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6주년 특집]5대 제안 - 칸막이를 없애자
ㆍ[사회계약 다시 쓰자 Ⅱ]
1963년 조기섭씨(68·가명)는 서울의 명문 사립대에 입학했다. 다들 어려운 시절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그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 생활을 힘겹게 이어갔다. 그 해 겨울방학, 그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려고 무전여행을 결심했다. 무작정 학생처장을 찾아가 전국 각지의 교우회를 돌아보고 오겠다며 증명서를 써달라고 했다. 종이 한 장만 달랑 들고 돌아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만난 선배들은 숙소를 잡아주고 용돈을 쥐어줬다. 30일 만에 목포에 이르러 주머니를 털어보자 소 한 마리 값의 돈이 남았다. 한 학기 등록금이었다.
2012년 서울에 사는 김소민씨(35·가명)는 두 아이의 엄마다. ‘강남 8학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종종 ‘대치동 엄마’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요즘은 아이가 말을 떼기도 전에 놀이터에서 얼굴을 튼 엄마들끼리 3~5명씩 그룹을 짓고 문화센터에서 어울린다. 이후 같은 영어유치원을 보낸다. 아이들의 진로는 초등학교 때부터 결정되고 일상도 달라진다. 줄넘기 급수를 높이는 데도 강사를 초빙해 함께 배운다. 그때부터는 어느 학원에 보내느냐를 묻는 것도 실례다. 수입이 얼마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강남 일부에서는 배우자를 고를 때 본인뿐 아니라 친정 ‘엄마’도 전업주부이길 원한다. 그것은 부의 상징이다. 또 그래야만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기도 하다.
그나마 50년 전 조씨가 살았던 시절에는 노력만 하면 ‘칸막이’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진 것 없는 그에게 선배들은 단지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이유로 상상할 수 없는 호의를 베풀었다. 지금도 그가 “신세를 졌다”며 교우회에서 중요 직책을 맡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50년 후 김씨가 사는 오늘날은 다르다. ‘그들만의 리그’를 뚫기란 쉽지 않다. 최근 부정입학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외국인학교는 그런 그룹의 한 단면이다. 부유층들은 연간 학비가 3000만원이 넘는 이곳에 불법으로라도 자녀를 보내 조기유학을 보낸 효과를 얻는다.
▲ 학벌·소득·지역 따른 구성원 무리짓기
갈수록 공고화되는 ‘그들만의 리그’로
‘배제’ 양산하는 사회구조 틀 이젠 깨야
때로는 강제적으로 분리가 이뤄지기도 한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저소득층 자녀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지 않도록 학군 조정을 요구하는 일은 빈번하다. 정용주 ‘오늘의교육’ 편집위원이 쓴 ‘초등학교에서의 사회적 배제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은 그런 사회적 배제의 과정을 보여준다. 한 엄마는 말한다. “우리 아이가 과학을 좋아해서 목동의 학원에서 고액과외를 시켰는데 몇 번 다니더니 싫다고 해요. 아이들하고 대화가 안된대요. 몇 평 집에 살고, 아버지 월급이 얼마이고, 방학에는 어느 나라를 갔다 왔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낄 내용이 없거든요.” 한 아이는 말한다. “어차피 나는 안돼 하는 생각을 6학년 때부터 갖게 돼요. 공부를 해봤자 계속 부진아라는 딱지가 붙고, 집은 못살고 무상급식 이런 것도 쪽팔리고요.”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학벌·지역처럼 과거에 의해 규정되는 칸막이와 소득 수준에 의해 만들어지는 현재의 칸막이가 맞물리면서 칸막이 사회는 더 공고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2012년 신입생의 61.7%가 특목고·자사고·강남3구 출신이라는 통계가 있다. 결국 성적 중심이라는 미명하에 고학력·고소득 계층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경쟁을 시키고 이들에게 다시 학벌을 선사함으로써 그들만의 무리짓기를 공고화시키는 셈이다.
무리를 짓는 건 생존을 위한 본성이다. 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는 앞선 자가 바람을 막아줘 다른 구성원들이 힘을 아낀다. 그러나 한국 사회 구성원의 무리짓기는 언제부터인지 칸막이를 치고 상대편을 배제하기 위해 이용된다. 최재현 서강대 교수는 1990년 한 일간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1960년대 이후 비민주적인 정치구조가 출신 지방과 출신 학교를 따지는 관행을 심화시켰다. 이런 와중에 사람들은 동류들을 찾아 규합하여 일종의 칸을 이루고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는 칸막이로 스스로를 차단하는 경향도 있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고 있다.” 다른 글에서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칸막이 현상이 보편화되다보니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칸을 넓히려고 혈안이 되기 마련이다. 조그만 하나의 칸으로는 신분이 위태로우니까 동시에 여러 가지 칸을 만들어가려고 애쓴다. 그러다보니 온갖 종류의 단체, 또 무슨 회들이 생겨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룸살롱 공화국>에서 “칸막이 현상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이라며 “그걸 이해하면 지역 갈등에서부터 유흥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다”고 주장한다. “은밀한 접대는 칸막이를 필요로 하며, 룸살롱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런 칸막이를 우아하게 구현했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각종 비리사건만 터지면 ‘영포회’니 하는 온갖 ‘칸막이’의 실체가 드러나며 룸살롱도 덩달아 회자되는 까닭이다.
통계청의 2011년 사회조사를 보면 친목·사교단체 참여율은 55.2%에 이르지만, 시민사회단체나 정치단체 참여율은 0%에 가깝다. 이재열·장덕진 서울대 교수가 지난해 ‘사회의 질’을 조사한 논문을 보면 한국은 개인의 경쟁력을 뜻하는 ‘인적 자본’과 어려운 개인들이 서로 돕는 ‘사회통합’ 부문의 순위는 높았지만 ‘사회경제적 안정성’이나 ‘정치 참여’의 순위는 낮았다. 대체로 한국 사회는 사회적 갈등과 문제해결을 공적인 조정보다는 칸막이 속 사적 수단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저자 엄기호씨는 ‘단속사회’라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더 이상 낯선 사람, 타자를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고 본다. 고통을 호소하거나 정치적으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순간 그는 낯선 존재, 다른 사람이 돼 배제될 위기에 처한다. 내가 타자를 만나는 것도 두렵고, 내가 타자가 되는 것도 두려워하는 상황에서는 사회적 고통을 공유하는 ‘정치’나 ‘사회’라는 것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발적으로 칸막이를 빠져나온 김소민씨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자녀들만은 자신의 학창시절을 반복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그는 “아이를 바꾸는 것보다 세상을 바꾸는 게 쉽다고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향신문의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캠페인에 서명한 약 9000명 중 한 사람이다. 칸막이를 빠져나오는 사람이 많을수록 칸막이는 초라해진다. 그만큼 더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정치’를 변혁하고 ‘사회적인 것’을 재구성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1963년 조기섭씨(68·가명)는 서울의 명문 사립대에 입학했다. 다들 어려운 시절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그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 생활을 힘겹게 이어갔다. 그 해 겨울방학, 그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려고 무전여행을 결심했다. 무작정 학생처장을 찾아가 전국 각지의 교우회를 돌아보고 오겠다며 증명서를 써달라고 했다. 종이 한 장만 달랑 들고 돌아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만난 선배들은 숙소를 잡아주고 용돈을 쥐어줬다. 30일 만에 목포에 이르러 주머니를 털어보자 소 한 마리 값의 돈이 남았다. 한 학기 등록금이었다.
2012년 서울에 사는 김소민씨(35·가명)는 두 아이의 엄마다. ‘강남 8학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종종 ‘대치동 엄마’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요즘은 아이가 말을 떼기도 전에 놀이터에서 얼굴을 튼 엄마들끼리 3~5명씩 그룹을 짓고 문화센터에서 어울린다. 이후 같은 영어유치원을 보낸다. 아이들의 진로는 초등학교 때부터 결정되고 일상도 달라진다. 줄넘기 급수를 높이는 데도 강사를 초빙해 함께 배운다. 그때부터는 어느 학원에 보내느냐를 묻는 것도 실례다. 수입이 얼마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강남 일부에서는 배우자를 고를 때 본인뿐 아니라 친정 ‘엄마’도 전업주부이길 원한다. 그것은 부의 상징이다. 또 그래야만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기도 하다.
그나마 50년 전 조씨가 살았던 시절에는 노력만 하면 ‘칸막이’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가진 것 없는 그에게 선배들은 단지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이유로 상상할 수 없는 호의를 베풀었다. 지금도 그가 “신세를 졌다”며 교우회에서 중요 직책을 맡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50년 후 김씨가 사는 오늘날은 다르다. ‘그들만의 리그’를 뚫기란 쉽지 않다. 최근 부정입학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외국인학교는 그런 그룹의 한 단면이다. 부유층들은 연간 학비가 3000만원이 넘는 이곳에 불법으로라도 자녀를 보내 조기유학을 보낸 효과를 얻는다.
연간 학비가 수천만원에 이르는 외국인학교는 당초 취지와 달리 일부 부유층의 귀족학교가 됐다. 학벌·재산 등의 각종 칸막이가 배제와 차별을 낳고 있는 한국 사회에 또 하나의 칸막이로 작용하는 셈이다. 한 외국인학교 학생들이 5일 오전 등교를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학벌·소득·지역 따른 구성원 무리짓기
갈수록 공고화되는 ‘그들만의 리그’로
‘배제’ 양산하는 사회구조 틀 이젠 깨야
때로는 강제적으로 분리가 이뤄지기도 한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저소득층 자녀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지 않도록 학군 조정을 요구하는 일은 빈번하다. 정용주 ‘오늘의교육’ 편집위원이 쓴 ‘초등학교에서의 사회적 배제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은 그런 사회적 배제의 과정을 보여준다. 한 엄마는 말한다. “우리 아이가 과학을 좋아해서 목동의 학원에서 고액과외를 시켰는데 몇 번 다니더니 싫다고 해요. 아이들하고 대화가 안된대요. 몇 평 집에 살고, 아버지 월급이 얼마이고, 방학에는 어느 나라를 갔다 왔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낄 내용이 없거든요.” 한 아이는 말한다. “어차피 나는 안돼 하는 생각을 6학년 때부터 갖게 돼요. 공부를 해봤자 계속 부진아라는 딱지가 붙고, 집은 못살고 무상급식 이런 것도 쪽팔리고요.”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학벌·지역처럼 과거에 의해 규정되는 칸막이와 소득 수준에 의해 만들어지는 현재의 칸막이가 맞물리면서 칸막이 사회는 더 공고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2012년 신입생의 61.7%가 특목고·자사고·강남3구 출신이라는 통계가 있다. 결국 성적 중심이라는 미명하에 고학력·고소득 계층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경쟁을 시키고 이들에게 다시 학벌을 선사함으로써 그들만의 무리짓기를 공고화시키는 셈이다.
무리를 짓는 건 생존을 위한 본성이다. 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는 앞선 자가 바람을 막아줘 다른 구성원들이 힘을 아낀다. 그러나 한국 사회 구성원의 무리짓기는 언제부터인지 칸막이를 치고 상대편을 배제하기 위해 이용된다. 최재현 서강대 교수는 1990년 한 일간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1960년대 이후 비민주적인 정치구조가 출신 지방과 출신 학교를 따지는 관행을 심화시켰다. 이런 와중에 사람들은 동류들을 찾아 규합하여 일종의 칸을 이루고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는 칸막이로 스스로를 차단하는 경향도 있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심화시키고 있다.” 다른 글에서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칸막이 현상이 보편화되다보니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칸을 넓히려고 혈안이 되기 마련이다. 조그만 하나의 칸으로는 신분이 위태로우니까 동시에 여러 가지 칸을 만들어가려고 애쓴다. 그러다보니 온갖 종류의 단체, 또 무슨 회들이 생겨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룸살롱 공화국>에서 “칸막이 현상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이라며 “그걸 이해하면 지역 갈등에서부터 유흥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다”고 주장한다. “은밀한 접대는 칸막이를 필요로 하며, 룸살롱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런 칸막이를 우아하게 구현했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각종 비리사건만 터지면 ‘영포회’니 하는 온갖 ‘칸막이’의 실체가 드러나며 룸살롱도 덩달아 회자되는 까닭이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저자 엄기호씨는 ‘단속사회’라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더 이상 낯선 사람, 타자를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고 본다. 고통을 호소하거나 정치적으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순간 그는 낯선 존재, 다른 사람이 돼 배제될 위기에 처한다. 내가 타자를 만나는 것도 두렵고, 내가 타자가 되는 것도 두려워하는 상황에서는 사회적 고통을 공유하는 ‘정치’나 ‘사회’라는 것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발적으로 칸막이를 빠져나온 김소민씨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자녀들만은 자신의 학창시절을 반복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그는 “아이를 바꾸는 것보다 세상을 바꾸는 게 쉽다고 정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향신문의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캠페인에 서명한 약 9000명 중 한 사람이다. 칸막이를 빠져나오는 사람이 많을수록 칸막이는 초라해진다. 그만큼 더 많은 사회구성원들이 ‘정치’를 변혁하고 ‘사회적인 것’을 재구성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입력 : 2012-10-05 21:26:45ㅣ수정 : 2012-10-05 21: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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