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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부자열전-3] 동양보다 서양에서 더 유명한 청나라 대부호 우빙졘(伍秉鉴)

ngo2002 2017. 4. 7. 08:24

[중국부자열전-3] 동양보다 서양에서 더 유명한 청나라 대부호 우빙졘(伍秉鉴)

기사입력 2017-02-14 19:12:27 | 최종수정 2017-02-24 12: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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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빙졘(伍秉鉴)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우하오관(伍浩官)이라고도 하며 중국 청대 광둥(广东) 십삼행(十三行)과 이허행(怡和行 : 당시 세계최대 무역상사)의 행주(行主)인 우빙졘(伍秉鉴)은 영국 동인도회사와 아편 밀수를 통해 신속하게 거부가 된 장본인이다.

1834년에 자신의 재산이 2600만 위안(한화 약 43억 원)이라고 밝힌 그에 대해 서양 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업자본과 재물을 가진 대부호”라고 칭했다. 1843년 청 정부는 ‘남경조약’이 규정한 300만 위안(한화 약 5억 원)의 외국 상인 채무를 여러 행상(行商)에게 상환하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우빙졘은 혼자서 100만 위안(한화 약 1억 6천만 원)을 부담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우빙졘에 대해 “그는 1769년에 출생한 청나라의 행상으로 부업을 계승하고 외국 상인과 거래를 했으며 외국 상인에게 대출을 해주고 막대한 재산을 얻었다. 그는 아시아 보다 서방 비즈니스계에서 더 높은 지명도를 누리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우빙졘은 청대 십삼행 상인 중의 일원인데 18세기 말 19세기 초 우빙졘 가문의 이허행은 광저우 행상계의 선두주자가 됐다. 그의 가문은 다른 행상들보다 투자 방면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신속하게 거액의 재산을 모았다.

1834년 우빙졘 가문은 2600만 은화(银元)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를 현재 은값 시세로 따지면 50억 위안(한화 약 8313억 원)에 이른다. 이를 통해 당시 우빙젠 가문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 가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빙젠의 아버지인 우궈잉(伍国莹)은 외국 상인들에게 ‘하오관(浩官 : 호탕한 갑부)’이라고 불렸다. 이 명칭은 그 자손들이 계속 사용했으며 19세기 전기 국제 비즈니스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 됐다. 1801년 우궈잉의 아들 우빙졘은 부업인 이허양행(怡和洋行)을 물려받았다. 우빙졘은 이허양행을 외국 상인 업계에서 주목 받는 기업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우빙졘은 십삼행을 전성기로 이끌었다. 서양 상인들은 우빙졘을 “성실하고 친절하다, 또한 세심하고 너그러우며 부유하다”고 평가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우빙졘은 붉은 색 장식이 달린 모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 모자를 쓰고 자랑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생일에 가끔 모자를 썼다고 전해진다.

다른 사례도 있다. 우빙졘은 미국 보스턴 상인과 합작해서 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 미국인이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우빙졘에게 7.2만 은화에 달하는 부채를 지게 됐다고 한다. 미국 상인이 부채를 갚을 능력이 없어 미국으로 되돌아 갈 수 없게 되자 우빙졘은 미국 상인을 불러 “당신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당신은 매우 성실한 사람이지만 운이 없었을 뿐이다”라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미국 상인의 차용증을 찢어버리면서 “더 이상 빚은 없다” “언제든지 귀국해도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7.2만 은화는 어떤 개념일까? 이 수치는 당시에도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당시 대양을 항해하는 중형 선박이 적재하는 화물의 전체 가격은 약 10만 은화 정도이다. 우빙졘 즉 ‘우하오관’의 이러한 호방하고 솔직한 성격은 반세기 동안 미국에서 널리 회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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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rdine_Matheson 본사 전경(홍콩) / 사진출처 = Wikipedia

우빙졘 가문은 미국 상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 상점과도 긴밀하게 연락하고 있었다. 우빙졘 가문은 영국 동인도 회사, 미국 상인, 기타 외국 상인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처리했는데 중국과 외국 상인의 업계에서 우빙젠 가문의 이허행은 매우 널리 알려진 이름이었다. 영국 무역상사인 자딘 매디슨 상회(Jardine Matheson Co.,)의 중국어 명칭은 이허행 명칭을 빌려 사용했는데 ‘이허양행(怡和洋行)’이라고 칭했다.

19세기 중반, 우빙졘은 중국 국내에 토지자산, 부동산, 차산(茶山), 우이산(武夷山), 점포, 거금 등을 다양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에 철도, 증권거래, 보험업무 등에 투자를 했으며 그의 투자 행보는 당시 전세계 금융업 종사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핫이슈 중 하나였다. 서양 경제학자들은 우빙졘을 “세계에서 가장 돈을 잘 굴리는 대부호”라고 불렀다.

100여 년이 넘는 노력과 활발한 대외무역으로 십삼행과 “우하오관”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행상 집단을 만들어내며 중국과 서양의 문화, 예술 등 교류 방면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당초 우빙젠의 이허행 명칭을 빌려 사업을 시작한 이허양행(Jardine Matheson)은 현재 홍콩에 본사를 둔 세계적 무역상사로 자리매김했다.


[봉황망 중한교류 채널] 윤이현 기자 yoon@if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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