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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바둑이야기-물에 뜨는 바둑판(浮木盤) 미스터리

ngo2002 2012. 7. 30. 17:24

 

[뉴스 클립] 바둑이야기-물에 뜨는 바둑판(浮木盤) 미스터리

300년된 본인방 가보가 어떻게 김옥균 손에 들어갔을까

바둑판은 물에 가라앉는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또 바둑판이 물에 뜬다고 한들 무슨 대수랴. 조선의 판 중엔 속을 비운 뒤 철사 같은 것을 넣어 돌이 놓이면 딩딩 울리게 만든 것들이 있었다. 해방 후까지도 그런 판이 있었다. 물론 물에 넣으면 뜬다. 일본엔 물에 뜨는 바둑판이 없었나 보다. 그래서 물에 뜨는 바둑판 얘기가 일파만파의 얘기를 만들어냈다.

박치문 바둑전문기자

무수한 전설·이야기 남긴 채 사라진 ‘부목반’

94년 MBC에서 방영된 최초의 바둑드라마 ‘맞수’의 한 장면. 응씨배 결승전을 앞 둔 조훈현 9단(유인촌 분)과 부목반의 비밀을 추적해온 기자(정성모 분)가 부목반을 가운데 놓고 대화 중이다. ‘맞수’는 조선의 고수 이약사와 망명객 김옥균, 그리고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 유창혁 9단, 이창호 9단, 녜웨이핑 9단, 오타케 9단 등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오래 된 것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부목반(浮木盤)이란 바둑판은 전설 같은 무수한 얘기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가 공개되지 않은 채 사라져 버렸다는 점에서 더욱 신비감을 준다. 부목반이란 ‘물 위에 뜨는 바둑판’이란 뜻이다. 바둑판은 물에 뜨지 않는다. 정말인가 싶어 몇 번인가 실험을 해봤지만 매번 물에 뜨지 않고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부목반은 왜 물에 뜨는가. 이것이 부목반에 얽힌 첫 번째 미스터리다.

 부목반은 막부시대 일본 바둑 네 가문 중 최대·최강 바둑 가문이었던 본인방 가(1612-1938)의 가보였다. 제18세 본인방 슈호(秀甫)는 힘겹게 본인방 자리에 오르던 날 “부목반을 치켜들고 미친듯이 춤을 추었다”고 전한다. 부목반은 곧 본인방을 상징하는 물건이었고 본인방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물이었다. 한데 이 바둑판은 사진은 물론 그림조차 남아있지 않다. 아무리 소중한 물건이라 해도 그토록 꽁꽁 숨긴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일반에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을까. 이게 두 번째 미스터리다(※본인방가는 1세 본인방 산샤(算砂)로부터 최후의 본인방 슈사이(秀哉)까지 21대 350년간 이어졌다. 하나 내전과 메이지 유신으로 정부의 봉록이 끊기면서 본인방 가문도 문을 닫게 됐고 본인방이란 이름은 1939년 시작된 일본 최초의 프로기전 이름이 됐다).

 부목반은 일본 전국시대의 패자 오다 노부나가가 하사한 나무로 만들어졌다고도 하고 또 다른 설도 있다. 사람으로 치자면 ‘출생’이 불명확하다. ‘사망’은 더욱 아리송하다. 부목반은 어떤 연유에서인지 19세 본인방 슈에이(秀榮)로부터 조선의 망명객 김옥균에게 맡겨진다. 한데 그 후 김옥균이 상하이에서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당하며 부목반은 영영 사라지게 된다. 슈에이와 김옥균의 우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렇더라도 본인방가의 제자들조차 접할 수 없던 가보를 외국의 망명객에게 맡긴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더구나 김옥균과 함께 바둑판도 영영 사라졌다는 것도 신기하다. 이게 세 번째 미스터리다.

 갑신정변의 주모자였던 김옥균(1851~1894)은 거사가 실패하면서 일본으로 망명한다. 일본 생활 10년 동안 숱한 정치적 활동을 하고 여자들을 만나 자식도 많이 낳고 두 차례나 유배도 당한다. 조선으로 돌아가면 따라가겠다는 추종자들도 많았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 일본 바둑계, 특히 본인방가의 수장인 슈에이와 깊은 교분을 쌓고(※ 슈에이와의 5점 바둑이 기보로 남아있다), 이 가문의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도 해준다. 이 점도 미스터리다. 자기 생존조차 뿌옇던 망명객 김옥균과 일본 최고 바둑가문 본인방가의 기이한 인연은 새삼 김옥균이란 사람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김옥균은 홋카이도로 유배를 떠난다. 김옥균을 마중하러 배에 올랐던 본인방 슈에이는 차마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그 길로 홋카이도까지 함께 간다. 둘 사이의 정이 얼마나 깊었던지 상상이 간다. 김옥균은 다시 남쪽의 머나먼 섬인 오가사와라(小笠原)로 다시 유배된다. 당시만 해도 배로 한번 가는데 한 달 가까이 걸리는 절해고도였다. 슈에이는 그곳까지 김옥균을 찾아가 한 달 이상 머물다 왔다. 정처 없이 떠도는 망명객과 쓰러져 가는 가문을 지키려는 수장 사이엔 ‘비운’과 ‘비감’이란 가슴 시린 공통분모가 있었다.

 최후의 본인방 슈에이(21세)는 젊은 시절 전쟁과 메이지 유신으로 바둑계가 파탄을 맞자 본인방가를 나와 미국으로 가려 했다. 그것도 여의치 않자 절에서 주지의 바둑 동무를 하기도 했고, 이산가족을 찾아 주는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그를 이끌어 본인방가로 다시 이끌어 준 사람도 김옥균이다. 슈에이는 훗날 ‘불패의 명인’으로 불렸고 바둑사에 ‘현대 기전의 출발’이란 큰 족적을 남겼다(※김옥균은 오가사와라에서 쓰던 비자 바둑판을 자신을 수발해주던 일본 청년에게 줬다. ‘은봉’이라 이름 붙은 그 판은 보기 드문 명반이어서 일본 대신 등 많은 인사가 사고자 했다. 하지만 그 청년은 판을 가보로 정해 대물림했다).

“조선의 고수 이약사가 3점 접히고 졌다”

‘맞수’에서의 제1회응씨배 결승전 장면. 조훈현 9단과 녜웨이핑 9단의 대결이다. 바둑은 돌 놓는 손만 봐도 급수를 아는 법인데 손이 좀 서툴렀다.

조훈현 9단과 ‘맞수’에서 조훈현 역을 한 유인촌 씨가 만나 바둑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갔지만 필자가 부목반에 관심을 가진 것은 김옥균이란 인물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이약사(李約史)란 이름을 가진 조선의 고수가 있다. 교토 적광사란 절은 본인방가가 탄생한 곳이다. 이곳 9개 탑당 중 하나의 이름이 본인방이었고 그 주지가 산샤(1559~1623)였다. 이약사에 대해선 일본 쪽에 “조선의 관리이자 최고수인데 1세 본인방 산샤에게 3점 접히고 졌다”는 한 줄의 기록이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적광사엔 이약사가 쓴 건곤굴(乾坤屈)이란 편액이 지금도 걸려 있고 이약사가 보낸 바둑알도 남아 있다. 이약사가 한낱 흘러가는 3점 하수가 아니라 훨씬 고수였고 최소한 적광사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년 전 필자는 이약사-부목반-김옥균을 잇는 스토리를 하나 만들었다. 이 스토리 중 부목반 내용 부분만을 요약하면 이렇다.

 조선의 고수 이약사는 임진왜란 후 조선의 포로 송환을 위한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간다. 이약사는 자신의 바둑판을 직접 들고 가 적광사에서 일본 최고수 산샤와 대국했는데 며칠 간의 팽팽한 접전에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산샤는 오다 노부나가가 암살되는 현장에 있었고, 버려져 있던 오다의 시체를 수습해 장례를 지내준 사람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산샤의 인품을 흠모해 군에 모셔다가 장병들에게 전략 강의를 하도록 했다. 히데요시가 죽고 역시 바둑을 좋아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열면서 산샤는 일본 바둑 부흥의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려 한다. 조선의 서출인 이약사는 산샤를 꺾어 이에야스 앞에 가 대국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이에야스를 죽여 조선인의 원한을 푼 뒤 자신의 한 많은 인생도 마감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바둑이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던 이약사는 산샤의 꿈을 이해하고 자신의 계획을 접는다. 그 사실을 산샤도 안다. 승부는 결국 무승부로 끝나고 산샤는 이약사가 남긴 바둑판을 본인방가의 가보로 정한다. 그가 쓴 ‘건곤굴’이란 편액은 적광사에 건다. 이 같은 사실은 오직 본인방에게만 대대로 전해진다. 참고로 조선의 바둑판은 속이 텅 비어 있어 물에 뜬다.

1 이약사가 교토 적광사에 남긴 편액 ‘건곤굴’. 너무 심오해 해석이 불가능한 이 글은 지금도 적광사에 걸려 있다. 2 이승우 선생이 일본에서 찾아낸 김옥균의 바둑판. 한국기원에 보관 중이다.
 세월이 흘러 본인방가는 쇠락해 더 이상 존립이 어려워졌다. 본인방 슈에이는 자신의 지기인 김옥균에게 이 같은 내용과 함께 부목반을 전하며 “나는 더 이상 가문과 가보를 지킬 수 없으니 김옥균 그대가 조선으로 돌아가면 이 판을 이약사의 후인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한다. 하나 김옥균은 자객 홍종우에게 살해당하고 부목반은 곡절 끝에 한국의 조훈현 9단에게 전해진다. 때마침 조훈현은 중국의 녜웨이핑과 응씨배 결승전을 앞두고 그의 강력한 파워에 맞설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었는데 부목반 뒷면엔 그 옛날 이약사가 적은 12자의 글이 적혀 있었다.

보이는 힘은 보이지 않는 힘만 못하고(力不如氣)

보이지 않는 힘은 고요함만 못하다(氣不如靜)

삼라만상의 조화는 고요함에서 나온다(妙生於靜)

 크게 깨달음을 얻은 조 9단은 당시의 최강자 녜웨이핑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컵을 차지하게 된다. 2회 응씨배 결승전은 한국의 토종 실전류의 상징인 서봉수 9단과 ‘일본 미학’의 대가 오타케 히데오 9단이 맞붙어 서 9단이 역시 프로 세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역전 끝에 우승했다. 부목반에 얽힌 이 얘기들은 무협지 같은 스토리지만 상당 부분은 사실이다.

 실제와 가상이 뒤섞인 그 스토리는 수사반장을 연출하던 MBC의 고석만 PD(현 여수 엑스포 총감독)에 의해 ‘맞수’라는 제목의 TV드라마(2부작)로 만들어져 삼일절 특집으로 방영됐다. 한국 4인방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최초의 바둑 드라마인데 김옥균은 한진희씨, 조훈현 9단은 유인촌씨, 서봉수 9단은 정보석씨가 맡아 연기했다. 고소영씨도 출연했다. 2부작으로는 너무 짧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바둑 돌 놓는 손만 봐도 급수를 아는 법인데 당대 최고수들의 바둑 돌 놓는 폼이 영 서툴러 고민이었다. 정보석씨는 열심히 훈련해 상당한 경지를 보였으나 유인촌씨는 결국 서울대 바둑부 선수의 손으로 대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둑사 연구가인 이승우 선생이 부목반과 관련된 사실을 왜곡한다며 방송국에 항의하기도 했다. 그래도 전설 같은 부목반이 왜 물에 뜨고 왜 김옥균에게 전해졌는지 나름 설명해 봤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이약사 같은 옛 고수의 유전자가 있기에 한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다는 점도 결코 허구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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