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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부자열전-5] 4명의 황제를 갈아치운 절대 권력자 – 양기(梁冀)

ngo2002 2017. 4. 7. 08:22

[중국부자열전-5] 4명의 황제를 갈아치운 절대 권력자 – 양기(梁冀)

기사입력 2017-02-28 17:19:23 | 최종수정 2017-02-28 17:32:06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중국 동한(东汉) 시기의 외척(外戚)인 양기는 중국사에서 간신을 손꼽을 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중 한명이다. 그는 27년간 절대 권력을 유지하며 무려 4명의 황제를 갈아치우는 ‘간신 중의 간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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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기(梁冀)의 초상화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명문가 출신인 양기는 현 간쑤(甘肃)성 징촨(泾川)인 안정(安定)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광무제(光武帝)를 도와 동한을 건립했는데 아버지는 양상(梁商)이고 여동생은 양태후(梁太后)로 순제(顺帝)의 황후다. 건국의 주역과 황후의 인맥으로 흥청망청 풍류를 즐기던 그는 아버지 양상이 죽자 지위를 이어받아 권력의 핵심부까지 승승장구 했다.

양기는 욕심도 많고 모사에 능한 인물이었다. 아버지의 지위를 물려받아 본격적으로 권력을 누리던 그는 여동생 양황후를 이용해 순제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했다. 황제와 황후의 두터운 신임과 더불어 양기는 그야말로 제 세상을 만났다. 그의 별명은 왕관 없는 황제였는데 국고를 횡령하는 건 물론이고 지방 관직도 등급에 따라 금액을 책정하고 팔아 부를 축적했다.

양기의 아내는 손수(孙寿)라는 여인으로 매우 아름답고 교태를 잘 부렸다고 한다. 그녀는 양기와 마찬가지로 허영심이 많고 사치가 심했다. 특이한 점은 부부 둘이 낙양 한복판에 집을 따로 지어 살았는데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집안에 연못, 정원, 동물원 등을 꾸미고 황실 관료들을 종종 초청해 자신의 재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어떻게 하면 재산을 더 불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양기와 손수는 낙양에서 돈깨나 있다는 부자 명단을 만들어 그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벌금, 보호비 등의 명목으로 재산을 갈취했다. 부자들은 양기의 ‘어명’에 순순히 돈을 넘길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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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기(梁冀)의 초상화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양기는 20여년 동안 대장군(大将军)이라는 직책을 맡았다. 극도로 사치스럽고 탐욕스러웠던 그는 황실 내에서도 세력이 막강해 조정 내외의 모든 관리가 그를 두려워했으며 황제의 명령보다 그의 명령이 더 우선순위에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황제 마저도 그에게 어떠한 정사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높이 올라갈수록 내려오는 길도 험하다는 것을 양기는 모르고 있었다. 그의 안하무인적인 태도와 오만방자한 행동은 여러 적들을 만드는데 충분한 필요조건이었다.

144년 순제가 젊은 나이에 병사하고 겨우 두살 된 아들인 충제(冲帝)가 직위 했다. 하지만 2년 만에 죽고 말았다. 이후 직위 한 황제가 바로 8세 밖에 안된 질제(质帝)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질제의 영특함은 보통이 아니었다. 한번은 아침 조회에서 양기가 황제의 명을 안 거치고 대신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이 모습을 보던 질제는 양기에게 ‘발호장군’(跋扈将军)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을 했다. ‘발호’란 물고기가 통발을 뛰어넘는다는 뜻으로 질제는 적절한 단어를 이용해 자신을 함부로 무시하는 양기의 불손한 태도를 지적했던 것이다.

공개적으로 비난을 들은 양기는 모욕감과 위기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는 자신을 견제한다고 생각하고 음식에 독을 넣어 질제를 암살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권력을 지닌 그는 황제의 비난조차도 용납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146년 환제(桓帝)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양기는 적절한 시기를 노려 진짜 황제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양기의 악행이 늘어날수록 그의 통치 기반이 붕괴되는 날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연희(延熹) 2년(159년) 양 황후가 사망했다. 이때 환제 나이는 28세로 더 이상 직위 당시의 15세 소년이 아니었다.

환제는 이 기회를 이용해 환관 실세인 당형(唐衡)을 몰래 불러 조정에서 누가 양기 가문과 부합하지 않는가를 물었다. 당형은 조금 망설이다가 “단초(单超), 좌관(左倌), 서황(徐璜), 구원(具瑗) 등이 모두 양기 가문의 전횡에 분노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환제는 곧바로 단초와 좌관을 불러 양씨 일족을 멸하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생각보다 빨리 실행에 옮겨졌다. 환제는 황제 친위대인 어림군(御林军)을 시켜 양기의 집을 급습했다. 마지막이 온 것을 직감한 양기와 손수는 동반 자살했다. 환제는 황실 내 주요 보직을 맡고 있는 양기 가문과 손수 가문의 사람들을 축출해 모두 죽였다.

당시 숙청된 관리의 수가 무려 300여 명에 달해 조정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하니 양기의 권세를 짐작할 수 있다. 양기 가문의 재산은 모두 몰수돼 국고에 반납했는데 이때 몰수된 재산이 국가 재정수입의 절반에 육박했다고 한다.


[봉황망 중한교류 채널] 윤이현 기자 yoon@if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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