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정책함정에 빠진 한국경제 하

ngo2002 2013. 6. 12. 17:11

소비·기업투자 살릴 4대 해법
① 돈 풀어도 돈 안도는 中企에 `돌직구` 맞춤지원을
② 정책규제 대못 뽑자…독일 스타트업 정책금융처럼
③ 재정 건전성 유지를…과도한 재정정책은 毒 될수도
④ 신뢰주는 정책 필요…경제심리 살린 Fed서 배워라
매경·LG硏 공동기획
기사입력 2013.06.11 17:22:04 | 최종수정 2013.06.12 08:53:00

◆ 정책함정에 빠진 한국경제 (下) ◆

정부가 전방위적인 경제살리기 대책을 쏟아냈다. 정책 효과 발생의 시차를 감안하면 아직 정책의 성패를 판단하긴 이르다. 하지만 정책이 실물경제를 움직이는 연결고리인 민간의 심리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정책함정에 빠져 있다. 불확실한 미래와 팍팍한 돈벌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뒤섞이면서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미루고 있다.

◆ 환부에 직접 약을 발라라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 출신인 금융권 인사는 최근 정책함정 현상에 대해 "상대편의 밀집 수비로 골대 앞 패스가 이뤄지지 않을 때는 직접 중거리슛을 때려야 한다. 시대가 변하는데 먹히지 않는 옛날 정책을 그대로 고수하면 골을 넣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존 정책 파급 경로상의 연결고리가 약해졌다면 중간을 건너뛰고 직접 정책 목표지점에 돈을 넣으라는 얘기다.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한국은행은 `돈을 풀어도 그 돈이 필요한 사람(기업)에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문제에 봉착했다. 돈을 풀어도 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에는 대출이 안 되고, 우량 대기업은 대출이 필요 없는 상황이라 금리 인하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이럴 때는 광범위한 효과를 내는 통화정책과 더불어 돈이 돌지 않는 특정 부문과 계층에 대한 국지적인 재정ㆍ신용정책이 필요하다. 총액한도대출 카드를 개선ㆍ확대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세제 혜택을 줄 때도 철저한 수요조사를 통해 정책효과를 거둬야 할 부문에 그들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미세정책을 써야 한다.

◆ 정책이 파급될 길을 막힘없이 터주라

곳곳에 숨어 있는 정책 파급 경로상의 구조적 장애물을 걷어내는 일도 시급하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중소기업을 보유한 독일은 재건금융지주(KfW) 시스템을 통해 활발한 중기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독일 3대 은행인 KfW는 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개발은행으로 일절 수신 유치를 하지 않고 정책금융 역할을 맡고 있다.

KfW는 통상 기업가대출(Entrepreneur Loan)의 경우 취급 시중은행이 100% 손실을 부담하게 하지만, 창업기업 대출(Start-up Loan)은 KfW가 80%의 손실을 떠안는다. 시중은행들이 신용위험이 높은 창업 중소기업에 대출을 꺼리는 점을 감안한 전향적인 조치로 큰 성공을 거뒀다. 한편 한국은행은 지난 4월 3조원 규모 기술형 창업지원 총액한도대출을 신설했지만 여전히 시중은행이 100% 위험부담을 지는 구조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가 낮아질 때는 대출금리보다 예금금리가 더 가파르게 떨어지고 금리가 오를 때는 반대가 되는 시중금리 비대칭성을 개선하지 않으면 금리정책으로 민간소비를 움직일 수 없다"며 "저금리에 돈이 많이 풀려도 비우량 회사채 시장이 살아나지 않으면 중견기업 자금난은 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빚이 많은 정부는 성장을 방해한다

정책 효과는 그 나라의 재정건전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빚이 많은 정부가 재정정책을 확대하면 국민은 향후 자신의 세금부담이 커질 것을 알아채고 지갑을 닫기 때문이다. 부채가 많은 정부가 재정정책을 공격적으로 펴다 보면 국가신용등급 하락으로 전반적인 이자(리스크프리미엄) 수준이 높아져 민간 소비와 투자를 줄이는 구축 효과가 강해질 수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2008년 이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가 60% 이상인 국가들의 재정승수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단기적으로도 거의 효과가 없었고, 장기 누적재정승수가 -0.78로 낮아져 성장에 오히려 방해가 됐다.

이동은 KIEP 국제거시팀장은 "재정ㆍ통화정책의 최대 목적은 경기사이클의 변동성을 완화하는 데 있다"며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경기침체기나 버블 상황에서 손(정책)도 써보지 못하고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정건전성의 급격한 악화를 동반하는 재정정책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한은과 정부, 정책은 신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제로금리 상황에서 고육지책으로 `무제한` 양적완화와 선제적 안내(Forward Guidance)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경제심리를 살리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향후 어느 조건하에서는 지속적으로 돈을 풀겠다는 의지를 표현함으로써 경제주체들에게 신뢰를 심어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경제전망과 금리결정에 있어 지그재그 행보를 보였던 한국은행과 한시적 세금감면 조치로 부동산 시장을 살려보겠다며 간을 보고 있는 정부는 `정책은 신뢰다`는 격언을 곱씹어 봐야 한다.

[전범주 기자]

정책함정에 빠진 한국경제 / 시리즈 더 보기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민영 LG硏 수석연구위원, `경제 기초체력`키울 정책 펴야
기사입력 2013.06.11 17:22:15 | 최종수정 2013.06.11 19:48:43

◆ 정책함정에 빠진 한국경제 (下) ◆

도처에 만연한 `정책함정`의 근저에는 체념과 불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공포심리가 지배적이었다면 이후 무기력 단계를 거쳐 지금은 쉽사리 살아나지 않는 수요와 저성장에 지친 모습이다. 거품경제의 방조자 또는 공범 혐의가 더해지면서 정부의 신뢰도 타격을 입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인구 고령화로 저성장이 불가피하다는 숙명론이 확산되고 있다. IMF 위기 이후 절반 수준으로 낮아진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글로벌 위기로 또다시 반 토막이 나면서 자칫 2~3% 성장이 고착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선 정책 목표의 공감대 형성과 정책 일치, 그리고 일관성 있는 추진도 중요하다. 날로 다양해지는 정책 수요에 대한 세심한 접근도 긴요하다. 이해관계 조정이 충분치 않거나 일관성에 대한 신뢰가 낮을 경우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사장되게 마련이다.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 혹은 신뢰 수준은 경제력 대비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애초 취지가 무색해질 정도로 수정을 거듭하거나 반대로 발등의 불만 끄려는 일회성 정책이 양산되면서 신뢰를 잃은 것이다. 국민 신뢰를 잃으면 정책 비용이 늘어나고 효과는 떨어진다.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가운데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IT 산업을 중심으로 산업 지형이 바뀌고 있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데 정책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정책적 일관성과 추진력으로 신뢰를 회복해 나가는 가운데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되돌릴 수 있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신민영 LG硏 수석연구위원]



 

정책함정 빠진 한국경제
금리 내려도 되레 소비 줄이고 파격 부동산 대책도 반짝효과
기사입력 2013.06.10 17:34:32 | 최종수정 2013.06.11 10:31:46

"과연 그래서 내 살림살이는 나아지는 건가?"

국책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소연 씨(가명ㆍ30)는 올해 초부터 나왔던 각종 경기부양 정책의 효과에 대한 신문기사와 자료를 매일 접하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17조원의 추경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중 12조원은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한 것이고, 나머지 5조원도 2조원가량이 4ㆍ1 부동산 대책에 따른 지방세수 감소분을 지원하기 위해 나간다고 하니 자신에게 돌아오는 몫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한국은행에서 금리를 인하했다고 하는데 당장 집을 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위험한 때 카드빚을 내서 소비를 할 것도 아니니 자신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대한민국이 정책 함정(Policy Trap)에 빠졌다.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려도 국민은 지갑을 열지 않는다.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4ㆍ1 부동산 활성화 대책에 대한 시장 반응도 `효과를 잘 모르겠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새로 집을 사거나 더 나은 집으로 이사가겠다는 국민은 얼마 되지 않는 반면, 아예 집을 살 의향이 없다는 국민은 점점 늘고 있다.

정부는 추경을 편성했다가 나중에는 `추경으로 어그러진 재정건전성을 2017년까지 회복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중에 추가로 돈을 풀겠다는 의지를 의심케 만들었다.

매일경제신문과 LG경제연구원이 엠브레인을 통해 대한민국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5월 말 유ㆍ무선 설문조사를 한 결과, 금리가 낮아져도 소비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의견이 68.8%에 달했다. 소비를 늘리겠다(9.4%)는 답변보다는 줄이겠다(18.5%)는 답변이 두 배가량 많았다. `금리 인하→민간소비 증대`라는 기존 통화정책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이자소득으로 생활하는 은퇴 후 노년층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 가계부채를 지고 있는 저소득층의 경우 제2금융권과 사금융 부채가 많아 기준금리 인하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는 점 때문으로 분석된다.

4ㆍ1 부동산 대책이 나온 이후 정부가 꺼내 든 부동산 부양책의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의견이 69%를 차지했고, 이번 4ㆍ1 부동산 대책 효과도 금방 사그라질 것이라는 의견이 60%를 넘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최근 사석에서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선진국에서도 나오고 있다. 그때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뜯어봐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글로벌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각국의 환율 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대한민국 경제 사령탑의 정책이 국민에게 먹히지 않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와 한은이 정책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수립 당시부터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 꼼꼼히 정책을 세우고 한번 공표한 정책은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뢰와 심리가 정책의 생명력을 좌우한다는 얘기다.

■ <용어설명>

▷ 정책함정(Policy Trap):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ㆍ통화ㆍ부동산 정책을 펴도 민간심리가 움직이지 않으며 함정에 빠진 것처럼 정책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 케인스는 시장에 돈이 넘쳐도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을 유동성 함정으로 표현했다.

[전범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