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아시안 웰스 리포트 ③환율전쟁 극과 극…즐기는 싱가포르, 꼼짝 못하는 홍콩

ngo2002 2013. 3. 11. 10:11

환율전쟁 극과 극…즐기는 싱가포르, 꼼짝 못하는 홍콩
기사입력 2013.02.18 17:22:19 | 최종수정 2013.02.21 08:53:41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아시안 웰스 리포트 ③ ◆

싱가포르의 관문인 창이 국제공항 인근에 위치한 이스트코스트 공원. 해안 주변에 즐비한 배들 너머, 비행기가 5~10분 간격으로 이착륙하고 있다. 인구 530만명, 서울시 면적 1.2배의 작은 섬나라임에도 교역 규모가 한국의 70% 수준인 7495억달러에 달하는 무역 대국다운 풍경이다. 이런 싱가포르도 가파른 평가절상을 겪고 있다. 지난해 10월 싱가포르통화청(MAS)은 반 년마다 열리는 통화정책회의 직후 "싱가포르달러는 점진적이고 완만한 절상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MAS는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의 권한을 동시에 가진 막강한 정책당국이다. 이런 MAS가 대놓고 싱가포르달러 절상을 용인한 것이다. 지난해 5월 말 대비 1월 말 기준 싱가포르달러의 대미 통화절상률은 4.13%로 원화 7.74%보다는 낮지만 아시아통화 중 3위에 해당하는 높은 절상폭을 기록하고 있다. 왜 싱가포르는 환율전쟁에 대한 우려는커녕 자국통화 절상을 용인하는 것일까. 또 우리나라처럼 무역대국이면서도 환율전쟁이 남의 나라 이야기인 이유는 무엇인가.

싱가포르, 가파른 절상에도 희희낙낙
정부가 물류ㆍ전시컨벤션 유치…내수 키우고 외자 끌어들여

싱가포르달러화가 연일 강세를 보임에도 싱가포르는 정책적으로 MICE(회의ㆍ인센티브관광ㆍ컨벤션ㆍ전시)산업을 육성해 관광객이 연평균 10%씩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싱가포르 MICE산업의 핵심이자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전경. <매경DB>
= 싱가포르는 대부분이 중개무역이고 주된 부가가치는 금융, 물류, MICE산업(전시ㆍ컨벤션 산업) 등 내수 서비스 산업에서 나온다. 제조업 중심 수출로 환율 영향이 곧바로 수출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여기에 싱가포르는 해외자본 유치가 경제 전반을 떠받치는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한 IB 싱가포르 지점 관계자는 "싱가포르에 투자하려는 해외자본이 넘쳐나는 상황"이라며 "싱가포르달러 강세는 환차익이라는 덤까지 안겨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화 강세가 국가경제에 해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점으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통화 강세는 물가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씨오 친 루 BNP파리바 선임 외환전략가는 "관광산업, 원유정제업 등 싱가포르 수출분야에서 통화 강세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MAS의 목표는 단 하나, 물가안정"이라고 말했다.

씨오 전략가는 "싱가포르 정부는 금융은 물론 항공이나 항만 같은 물류산업, 컨벤션산업 등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정책을 펼친다"며 "해외투자자 유치를 비롯해 적은 세금, 저렴한 부동산 임대료 등을 위한 노력을 지속 중"이라고 말했다. 사업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도록 국가가 지원해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통화 강세 현상에 따른 수출경쟁력 저하를 외자 유치를 통한 인프라 혁신에서 상쇄하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MICE산업 유치를 통해 내수진작을 위한 노력도 병행해 환율전쟁에 대응하고 있다.

윤희로 코트라 싱가포르 무역관장은 "정부가 최근 영국에서 개최되는 신재생에너지 관련 포럼을 유치해왔다"며 "MICE산업 호황에 따른 외국인 관광객 증가가 싱가포르 내수를 지탱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관광청에 따르면 마리나베이와 센토사 지역에 위치한 복합리조트가 개장하기 전인 2009년 싱가포르 관광객은 968만명으로 전년 대비 4.3% 감소했다. 반면 이 리조트들이 개장한 2010년 이후 관광객은 연평균 10%씩 증가해 2010년 1000만명을 돌파하고 지난해에는 1470만명이 싱가포르를 찾았다.

무엇보다 싱가포르가 해외 자본을 흡인하는 매력은 영어 통용, 완벽한 치안, 상속세 전액 면제 등 풍부한 세제혜택이다.

현지 프라이빗뱅킹(PB) 관계자는 "뛰어난 생활여건과 고액 자산가들의 자산을 안전하게 보장한다는 장점에 인접국 자본이 밀려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인근에 인도(인구 12억명), 말레이시아(2900만명), 인도네시아(2억5000만명), 태국(6700만명) 등 인구대국들을 끼고 있다. 본국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싱가포르 자본시장의 안정성에 주목한 이들 나라의 1% 부자 1600만명의 자금이 일제히 싱가포르로 몰려드는 것이다.

싱가포르 현지 교민은 "오차드로드 아파트 분양 현장에서 인도네시아 부자가 아파트 5채를 한꺼번에 계약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오차드로드 지역은 아파트 3.3㎡당 가격이 우리 돈 1억~1억5000만원에 달하는 싱가포르 중심부다. 165㎡ 아파트 가격이 50억~75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이런 고가아파트를 여러 채 거리낌없이 척척 살 정도의 부자들이 몰려드는 곳, 그곳이 싱가포르다.

홍콩달러 약세에도 `비명`
부동산ㆍ수입물가 고공행진…시민 수만명 항의시위

= "선진국 양적완화로 밀려드는 글로벌 자금 때문에 홍콩 내 물가가 크게 오르며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인들의 홍콩 러시로 반중 감정이 커지면서 반중 시위도 심해지는 양상입니다."

홍콩에 거주 중인 한 금융권 관계자가 전한 홍콩 분위기다. 환율전쟁이 홍콩의 사회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홍콩은 미국 달러화에 연동된 `페그제` 환율 체계를 갖추고 있다. 달러당 홍콩달러값을 7.75~7.85홍콩달러 사이 좁은 밴드 안에 가둬뒀다. 언뜻 보기엔 훌륭한 환율제도다. 환위험이라는 불확실성이 거의 제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대미 환율은 고정돼 있지만 미 달러화와 기타 통화 간 움직임에 따라 제3국과의 환율은 변동한다"고 설명했다. 달러화 강세 혹은 약세에 따라 유로, 엔, 위안, 원 등에 대한 환율이 변동한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중국 위안당 홍콩달러화 값은 2011년 1월 1.1833홍콩달러에서 지난 1월에는 1.2472홍콩달러로 5.4%나 절하됐다.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자 달러화에 연동된 홍콩달러가 중국 위안화 대비 약세를 나타낸 것이다.

중국자본을 중심으로 해외자본들이 `저렴해진` 홍콩달러 사냥에 나섬에 따라 해외유동성이 유입돼 홍콩 집값을 높이고 있는 데다 홍콩달러화 약세로 인해 수입물가가 올라감에 따라 서민경제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홍콩 통계처에 따르면 홍콩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2011년 5.3%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월평균 전년 동기 대비 4.1%나 상승했다. 홍콩 통계처는 물가상승 주원인으로 주거비와 식비 급등을 지목했다. 철저하게 서민들이 고통받는 경제구조가 형성된 모습이다.

한 국내 금융사 홍콩지점 직원은 "현지 운전기사 월급이 1만홍콩달러(약 140만원)에 불과해 도시락을 싸서 한 시간 넘는 거리를 출퇴근하고 있다"고 현지 서민들의 생활상을 귀띔했다.

홍콩은 도시 변두리 방 두 개짜리 아파트 월세가 70만원을 넘는 살인적인 주거비용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런 홍콩 내 정세를 반영하듯 지난 1월 1일에는 홍콩 시민 수만 명이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홍콩국기를 들고 반중시위를 벌였다.

이렇듯 `페그제`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나자 홍콩이 페그제를 언젠가는 미국 달러화 연동에서 중국 위안화로 바꿀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이치은행 글로벌시장분석팀은 `신흥국 외환 설명책자`를 통해 "홍콩의 경기순환 흐름이 과거처럼 미국에 연동된 것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투자자와 분석가들 사이에서 커져가고 있다"며 "언젠가는 중국 위안화 페그제로 바뀔 것이라는 믿음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홍콩외환시장에서 홍콩달러 매수세가 강력해지며 환율변동 상단을 위협하자 홍콩 중앙은행인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지난해 10월부터 외환시장에 다시 개입하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홍콩의 외환보유액은 2011년 말 2854억달러에서 지난해 말 3173억달러로 319억달러나 늘어났다. 이는 같은 기간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증가분인 206억달러보다 55%나 많은 숫자다.

[싱가포르·홍콩 = 한우람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 외환개입 카드 훤히 보이는 게 문제"
싱가포르처럼 통화 바스켓 연동 환율제 채택을
기사입력 2013.02.18 17:22:28 | 최종수정 2013.02.18 17:25:32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아시안 웰스 리포트 ③ ◆

"외환시장의 패가 읽히는 순간 개입의 효과는 떨어집니다. 싱가포르처럼 통화 바스켓 연동 환율제도를 채택해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과도한 환투기를 억제해야 합니다."

시장 참가자들의 쏠림이 심하고 이에 편승한 투기적 수요가 많은 한국 외환시장의 개선을 위해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NUS) 교수가 펼치는 주장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유로, 엔, 파운드 등 여러 국가의 환율 변동을 반영한 명목실효환율(NEER)을 중심으로 일일 변동폭이 정해져 있다. 핵심은 명목실효환율과 일일 변동폭을 사전에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싱가포르통화청이 정책적 판단하에 결정하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MAS가 설정한 환율 상하단을 시험하려는 투기 세력은 아무도 없다"며 "정확한 상하단 자체를 알 수 없을뿐더러 MAS의 외환시장 개입 물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 여력은 싱가포르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외환당국이 언제쯤 움직일지에 대해서는 원ㆍ달러 환율 수준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싱가포르 대비 우리 외환당국이 불리한 이유다.

신 교수는 외환당국이 원화값의 급변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기업이 연구개발(R&D)투자로 감내할 수 있는 환율 변동 수준은 기껏해야 5% 안팎"이라며 "원화값이 10% 넘게 널뛰기를 하면 그 어떤 기업이 버텨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신 교수는 외환당국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그는 "MAS는 발표한 정책 그대로 외환정책을 유지하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 외환당국이 구두 개입할 경우 강력한 실개입도 병행해 시장 참여자들이 믿고 따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싱가포르 = 한우람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싱가포르는 환율전쟁 `무풍지대`
서비스중심 산업 덕분…한국 경제체질과 달라
기사입력 2013.02.18 17:44:30 | 최종수정 2013.02.19 08:57:49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아시안 웰스 리포트 ③ ◆

동양 공통의 명절, 설을 앞둔 어느 주말,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금융센터 타워 33층에 위치한 스카이라운지 `레벨33`에서 내려다본 마리나베이 풍경은 쾌청하다.

싱가포르 랜드마크 건물이자 MICE(전시ㆍ컨벤션)산업의 중추 역할을 하는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이 우뚝 서 있고 그 너머 태평양 연안에는 입항을 기다리는 배들이 즐비하다. 반대편 육지 쪽, 마리나베이를 U자형으로 감싼 지역에는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등 투자은행 사무실이 즐비하다. 주중 치열한 환율전쟁이 일어났던 이 투자은행들의 딜링룸은 격전을 뒤로하고 불을 꺼둔 채 달콤한 휴식 중이다.

옆 테이블에서는 외환 트레이더들이 한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맥주 한 잔에 풀어내고 있는 모양이다.

"너도 엔화 약세에 베팅해서 돈 좀 벌었니? 난 일년치 목표 한 방에 끝냈다."

"헤지펀드들이 한국 원화 약세에 베팅하는 모양이더라. 엔화가 저렇게 약해지면 한국 정부에서 어디 가만히 있겠어?"

세계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인종의 트레이더가 본인 모국어에 따라 가지각색의 악센트를 띤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만 선진국의 돈 풀기, 즉 양적완화에 따른 유동성 유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 금융중심지인 싱가포르와 홍콩에도 막대한 자금이 흘러들어오고 있다. 외환 트레이더들은 이러한 자금 흐름을 읽고 기민하게 대처해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반면 개별 국가들의 희비는 엇갈리고 있다.

싱가포르는 쏟아지는 해외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번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싱가포르도 통화 강세 현상이 일어나긴 마찬가지다. 지난 8개월간 아시아 통화 중 싱가포르 통화의 미국 달러 대비 절상률이 한국, 태국에 이어 3위다.

그러나 우리와 달리 싱가포르는 금융ㆍ물류ㆍMICE산업 등 내수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호황세를 보이며 환율전쟁에 따른 후유증을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방대한 교역 규모에도 불구하고 산업 구조가 환율에 지나치게 민감하지 않도록 짜인 데다 정부의 통화정책 방향에 맞춰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치밀하고 예측 가능한 정부 정책 방향에 경제 주체마다 체질화한 생산성 끌어올리기가 덧붙여진 게 큰 몫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통화 강세에 따른 수출경쟁력 약화를 외자 유치가 상쇄시키는 독특한 프로세스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와는 경제 체질이 완전히 다르다.

반면 홍콩은 환율전쟁에 참여한 모든 나라가 원하는대로 자국 통화 약세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통화 약세가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홍콩 자산운용업 관계자는 "홍콩달러화 약세로 인해 해외투자자가 체감하는 `홍콩의 가격`이 저렴하다"며 "해외 유동성 유입에 따른 부동산, 식료품 물가 급등이 양극화 현상을 낳고 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ㆍ홍콩 = 한우람 기자]

환율전쟁 극과 극…즐기는 싱가포르, 꼼짝 못하는 홍콩
"한국 외환개입 카드 훤히 보이는 게 문제"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