’을 차지해 ‘왕’이 되길 꿈꾸는 인간들이 주인공이다. 사람의 얼굴 생김새를 통해 앞날을 내다보는 천재 관상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관상>의 형제 격인 영화다.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서초사옥. / 이상훈 기자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서초사옥. / 이상훈 기자



<명당>의 모티브는 묏자리 혹은 집터가 좋으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풍수지리’다. 삼국시대에 도입된 풍수지리는 현대인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여전히 살아있는 사상이다. 권력과 재력이 있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특히 국내 재벌의 ‘명당’ 사랑은 각별하다. 과거 좋은 땅을 보는 눈이 있는 전문가들은 그룹 총수들에게 특급대우를 받았다. 삼성그룹이 선영을 조성할 때 연로한 풍수 전문가가 산을 오르지 못하자 삼성 직원들이 업고 땅을 봤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삼성 서초동 사옥 풍수전문가 자문 받아 

국내 재벌기업 대부분은 묏자리나 사옥, 공장을 자리를 봐주는 풍수 전문가가 있을 정도로 명당에 대한 관심이 높다. 2008년 삼성그룹 계열사 대부분이 옮겨간 서울 서초동 사옥터 역시 풍수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해 정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서초동 삼성사옥 부지는 관악산과 우면산 지맥이 닿아 있고 여러 계곡의 물이 고였다가 천천히 나가는 ‘취면수(聚面水)’ 형상으로 재물을 쌓을 수 있는 터라는 게 풍수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사옥터뿐 아니다. 재벌기업들은 대표의 집무실 위치 등 세부적인 내부 인테리어를 풍수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정한다. 삼성 계열사인 삼성웰스토리 역시 지난 2016년 서울 중구 삼성 본관에 있던 본사를 경기도 성남 구미동 분당M타워로 옮기면서 풍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사장실의 현관문을 어느 쪽으로 낼지, 책상은 어느 방향으로 놓을지 등 소소한 부분까지 풍수지리를 따져 배치했다. 삼성물산과 풍수 자문용역 계약을 맺고 활동하는 풍수지리학자 신석우씨는 “최근 에버랜드 안에 조성하고 있는 산책공원의 방향과 동선도 풍수지리를 따져서 정했다”며 “쉼터와 카페를 세우기 좋은 터도 자문을 해줬다”고 말했다. 

미래에셋 센터원빌딩. / 경향신문 DB

미래에셋 센터원빌딩. / 경향신문 DB



미래에셋그룹은 풍수 경영으로 이름난 대표적인 금융그룹이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풍수지리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로 알려졌다. 2011년 미래에셋 계열사들이 중구 수하동의 현재 미래에셋 센터원 빌딩으로 옮겨온 것도 명당을 찾아 온 행보라는 후문이다. 풍수지리 전문가들 사이에서 현재 미래에셋 센터원 빌딩 터는 금융 관련 사업을 하는 데 이상적인 터로 꼽힌다. 조선시대 돈을 찍어내던 주전소(鑄錢所) 자리였던 만큼 재물이 모이는 땅이라는 게 풍수지리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지난 2015년 미래에셋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KDB대우증권 인수에 성공하자 ‘명당의 기운을 받은 덕분’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풍수지리학자 신석우씨는 “박현주 회장은 풍수지리를 담당하는 분을 따로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계약 형태든 친분 형태든 기업마다 풍수지리를 전담하는 전문가들이 따로 있다”고 말했다. 

명당 구입한 그룹 효험 여부는 ‘글쎄’ 

그렇다면 재벌기업들이 풍수지리를 따져가며 택한 땅은 모두 ‘명당’일까. 부영그룹이 지난 2016년 5717억원을 들여 삼성그룹으로부터 매입한 서울 태평로 부영태평빌딩(옛 삼성생명 본관)은 풍수지리 업계에서는 명당으로 검증된 터다. 풍수 전문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왕산과 남산 등에서 나오는 좋은 기운이 모이는 재운이 넘치는 자리다.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고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아꼈던 자리로도 알려져 있다. 이 빌딩을 사들인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 역시 풍수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인물로 전해진다. 부지 매입 등을 하기 전에 풍수를 따져보고 진행을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부영그룹은 지난 2016년 삼성생명 본관빌딩을 매입했다. / 연합뉴스

부영그룹은 지난 2016년 삼성생명 본관빌딩을 매입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업계에서 얻은 명당의 명성과 달리 효과는 신통치 않다. 당초 오피스 임대사업을 하려고 사들인 부영태평빌딩은 공실률 증가로 기대만큼의 수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고, 부영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부영주택은 지난해 1555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2011년 이후 첫 적자를 기록했다. 부영그룹은 현금 유동성 확보를 위해 지난해 4380억원을 들여 사들인 삼성화재 을지로 사옥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귀한 땅을 골라 조성해 각별한 관리를 한다는 재벌가의 묘역 역시 그만큼의 효험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선산과 묘역 관리에 남다른 정성을 쏟기로 이름난 기업이다. 최근에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가족묘 관리에 금호타이어 협력업체 비정규직 직원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묘소 관리에 쏟는 열정과 달리 터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풍수지리를 다룬 <재벌가 명당탐사기>의 저자 이문호 영남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몇몇 재벌그룹들이 명당이라며 정한 터를 살펴보다 보면 생각만큼 좋은 터가 아닌 곳도 많았다”며 “살면서 타인에 대해 배려를 하면 자연스럽게 본인은 물론 후손들이 명당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4&art_id=201809171424261#csidxbcbeeaa4f261edd97de870188c178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