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노동이 달라지면 노동운동도 변해야
ㆍ조직된 노조 기반 환경과는 큰 차이… 시대변화에 따른 고민 필요
“정규직 중심의 노조를 제가 만든 건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노동운동에 몸담은 20여년 동안 그런 흐름을 전혀 막지 못하기도 한 거죠. 나를 포함해 노조가 욕을 먹어도 싸다는 생각은 합니다.”
노동조합도 일각에서 ‘적폐’로 지목받는 시대가 됐다. 민주노총의 한 산별노조 소속 간부는 다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비정규직 조직화’ 문제만 놓고 보면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전체 노동자 중 노조 가입률이 아슬아슬하게 두 자릿수 퍼센트에 턱걸이하는 현실, 그리고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은 1%대를 넘기느냐 마느냐를 주목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이었다. 노조 조직률을 떨어뜨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여파가 지나가기도 전에 새로운 위협이 코앞에 다가서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노동환경의 변화다.
![5월 1일 민주노총이 서울 대학로에서 연 ‘2017년 세계 노동절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준헌 기자](http://img.khan.co.kr/newsmaker/1232/20170627_26.jpg)
5월 1일 민주노총이 서울 대학로에서 연 ‘2017년 세계 노동절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근본적인 노동의 개념 변화
노동시장 안에 들어와 있기는 하지만 기존 제도의 틀만으로는 완전히 규정하기 힘든 것이 ‘크라우드 워커’의 특성이다.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산업계 안팎의 기술적인 변화 중 이들의 피부에 가장 와닿는 변화는 ‘사람의 지시를 받지 않는 것’이다. 고용주나 관리자의 명령 대신 자동화된 생산체계의 업무 흐름에 따라 일한다. 때로는 동료와의 관계 역시 경쟁이 바탕이 되어 적대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일부 특정산업만이 아니라 산업 전반에서 나타나는 큰 폭의 변화를 뜻하기 때문에 기존의 임금노동과는 일부 유사점만을 공유하는 수많은 다양한 직종이 나타날 수도 있다. 조직된 노조를 기반으로 노동운동을 벌이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 주어진 셈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아직까지 4차 산업혁명에 관한 구체적인 대응전략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다. “4차 산업혁명을 최근까지 노동계와 노동운동을 위협해온 신자유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는 이들도 있고, 아직은 당면한 문제가 아니어서 비교적 더 시급한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에 논의가 활발하지는 않은 편이다.” 임운택 계명대 교수(사회학)의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은 큰 규모의 변화이기 때문에 그만큼 진행되는 시간도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더라도 느긋하게 대책을 세울 여유는 없다는 것이 임 교수의 지적이다. 임 교수는 “생산노동과 서비스노동 간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노조 조직의 권한을 놓고 노조 간의 분열을 촉발할 가능성도 없지 않고, 결국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노동의 디지털화는 노동의 분열과 파편화를 보다 더 촉진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의 개념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노동운동 내부의 분열과 경계도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과거처럼 이념적 지향에 따라 정파와 노선을 달리하면서 분열하고 대립하는 양상과는 다르다. 이해관계의 차이가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각기 다른 문화가 노동자집단으로 세세하게 나누어지면서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접점이 더욱 줄어들게 된다. 또, 그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이가 만들어낸 분열 이상으로 간극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노동계 내부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해온 김성혁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장은 4차 산업혁명의 기초가 된 독일 ‘인더스트리 4.0(산업 4.0)’의 기본 개념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 4.0에 따라 만들어지는 스마트팩토리는 중앙통제시스템에 의해 획일적으로 돌아가는 대량생산 시스템이 아니라, 분권화·자율화·네트워킹 개념이 바탕이 되어 각 부품과 기계·설비가 독자적인 기능과 목적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결합된 체계라는 것이다. 김 원장은 “스마트팩토리의 기저에는 수평적 의사결정구조와 노동의 인간화를 중시하는 철학이 있다”며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사고와 활동영역을 확장하고 SNS와 블록체인 등으로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면 축복이지만, 로봇에 의해 상시고용이 사라지고 단기계약이 일반화되며 극소수의 거대한 승자와 대다수의 패자가 양성되어 민주주의가 파괴된다면 재앙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이 조직 중심의 노동조합에 위협이 될 수도 있지만, 근본에서부터 노동환경을 비인간적으로 바꾸려는 기획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독일에서 산업 4.0을 기획하면서 그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아르바이텐 4.0(노동 4.0)’이 만들어진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산업 4.0의 성공을 위해서는 노조의 참여와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독일 노조총연맹(DGB)과 산하 노조들, 특히 제조업 사업장 중심의 금속노조(IG Metall)가 활발하게 참여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대규모의 산업 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노조의 영향력을 발휘해야 기업 측의 일방적인 이윤추구를 제어할 수 있다는 인식이 바탕이 됐다.
여기에는 노조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정부 노동당국과 사측의 협력도 추동력을 더했다. 금속노조 위원장과 노동사회부 장관을 공동의장으로 하는 ‘디지털 노동세계’라는 연구단체를 출범시키는 한편, 노사 간 파트너 협약도 연달아 체결되는 일련의 과정이 ‘노동 4.0’ 안에 포함됐다. 지난 4월 방한해 ‘노동 4.0과 4차 산업혁명’ 국제콘퍼런스에서 발표한 다니엘 부어 독일 튀빙겐대 교수(정치경제학)는 “노사는 사회적 동반자로서 공동결정과 참여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도전에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어 교수는 “독일의 노조와 전문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노동의 변화에 대해 논의한 결과를 펴낸 <노동 4.0> 백서를 통해 자영업과 유사근로의 경계에 있는 고용형태를 법적으로 명확히 구분짓고, 이러한 새로운 고용형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사회보장제도를 제공하는 등의 대책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정부, 사측, 노조가 협력한 독일
하지만 국내의 4차 산업혁명 움직임은 주로 기업과 정부에서 시장 확대를 근간으로 한 성장논리와 닿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 등 국가기관과 기업, 노조의 대응이 각기 따로 놀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협력과 상호 이해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례적으로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1월 “전문가와 기업, 노조,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여 산업혁신과 일자리 문제를 논의하는 민·관 거버넌스를 구축하겠다”며 “‘디지털 기본산업 경쟁력 제고 및 육성에 관한 기본법’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공동으로 환영 성명을 내기도 했다.
더 나아가 노동운동에 거대한 위기로 다가올 수 있는 전환에 대해 노조 역시 선제적인 대응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성혁 원장은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기술 변화에 대해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 운동) 방식으로 찬성이나 반대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개입전략을 통해 고용을 유지·확대하면서 사회 전반의 발전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사업장에서 투쟁과 교섭을 병행하듯 산별노조 또는 민주노총 차원의 개입전략과 전국적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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