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미완의 실명제 20년 ①-탈세주범 차명계좌 털고 가야]

ngo2002 2013. 8. 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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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간 '차명계좌' 악용 저축은행 비리, 6.7조"

민병두 민주당 의원 분석 자료…"금융실명제법, '차명거래 촉진법'으로 전락"

머니투데이 김세관 기자|2013.08.0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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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두 민주당 의원.
지난 8년 간 차명계좌를 통해 저질러진 저축은행 비리 규모가 약 7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민주당 의원이 6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올해 2분기까지 차명계좌를 활용한 저축은행 비리 규모가 6조7546억 원(2383건)에 이른다.

특히 지난해부터 올해 2분기에 차명계좌를 활용한 저축은행 비리 금액만 3조7533억 원이며, 적발건수는 1779건에 달했다.

이 같은 자료는 민 의원실이 저축은행 비리 중 차명계좌를 활용해야만 가능한 △대주주 신용 공여 위반 △개별차주 신용 공여 한도 초과 △동일차주 신용 공여 한도 초과 내역에 대한 금감원 적발건수를 분석한 결과다.

아울러 민 의원은 금융실명제가 시작된 1993년 8월부터 현재까지 차명계좌 기사 건수는 총 1만3629건 이었으며, 어린이집 원장과 성형외과 원장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 의원은 "현재 금융실명제법은 비(非)실명만을 규제하고 있어서 '차명거래 촉진법'으로 전락한지 오래"라며 "금융실명제법 시행 20주년을 맞아 비자금-탈세-횡령으로 이어지는 차명계좌 악용을 여·야와 정부가 힘과 지혜를 모아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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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대 오른 실명제, "동창회 총무=차명거래자?"

실명제 실시 20주년, 의원발의 '봇물'…"차명거래 전면금지, 모든 국민 '잠재적 범죄자'"

머니투데이 박종진 기자|2013.08.05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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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순간 엄숙한 마음으로 헌법 제76조1항에 의거해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표합니다" (1993년8월12일 오전 7시 긴급 국무회의 직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표문 첫머리)

정부가 금융실명제를 전격 발표한지 20년을 맞았다. 이후 자금세탁방지와 차명거래 처벌 등을 위한 관련법들도 제·개정을 거치며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금융실명제는 20년 만에 수술대에 오르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각종 비리범죄 근절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금융실명제의 변화를 요구했다.

국회의원들이 잇따라 법안을 내놓으며 '차명거래 금지'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예상치 못한 큰 혼란을 경계한다. 모든 국민의 금융거래를 대상으로 하는 금융실명법에서 차명거래를 금지하거나 차명계약을 무효화시킬 경우 대다수 무고한 사람들이 잠재적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4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김기준 의원을 비롯해 올 4월 조정식, 지난달 초 민병두, 이종걸 의원(이상 민주당) 등이 '금융실명제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번 주에는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민식 의원(새누리당)도 금융실명법 개정안을 내놓는다. 안철수 의원(무소속)도 본인의 제1호 법안으로 차명계좌 처벌방안 등을 담은 금융실명제 관련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12일 열릴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 여야 공동 토론회에서도 금융실명제 개정문제를 중점 논의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금융실명법 개정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핵심은 차명거래를 금지(김기준·조정식 의원)해 실거래자와 명의대여자를 처벌하고, 차명계약 자체를 무효화(민병두·이종걸 의원)시켜 계좌에 들어온 돈을 명의대여자 소유로 간주한 후 30%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 등이다.

드러나지 않는 '검은 거래'를 차단해 투명성을 높이자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실명법 개정을 방법론으로 삼을 경우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현재 우리나라는 차명거래가 불법이 아니다. 금융실명법상 금융회사는 실명확인 의무만 있고 돈의 주인을 따질 필요는 없다. 즉 신분증과 대조해 계좌 주인이 맞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실제 누구 돈인지는 알 수도 없고 알아야할 의무도 없다.

대신 탈세나 각종 범죄를 위한 차명거래는 '특정금융거래보고법'(FIU법),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조세범처벌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을 통해 처벌하는 구조다. 일반적 금융거래 전반에 대해서는 실명확인만 거치도록 하고 차명거래 자체를 징벌하는 건 범죄행위에 따른 개별법의 규제를 따르는 방식이다.

각 개별 법에서 구체적 처벌 조항도 수차례 보완을 거쳐 모두 마련됐다. 예컨대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금융실명법에 따라 실명 확인된 계좌에 보유하고 있는 재산은 명의자가 그 재산을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해 증여세를 부과한다.

만약 금융실명제법 개정으로 차명거래가 전면 금지된다면 원칙적으로 범죄 연루와 상관없이 차명거래 자체가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 이른바 '선의의 차명거래' 문제다.

금융권 관계자는 "동문회, 부녀회, 곗돈 등 각종 친목모임 회비 관리에서부터 가족 간의 일상적 거래와 자녀명의 통장 등이 사실 다 차명거래"라며 "대다수 국민들이 범법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상적 거래가 힘든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를 위해 지인들이 명의를 빌려주는 경우도 차명거래다. 정치자금, 부조금 등 각종 자금모금 거래에서도 중간에 다른 사람 계좌를 거치면 이 역시 차명거래에 걸린다.

법 개정을 주장하는 쪽에선 예외를 두면 된다는 입장이다. 박민식 의원은 "현행 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촘촘히 규제를 마련하자는 것"이라며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외를 두겠다"고 말했다. 김기준 의원도 "실명법의 본래 취지를 살리자는 것"이라며 "선의의 차명거래는 상식선에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법을 적용할 때 일일이 선의의 차명거래 여부를 규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한 전직 관료는 "극소수의 범죄자 때문에 모든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며 "수많은 금융거래 유형을 하나하나 분류하는 건 불가능한 만큼 실명법이 아닌 행위에 따른 개별법의 규제를 보다 더 강화하는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도 차명거래를 전면금지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다만 테러 방지 등을 위해 금융회사의 고객확인의무 등을 강화하는 추세다.

 

 

'20년 숙제' 차명계좌, 확인된 돈만 5조.."깃털도 안돼"

[미완의 실명제 20년 ①-탈세주범 차명계좌 털고 가야]

머니투데이 김세관 기자|2013.08.06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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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DB.
지방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한의사 A씨는 매년 6000만 원 가량의 소득세를 신고·납부하는 고액 납세자다. 그러나 사실 6000만 원의 세금은 내야할 돈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A씨는 현금영수증을 끊지 않은 매출을 장부에 올리지 않고 친척 명의의 통장에 넣어 관리하는 방식으로 탈세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A씨는 과세당국에 의해 차명계좌가 들통 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크지 않다. 어차피 차명계좌 주인들이 동의를 했기 때문에 적발돼도 밀린 세금과 가산세 일부만 내면 된다. 단지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금융실명제가 전격 발의된 지 20년이 지나 자금세탁방지와 차명거래 처벌 등을 위한 법률들이 자리를 잡았다고는 하지만 이처럼 차명계좌는 여전히 사회 지도층과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탈세 '필수 아이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부분은 느슨한 법망을 통과해 처벌대상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500여 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약 3000억 원의 재산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이 되긴 했지만 이는 액수가 워낙 컸기 때문에 일어난 '이례적인' 처벌이다.

현행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차명계좌를 개설했다면 처벌 대상이지만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합의했다면 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매출 누락으로 인한 밀린 세금과 가산세를 내면 다시 돈을 찾아올 수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조사를 통해 들통난 차명계좌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근절안이 없어 차명거래가 여전하다"며 "자체 프로그램으로 적발된 차명계좌는 관리하고 있지만 그 외에 얼마나 차명계좌가 있을 지는 추정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2011년 6월 기준 국세청이 자체적으로 시행중인 차명재산 관리프로그램으로 관리하고 있는 차명재산은 총 3만1502건에서 4조7344억 원에 달한다. 세무조사나 체납징수 과정에서 파악된 차명재산 가운데 실명화되지 않고 여전히 차명으로 남아 있어 지속적인 감시대상이 되고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처럼 탈세의 근본적인 원인 역할을 하고 있는 차명계좌를 통한 차명거래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근절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관련 법률 개정 움직임이 활발해 지고 있다.

지난 4월 조정식 의원과 6월 이종걸 의원이 ‘금융실명제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안철수 무소속 의원도 1호 법안으로 관련 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6월 발의한 민병두 민주당 의원의 법안에 포함된 차명거래 제재안의 수위가 높다. 민 의원은 '부동산 실명제법'의 원리를 차용해 △모든 금융거래자에게 실명의무 부과 △차명인에게 증여 의제 적용 △실질권리자는 차명인 등에게 자산 및 이익반환청구 금지 △전체가액 기준 30% 과징금에 10%(1년 차), 20%(2년 차) 이행 강제금 적용 등을 일명 '차명거래 금지법'에 적용했다.

민병두 의원실 관계자는 "차명계좌는 어디에 얼마가 쌓여 얼마의 세금을 탈루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현행법상 차명계좌는 실제 돈의 주인이 차명계좌 명의자에게 증여를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며 "아예 증여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증여의제 원칙을 적용하고 증여 받은 사람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차명거래를 통한 탈세가 줄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친목모임 회비 관리나 자녀 명의 통장 등 선의의 차명계좌 보유도 있어 극히 예외적인 규정도 둬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전체 차명계좌의 10%도 안 될 것으로 보인다. 탈세나 비자금 조성을 위한 차명거래는 과감히 처벌해야 한다" 말했다.

민 의원실 관계자도 "선의에 해당하는 차명계좌는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이 모두 사회에 차명계좌 사실이 노출돼도 떳떳할 것"이라며 "선의와 선의가 아닌 것을 구분하는 하나의 원리를 정해 법안에 반영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차명거래 금지, "제2의 건국" vs "온국민 범죄자"

[미완의 실명제 20년 ②-'선의의 차명거래' 구분 가능할까 ]

머니투데이 박종진 기자|2013.08.07 06:00

"제2의 건국이라 할 만큼 획기적인 조치다" (세무당국 관계자)
"자칫 온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

정치권이 추진 중인 금융실명제법 개정을 앞두고 기대와 우려가 뒤섞이고 있다. 차명거래를 금지시킴으로써 지하경제 양성화에 일대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과 '선의의 차명거래'를 일일이 구분할 수 없어 결국 대다수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갈 수 있다는 시각이 엇갈린다.

(☞본지 8월5일자 1면 보도 20년된 금융실명제 수술대에…'차명거래 금지' 무조건 선인가 참고)

사실 누구나 차명거래에 노출돼 있다. 차명거래를 금지하면 본인도 모르게 범법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먼저 대표적 차명거래 유형은 가족 간 거래다. 남편의 월급을 아내 명의 계좌로 관리한다거나 교육 목적으로 부모가 자녀 명의의 통장을 만들어주는 경우, 결혼자금 등 성인 자녀의 금융자산을 부모가 관리하는 경우 모두 차명거래다. 예금자 보호를 받기 위해 여러 저축은행에 가족명의로 나눠서 맡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각종 계나 부녀회, 동문회 등 온갖 친목모임의 회비관리도 엄밀히 말해 차명거래다. 문중이나 종교단체의 자산 관리자 명의의 거래도 포함된다.

자금관리 능력이 없는 이를 대신해주는 거래도 차명거래다. 고아나 심신상실자 금융자산을 보호자, 위탁시설 대표 등의 명의로 관리해주는 것, 파산관재인 명의로 관리하는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인의 이름을 빌려 생계형 자금 등을 맡기는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들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밖에 △사업자 등록 전 대표자 명의로 관리 △법원 공탁금, 투자자 별도예탁금 △소비자 피해보상금 지급을 위한 법원의 예치금 관리 등 임시보관과 예치금 성격의 거래도 차명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다못해 부조금을 대신 내주는 경우도 계좌로 받아 전달했다면 차명거래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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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을 추진하는 쪽에서도 이처럼 범죄와 무관한 '선의의 차명거래'는 예외로 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일찌감치 관련 법안을 제출한 김기준 의원(민주당)은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근 법안을 발의한 민병두 의원(민주당)의 개정안에는 △배우자 명의 거래 △종중(宗中) 보유 금융자산 거래 △법인이 아닌 단체의 위임을 받은 자가 실명으로 하는 거래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금액을 넘지 않는 거래 등을 예외 조건으로 규정했다. 기타 또 다른 예외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식이다.

법 개정에는 차명거래를 원천적으로 차단해 개별법의 사각지대를 보완하자는 취지도 담겼다. 현재 우리 법체계는 탈세나 범죄행위에 연루된 차명거래를 처벌하고 있다. '특정금융거래보고법'(FIU법),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조세범처벌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이다.

곧 실명제법 개정안 발의를 앞둔 박민식 의원(새누리당)은 "법마다 구성요건이 다 정해져 있어서 사각지대가 많이 있다"며 좀 더 촘촘하게 그물망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조세범처벌법을 적용해 차명거래자를 처벌하려면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써'(3조1항)와 같은 행위 구성요건을 갖춰야해 허점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우선 현실적으로 일일이 '선의의 차명거래'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앞서 열거한 사례처럼 거의 모든 우리나라 국민들은 다양한 차명거래를 이미 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수백, 수천가지의 경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융관료들도 예외를 과연 대통령령으로 모두 정할 수 있을지에 회의적인 시각이다.

설사 최대한 예외를 규정해 정리한다고 하더라도 이것 역시 문제다. 예외가 많아지면 질수록 법 개정의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수많은 예외를 두면 애초 막고자했던 차명거래조차 이런 예외를 가장해 활개 칠 수 있다. 이른바 '선의 속에 숨은 악의'다.

한 전직 관료는 "극단적 예로 가족 간의 거래를 예외로 인정한다면 조직폭력배와 보험사기단 같은 가족 전체가 범죄에 연루된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선의와 악의를 구분하려면 결국 검찰이나 경찰 같은 수사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재도 수사결과에 따라 개별법에서 차명거래자들을 처벌하고 있다. 굳이 전 국민의 금융거래를 대상으로 하는 실명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실명법 개정 문제는 모든 국민의 생활에 큰 불편을 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신중히 접근해 다양한 토론과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차명거래를 처벌하는 여타 개별법들을 다듬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차명거래 금지 "반드시 해야" vs "현실적 불가"[미완의 실명제 20년 ③-조세 vs 금융전문가 맞짱 지상 토론]안창남 교수-김자봉 연구위원 머니투데이 | 박종진|김세관 기자 | 입력2013.08.08 05:48

기사 내용

[머니투데이 박종진기자][편집자주] 금융실명제 실시 20주년을 맞아 정치권을 중심으로 실명법을 손질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사실상 허용돼온 차명거래를 금지시켜 거래의 투명성을 더욱 끌어올리자는 게 골자다.

반면 금융권에서는 범죄와 연루된 차명거래는 이미 처벌대상인데 차명거래 자체를 금지시키는 건 별다른 효과 없이 혼란만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명법 개정 논란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는 두 전문가의 얘기를 들어본다.

[[미완의 실명제 20년 ③-조세 vs 금융전문가 맞짱 지상 토론]안창남 교수-김자봉 연구위원]





사진 왼쪽부터 안창남 강남대 교수,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정치권이 추진 중인 금융실명법 개정안에 따라 차명거래 금지 여부가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전문가들도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조세정의 원칙을 중시하는 조세전문가와 시장의 효율적 작동을 전제로 하는 금융전

문가의 시각이 엇갈린다.

엄격한 차명거래 금지 방안을 도입해야한다는 세법 전문가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그동안 법이 예외를 너무 풀어줬다"며 "차명계좌 원 소유주와 명의 대여자 모두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금융실명제도를 연구해온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기관이 차명의 선의와 악의를 구분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차명거래 금지보다) 행위 규제하는 법들에서 차명거래 관련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정리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차명거래 금지 논란의 핵심을 안 교수-김 연구위원의 지상 토론을 통해 정리한다.

―금융실명제가 도입된지 20년이 됐다. 그동안 실명제가 거둔 성과는

▲(안)일단 금융거래 투명성이 좋아졌다. 이를 통한 세원양성화에도 금융실명제가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차명도 실명'이라는 선언 아래 예외적으로 인정됐던 차명계좌가 지금은 너무 악용돼서 탈세의 온상이 됐다. 사회적 문제다. 금융실명제 시행 20년을 맞아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김)실명제 도입으로 가명과 무기명 거래가 완전히 소멸됐다. 그만큼 거래관계가 투명해지고 계약관계가 명확해졌다. 불법자금 수수, 비자금 조성, 탈세와 관련된 범죄에 일정 부분 제동이 걸렸다. 이후 종합소득세도 도입돼 소득수준에 비례한 과세도 가능하게 됐다.

―실명제 실시에도 불구, 차명거래가 허용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안)법이 예외조항을 너무 광범위하게 풀어줬다. 대법원이 차명계좌의 돈을 계좌 명의인의 돈이 아니고 입금한 사람의 돈이라고 지금까지 판결해 왔다.

그러나 최근 판례에서는 세법상의 목적으로 변경되고 있다. 차명계좌에 있는 돈의 권리는 일단 예금 명의자에게 있다고 재정리 되고 있다. 금융실명제 당초 취지대로 변경되는 과정 중이다.

▲(김)실명제 도입 당시 차명거래 금지는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명의신탁 문화가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이뤄져왔다. 금융, 부동산뿐만 아니라 실물 경제에서도 차명거래가 굉장히 많다. 회사나 다른 가족이 비용을 내는 핸드폰도 다 차명이다.

또 차명의 선의와 악의가 구분이 안 된다. 선의의 경우도 스스로 안 밝히고 악의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악의를 잡더라도 정확한 죄가 드러나지 않으면 입증이 안 된다. 기술적 측면에서 제도 도입 어렵다.

―정치권이 추진하는 실명법 개정안은 타당한가. 선의의 차명거래를 구분해 예외로 둘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안)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현금 뿐 아니라 주식, 채권 등도 마찬가지다. 차명계좌 원 소유주와 명의 대여자 모두 처벌하는데 찬성한다.

선의의 차명계좌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10%도 되지 않고 금액으로는 1% 수준에도 못 미칠 것이다. 선의의 차명계좌는 예외규정을 두고 과세관청이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면 된다.

▲(김)이미 유기적 관계를 통해 관련법끼리 그물망이 형성돼 있다. 현행법으로도 조세범처벌법 등 다양한 법률에서 범죄 연루 차명거래에 대해 처벌조항이 있다. 차명은 범죄를 저지르는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범죄 수단을 대상으로 한 처벌 규정이 무슨 의미인가. (범죄를 밝히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는 뜻)

선의의 차명거래를 구분하는 것도 어렵다. 형사처벌 등 규제를 도입할 때는 정확한 지정 여부가 굉장히 중요하다. 예외로 둘 수 있는 특정 거래가 딱 지정이 돼야 한다. 하지만 선의의 차명 종류는 너무 많다.

또 현재도 유권해석에 의하면 차명은 못하게 돼 있다. 적어도 금융기관이 알고도 차명을 만들어줄 수는 없다. 차명을 알선하면 처벌할 수 있다. 대법원 판례, 즉 사법해석에서도 원칙적으로 차명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유권해석이나 사법해석 모두 차명을 금지하거나 불인정하는 입장을 이미 가지고 있다.





―차명거래를 통한 범죄를 엄단해야한다는 방향에 이의는 없을 듯 하다. 실명법 개정안의 보완책, 혹은 다른 해법은 없나.

▲(안)다른 대안은 또 다른 편법을 야기할 수 있다. 양쪽(차명계좌 원 주인과 명의 대여인) 다 처벌하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좋다. 명의 대여인은 공짜로 돈을 받았으니 그 출처를 물어 증여세를 내게 하고 차명계좌임이 증명되면 세금은 물론이고 과태료나 형법 적용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김)범죄에 활용되는 차명거래를 없애야한다는데 아무도 이의가 없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가 문제다. 외국에 차명거래 금지법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차명거래 관련된 규제에서 누락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할 필요가 있다. '특정금융거래보고법'(FIU법),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조세범처벌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 행위 규제하는 법들에서 차명거래 관련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정리해야 한다.

―차명거래가 금지되면 어떤 효과가 예상되나.

▲(안)일단 경기가 다소간 움츠러들 가능성은 있다. 제재가 시행되기 이전에 돈을 인출해 다른 투자처를 찾아볼 것으로 보지만 최근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서 마땅한 출구가 없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우리사회를 더 깨끗하게 변화시킬 것이다. 어차피 돈은 돌고 돈다. 금융은 물론이고 지하경제 양성화에도 기여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김)전면금지하면 상당히 불편할 것이다. 금융을 문제 삼으면 실물 차명거래도 다 건드려야 할 것이다. 예외를 인정하더라도 따지는 과정이 아주 복잡할 것이다. 예외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딱 특정거래 유형을 지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되고 저건 안 되고 다 세세하게 분류해야 한다. 힘들다.

머니투데이 박종진기자 fre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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