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부자열전-7] 다재다능한 장사의 귀재 - 도주공(陶朱公)
기사입력 2017-03-28 16:28:05 | 최종수정 2017-04-04 10:15:11
▲ 사진출처 = 봉황망(凤凰网)
도주공은 월나라가 오나라에 의해 멸망했을 때 구천을 따라 오나라에 가서 노예 생활을 했다. 훗날 갖은 방법을 써 구천을 월나라로 귀국시키고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켰으며 월나라를 재건해 높은 관직에 올랐다.
구천이 나라를 재건한 이후 도주공은 자신이 높은 지위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모든 관직을 포기한 채 월나라를 떠났다.
월나라를 떠난 그는 먼저 제(齐)나라에 가서 치이자피(鸱夷子皮)로 개명했다. 도주공이 제나라에 머문다는 소식을 알게 된 제나라 황제가 그에게 재상 자리를 권유했지만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게 싫었던 그는 머물던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모두 나눠주고 몰래 자취를 감췄다.
이후 산동성 도(陶)현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종자돈만 가지고 상업, 농업, 목축업 등을 하면서 비범한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도주공(陶朱公)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도주공이 살던 농업 경제 시대에는 농산품이 시장의 가장 주요한 상품이었다. 농업은 기후에 따라 생산량도 달라져 시장 가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도주공은 ‘농업 수요를 만족시키고 농업을 위해 서비스 한다’는 경영 방침을 토대로 계절의 수요에 따라 시장에 필요한 상품을 미리 예측하고 필요한 물자를 비축했다.
도주공은 계절과 기후의 규칙적인 변화에 대한 격언을 근거로 삼아 농업의 풍년과 흉년을 예측했다. 그가 인용한 것은 “6년 동안 어느 한 해는 날씨 환경이 좋겠지만 또한 가뭄이 드는 해도 있으며, 12년 동안 큰 가뭄이 드는 해가 있다(六岁穰、六岁旱,十二年一大饥)”라는 격언이다.
도주공은 시장의 공급과 수요 관계에 따라 가격의 등락을 판단하곤 했는데 그러다 가격 등락에는 한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즉 비싼 가격이 정점에 도달하면 하락하고 싼 가격이 바닥을 치면 오르는 규칙을 알게 된 것.
이를 통해 탄생한 것이 바로 도주공의 ‘비축이론(积贮之理)’이다. 그는 “가격이 쌀 때 구슬과 옥을 취하는 것처럼 사들여라(贱取如珠玉)”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는 구슬과 옥을 중시하는 것처럼 가격이 떨어진 상품을 중시하고 가능한 많이 사들여서 비축하고 가격이 오른 후에 내다 팔라는 뜻이다. 또한 도주공은 “가격이 비쌀 때 아낌없이 팔아라(贵出如粪土)”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도주공은 이런 규칙에 따라 풍년에는 대담하게 사들였다. 매년 풍년이 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들인 상품을 내다 팔 기회가 없다고 걱정하지 않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도주공은 흉년에 물가가 오를 때 사들였던 상품을 모두 내다 팔았다.
이렇게 해서 도주공은 자신의 부를 쌓았을 뿐만 아니라 물가를 억제해 대풍년에 곡식 가격이 떨어져 농민이 해를 입는 것을 막고 흉년에도 농민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 도주공(陶朱公)을 소재로 한 뮤지컬 춘추상성(春秋商圣) / 사진출처 = 허저시 딩타오구 인민정부(菏泽市定陶区人民政府) 홈페이지
사마천(司马迁)의 ‘사기(史记)’에서는 도주공에 대해 은나라 19년 동안 세 차례나 천금을 벌었으며 재물이 엄청났던 인물로 당시 중국 상인들 중 최고의 상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훗날 그는 벌어들인 수만 금의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재물과 명예와 권력에서 벗어나 복사꽃 피는 무릉산에 은거하면서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 도주공(陶朱公)이 기록한 부자 12계명
‘勿鄙陋 勿虛華 勿優柔’ - 추해지지 마라 / 허욕을 부리지 마라 / 우유부단하지 마라
‘勿強辯 勿懶惰 勿固執’ – 억지주장을 하지 마라 / 나태하지 마라 / 고집을 부리지 마라
‘勿輕出 勿貪賒 勿爭趣’ - 돈을 가벼이 쓰지 마라 / 외상을 탐하지 마라 / 겉멋에 취하지 마라
‘勿薄蓄 勿眛時 勿痴貨’ - 저축을 소홀히 하지 마라 / 시기를 놓치지 마라 / 돈에 눈멀지 마라
[봉황망코리아 차이나포커스] 윤이현 기자 yoon@if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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