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그룹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불과 3년 동안 한국네슬레, 한국3M, 한국코닥, 두산씨그램, OB맥주 등의 지분을 잇따라 처분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한 경기침체 국면에서 과감하게 내린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성 전략의 시작이었다. 현금흐름을 개선한 뒤 두산은 인프라스트럭처 산업을 자신들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채택했다. 그러면서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해외에서도 유수 인프라 업체를 지속적으로 사들였다. 두산의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이 가져온 변화는 놀라웠다. 2000년 4조원에 불과했던 두산의 매출은 2005년 11조9000억원, 2009년 21조4000억원으로 10년 만에 5배 이상 급성장했다. 재계 순위는 13위 안팎을 오르내리다가 이젠 당당히 10대그룹(공기업 제외)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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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적 창업ㆍ성장 스토리를 자랑하던 A사. 이 회사는 최근 자신의 `캐시카우`인 핵심사업 분야를 시장에 내놨다. 전략적 판단 때문이 아니라 그룹 전체의 위기 때문이었다. 지난 수 년간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잘하던` 분야에 집중하지 않고 무리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몰두하고 신사업 투자를 하다 벌어진 참극이었다. 건설, 신재생에너지, 금융 등 유망하다거나 대기업의 자존심이라 할 만한 분야에는 죄다 뛰어들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다양한 사업만 나열됐을 뿐 시너지를 일으키는 `밸류 체인`도 없었고 각각의 사업은 따로 놀았다. 2008년 시작된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계속되자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됐다. 포트폴리오 재구성의 대표적 실패 사례다.
"상위 25%에 속했던 기업들 중 40%는 불황을 거친 뒤에 순위권에서 밀려났다. 하위 75%에 속하던 기업들 중 14%가 상위 25% 내로 진입했다. 불과 수 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세계적인 컨설팅업체 한 곳이 2000년대 초 IT 버블이 꺼진 직후 수년간 벌어진 미국기업 지위 변화를 조사한 결과다. 1990년대 초 경기침체기를 전후해 기업의 지위 변화를 조사한 다른 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당시 경기침체를 전후로 상위 25%에 속하던 기업의 5분의 1은 하위 25%로 추락했고 하위 25%에 속하던 기업들 중 5분의 1 이상은 상위 25%로 진입했다.
이처럼 경기침체기, 불황기는 기업의 흥망성쇠를 가르며 산업 내 위치를 바꾸는 결정적 위기이자 기회의 순간이 된다.
최근 193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빗대어 `대불황(Great Recession)`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 세계가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 위대한 기업들은 통상 불황기에 과감한 신사업 투자와 기존 사업 정리를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성에 나선다. 시장에는 다양한 기업이나 사업 분야가 합리적인 가격에 매물로 나와 신사업 투자와 인수ㆍ합병을 고려하던 경영자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이때 판단을 잘못해 포트폴리오 재구성에 실패하면 말 그대로 불황기에 `무모한 투자`를 했다가 회사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게 된다.
매일경제 MBA팀은 길어지는 불황기, 기업들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성 성공 전략을 알아보기 위해 세계적인 경영 구루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에이드리언 슬라이워츠키(Adrian J. Slywotzky)를 단독 인터뷰했다. 또 국내 경영전략의 전문가로 꼽히는 유재욱 건국대 경영대 교수, 재무 전문가인 박영석 서강대 경영대 교수로부터 재무상황을 고려한 사업 재편 전략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불황은 예전의 경기침체와는 다르게 상당히 길고 그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무작정 `불황기엔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원칙만 어설프게 믿고 덤볐다가는 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재욱 교수는 "모든 경기침체기가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시기가 바로 사람으로 치면 정밀건강진단을 해야 하고 또한 할 수 있는 시기"라며 "성과저하의 근본 원인이 모두 경기침체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사업성장성이나 경쟁력에서의 근본적인 문제인지를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불황기에 기업이 방어적인 경영에만 치중하면 이후에도 성과가 나빠지고 또다시 방어경영을 해야 하는 `축소지향적 악순환`이 생겨난다"며 "하지만 `불황기엔 공격경영`이라는 역발상의 늪에 빠져 내부역량을 초과한 성장을 시도할 경우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다"고 설명했다. 경영진이 객관적으로 기업을 들여다보고 냉철하게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박영석 교수는 "기업의 외부환경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분석을 해본 뒤 매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된다고 하더라도 외부 자금 조달을 하지 않고 상당기간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경우 투자결정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투자를 연기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결국 경기침체기에는 방어경영으로 확보한 자원을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와 신규사업 준비를 위해 투자하는 `선방어 후공격`의 균형적인 포트폴리오 재구성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특히 지금처럼 기존의 경기침체와는 다른 `장기불황`의 조짐이 보이는 국면에서는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거시적인 경제 흐름을 지속적으로 살피는 `전략실`의 활용이 더해져야 한다. 포트폴리오 재구성에 성공한 대다수 기업들은 경제전문가들에게 세계적인 거시 경제흐름을 분석하도록 해 조언을 듣고 있다. `재고소진 기피모형`과 같은 경제이론에 따르면 거시경제의 조그마한 변화가 회사의 매출과 수익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유재욱 교수를 비롯한 경영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지금 기업들은 △수익성을 고려한 주력사업 구조조정 △안정성에 초점을 맞춘 지역 다각화 △장기적 성장성에 초점을 맞춘 사업ㆍ제품 포트폴리오 재구성을 할 시기다.
[고승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