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이대 나온 대기업 차장, 그녀는 왜 사표 던졌나

ngo2002 2013. 4. 26. 08:42

이대 나온 대기업 차장, 그녀는 왜 사표 던졌나

ㆍ2013 여성 일자리 보고서 - 전업주부 선택한 조수인씨

당당했다. 자녀 때문에 정면 사진은 꺼렸지만 움츠리지도, 숨지도 않았다.

조수인씨(가명), 38세. 초등 2년생 아들을 둔 엄마다. 2009년만 해도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직원이었다. 그러던 그가 전업주부를 선택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출산휴직 후 인사평가 F, 승진도 남자 동기에 밀려
출세보다 아이 위해 사표… 육아 때문 재취업도 무리


주부 조수인씨가 지난 8일 하교하는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가고 있다. | 서성일 기자


1997년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해외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이곳저곳 입사원서를 냈고, 국내 굴지의 재벌계 해운사에 입사했다. 여성 공채 2기. 당시 입사자는 총 60명. 이 중 여성은 9명이었다.

신입사원 연수에서 전체 1등을 하고 고위 임원 비서실로 발령받았다. 2년 뒤 마케팅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해운사의 영업직은 화물주인 글로벌 기업과 서비스 운송계약을 체결하고 그들을 관리하는 일이다. 업무는 적성에 맞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해운기업, 달러를 벌어들인다는 자부심도 컸다. 입사 4년 만에 대리. 남자 직원들과의 경쟁 끝에 2002년부터 2년간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는 즐거움도 누렸다. 영업실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현지에서 과장 승진. ‘여풍’이 보통명사화되면서 회사 고위층에서 여성 임원을 만들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첫 여성 임원이 되겠다는 꿈을 꿨다.

2004년 싱가포르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뒤 결혼하고,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이 과정에서 출산·육아휴직 6개월을 신청했다. 당시 법이 규정한 기한은 1년.

출산휴가 3개월이 끝나갈 무렵 회사에서 복직 시점을 묻는 연락이 왔다. 나머지 3개월을 쉬고 복직하겠다고 답변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평가가 있었다. 등급 F에 연봉 250만원 삭감. 팀원 12명이 아무리 일을 못했어도 쉬다 온 너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출산의 대가는 가혹했다. 팀에서 누군가는 F를 받아야 한다면 희생할 수밖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듬해는 차장 승진 시기였다. 남자 동기들은 예외 없이 승진했지만 누락됐다. 사규상 출산·육아휴직 6개월을 쓰면 고과에서 3점이 감점된다. 이번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여자 후배들과 함께 문제를 제기해 해당 사규를 없앴다. 그리고 동기들보다 한 해 늦은 2007년 차장을 달았다.

회사가 달리 보였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직원에게는 중요한 업무가 덜 가고, 육아 때문에 퇴근을 일찍 하거나 회식에 빠지는 여직원들은 주변부로 밀려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들 스스로도 위축됐다. 말로만 듣던 유리천장이었다. 글로벌 기업이란 말은 허울처럼 여겨졌다. 금융위기로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자 회사는 2009년 명예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고민에 빠졌다. 자녀 양육은 시부모에게 맡기고 오전 6시30분이면 출근해 오후 8시가 돼야 퇴근하는 시절. 아이 때문에 고생하는 시부모, 바쁜 엄마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 공무원인 남편은 아이를 챙길 형편이 되지 못했다.

내가 그만두면 모두가 편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일하는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만큼 내 아이는 꼭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다. 직장에서 버티면서 부장이 되고 임원이 되려면 아이가 아플 때 모른 척해가며 밥먹듯 야근을 하고 술자리에 가야 한다. 그렇게까지 희생하면서 올라가야 할까. 나의 출세와 아이의 어린 시절을 바꿀 수 있을까. 결론을 내렸다. 사직서를 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함께 입사했던 여자 동기들은 한 명도 남지 않았다. 모두 가정주부로 바뀌었다.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일에 대한 열망에 비정부기구(NGO) 같은 곳에서 보람 있는 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1년 쉬고 비정부기구 입사시험을 봤다. 면접관은 대기업을 그만둔 이유를 물었다. 육아 때문이라고 답했다. 면접에서 탈락했다.

시의회에서 계약직 보좌관 일을 1년 했다. 집 근처였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에는 퇴근할 수 있어서 가능했다. 지난해에는 다국적기업 사회공헌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며칠 출근했지만 종일 근무와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포기했다. 현재는 전업주부로 지내며 이따금씩 지역 시민단체에서 활동한다.

퇴직을 후회하지 않고 지금의 삶도 충분히 행복하다.

다만 가끔은 당시 조금만 더 버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쯤 부장이 됐을 것이다. 그룹 오너가 여성인 회사지만 사내에 아직 여성 임원은 없다. 아이도 어떻게든 컸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퇴보하고 있는 게 아닐까. 되돌아갈 수 없는 선택이지만 때론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산업부)·김재중(정책사회부)·남지원(사회부)·이혜인(전국사회부)·이재덕(경제부) 기자


<특별취재팀>


 

입력 : 2013-04-25 22:35:17수정 : 2013-04-25 23:50:42

[왜 지금 ‘여성 일자리’인가]‘여성 일자리 생태계’ 이대로 좋은가

“내 일자리도 없는데.”

여성 일자리 얘기를 꺼내면 남성들은 종종 제로섬 방식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아랫돌(남자 일) 빼서 윗돌(여자 일) 괴자는 것은 아니다. 번듯한 여성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시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한 단계 더 올라서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다.

지난해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73%이다. 하지만 여성은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24년 만에 최저치다.

언제까지 이런 구조로 버틸 수 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39%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평등의 이유만이 아니라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라도 성 격차를 줄이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을 남성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면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한국 여성의 잠재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1990년 31.9%이던 대학 진학률은 2009년 82.4%로 남성(81.6%)을 앞지른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위에는 젊고 똑똑한 여성이 많다. 공직사회 등 일부에서는 여풍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그러나 여성이 주로 일하는 중소기업에서는 육아휴직은커녕 출산휴가마저 보장받기 어렵다.

여성에 대한 태도는 현재와 과거가 엉켜 있다. 현실 속의 맞벌이와 이상 속의 현모양처가 공존한다. 직장에서도 겉으론 ‘여성 우위’ 시대를 말하지만 속으로는 ‘남녀는 엄연히 다르다’고 인식한다. 여성이 더 일하는 것은 크게 보면 남성의 짐을 더는 일이다. 일·가사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슈퍼맘의 개인기에 맡기는 건 근본 해법이 아니다. 양질의 돌봄 서비스를 늘려 양육 부담은 줄이고 새 일자리도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부인의 경력 단절을 걱정한다면 남편이 대신 육아휴직을 쓰면 된다. 자연계에는 암수가 절반씩 새끼를 돌보는 종도 많다. 여성의 일자리 환경을 좋게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의 난제인 저출산·고령화·저성장 문제를 푸는 지름길이다. ‘암탉이 맘껏 울 수 있도록’ 여성 일자리 생태계를 새로 짜야 할 때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산업부)·김재중(정책사회부)·남지원(사회부)·이혜인(전국사회부)·이재덕(경제부) 기자


<특별취재팀>

입력 : 2013-04-25 22:30:54수정 : 2013-04-26 00: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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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여성 일자리’인가]출산휴가·육아휴직 할 수 있는 여성은 100명 중 13명꼴

한국 여성은 몇 명이 어디에서 어떻게 경제활동을 하고 있을까.

고학력 여성이 많아졌지만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은 공무원, 대기업 종사자, 교사 등 전문직은 10명에 한 명 정도에 불과하며 상당수는 열악한 일자리에서 버티거나 그마저도 밀려난다. 여성들은 비정규직 문제와 임금차이까지 더해 한국 노동시장의 온갖 문제를 떠안고 있다.

25일 통계청과 고용노동부 등의 통계를 종합하면 지난해 기준 국내 15세 이상 일할 능력이 있는 여성은 2125만4000명으로 남성보다 92만6000명이 많다. 그러나 취업했거나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경제활동 여성은 1060만9000명으로 49.9%뿐이다. 73.3%가 경제활동을 하는 남성과 차이가 크다. 능력이 있지만 바깥일을 안 하는 비경제활동 여성은 1064만5000명으로 남성(543만7000명)보다 약 2배나 많다. 2011년 기준으로 남녀 전체 취업자는 2424만4000명이다. 여성은 1009만1000명(41.6%)이다. 여성 취업자의 73.6%는 임금근로자이고 자영업자가 15.5%, 나머지 10.7%는 무급가족종사자다.

상대적으로 직업 안정성이 높은 공무원 가운데 여성은 41.8%(41만3248명)이다. 경제활동을 하는 전체 여성의 4% 수준이다. 통상 대기업 분류 기준인 300인 이상 기업 종사자는 260만1525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 비율은 대략 27%(70만여명 정도)로 추정된다. 여성 경제활동 인구로 보면 7% 정도이다. 전문직의 경우 초·중·고교 여성 교원은 지난해 총 4만8999명으로 0.5%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성 의사·한의사·약사는 2010년 기준 20만6921명으로 경제활동 여성의 2% 정도다.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을 100명으로 가정해보자. 이 중 출산휴가·육아휴직을 ‘권리’로 누릴 수 있는 여성은 공무원·대기업 종사자·일부 전문직 등 13명 정도에 불과하다. 300명 이하 중소기업에 다니는 여성은 60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 중 여직원 복지가 상대적으로 나은 기업에 다니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의 차이는 크다. 후자의 경우 법적으로 보장된 출산휴가마저 눈치를 보거나, 육아휴직은 사업주의 선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특히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후자에 가깝다. 하위 26명군에 속하는 자영업·무급가족종사자는 출산휴가·육아휴직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룹이다.

성별 임금격차도 크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여성의 개인소득은 1669만원으로 남성 소득(3638만원)의 45.9%에 그쳤다.

남녀 임금차는 39.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5.8%)의 3배가 넘어 편차가 가장 컸다. 여성 100명 중 70명꼴로 지난해에 2000만원도 벌지 못했다. 50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린 여성은 5%에 불과했다.

[왜 지금 ‘여성 일자리’인가]1부 (1) 경력 단절

ㆍ10년 전 함께 입사한 여자 동기들, 지금은 열명 중 두명만 남아

강산이 한 번 변했다. 남자 동기생들은 절반이 퇴사했다. 여자 동기생들은 20% 정도만 남았다. 무엇이 그들을 떠나게 했을까. 여자 동기들이 남자들에 비해 더 많이 떠난 까닭은 뭘까. 2003년 재벌 계열사에 입사한 여직원 ㄱ씨(33)는 동기생 얘기를 떠올리면 감회가 남다르다.

ㄱ씨가 다니는 대기업은 10대 그룹에 속한다. 당시 그룹은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서 모두 554명을 뽑았다. 남자 486명, 여자 68명이 18개 계열사별로 입사했다. 경향신문은 해당 그룹의 도움을 받아 2003년 입사자들의 10년 전과 후를 비교해봤다.

우선 인원 변화. 2003년 입사자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인원은 45%인 254명이다. 이 중 남자는 239명(49.2%)이고 여자는 15명(22%)만 남았다. 10년 동안 남자 동기는 10명 중 5명이 퇴사했지만 여자 동기는 10명 중 8명 가까이가 회사를 떠난 것이다. 남성 위주인 건설·화학 업종 같은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80%에 가까운 여성 퇴사율은 이례적이다. 계열사별로 보면 가장 많이 뽑은 보험·증권사의 경우 2003년 총 230명(남 203, 여 27명)이 입사했다. 이 중 남자는 95명(46.8%), 여자는 6명(22.2%)이 남았다.

화학·제약·자재 관련 4개 회사의 남자 동기생은 86명 중 44명(51.2%)이 남아 있지만 여자 동기생은 12명 가운데 1명(8.3%)만이 있다. 유통·문화 계열사 3곳에서는 여성 8명이 입사했으나 현재 1명(12.5%)만 재직 중이다. 무역·기계 등의 계열사에서는 2003년 여자 신입사원이 모두 나갔다. 여자 동기생 퇴직자 비율이 남자보다 1.5배 이상 높은 이유는 다른 회사나 직종으로 자리를 옮긴 ‘일반적인 이직’ 외에도 결혼과 출산, 육아에 따른 퇴사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자녀양육 부담이 커서 일과 가사를 병행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 탓이다. 또 직장 내 역할 제약 같은 보이지 않는 차별이나 남성 중심적인 기업문화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

보험 계열사의 경우 입사자 12명 중 5명은 이직했고, 7명은 전업주부가 됐거나 유학을 떠났다. ㄴ씨는 다른 직종으로 이직을 고민하다가 결혼하고 자녀가 생기면서 그만뒀다. 특정 계열사 여자 동기생 4명 중 유일하게 남은 ㄷ씨는 “대부분 출산, 육아로 퇴사한 것으로 안다”며 “후배 여직원도 처음 들어왔을 때는 본부장이 꿈이라고 했는데 아이 두 명을 낳더니 힘들어서 안되겠다며 나가더라”고 말했다. 계속 다니는 여자 동기 중 상당수는 결혼을 했으나 아직 아이가 없거나, 미혼이었다. 직장일과 가사를 모두 감당하기 힘든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혼 3년차지만 아이가 없는 ㄹ씨는 “결혼한 여자들은 육아 때문에 초기에 회사를 나가는 편”이라며 “한참 일을 많이 해야 하는 시기여서 출산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는 상태이고 장차 막연하게 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당장은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미혼인 ㅁ씨는 “독신을 고집하는 건 아닌데 일하느라 바빠서 늦어졌다. 결혼한 뒤에도 회사는 계속 다닐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 입사했을 때는 여직원이 거의 없어서 어떻게 행동할지도 몰랐다”며 “10년 정도 지나니 여자 차장도 생기고 후배 여직원도 늘어나 여직원을 보는 시각과 문화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산업부)·김재중(정책사회부)·남지원(사회부)·이혜인(전국사회부)·이재덕(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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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4-25 22:30:34수정 : 2013-04-25 22: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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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지금 ‘여성 일자리’인가]아직도 “가사·육아노동은 아내 몫” 인식… 남편은 보조자 또는 방관자일 뿐

가사·육아노동의 ‘보조자’ 혹은 ‘방관자’. 남편들은 그 사이에서 애매하게 자리해 있었다. 여자 3호, 4호, 7호, 9호는 “남편이 집안일을 잘 도와준다”고 답했다. 남성들이 하는 가사·육아노동이란 ‘설거지’, ‘빨래개기’, ‘청소’, ‘아이들과 놀아주기’, ‘아이들 공부봐주기’ 같은 한정된 범위 내에서, 휴일이나 평일에 간간이 분담하는, 여성들의 말 그대로 ‘돕는’ 노동의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 여자 5호는 “휴일에 남편이 너무 피곤해한다. ‘우리 애들하고 어디어디 갈 예정인데 같이 갈까’ 슬쩍 물어보고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나와 애들만 나간다”고 말했다.

남편들은 이중적인 모습도 보인다. 여자 4호의 남편은 결혼 직전 “당신이 애들 뒷바라지, 내 뒷바라지하다가 나이 40, 50이 돼서 ‘내 인생 어디 갔느냐’며 후회하는 것은 싫다. 당신에게 맞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4호는 “가사가 엉망이면 애 아빠가 싫어한다”고 덧붙였다. 여자 9호도 “맞벌이 부부이기 때문에 집안일 분담하기, 양육 나눠하기는 필수지만 남편은 이를 전적으로 내 몫으로 여기고, 자기는 돕는다는 데 의미를 둔다”며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하는 ‘슈퍼맘’을 기대하다가도 집안일이 잘 안된다 싶으면 못마땅해 하는 게 남편들의 일반적인 심리”라고 말했다.

“양육은 아내 전담”이라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는 91학번 남자 동기들도 마찬가지이다. 일하는 아내가 있는 91학번 남성은 “가사는 분담하는 편이지만 아이 교육이나 학부모회, 공개수업 같은 학교 행사는 전적으로 아내가 챙긴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다니는 두 자녀를 둔 91학번 남성은 “아이가 아직도 어린데 클 때까지는 엄마가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며 “아이 교육을 위해서 아내가 취업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여자 4호는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고 시대도 바뀌었는데 여전히 남편과 아내를 바깥일을 하는 사람과 집안일을 하는 사람으로 나누려는 사회통념도 문제”라고 말했다. 남자가 녹색어머니회 교통지도를 하겠다고 회사 출근을 늦추면 당장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4호는 “학교 행사에 아빠가 못 가니 항상 엄마가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갈 수밖에 없다”며 “직장 내에 이런 통념이 바뀌지 않으면 ‘녹색어머니회’는 영원히 ‘어머니’라는 이름표를 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산업부)·김재중(정책사회부)·남지원(사회부)·이혜인(전국사회부)·이재덕(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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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4-25 22:29:59수정 : 2013-04-25 22:2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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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여성 일자리’인가]같은 때 태어나 같은 대학 학과 졸업… 18년 후 드러난 ‘남녀의 차이’

ㆍ91학번 그녀들의 ‘그 후’

대학 졸업 뒤 여성들의 삶의 경로는 어떻게 변할까. 좋은 남자와 만나 가정을 꾸렸을까, 아니면 직장을 얻어 일하고 있을까. 직장을 그만뒀다면, 그 까닭은 무엇일까.

경향신문은 한국 여성 일자리 문제의 최대 화두인 직장여성들의 경력단절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 서울 소재 중상위권 ㄱ대학 교육학과 91학번 졸업자들의 인생경로를 추적해봤다. 비슷한 시기(1972~1973년)에 태어나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나온 동기들이 사회에 나온 뒤 겪은 남녀 차이를 단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성 일자리 전문 연구자들이 통계분석이나 불특정 여성들을 심층 면접조사한 적은 있지만 조건이 같은 특정집단(코호트)을 추적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당시 91학번에는 여학생 18명, 남학생 12명 등 총 30명이 입학했다.

서울의 ㄱ대학교 교육학과 91학번 동기생인 박선민·원재정·김은희씨(왼쪽부터)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여의서로 벚꽃길에서 졸업 이후 겪어온 인생경로를 얘기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25일 현재 소재가 파악된 여자 동기는 16명이다. 이들은 1995년 졸업한 뒤 일반 사업체 정규직 노동자(중견기업, 연구소, 학원 등) 12명, 공무원(공공기관, 공립학교 교사) 3명, 자영업자(농업) 1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8년 후, 일반 사업체에서 정규직 노동자로 남아 있는 여성은 3명뿐이다. 일반 사업체 정규직 노동자 12명 중 자영업(의류업)으로 전향한 1명을 빼고 8명은 주부가 됐다. 주부 5명은 과외, 비정규직 학원강사 등 파트타임 노동을 겸하고 있다. 또한 농업에 종사했던 자영업 여성 1명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이동하면서 공무원은 4명으로 늘었다. 일반 기업에 입사한 여성들과는 달리 공무원 입사자들은 경력단절을 경험하지 않았다.

소재가 파악된 91학번 남성 10명 중 8명은 1997~2000년,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정규직 직원으로 입사했다. 이 중 2명은 중도에 퇴직해 입시학원·PC방을 차리고 자영업자가 됐다. 나머지 6명은 기업에서 과장, 차장, 상무 직함을 갖고 있다. 남성들의 사회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여성 동기들에 비해 높은 셈이다. 졸업 후 18년, 91학번 여성 동기생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 “임신 때문에 한 달 휴가를 내자
남자 선배들은 그 자리 누가 메우냐며 눈치를 줬고,
여자 선배들은 혼자 유난 떨지 말라며 면박을 줬다”
여자 5호 (주부·전 교육출판회사 사원)


(1) 첫번째 좌절, 남성 중심 조직

졸업 직후인 1995년 여자 1호는 50대 그룹 소속 ㄴ건설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었다. 대학 시절에는 부전공으로 조경학을 공부했다. 조경기사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컴퓨터 이용 설계(CAD)’에도 능했다. ㄴ사 최종면접에서 면접진은 “기술직은 관두고 비서로 일할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여자 1호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몇 년간 조경공부를 해왔는데 능력은 보려 하지 않았다. 설계뿐 아니라 현장업무, 노무자 관리도 자신 있다고 몇 번을 말했지만 믿지 않는 눈치였다”고 말했다.

낙방의 쓴잔을 몇 차례 마신 뒤 여자 1호는 중견 조경업체 ㄷ사에 사무직으로 입사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사내의 ‘유리벽’이었다. 여자 1호는 “내가 한 일이라고는 영수증 처리하고 사무비품 사오고 커피 타는 것뿐이었다”며 “입찰 설명회 참석 등 주요 업무는 주로 남자 동기들 몫이었다”고 말했다. 여자 선배는 다른 부서의 대리 한 명이 전부였다. “회사를 계속 다녀도 비전이 없다”고 판단한 그는 결혼 후 남편의 지방발령과 함께 회사를 그만뒀다.

여자들은 잦은 야근과 술이 오가는 남성 중심 조직문화에도 힘겨워했다. 교육·출판업 회사의 사무직 직원으로 입사한 여자 2호는 “선배들이 대부분 남자이다보니 술을 강권하는 문화에 여자들이 버텨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졸업 후 경기도의 한 YMCA에 입사했던 여자 3호는 “항상 막차를 타고 집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면 새벽 2시.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회상했다.

입사 후, 외환위기를 맞아 구조조정 대상이 되기도 했다. 서울의 한 경제연구소에 정규직 연구원으로 입사한 여자 4호는 사내에서 유일한 여자 연구원이었다. 당시 약혼자였던 남편보다도 월 50만원을 더 벌었다. 입사 2년째인 1997년 11월,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았고 회사는 휘청거렸다. 1998년 초 회사가 타사에 합병되면서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그해 5월 결혼을 눈앞에 뒀던 그는 해고 1순위에 올랐다. 여자 4호는 “월말까지 퇴사하라는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몇 달 전에 미리 얘기해줬더라면 다른 곳도 알아보고 퇴사 준비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부당 해고로 노동부에 회사를 고발했고 결국 퇴직금과 한 달치 급여를 받기로 합의하고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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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번째 좌절, 결혼·임신·육아의 덫

여자들은 ‘육아의 덫’에 걸렸다. 입사 1~5년차였던 1996~2000년 사이에 8명이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뒀다. 2006~2008년 사이에 퇴사한 3명도 육아 때문에 사표를 냈다.

2000년 퇴직한 여자 5호는 임신 후 입덧이 심했다. 화장실에서 토하고 사무실에 돌아오면 상사는 사내 메신저로 ‘업무처리가 늦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교육·출판업을 하는 회사는 직장 내 절반 이상인 여직원들을 위해 임신부에게는 1개월, 출산 이후에는 3개월 휴가를 방침으로 내세웠다.

여자 5호가 임신을 이유로 한 달짜리 휴가를 내자 팀원들은 “그 자리를 누가 메우냐, 참고 일하면 안되나”라는 불만을 내비쳤다. 직속인 여자 선배는 “나도 애를 둘이나 낳아봤다. 혼자 유난 떨지 말라”며 면박을 줬다. 여자 5호는 “임신한 나를 싸늘하게 바라보는 분위기를 못 견뎌 결국 사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여자 6호는 “2004년 아이를 낳은 뒤에도 버티고 버텼다”고 말했다. 아이는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퇴근 이후에 데려왔다. 그는 “본사에서 지점으로 발령이 났는데 지점에서는 빨리 끝나도 저녁 8시30분이 넘었다. 퇴근 자체가 늦어지다보니 아이 키우는 것이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직장을 나왔다.

여성 직장인들은 아이 키우기에 부모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인 여자 7호는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희생 없이는 현재가 없었다고 말한다. 인천 연수동에 살던 친정어머니는 첫아이를 돌보기 위해 그의 집 근처인 부평으로 이사를 왔다. 그러는 사이 둘째를 임신했다. 그는 “친정엄마가 몸이 안 좋아 더 이상 맡길 수가 없었다. 둘째를 낳고는 회사를 그만두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 의정부에 사는 시어머니가 “좋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며 이사를 왔다. 국회의원 보좌관인 여자 8호의 친정어머니는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딸의 집으로 와 집안일을 챙기고 아이들을 돌본다. 여자 8호는 “친정엄마 없는 월요일은 가장 정신이 없는 날”이라고 말했다.


(3) 새로운 도전, 재취업 현실은 시간제

‘주부’란 이름은 취업 시 결격사유였다. 여자 4호는 출산 후 일반 중소기업 사무직을 찾으려 했다. 이력서 경력사항에는 ‘연구원’ 경력을 뺐다. “하지만 나이제한, 키제한에서 걸렸다. 주부면 안되고 반드시 미혼이어야 했다”고 말했다. 일반 사업체에서 퇴사한 뒤 주부가 된 11명 중 재취업에 성공한 이는 3명에 불과했다.

기자 경력이 있던 여자 9호는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막내가 세 살이던 2008년 두 아이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ㄹ컨설팅회사 마케팅 팀장으로 들어갔다. 그는 “공식 루트를 통한 재취업이라기보다는 지인의 소개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6개월 후 그는 전문지 기자로 복귀했다.

여자 6호는 1년 만에 중소기업인 ㅁ사의 과장으로 재취업했다. 형부가 설립한 작은 회사였다. 일종의 가족경영체인 셈. 덕분에 육아와 직장생활의 병행이 가능했다.

여자 3호도 큰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어린이집 교사(정규직)로 재취업했다. 전업주부 기간 틈틈이 공부해 취득한 보육교사 자격증 덕분이었다.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오후 6시 이후에는 자신의 자녀들도 돌볼 수 있었다.

반면 다른 졸업생들은 가사 및 육아노동과 병행할 수 있는 시간제 일자리를 찾았다. 91학번 주부 8명 중 4명이 시간제 노동을 겸하고 있다. 여자 1호는 첫 직장 퇴직 후, 큰아이가 세 살이 되자 초등학생 대상의 영어 놀이방을 시작했다. 수업시간은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쉬는 시간에는 집앞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왔다. “놀이위주 교육이다보니 배우러 온 초등학생들 옆에서 같이 놀게 했다. 육아 부담이 적은 일자리였다”고 말했다. 그는 학원강사(파트타임)를 거쳐 현재 자택에서 동네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 다른 여자 졸업생은 “아이가 어릴 때는 자동차 부품에 테이핑하는 재택 부업을, 아이가 걸어다닐 때쯤에는 학습지 영업 아르바이트, 식구들이 잠자리에 있는 새벽에는 우유배달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새벽에 잠깐 일어나서 우유를 배달하면 가사에 방해도 안되고, 돈도 벌고, 아이 우유도 싸게 먹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한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한다고 되뇌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산업부)·김재중(정책사회부)·남지원(사회부)·이혜인(전국사회부)·이재덕(경제부) 기자


<특별취재팀>

입력 : 2013-04-25 22:29:46수정 : 2013-04-25 23: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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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 전병역(산업부)·김재중(정책사회부)·남지원(사회부)·이혜인(전국사회부)·이재덕(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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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4-25 22:30:48수정 : 2013-04-25 23: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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